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화 〉 에일렌 탄생 파티1
* * *
엘라가 실로트의 음악궁에 방문하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진짜 이가 났다.”
“진짜라니까?”
그동안 에일렌은 마력 앓이를 끝냈고, 조금씩 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를 만져도 예전처럼 뼈가 아물지 않아 생긴 빈 공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손을 움직이는 것도 팔을 접었다가 펴는 것만 할 수 있었던 전과 다르게 꽤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판타지.
10살이 될 때쯤에 어른과 똑같은 몸이 된다고 해서 그냥 성장 속도가 2배가 되는 거구나 싶었는데, 어쩌면 그런 게 아니라 크는 것 자체는 한참 전에 크고 안쪽이 완전히 여무는 게 10살 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놀란 얼굴로 자기 옷을 잡는 에일렌을 바라봤고, 이내 뭔가 깨달았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에, 엘라!”
“응? 왜?”
“저희 둘 다 엄마인데 에일렌에게 어떻게 구별시키죠!? 걸어다닐 정도로 크면 또 몰라 처음 말을 땔 땐 엄마랑 아빠가 좀더 말을 배우기 편할 텐데!”
“……그렇게 심각한 일이야? 둘 다 엄마로 하면 되잖아.”
“구별이 안 되잖아요.”
“그럼 레이시는 마망이라고 하고 나는 엄마라 하지 뭐.”
“에……. 그렇게 쉽게 정해도 돼요?”
“오히려 왜 그렇게 고민하는지 모르겠는 걸?”
엘라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로 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떼는 건데 이게 중요한 일이 아니면 뭐가 중요하냐고 물어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에일렌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건강하게 잘 크기만 한다면 그냥 고맙고 행복할 거 같은데?”
건강하고 올바르게 크는 게 중요하지 언제 말을 떼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시를 바라보자 레이시는 떨떠름한 얼굴로 엘라를 쳐다봤고, 미스트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다가 엘라에게 다가가 너무 왕족의 기준으로 쳐다보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왕족의 시선으로 보면 독살 안 당하고 건강하게 크는 게 중요하겠지만, 레이시는 아니잖아요.”
“아……, 그런가?”
“네, 그렇다고요?”
그러자 레이시의 반응을 깨달았다는 듯 멋쩍게 웃는 엘라.
엘라는 미스트의 설명을 듣더니 하긴 지금은 왕족 간의 암살이라거나 그런 건 일어나지 않는 시기이니 레이시가 보이는 반응이 평범한 걸지도 모른다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다음 다시 에일렌을 바라보자 뭔가 누가 마망이 되고 누가 엄마가 되는 게 좋을지 진짜로 고민되기 시작했고, 이내 진지한 얼굴로 레이시를 바라봤다.
“역시 젖을 주는 사람이 부르기 쉬운 마망이 되는 게 맞겠지?”
“그, 그럴까요?”
“응, 그렇다고 생각해. 안 그러면 에일렌이 힘들 거 같아.”
엘라의 말에 설득됐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럼 자기가 마망이 되겠다고 말하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잘 부탁한다고 말하다가 이내 장난기가 돌아 레이시를 마망이라 부르면서 매달려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장난은 그만두라고 말했다.
“왜, 레이시 마망?”
“으그으응! 엘라는 에일렌이 아니잖아요!”
“푸풉! 하긴 그건 그렇다. 레이시는 내 여자지 내 엄마가 아니니까 말이야.”
“으으으…….”
엘라의 말에 앓는 소리를 내다가 파티 준비는 다 되어 가는지 확인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에일렌을 엘라에게 맡기더니 미스트에게 도와줄 일은 없는지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접시 두 개를 내밀어주더니 어느 쪽이 좀 더 괜찮아 보이는지 물어봤다.
“케이크를 왼쪽에 두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오른쪽에 두는 게 더 좋을까요?”
“에……?”
“이게 접대에 있어서 나름 중요한 문제라서요. 중앙에 둘까 고민도 해봤는데, 중앙에 두면 아무래도 쿠키와의 조화가 안 이루어져서…….”
“으, 으응, 그냥 손님이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에 따라서 바꾸면 괜찮지 않을까요? 미스트가 아는 분들만 오시잖아요?”
“그럴까요?”
레이시의 질문에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가 너무나 쉽게 의견을 받아들이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어서 미스트가 웃으면서 차는 어떤 게 좋냐고 물어보자 당황하면서 차를 골랐고, 다음에는 스콘과 차가운 마실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좋아요. 이건 레이시의 의견을 듣는 게 중요했거든요.”
“네?”
“이걸로 레이시가 고른 디저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네요.”
“자, 잠깐만요. 그럼 그……, 엘라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네? 괜찮아요. 사실 어느 쪽이든 맛과 조합을 맞춰둬서 취향 문제지 수준 문제는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에서는 어머니 쪽이 좀 더 축하 받아야 해서 레이시의취향이 필요했던 거고요.”
“아…….”
“그러니까 안심해주세요.”
미스트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서 다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것 때문에 보기 드물게 흥분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작게 웃다가 이내 아샤에게 가보겠냐고 물어봤다.
“아샤 씨랑 마리아 씨가 호위를 담당하고 있는 것 같으니 간식을 좀 나눠주세요.”
“그럴게요.”
그러자 환하게 웃는 레이시.
미스트는 너무 읽기 쉽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에게 쿠키를 건네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가 건네준 쿠키를 들고 아샤와 마리아에게 다가갔다.
“좀 어때요?”
“응? 뭐, 괜찮아.”
레이시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레이시가 입에 쿠키를 물려주자 얼굴을 붉히는 아샤.
아샤는 기사들이 말을 잘 들어줘서 의외로 일이 쉽게 풀렸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리아의 손에 쿠키를 넘겨줬다.
그러자 당황한 듯 레이시를 바라보는 마리아.
레이시는 마리아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샤의 입에 쿠키를 물려주다가 마리아에게 왜 안 먹냐고 물어봤고, 마리아는 이내 자기 손을 바라보다가 자기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닫고 어색하게 웃었다.
“저, 대, 대장님?”
“넌 나중에 대련이야.”
“……살려주세요.”
레이시와 연인도 아닌데 쿠키를 먹여주길 기대하다니, 아무래도 중노동의 결과물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마리아는 머리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냈고, 레이시는 그런 마리아를 보고 어색하게 웃다가 반쯤 남은 쿠키를 보고는 미네르바는 어디있는지 물어봤다.
“미네르바라면 지금 쉬는 중. 향수 냄새를 너무 맡아서 머리가 어지럽대.”
“아하하…….”
아샤의 말에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샤의 볼에 입을 맞춰준 다음 언제나 고맙다고 말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마리아가 자기를 보고 음흉하게 웃자 눈을 가리다가 도끼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하여튼 나는 기사단하고 협력해봐야 하니까 먼저 가봐.”
“네에~.”
“그리고 마리아, 너는 나중에 남아라.”
“커흑!?”
아샤의 말에 크게 헛기침하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마리아.
레이시는 절실한 마리아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아샤에게 적당히 해달라고 부탁한 다음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미네르바에게 다가가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너무 열심히 한 거 아니에요?”
“아으으으……, 주인…….”
“자, 쿠키 드실래요?”
“……물부터 먹고 싶다.”
“여기요.”
레이시의 말에 앓는 소리를 내면서 레이시를 끌어안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매달리면서 어리광부리자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고생했다고 다독여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다독임에 날개를 살짝 퍼덕이다가 이내 위로 좀 더 올라가 레이시의 배에 얼굴을 파묻었다.
“쿠키, 입에 물려주라.”
“네, 여기요.”
미네르바의 애교에 쿠키를 물려주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물려준 쿠키를 대충 우물거리다가 다시 레이시에게 고개를 파묻었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피곤하면 아샤에게 맡길까요?”
“아니, 이건 내 일이다. 주인과 에일렌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한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에일렌도 중요하지만, 미네르바도 제게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하니까요.”
“……에헤헤, 내가 중요한가?”
“네. 중요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인걸요?”
“헤~.”
레이시의 말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좋아하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혀를 손가락으로 콕 찔러보았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행동에 화들작 놀라 입을 다물다 짐짓 화난 얼굴로 레이시의 말이 틀렸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피다.”
“푸훗, 네, 미네르바는 저의 소중한 하피랍니다.”
그래봤자 애교가 잔뜩 섞인 투정이었지만.
레이시는 마치 자기를 좀 더 쓰다듬어달라고 조르는 듯한 미네르바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조심스럽게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손길이 닿자 배시시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일하러 가본다.”
“으응,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알죠?”
“알겠다. 주인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만 하겠다.”
미네르바의 말에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그렇게 한 사람씩 돌아본 레이시는 다시금 엘라에게 돌아갔고, 엘라는 레이시가 돌아오자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시는 그 옷 그대로 입고 있을 거야?”
“네? 네.”
“음……, 아직 공식적인 신분은 메이드니까 상관은 없으려나…….”
레이시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에게 왜 그렇게 고민하고 있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이제 곧 결혼할 사이인데 그러면 지금처럼 메이드복은 못 입는다고 말해주었다.
“아마 이런 자리에서는 드레스나 정장을 입게 되지 않을까?”
“그, 그런가요…….”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품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 그래도 돈 걱정은 안 해도 돼. 레이시가 왕족이 된다면 국왕이 매달 품위 유지비로 돈을 줄 거니까.”
“아……. 으응, 부담스러운데. 솔직히 지금 다달이 받는 150만 하랑도 많잖아요…….”
“품위 유지비는 달에 2억인데?”
“……헤?”
“시종을 고용하고 기사를 고용하고……, 이런 것들을 다 하면 2억도 좀 모자라다는 사람도 있거든.”
“저, 저는 그럴 생각 없어요.”
“풉, 알았어. 그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하자.”
멍하니 고개를 좌우로 젓는 레이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 일은 나중에 말하자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엘라가 시선을 자기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리자 따라서 고개를 돌렸고, 이내 밖에서 처음 들어보는 남성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듀세리안 레트포드 라이드 오라토리엄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에?”
“아빠야. 국왕.”
“아하……. 국왕님 저런 이름이셨네요. 뭔가 길어요.”
“국왕은 미들네임이 2개라고 법으로 정해져 있거든. 왕족은 하나 일반 귀족은 둘. 레이시는 어쩌면 나중에 레이시 오라토리엄이 될지도 모르겠네.”
“에에……. 루피너스란 성을 받은지 얼마 안 됐는데요?”
“뭐, 이 부분은 개인 취향이니까 레이시가 원한다면 루피너스란 이름 써도 돼.”
“에헤헤……, 네에~.”
아직 엘라가 준 이름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레이시가 그렇게 말하자 엘라는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그렇게 하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다가 이내 아샤와 미네르바가 신호를 주자 긴장한 얼굴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어, 어서 오세요! 그, 시아버님……?”
하지만 금방 말을 더듬는 레이시.
레이시는 국왕을 보면서 국왕을 시아버님이라 불러야할지, 아니면 장인어른이라 불러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국왕을 바라봤고, 국왕은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며 편한대로불러도 괜찮다며 레이시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에헤헤, 감사합니다. 국왕님.”
“아, 아앗……! 그런 편함은 아니었는데.”
“시끄러워. 앉아.”
“크흐……, 딸이라고 있는 게 너무 질투가 넘치는구나.”
“원래는 파티 안 열고 그냥 잠적하려고 했거든? 레이시에게 시간이 더 필요했던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국왕의 말에 혀를 차면서 테이블에 의자를 빼주는 엘라.
국왕은 그런 엘라의 행동에 꽤 철이 들지 않았냐며 키득키득 웃다가 자리에 앉았고, 국왕이 자리에 앉아 아이야트나 슈레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곧이어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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