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312화 (312/542)

〈 312화 〉 음악궁­1

* * *

“흐아아아암…….”

“주인, 주인. 닦아주겠다.”

“에헤헤, 고마워요.”

목욕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다가 이내 머리카락을 닦는데 한참 걸리자 역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편할 것 같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자기는 머리가 긴 게 좀 더 좋다며 입을 우물우물거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반응에 쓰게 웃다가 미네르바가 좋으면 머리카락은 안 자르겠다면서 미네르바에게 몸을 기댔다.

그리고 얼마 후 고개를 꾸벅거리다가 연신 하품하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낮잠을 방해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쭈뼛거리면서 레이시를 껴안았다.

“으응……, 다시 재워주겠다.”

“시간 보니까 자기는 조금 힘들 거 같은데……. 그냥 같이 커피나 마셔요.”

“아으으으으…….”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반응에 자기는 괜찮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손길에 가만히 있다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면서 날개로 레이시를 안아주었다.

“조, 조금만 더 자라. 나중에 다른 사람이 오면 내가 내쫒겠다.”

“에에…….”

“다, 다른 일은 내가 대신 해뒀으니까 조금만 자라.”

말을 더듬으면서도 레이시를 놓아주지 않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포옹에 어색하게 웃다가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더 자고 싶긴 했다.

엘라에게 준 모유의 양을 생각해본다면 저녁까지는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고, 30분 정도만 자면 꽤 편해질 거 같으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에일렌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고작해야 몇 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벌서 만나고 싶다.

가능하다면 같이 자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 나가서 에일렌을 보러 가는 건 아무래도 조금 부끄럽다.

미네르바가 엘라에게 질투한다거나 엘라가 미네르바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일은 하지 않겠지만, 왠지 지금 나가서 에일렌을 만나는 건 못 할 짓을 해버리는 것 같아서 조금 꺼려진다.

그렇기에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품 안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헤프게 웃으면서 미네르바를 꽉 끌어안았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포옹에 레이시의 등을 토닥이면서 천천히 낮잠을 재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방 눈을 감고 잠을 자는 레이시.

자다가 일어나자마자 격한 운동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레이시는 자는 걸 꺼려 했던 것과 달리 금방 새근새근 자기 시작했고, 이내 확실히 레이시와 에일렌이 닮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은 에일렌이 젖살이라거나 이런저런 살이 안 빠져서 레이시와 비교할 수가 없지만, 뭔가 자고 있을 때의 눈매나 입가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런 느낌 뿐이고 지금은 어디가 그렇게 닮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닮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자기와 레이시 사이의 아이도 나를 닮았을까?

그리고 그렇게 나를 닮은 아기가 태어나면 나도 엘라처럼 멍청이가 되어서 저렇게 종을 흔들어주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부족한 상상력을 총 동원해서 아기를 껴안고 종을 울리는 자기 모습을 떠올리기 시작했고, 이내 입꼬리가 풀어지자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해져서 이것저것 신경을 못 쓰게 된다.

이런 상상을 하는 건 아무래도 좋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자꾸만 떠오르는 불순한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우면서 레이시의 등을 쓰다듬어주었고, 이내 30분 정도가 지나자 레이시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암…….”

“잘 잤나? 주인. 좀 더 자도 괜찮은데…….”

“낮잠은 오래 자면 안 좋잖아요.”

기지개를 쭉 켜더니 이내 같이 저녁을 먹자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따라 내려가다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주방을 쳐다봤다.

하지만 레이시는 그런 주방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더니 에일렌에게 곧바로 달려갔고, 엘라는 레이시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이상한 목소리로 에일렌에게 마망이 왔다면서 알려주었다.

미스트나 아샤의 반응을 살펴보면 저런 게 부모의 보통의 반응인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이상하긴 했기에 미네르바는 떨떠름한 얼굴로 미스트와 아샤를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그런 미네르바의 시선에 이해한다는 듯 쓰게 웃다가 저녁을 먹자며 엘라를 불렀다.

그러자 자기는 밥을 나중에 먹고 올테니 레이시랑 먼저 먹으라고 말하는 엘라.

엘라는 그렇게 말한 다음 에일렌의 손에 자기 손을 포갠 채 핸드벨을 흔들어주었고, 에일렌은 자기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나는 핸드벨이 재미있는지 꺄르륵 웃었다.

“레이시랑 같이 있고 싶어서 무리한 거잖아? 나는 에일렌하고 놀 테니까 먼저 먹어.”

“…….”

하긴 집 안에서 했는데 안 들켰을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여유로운 엘라의 얼굴에 샐쭉하게 입술을 내밀다가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목덜미와 귀 끝까지 새빨개진 채로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아무리 공인된 관계라지만…….

“아으으으…….”

“푸훗, 괜찮아. 그래도 에일렌이 슬슬 마망을 보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까, 밥 빨리 먹고 와~.”

엘라가 손을 흔들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 앉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귀엽다는 듯 키득키득 웃다가 밥과 국을 내놓았고, 레이시는 오랜만의 동양식에 기뻐하다가 이내 눈치를 보면서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먹고 나면 감상을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우선 밥부터 먹자고 말하는 것 같은 미스트의 말에 눈치를 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밥을 먹기 시작하자 천천히 부끄러움이 레이시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사라진 부끄러움만큼 에일렌에 대한 걸 생각하면서 수저를 빠르게 놀렸다.

“후아……, 잘 먹었어요! 맛있었어요!”

“그랬나요? 다행이네요.”

“그럼 이 닦고 올게요!”

한시라도 빨리 에일렌에게 가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의 달려가듯이 총총 걸음으로 욕실로 들어가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못 말린다는 듯 작게 웃다가 미네르바에게 뒷이야기로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미스트의 질문에 흠칫거리다가 미스트의 눈치를 보면서 레이시와 같이 악기를 배우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배우고 싶으세요?”

“나는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소리를 내서 사냥감을 사냥하는 방법 같은 건 모르니까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주인이 원하니 배우긴 할 거다.”

“후후, 그런가요?”

미네르바의 대답에 작게 웃으면서 아샤를 바라보는 미스트.

아샤는 미스트의 시선에 자기는 배울 생각이 없다고 확실히 못을 박아두었다.

“거기에다가 나는 나 나름대로 일이 있으니까.”

“어머~ 레이시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찬스인데요?”

“그건 그렇지만 저번 파티 때문에 신세 진 사람들에게 보답으로 훈련을 봐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 후우…….”

“후후, 아샤는 바쁘네요.”

“시끄러워.”

아샤를 살살 놀리면서 키득키득 웃는 미스트.

아샤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트와 친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하다가 욕실에서 레이시가 이를 닦고 나오자 자기는 음악궁에 못 갈 것 같다면서 일을 설명해줬다.

그러자 아샤에게도 같이 가자고 말할 생각이었는지 레이시는 조금은 실망한 얼굴로 아샤를 바라보다가 아샤가 사과하자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에일렌에게 다가가서 에일렌을 안아주는 레이시.

에일렌은 엘라와 한참 놀다가도 레이시가 자기를 안아주자 자기를 안아주는 사람이 레이시라는 걸 깨달았는지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의 가슴을 툭툭 때리면서 가슴을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으응~ 우유 안 먹었어요?”

“조금 먹다가 뱉더라. 참 이상하지? 데워서 줬는데. 레이시가 주는 게 아니라서 그런 가봐.”

레이시의 질문에 쓰게 웃는 엘라.

엘라는 아무래도 자기가 안는 게 레이시와 달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면서 에일렌의 뺨을 만지작거렸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말에 기쁘면서도 왠지 복잡한 마음이 들어 어색하게 웃다가 옷을 벗어 가슴을 입에 물려주었다.

그러자 레이시의 가슴을 양손으로 잡고서 잠을 자면서 젖을 먹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가슴에서 이빨의 감촉이 느껴지자 이유식은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이유식? 아……, 하긴 서서히 이빨이 돋아나니까 뭔갈 좀 씹는 게 좋겠네. 베이비 푸드라도 만들어볼까?”

“베이비 푸드요?”

“우유에다가 빵과 바나나를 넣고 뭉근하게 끓인 거야. 그거 말고는 그냥 퓌레 같은 걸 먹여도 좋고. 레이시가 읽는 책은 평민 기준으로 써진 책이라 우리가 직접 만들기엔 무리가 있지. 왕궁에선 그 책에 쓰여 있는 것들 중 몇몇 개는 구할 수가 없거든.”

“에에……, 왜요?”

“그거야 왕궁에서는 취급을 안 하니까. 일장일단이 있는 대체제라면 왕궁에서도 구하겠지만, 아예 상위호환의 식자재가 있는데 굳이 그런 풀을 준비할 필요는 없잖아.”

“……아.”

여기 왕궁이었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다가 다른 책을 구해야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내일 음악궁에 갈 때 구하자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고서 레이시의 가슴을 문 채 자는 에일렌을 바라봤다.

“자는 건 레이시 닮았다.”

“네?”

“그런 거 같지 않아? 장난칠 때는 나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자는 거 보니까 레이시를 닮은 거 같아.”

“장난기 심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풉, 그러게. 생긴 건 나를 닮든, 레이시를 닮든 괜찮으니까 성격은 레이시를 닮았으면 좋겠어.”

엘라의 말에 작게 웃으면서 머리를 기대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에일렌이 입을 움직이는 걸 멈추자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가슴에서 에일렌을 떼어주고 얇은 담요를 레이시에게 덮어주었다.

“내일 기대된다. 그치?”

“네! 에헤헤…….”

에일렌의 뺨을 찌르며 같이 웃는 레이시.

전생부터 바라던 걸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레이시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 채 연신 싱글벙글 웃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가 음악을 좋아했나 싶어 다음에는 악기를 선물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엘라는 레이시와 함께 마차를 탄 다음 음악궁으로 가기 시작했다.

“으응……, 엘라, 가족을 보러 가는데 마차는 좀 아니지 않나요?”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어쩔 수 없지. 거기에다가 이번에는 아빠에게 보고 한 다음에 움직이는 거라서 정식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거든.”

“으으응,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에일렌을 데리고 햇빛을 쐬며 움직이긴 좀 그렇잖아? 그리고 몇십 분은 걸어야 하는데 이 날씨에 그렇게 걸어다니면 애가 지칠 거야.”

엘라의 말에 밖을 바라보는 레이시.

평소와 다르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거기에다가 햇빛까지 강하게 쏟아지고 있으니 확실히 엘라의 말대로 이런 날씨에서 밖에서 걸어다니면 지켜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라의 말대로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고, 엘라는 레이시의 대답에 작게 웃다가 밖을 힐끗 바라보고는 언제 도착할 것 같냐고 물어봤다.

“슬슬 도착해요.”

“네에~.”

그러자 금방 도착한다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미네르바를 보면서 정말 기대된다며 웃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웃음에 똑같이 웃으면서 창문 너머로 새하얀 저택을 바라봤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