〈 320화 〉 협박3
* * *
“……전투가 있었나요?”
“아니, 레이시를 습격하려 들길래 막았고, 레이시는 부상 없이 돌아왔어.”
도끼에 묻은 피를 보고는 공허한 얼굴로 아샤를 바라보는 미스트.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반응에 웃음을 억누르다가 숨을 크게 고르고는 전투는 없었으며 이것은 거래의 대가라면서 무기를 정비할 때 쓰는 수건으로 도끼날을 닦았다.
그러자 미스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샤를 바라봤다.
거래의 대가로 피를 묻혔다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레이시가 공격을 받았으니 공주의 아내를 건드린 일이 되고 그를 위해서 팔 한 쪽이라든가 눈 한 쪽 정도는 도려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웃음을 터트릴만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와는 거리가 먼 일에 미스트는 엘라를 바라보면서 아샤가 왜 저렇게 웃는 거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엘라는 미스트의 질문에 잠시 멈칫하더니 몸을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이상할 정도로 몸을 경직시키는 엘라.
미스트는 그런 반응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 미네르바를 바라보면서 미네르바는 설명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앞선 두 사람과는 다르게 화를 내던 미네르바는 미스트에게 사건의 전말을 가르쳐주었다.
“레이시를 습격해놓고서 미안하다고 말로 때우려다가 주인이 벌을 줬다.”
“헤에, 무슨 벌인가요?”
“고환을 잘라냈다. 너무 가벼운 벌이다.”
“…….”
“그래서 엘라가 어떤 회복 마법을 써도 기관을 회복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가볍다. 주인을 공격했으니까 골반을 부숴야 했는데!”
“쿡, 풉, 프크크큭……!”
“……? 왜 웃나?”
“크흡, 크흠. 엘라 공주님이 혹시 심연 마법을 사용했나요?”
“그렇다. 그렇게 하면 어떤 회복 마법이던 심연 마법으로 막아버리면 자기가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심연마법을 걸었다.”
“큭, 크흡! 그럼 됐어요. 자손을 태어나지 못하게 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죠.”
미네르바의 설명에 아샤와 엘라가 왜 그렇게 말을 피하려고 했는지 깨닫는 미스트.
미스트는 한참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이내 진정했다면서 미네르바에게 그 형벌을 레이시가 생각한 거냐고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미스트의 반응에 자랑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선택한 벌이다. 칼을 휘둘렀고 자기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면서 다시는 그런 생각을 못 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걸 자르면 좋겠다고 말했다.”
“…….”
“……?”
“아하하핫! 죄송해요! 아하! 아하하핫! 레이시! 정말 잘 했어요! 아하하하핫!”
“아으으…….”
미스트의 웃음에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으면서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고개를 푹 숙이면서 역시 너무 심했냐면서 미스트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정말 성범죄자가 보듯이 훑어봤는 걸요…….”
시선에 물리력이 있었으면 지금쯤 개구리의 점막 같은 것을 뒤집은 쓴 채로 욕실로 들어갔을 거라고 말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입술을 틀어막고 잘 했다며 레이시를 칭찬해줬다.
“검성은 아내가 넷이나 되지만, 그 아내들은 결혼을 해서 가진 게 아니거든요.”
“네?”
“정략결혼, 전쟁포로, 매매혼……. 뭐, 그런 것들로 이루어낸 것이에요. 레이시가 생각한 벌은 딱 적당한 수준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죠?”
“으, 으으음…….”
미스트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미스트의 말이 없었어도 자기를 죽이려고 한 사람을 딱히 봐줄 생각이 없었지만, 미스트의 설명이 덧붙여지자 레이시는 미약하게 남아있던 죄책감도 마저 잊고 미스트에게 어리광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레이시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엘라에게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미스트에게 무슨 질문을 하는 거냐며 히죽 웃었다.
“하던 일은 다 해야지. 참, 오랜만에 밖에 나왔으니까 하양이와 나비 산책도 시켜줄까? 아샤와 미네르바가 호위하면 에일렌의 호위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니까 에일렌도 산책시켜주자. 날도 좋고 비도 안 내릴 거 같으니까.”
“어머, 검성님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나요?”
“일이 있잖아, 일이 있는데 이 일을 무시하고 자기를 수도까지 호위해줬으면 좋겠다니……. 오라토리엄 왕국의 국민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나는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거지 도스토연맹국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냐.”
“그렇기는 하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 마을에서의 일을 끝낸다. 이론은 받아들이지 않아.”
“딱히 이론을 제기할 사람도 없지만요.”
레이시는 칼로 자기를 찌르려고 한 괴한하고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고,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죽이려고 했으니 검성에게 가면 군대와 함께 통째로 죽이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보지 않겠다고 말한 엘라의 말을 내심 반기고 있을 거다.
아샤는 엘라와 레이시의 기사이니 주인의 명령을 따를 뿐이라고 말할 거고, 자기는 아샤와 비슷한 변명으로 엘라의 명령을 따를 수 있다.
또 엘라는 검성이 레이시를 공격한 것과 블루드의 일은 왕가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지 자기까지 차례가 와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호위할 필요가 있겠냐고 말하겠지.
그리고 그 말이 딱히 틀리지는 않았으니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엘라에게 어울려주면서 화들짝 놀라는 연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지질학자분께서 발목 삔 게 잘 안 낫는다던데 급하게 치료하고 일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지 않을까요?”
“아……, 그러네. 발목 같은 부위는 회복이 잘 안 되니까 시간을 더 주고 포션도 줄까?”
“그거 괜찮네요. 이런 마을 같은 경우에는 도로가 중요하니까요. 무리해서 일을 시켜서 도로의 상태가 나빠지면 그것만큼 최악의 일이 없으니 시간을 좀 더 투자하죠. 저는 그럼 약을 만들까요?”
“응. 그래. 그러자. 레이시, 레이시는 오늘 험한 일을 당했으니까 마차 안에서 쉬어. 오늘은 내가 직접 사람들을 달래줄게.”
“으응, 고마워요, 엘라.”
“아니, 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눈치를 보면서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정말로 괜찮은 거냐고 한 번 더 물어보더니 엘라가 시원하게 괜찮다고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차에 들어갔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들어가자 검성을 정찰하고 오겠다면서 하늘 위로 날아갔다.
그러자 미스트는 미네르바에게 조심하라며 손짓하다가 엘라에게 류타 남작에게 가자고 말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샤에게 레이시를 달래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같긴 하지만, 죽을 뻔한 거니까 많이 놀랐을 거야.”
“……알았어.”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차에 들어가는 아샤.
아샤는 마차의 문에 가볍게 노크한 다음 마차 안에 들어갔고, 레이시는 아샤가 쭈뼛거리면서 들어오자 반갑게 인사하며 아샤는 괜찮은지 물어봤다.
“일, 안 바쁘세요?”
“응, 오늘은 너 호위하는 걸로 바뀌었거든.”
“으으으응…….”
아샤의 말에 쭈뼛거리다가 산책을 혼자 가려고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사과에 괜찮다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레이시가 자기에게 안겨오자 손을 쭈뼛거리다가 천천히 레이시의 등을 껴안고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느껴지는 자그마한 떨림.
이제서 현실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는지 레이시는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고, 아샤는 자기 품 안에서 떠는 레이시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다가 계속해서 레이시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너무 겁먹지 마. 괜찮아. 그 사람은 갔어.”
“으응…….”
아샤의 말에 움찔 떨다가 말 없이 아샤를 꽉 끌어안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포옹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손길에 기대어 숨을 고르다가 천천히 이불을 덮기 시작했다.
“졸려?”
“조금은요.”
“하긴 졸릴 수도 있겠네.”
레이시의 말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샤.
아샤는 레이시의 반응에 계속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이내 레이시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자 깍지를 같이 끼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천천히 손을 빼기 시작했다.
“에……?”
그리고 그런 아샤의 행동에 당황하며 아샤를 올려다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다시 한번 손에 깍지를 끼려고 했지만, 아샤는 다시 한번 손을 빼내면서 레이시에게서 손을 빼냈다.
그러자 아샤가 자기를 피한다는 걸 꺠닫고 아샤가 화를 내는 건가 싶어서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가지 말라고 한 산책을 억지로 혼자 가겠다고 말했었으니까 화를 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시무룩하게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레이시가 시무룩한 얼굴을 하자 미안하다는 듯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우으으으……. 왜요오오…….”
아샤의 반응에 울먹거리면서 아샤에게 어리광을 피워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다음부터는 혼자 산책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을 테니 화를 풀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아샤는 화난 건 아니라며 레이시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볼을 부풀리면서 왜 깍지를 끼어주지 않는 거냐면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투정에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자기하고는 이런 걸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야차니까.”
“네? ……저도 야차인데요?”
“그러니까 안 좋다는 거야.”
“네?”
“야차끼리 결혼했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못 들어봤거든. ……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걸 봐도 야차와 다른 종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거지 야차와 야차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건 못 봤어.”
거기까지 말한 아샤는 잠시 말을 끊더니 레이시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냥 애인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네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계속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게 맞는 건가 의문이 들어.”
“……그,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너라면 나랑은 아이가 안 생기는 걸 보고 ‘내가 문제인 건가…….’라고 생각할 게 뻔하잖아. 그런 생각을 들게 하고 싶지 않아.”
야차라는 건 정령과 생명체의 중간 정도가 되는 생명체.
그런 야차끼리 아무리 육체의 정을 나눠봤자 아이가 생길 리가 없다.
아샤는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시가 자책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황당해하면서도 전생에 불임으로 고생하던 부부를 떠올리고는 아샤가 고민하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전이라면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에일렌이 생기고 나서의 생각으로는 아샤의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얌전히 아샤의 말을 듣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가 자기 말을 들어주자 계속해서 레이시와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이유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네?”
“내가 너랑 사귀게 된 건……, 그……, 내가 널 반쯤 덮쳐버려서 그런 거잖아. ……그런 관계로 너에게 매달려봐야……. 첫 인상도 나빴을 거고.”
엘라에게 훈련을 시켜달라는 명령을 받고서 일부러 좋은 사람을 연기하다가 살기로 몰아세우고 울려버렸다.
그런 사람의 인상이 좋을 리가 없다.
지금 이런 관계가 유지되는 건 그때 반쯤 합의하고 몸을 섞었다는 것과 레이시가 사람이 좋아서 그런 거지 원래라면 데면데면한 지인.
딱 그정도의 관계만 유지할 수 있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한숨을 다시 한번 푹 내쉬면서 눈을 피했고,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모습에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둘 다 괜찮다고 말했다.
“응……?”
“제가 아샤와 사귀는 게 아샤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 만나는 게 아니잖아요? 아샤가 좋아서 만나는걸요.그리고……, 뒤에 걸로 미안하다고 해야 하면 엘라가 더 뭐라고 해야 하는걸요?”
“그건…….”
“그러니까 여기요, 손.”
“으, 으음…….”
레이시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쭈뼛쭈뼛 손을 뻗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가 손을 뻗자 배시시 웃으면서 깍지를 끼고 남은 한 손으로 아샤의 등을 꽉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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