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다시 여행하는 날1
* * *
“흐음……, 어때? 흔들렸어?”
“아니요오오~, 괜찮아요오오~!”
남작의 의뢰를 받아들여서 파견을 나가기로 한 엘라.
엘라는 레이시에게 시험을 하자면서 레이시를 마차에 태운 다음 가볍게 마법을 쓰면서 안쪽에서 흔들리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전혀 안 흔들린다면서 감탄했다.
크기는 전보다 줄어들었는데 안쪽은 더 넓고, 무엇보다 방이 나눠져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저택보다는 작아도 세, 네 명이 살기에는 충분히 넓은 마차 안.
레이시는 그 마차 안에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마차에서 내려와서 미스트에게 다가갔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다가오자 안고 있던 에일렌을 레이시의 품에 조심스럽게 건네주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 출발 준비가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에일렌과 함께 마차에 올라가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가 올라오자 마차 안에 화장실도 있으니 편하게 볼일을 볼 수 있다고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얼굴을 확 붉히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마차 안쪽의 벽을 바라봤다.
화장실이라는 명패가 붙어있는 문.
레이시는 그 문을 열어봤고 미스트의 말대로 화장실이 보이자 신기하다는 듯 화장실을 바라보다가 배설물들은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다.
“마차 하단의 슬라임 보관소에 가요. 슬라임은 사람의 배설물과 오물을 먹고 사는 마물이니까요.”
“그렇구나.”
“후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응…….”
미스트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공간과 물을 받아두는 공간이 있는 걸 보고는 레이시는 정말 다행이라며 배시시 웃었고, 아샤는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슬슬 출발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아샤에게 같이 마차를 몰겠다면서 엘라와 미스트에게 에일렌을 맡겼고, 아샤는 에일렌을 안고서 손가락으로 장난을 쳐주는 엘라를 보며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괜찮아요. 어차피 저녁에는 제가 쭉 붙어있을 거고, 그리고 그동안에 하양이와 너무 따로 떨어져 있었잖아요.”
하양이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면서 배시시 웃는 레이시.
아샤는 하양이가 기분 좋다는 듯 투레질을 하다가 이내 머리를 레이시를 밀어대며 자기 등에 태우려고 하자 눈을 깜빡이며 뺨을 긁었다.
하긴 엘라와 미스트가 있으면 문제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힘들면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과 함께 마부석에 레이시를 태우고 마차를 몰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서 하양이의 고삐를 잡았다.
그런 다음 레이시는 가볍게 고삐를 잡아당겼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신호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의 지도를 보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옆에서 지도를 보다가 레이시가 길을 잘못 들지 않는지 확인하면서 천천히 이번 일에 대해서 말하면서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나저나 이번 의뢰는 괜찮겠어?”
“네?”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이리저리 인사를 하는 일이잖아. 너, 그런 일은 싫어하잖아.”
사람을 도와주는 건 싫어하지 않지만, 분명 이런 식으로 별 의미 없는 일은 좋아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레이시를 쳐다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걱정에 어색하게 웃다가 괜찮을 거라고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경계는 확실히 해준다고 했고, 그리고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사람들이 힘을 내준다면 노력해야죠. 그리고 이번 일은 어떻게 뺄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고요.”
“그건 그렇지.”
이미 출발했으니 더더욱 물릴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떄문에 더욱 레이시를 걱정했었던 아샤는 레이시를 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춘 다음 마차의 뒤에서 따라오는 나비에게 다가가 나비의 등 뒤에 올라탔다.
그러자 작게 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는 나비.
레이시는 그런 나비의 모습에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다가 계속해서 마차를 몰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수도를 빠져나올 때쯤 에일렌이 우는 소리를 듣고는 미스트와 교대한 다음 에일렌에게 젖을 물려주었다.
이유식도 간간히 먹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젖이 좋다는 듯 꽉 매달리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이내 나비가 떠올라서 창문으로 다가가 아샤에게 나비를 창문 옆으로 데려올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건 쉽다면서 나비를 마차 옆에 데려다주는 아샤.
나비는 자연스럽게 창문 너머로 에일렌을 바라봤고, 레이시를 닮은 그 모습에 나비는 레이시의 배가 불렀던 것을 떠올리면서 에일렌이 누구의 아이인지 단번에 파악하고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푸훗.”
그리고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마차 밖으로 손을 뻗어 나비의 콧잔등을 가볍게 쓰다듬어주다가 나중에 에일렌을 등에 태우고 같이 놀자고 말했고, 나비는 레이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마차를 호위하듯 천천히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이 될 때까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레이시 일행.
야영을 할 때쯤에는 나비와 하양이를 마차의 입구에 앉혀두고서 두 마리의 동물에게 에일렌을 보여주고 낮에는 다시 움직이길 반복했고, 며칠이 지나자 엘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후우우…….”
국경 지역에서는 떨어져 있는 곳.
저번처럼 내통하고 있다가 레이시에게 상해를 가할지도 몰라 특수부대원 몇몇을 마을에 잠입시켜두고 뒷조사까지 끝낸 엘라는 기지개를 쭉 켜는 척하면서 모여 있는 사람을 훑어보고는 남작을 불렀다.
“아, 안녕하십니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막 20대 중, 후반이 되었을 법한 남작.
남작은 이번에 엘라를 부르는데 꽤 무리했는지 귀족답지 않게 꽤 초라한 차림을 하고 있었고, 엘라는 그런 남작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거리다가 공사현장은 어디인지 물어봤다.
“이쪽입니다!”
엘라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엘라를 공사중인 곳으로 안내하는 남작.
공사장은 의뢰 보고서가 들어온 것처럼 공사 자체는 어렵지 않은 듯 기초공사는 이미 끝나있었고, 문제라고 할만한 부분은 사람들의 얼굴밖에 없었다.
어려운 공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꽤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엘라는 그런 사람들의 얼굴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건지 보고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남작은 엘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그, 각 교역로의 중간지점이 될 마을로 계획된 마을입니다. 당연히 이 마을의 주민이 된 사람들도 고향을 버리고 나온 사람들이죠.”
“그거야 그렇겠지. 그래서?”
“그래서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사람들은 노력해서 땅을 개간하고 도로를 깔고 그랬습니다.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을 위주로 데려왔지만, 쉽지 않은 노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태풍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것이 전부 물거품이 됐죠. 이제 막 완공해서 기대에 가득 찼었는데…….”
“그렇군.”
공든 탑을 쌓았는데 그게 한 번에 무너진 상황.
딱한 일이긴 했지만, 고작해야 도로가 무너진 정도로 실망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엘라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축제의 계획은?”
“그……, 재산과 식량이 부족해서……. 이번 일도 제 사비를 전부 털어서 준비한 것입니다.”
“그래? 그럼 일단 이걸 받아라.”
“네? ……헉!? 이, 이건!”
“지원금이다. 나중에 왕가에 정식으로 지원금을 받았다고 편지를 보낸 다음 지질학자를 불러 저 산을 조사하도록. 저 산에서 토사가 쏟아졌지? 토사 방지 공사에 대한 노하우를 전해줄 거야. 그나저나 넌 여기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질학자를 부를 생각을 안 했나?”
“죄송합니다! 지질학자분을 초청하긴 했지만…….”
“했지만?”
“그, 그게…….”
“화내지 않을 테니 말하도록.”
“지질학자분께서 조사하시다가 발목이 부러지셔서 요양 중이십니다……. 몬스터 자체는 없지만, 산이 꽤 험해서 조사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하, 그래? 하이 포션도 주지. 빨리 조사하도록.”
“가, 감사합니다!”
남작의 보고에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빠르게 일을 지시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미네르바와 아샤에게 에일렌을 맡긴 다음 미스트와 함께 엘라에게 다가갔다.
“엘라.”
“레이시. 음, 인사해. 이쪽이 이 땅의 영주인…….”
“류타 남작입니다.”
“그래. 류타 남작이야. 이쪽은 내 아내인 레이시 루피너스.”
“반갑습니다.”
레이시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기겁하면서 손을 휘젓는 남작.
레이시는 그런 남작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귓속말로 레이시가 뭘 실수했는지 말해주었다.
“신분이 레이시가 더 높은데 먼저 인사하면 신분이 낮은 사람이 볼 땐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인사나 시키는 위 아래를 모르는 사람이 되잖아요. 그래서 놀라신 거예요.”
“아, 아하……. 복잡해요…….”
“푸훗, 왕족 외에는 먼저 인사하지 않는 쪽이 좋아요.”
“으우우우…….”
미스트의 설명에 끙끙 앓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면서 남작을 바라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남작에게 대신 사과했고, 남작은 엘라의 사과에 연신 허리를 숙이면서 자기가 늦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레이시에게 인사했다.
“이번 일은 제 능력 부족 때문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하하……, 괜찮아요.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정말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 거 같아요.”
“아, 아닙니다! 이번에 저희 마을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연신 숙이면서 감사인사를 하는 남작.
레이시는 남작의 반응에 자기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남작이 편하게 있지는 않겠다면서 어색하게 웃다가 미스트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미스트.
미스트는 어차피 레이시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남작은 아래를 바짝 기어다닐 거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미스트의 말대로 남작의 감사인사를 얌전히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10분 정도 감사인사를 하다가 엘라에게 가서 공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설명하기 시작하는 남작.
엘라는 남작의 설명을 받으면서 레이시에게 먼저 마차에 돌아가서 잠자리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부탁에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로 돌아갔다.
“끄으으응…….”
“흐음…….”
뭔가 난처한 일이 생겼는지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는 마차 안.
레이시는 그런 마차 안의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을 열었고, 안에서 에일렌을 돌보던 미네르바와 아샤는 화들짝 놀라며 레이시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에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평소의 두 사람 답지 않은 모습에 레이시는 뭔 일이 생겼나 싶어 에일렌이 다치거나 그랬냐고 물어봤고, 두 사람은 레이시의 질문에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요?”
“그. 그으으으…….”
끙끙 앓으면서 뭔가 제대로 말해주지는 못하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거냐면서 미네르바에게 다가갔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자기 볼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자 숨을 꾹 참다가 천천히 날개를 접어서 가리고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헤……!?”
“여, 영상구로 기록은 했는데……. 그, 미안. 왠지…….”
미네르바의 몸을 잡고 있지만 자기의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있는 에일렌.
아샤는 자기가 에일렌이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영 미안한 건지 영상구를 내밀면서도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에에에에엑!”
아샤에게 다행인 점이라고 한다면, 레이시가 그런 걸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
아샤도 그걸 알고 있는지 레이시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다가 똑바로 설려고 노력하는 에일렌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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