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305화 (305/542)

〈 305화 〉 마력 앓이­3

* * *

“그럼 싫지만, 아빠는 초대하고……. 아빠만 초대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공주님. 진지하게 해주세요.”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야.”

내려온 아샤가 본 건 손님 리스트를 보고 아무도 초대하지 말자고 말하는 엘라였다.

엘라는 대놓고 손님을 최대한 부르기 싫다는 티를 내면서 국왕만 초대하면 되지 않냐고 물어보고 있었고,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진지하게 생각해달라면서 난처하다는 듯 엘라를 바라봤다.

“에일렌 아가씨가 축하를 받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죠?”

“그거야 알고 있지. 하지만 레이시가 저렇게 걱정하는데 굳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 필요가 있나 싶네. 왜, 평범한 귀족도 아이가 태어나면 자기 부모들만 부르잖아. 나는 엄마는 죽었고 레이시는 야차니까 아빠만 불러도 괜찮지 않아?”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공주님과 레이시는 아니잖아요?”

“왕족이라는 것만 빼면 똑같지.”

“그게 크잖아요. 아무리 밖으로 알리지 않는다고 해도 왕족 중 몇 명은 초대했다는 사실은 있지 않으면 안 돼요.”

“……씁, 그렇겠지.”

물론 진심으로 투정을 부리고 있지는 않았던 건지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금방 수긍하면서 미스트는 누구에게 초대장을 보내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왕족이 아닌 사람들은 일단 전부 제외하고 리스트를 달라고 말하는 엘라.

미스트는 엘라의 지시를 예상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종이를 엘라에게 건넸고, 엘라는 미스트가 건넨 종이를 보고 앓는 소리를 냈다.

“흐으으으음……. 우선 아이야트랑 슈레이, 그리고 볼케릭은 초대해야겠지?”

“네, 그렇죠. 두 분만 초대하면 균형은 맞출 수 있겠지만, 손님을 적게 초대한 걸 보면 왕가에서 미움 받고 있다는 소리가 나올 거니까요.”

“그렇다고 이대로 셋만 초대하면…….”

“슈레이 공주님을 지지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겠죠? 슈레이 공주님은 볼케릭 왕자님과 혈연관계에 있으니까. 실상이랑 상관없이 공주님이 슈레이 공주님을 지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거고 그럼 귀찮은 말들이 나오겠죠.”

“그리고 그 귀찮음은 너랑 레이시에게 몰리겠고.”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은데……. 쯧, 어쩔 수 없지 왕족 중에 적당한 녀석을 찾아볼까?”

아샤의 말에 작게 앓다가 혀를 차면서 왕족의 이름이 적혀 있는 표를 보는 엘라.

엘라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왕족들을 하나씩 꼽아보다가 생각보다 많이 떠오르는 왕족의 이름에 혀를 차면서 왕이라는 건 참 귀찮은 일이라고 말했다.

“아아아아……. 아이야트도 참 불쌍하지. 형이라고 둔 게 블루드 같은 새끼니까.”

“아이야트님의 동생분을 초대할까요?”

“……아니, 그 녀석은 블루드를 좀 더 닮았으니까. 적당히 고요한 녀석이 좋은데……. 여기에 와도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건 싫으니까 곧바로 도망치려고 하는 녀석. 그런 녀석 없을까?”

“그런 분……, 한 분 있죠. 그리고 아이야트님을 지지하기도 하고요.”

“헤에, 누구야?”

“실로트 왕자님이요.”

“……아.”

실로트 코트 오라토리엄.

정치적인 재능보다는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나며 취미가 악기 모으기 및 연주인 왕자.

특징이라고 한다면 음악 연주회가 아니라면 자기 의견을 말하는 일이 적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준다는 것으로, 아이야트를 지지한다고 말한 이유도 마음 편하게 연주하게 내버려 두기때문이며 새로운 형태의 악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기술 발전에 제약을 걸게 되면 새로운 형태의 악기나 미술 도구가 발명될 수 없으니 슈레이를 지지할 바에는 아이야트를 지지한다고 했던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다른 건 몰라도 지금 필요한 조건에는 딱 맞으니 엘라는 네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벽천화 기사단 불러?”

“음, 너무 편애한다는 소리 안 나오겠어? 보통 왕족의 파티나 사용인의 고용 같은 건 진은 기사단이 맡기로 되어 있잖아.”

“그리고 왕가의 여성에 대한 일은 벽천화 기사단이 맡기로 되어 있고. 혼성 호위가 기본인 진은 기사단과 여성 호위에 전문화되어 있는 벽천화 기사단. 어느 쪽이 더 잘할지는 명백하잖아. 거기에다가 벽천화 기사단 전원이 올 수는 없을 테니 진은 기사단의 도움도 받게 될 거니까 딱히 불만은 없지 않을까?”

“흐으으응.”

“불만이 있으면 덤비라지.”

“폭력적이네.”

“뭐, 폭력적이든 말든 효율적이잖아. 레이시도 이쪽을 좀 더 좋아할 거고.”

아는 사람에게 경호를 부탁한다면, 미안해할 수도 있다.

안 그래도 기사단을 나눠서 일하는 사람에게 파티의 호위까지 맡기면 과로가 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미안하다는 것과 부담을 느낀다는 건 다르다.

진은 기사단이 오면 미안해하지는 않겠지만,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레이시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에일렌과 같이 만나야 하니 아는 사람들과 있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진은 기사단은 자기가 설득하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아샤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더니 그럼 부탁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실로트 오라버니에게 가볼게. 그 양반, 왕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면 왕족의 권위를 내세워서 쫓아낼 거니까.”

“그래. 수고해.”

아샤의 말에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라.

엘라는 미스트에게 레이시를 부탁한다고 말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실로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쳐다도 보지 않은 오빠의 저택이지만, 찾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근처에 가기만 하더라도 음악 소리가 끊이질 않는 저택.

거기가 실로트가 머무는 곳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실로트가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저택의 문을 열었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큰 소리를 내면서 문을 여는 엘라의 행동에 당황하면서 엘라를 말리려고 했다.

“에, 엘라 공주님! 지금 실로트 왕자님은 발명 때문에 바쁩니다!”

“발명은 무슨 또 줄이 40개쯤 달린 바이올린 같은 거나 만들고 있겠지. 그런 걸 누가 쓰고 누가 구별할 수 있다고.”

물론 엘라는 그걸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엘라는 자기가 들어오자마자 크게 흔들린 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문이 잠겨 있는 걸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손가락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문 안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마력을 모아서 대기를 진동시키는 엘라.

엘라는 안에서 우당탕탕거리는 소리가 났음에도 문을 열지 않자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문 안 여시면 박살내고 들어갈 겁니다.”

“여, 열게! 열면 되잖아!”

엘라의 말에 당황하면서 문을 여는 실로트.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르긴 했지만, 가려지지 않는 다크서클은 실로트가 평소에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고, 엘라는 여전히 보기만 해도 기운이 빠지는 듯한 실로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마력을 지우고 입을 열었다.

“뭐……, 왜 왔는데?”

“파티 참석하라고요.”

“아……, 너 아이를 가졌지.”

“네, 실로트 오라버니는 언제 결혼하실 건가요?”

“뮤즈를 만나면…….”

“그 이야기, 벌써 10년째 아닙니까? 전국에 있는 모든 재능 있는 영애를 만났는데도 부족한 건가요?”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그동안 여자를 엄청 만났는데 어째서 네가 괴로워지는 여자를 선택한 거야?”

“……쿡! 하긴, 실언했네요. 용서해주세요.”

“돼, 됐어. 그래서…… 음……. 나를 초대한다는 건 그 세 사람을 초대한다는 거구나. 그리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내가 필요한 거고.”

그래도 왕족이라는 듯 실로트는 피로에 쩔어 있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엘라가 온 것만으로 엘라가 누구를 초대했는지 금방 파악하고는 한숨을 내쉬었고, 엘라는 이야기가 빠른 실로트의모습에 어깨를 으쓱였다.

“네. 그러네요. 참석하실 겁니까?”

“안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안 오시면 뭐……. 다른 분을 초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대로 슈레이 언니께서 좀 더 권력을 잡지 않을까요?”

“끄응. 그건 안 돼. 슈레이는 내가 만드는 악기에 대해서 돈 낭비라고 뭐라고 하니까.”

예술을 검열한다거나 하거나 하진 않지만 지금보다는 지원금이 줄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슈레이와 문화의 힘이 사라지면 중립국의 입장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니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는 아이야트.

엘라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실로트에게는 아닌 건지 실로트는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참석하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실로트의 대답에 집사를 불러서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얼굴을 와락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실로트.

실로트는 핸드벨을 가볍게 흔들어 집사를 부르더니 엘라가 보는 앞에서 파티에 참석할 테니 준비해달라고 부탁했고, 집사는 실로트의 명령을 받아들면서도 어느 정도의 규모로 준비할지 물어봤다.

그러자 그대로 엘라에게 말을 전달하며 물어보는 실로트.

엘라는 실로트에게 소란스럽지 않은 정도가 좋다고 말하면서 매우 소박하게 몸만 와도 괜찮다고 말했고, 실로트는 엘라의 말에 눈을 찌푸리더니 이내 적당한 선물을 들고 가겠다고 말했다.

“굳이 이렇게 안해도 갈 건데…….”

“확실한 게 좋죠. 안 그래요?”

“……으응. 그럼 나중에 보자.”

“네, 그러죠.”

실로트는 이거로 됐으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편지로 초대할까?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카페에서 동양에서 수입한 과자를 팔고 있자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의 얼굴을 떠올렸다.

동양의 음식에 관심을 보이던 레이시.

자기가 볼 땐 과자는 과자고 음식은 음식이니 별 차이가 없었는데……, 레이시에게는 다르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레이시의 기쁜 얼굴과 미스트의 잔소리를 저울에 올려두고 비교하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면서 카페에 들어갔다.

왕궁 내에 있던 카페라 그런지 엘라가 들어가자마자 서던 줄을 비켜주려고 하는 사람들.

엘라는 이런 부분에서 양해를 받으면 귀찮아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알아서 사갈 테니 줄이나 제대로 서라고 말한 다음 전시장에 있는 동양의 과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약과……, 튀긴 간식이라 제외. 떡……. 뭔가 칼로리가 높아보이니 제외.”

대부분은 칼로리가 높아보이는 음식들.

간식이라는 것 자체가 칼로리가 높은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칼로리가 상당히 호화스러운 음식밖에 없어 엘라는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들 사치품이라고 한껏 살을 찌우고 있네.”

엘라의 혼잣말에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헛기침.

엘라는 그 헛기침에 눈을 힐끗 돌리다가 이내 자기가 신경 쓸 건 아니라면서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적당히 칼로리가 낮은 간식을 발견하고 주문했다.

“튀밥이라는 걸 줘.”

“네, 알겠습니다. 뒷마당으로 나오시겠습니까?”

“응? 화덕으로 만드는 거야?”

“후후, 보시면 압니다.”

엘라의 반응에 뭔가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직원.

엘라는 그런 직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직원의 말을 따라 뒷마당으로 나갔고, 직원은 엘라가 자기를 보자 대포를 끌고 와서 대포에 곡물을 집어넣더니 대포의 포구를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대포에 불을 붙이는 직원.

엘라는 그런 직원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다가 이해했다는 듯 튀밥이라는 게 팝콘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긴 팝콘도 소금만 찍어먹으면 다이어트 요리지.”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뻥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오는 튀밥을 산 다음 레이시에게 돌아갔다.

“튀밥이다!”

“뭐야, 알고 있었어? 조금 실망인데.”

“에헤헤,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

환하게 웃는 레이시의 얼굴에 똑같이 환하게 웃다가 가볍게 볼에 입을 맞추는 엘라.

비록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 미스트에게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엘라는 햄스터처럼 튀밥을 오물거리는 레이시를 보고는 아무래도 좋나 싶어 키득키득 웃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