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9화 〉 협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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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탄이 쏘아 올라지고 1분쯤 흘렀을까.
레이시를 지키듯이 서 있던 아샤와 검성이라고 불린 남자 사이에서는 광풍이 몰아치면서 미네르바와 엘라가 나타났고, 엘라는 검성의 얼굴을 보더니 아샤에게 상황을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아샤는 검성이 레이시에게 다짜고짜 칼질했던 것을 보고했고, 엘라는 검성에게서 무덤덤한 얼굴로 시선을 떼더니 레이시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는 괜찮은데 아샤는…….”
“아샤는 괜찮아. ……. 그것보다 이게 무슨 짓일까? 국가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싶다는 건 알았지만, 내 메이드이자 미래에 아내가 될 사람을 건들여?”
무표정으로 화를 내는 엘라.
검성은 그런 엘라의 반응에 레이시와 결혼할 줄은 몰랐으며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이런 반응은 안 보였을 거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엘라는 그 말을 곱씹더니 잠시 후, 숨을 길게 뱉으면서 온화하게 웃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국가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개인적인 감정을 접어두는 모습.
하지만 엘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아샤와 레이시는 엘라의 그런 모습이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바짝 긴장하면서 엘라를 말리려고 했다.
“그래서, 몇이서 왔지?”
“병사 천 명, 그리고 나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서 병기도 몇 개 들고 오긴 했지만, 듀세리안 국왕의 허락을 받았으니까 괜찮소. 저기에 야영지가 보이겠지요.”
“그래서 몇 명이서 왔지?”
“……?”
“몇 명이서 왔냐고.”
“하, 내가 한 말을 못 들었소? 천 명의 병사를 대동해서 왔다고 하지 않았소?”
“음, 이상한걸. 저기에 있는 건 내 레이시를 죽이려고 한 쓰레기 산적 집단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아샤. 너는 다른 거로 보여?”
“……? 아니, 난 몰라. 저기에 있는 게 뭔데. 레이시를 공격한 남자는 이 녀석 한 명이야. 다른 일행은 없어.”
“그렇지? 다른 일행은 없어. 그래서 몇 명이서 왔지?”
한 손을 위로 들더니 천천히 마력을 내뿜기 시작하는 엘라.
마력을 충분히 모은 엘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흑마법 제 9위계. 대유성군.”
엘라의 말에 햇빛이 하나도 안 보일 만큼 구름이 끼는 하늘.
그리고 그 구름 사이에서는 커다란 운석들이 엘라의 명령만을 기다리듯 천천히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황하는 검성.
아무리 엘라가 막 나가는 구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갑자기 전쟁을 불사하려고 하자 검성은 미쳤냐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싱긋 웃으면서 다시 한번 물어봤다.
“그래서, 몇 명이 왔다고?”
“천 명이오! 천 명! 메이드 한 명 때문에 전쟁을 불사하실 생각이시오!?”
“전쟁은 너희가 원했잖아? 뭘 빼는 거야? 전쟁하자. 응. 그동안 피해다녀서 미안했어. 내 아내를 건들었으니 혼자서 도스토 연맹국과 싸워주지. 오라토리엄 왕국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 없으니까 말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무덤덤하게 원한다면 아샤와 둘이서 전멸시켜주겠다고 말하는 엘라.
엘라는 노예고 평민이고 귀족이고 왕족이고 그 무엇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전원 죽여주겠다고 말했고, 검성은 전쟁을 원하더라도 이런 식의 전쟁을 원하는 건 아니었기에 엘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미네르바와 아샤가 동시에 움직이며 검성을 막아섰다.
목 옆에 도끼를 들이밀며 목을 베려고 하는 아샤와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원하는 때 언제든지 죽일 수 있도록 심장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미네르바.
검성은 일 대 일로 싸워도 3 대 7의 확률로 지는 사람들이 셋이나 모여있자 침을 꿀꺽 삼키면서 천천히 손을 들었고, 엘라는 그런 검성을 보면서 몇 명이서 왔냐고 물어봤다.
“천 명이라 하지 않았소?”
“틀렸어. 500명이다.”
“저들은 전원 기사와 종기사요. 죽이면 큰 문제가 될 것이오.”
“전쟁 하자며. 하자고. 어차피 네가 내 배우자를 먼저 공격했으니 명분은 이쪽에 있어.”
“호오? 그렇다면 블루드 왕자의 핏줄이 죽어도 좋다는 것이오?”
“…….”
검성의 말에 움찔 떨더니 눈을 가늘게 뜨는 엘라.
그러더니 엘라는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운석을 조작하기 시작했고 이내 검성의 몸에는 새빨간 표식이 박히기 시작했다.
그것이 운석의 표적지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운석이 부딪쳐오는 것이라면 칼로 베어내고 도망칠 수 있겠지만…….
“해보던가.”
엘라의 반응을 봤을 땐 평범한 메테오 스트라이크 같은 게 아니겠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대로 저 운석들 사이에 끼여서 쥐포가 된 다음 고압과 고열에 녹아버려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유지하지도 못한 채 저 하늘 위로 사출 당하는 것.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엘라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기에 검성은 숨을 깊게 내쉬면서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채 무릎을 꿇었고, 엘라는 그런 검성의 모습에 아까 하던 말을 이어서 하라고 말했다.
“블루드 왕자의 핏줄이 도스토 연맹국에 있다.”
“그래서? 몇 살? 남자? 여자? 배우자는 누구지?”
눈을 차갑게 식히면서 취조하듯이 물어보는 엘라.
그 눈빛에는 살기와 증오밖에 느껴지지 않았고, 검성은 미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무서운 엘라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소. 듀세리안 국왕과 직접 이야기하기로 약조하였기에 아무리 엘라 공주라고 해도 대답할 수 없소.”
“…….”
“……그래도 그가 블루드 왕자의 혈족이라는 걸 증명하는 서류는 있소. 이것을 보시오.”
엘라에게 한 종이를 건네는 검성.
검성이 내민 종이에는 블루드 왕자의 유전 정보와 아이의 유전 정보가 적혀 있었고, 그것이 진짜임을 파악한 엘라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지금 이 시기에 왜 이런 정보가 자기에게 들어왔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닫는 건 블루드가 에일렌에 대한 걸 알고 있다는 것.
미스트에게 맡기고 있으니 지금 당장 무언가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짜증나네.”
그래, 짜증난다.
다른 감정이 아니라 그 쓰레기 같은 것이 자기와 레이시의 아이에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 상황이 너무 짜증나서 어떻게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으면서 검성을 바라봤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 왕국 근처에서 말없이 무력시위하다가, 이제 신경 좀 쓰는 거 같으니까 국왕끼리의 대화라면서 협박질? 좆까는 소리 하네. 씹새끼가.”
“뭐……?”
“저기, 너 말이야. 블루드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내가 멈출 거라고 생각했어? 국가적인 이야기가 되니까? 좆까는 소리 좀 하지 마. 너, 레이시를 건들었잖아. 한 나라의 공주의 가족을 건들었다고. 일개 장수 따위가……. 이 일로 전쟁을 일으켜주지. 네가 원하던 전쟁이다. 어디 한 번 모든 마법의 제한을 풀고 심연의 저 건너편까지 떨어트려 줄까?”
그리고 참았던 분노를 그대로 터트리는 엘라.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공기가 떨리며 죽는다는 느낌이 뭔지 알게 되는 그 분위기에 검성은 엘라가 생각보다 막 나가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계산으로는 여기에서 엘라는 멈춰야만 했다.
아무리 전투에는 이골이 났다고는 하지만, 엘라는 백성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기에 전쟁으로 번진다고 하면 자기 분노를 참고 여기에서 접어줘야 했다.
그러면 자기는 엘라와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그동안에 다른 귀족의 방해를 받지 않아야만 했다.
하지만 레이시를 공격한 것이 예상보다도 강한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공격하지 않는 건 자기가 화를 내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고, 이렇게 설명한 것을 바탕으로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생각한 검성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머리를 숙였고, 엘라는 여전히 흉흉한 눈으로 검성을 내려다봤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사과하오. 우리 국가에는 인간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야차가 없어서 몰랐소.”
“아샤에 대한 걸 알고 있었음에도?”
“아샤 공과 같은 야차가 둘이나 있음을 어찌 예측하겠소?”
“말로는 뭐든지 할 수 있지. 그렇기에는 말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응. 그렇지. 네 목이라도 내놔.”
“그것은 불가하오.”
“그럼 저들과 함께 육편이 되던가.”
아까보다는 유해진 목소리.
물론 그렇게 유해진 것이 살의가 가라앉아서 유해진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원할 때 죽일 수 있기에 유해진 것이지만, 이성이 돌아왔다는 것은 꽤 고무적인 일이었기에 검성은 침을 삼키면서 다른 원하는 걸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목숨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면서 점점 더 살기를 끓어올리는 엘라.
엘라가 죽이려고 하면 할수록 분위기는 유해지는 게 퍽 우스웠지만, 검성은 잘못 걸려도 제대로 잘못 걸렸다면서 눈살을 찌푸렸고, 이내 팔 하나 정도는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레이시를 바라봤다.
……잘못하면 더 심한 일을 겪을지도 모르지만, 블루드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죽지는 않겠지.
“저분.”
“……?”
“저분께……, 레이시 님께 벌을 받겠소. 어떤 벌이든 달게 받지.”
검성의 말에 눈을 확 찌푸리다가 이내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엘라.
레이시라면 그렇게 큰벌을 주지 못할 것이다.
레이시라면 실제로 다친 사람은 없고 자기 종족이 위험한 종족이라 그랬다는 말을 하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화를 덜 낼 테니까.
그런 게 레이시다.
그러니 레이시에게 벌을 받겠다는 말을 하기 전에 처리해뒀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레이시를 보면서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네……? 저, 저요?”
“응. 네가 정해. 네가 공격당했잖아.”
엘라의 말에 침을 삼키면서 검성을 바라보는 레이시.
검성은 정말로 잘못했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지 못했고, 레이시는 그런 검성의 모습에 조금은 흔들리는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시의 반응에 검성은 시선을 살짝 들어 레이시와 눈을 마주친 다음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이면서 사과했고, 레이시는 그런 검성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가 적당한 벌을 주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레이시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질문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 고자로 만들어버려요.”
“……엥?”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잔인한 벌이 레이시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엘라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왜 그런 벌을 원하는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긴장한 듯 말을 더듬다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저, 저 사람 나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어요! 칼질 하기 직전에요! 서, 성범죄자 같았어요…….”
남자였을 때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시선.
레이시가 이 세상에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런 일을 한 번 당할 뻔하기도 했었지만, 그 때는 수면제를 먹고 기절했었다가 어깨에 화살을 맞고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기에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성적인 눈으로 훑어보지는 건 레이시에게 있어선 이번이 첫 경험.
그리고 레이시는 기본적으로 쓰러진 사람을 보면 손을 뻗는 선인이기는 하지만 성인 수준으로 선하지는 않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특히 가정을 망가트리는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화학적 거세형을 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이시는 고자로 만들어달라며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생각보다 유쾌한 레이시의 발에 입을 틀어막고 들썩이다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들었지? 다리 벌려. 걱정 마. 너를 고자로 만들 뿐이지 막대기까지는 망가트리지 않을 테니.”
“그, 자, 잠시!”
“네가 한 말을 네가 어길 셈이야? 뒤처리 때문에 그런 거라면 걱정 마. 포션도 여기에 있으니.”
촉수를 소환하더니 검성을 그대로 뒤로 눕히는 엘라.
엘라는 아샤에게 남은 건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했고, 아샤는 엘라의 말에 도끼를 빙빙 돌리더니 그대로 검성의 고간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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