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 무리는 좋지 않아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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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는 사실 유모에 대해서 그렇게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아프거나 심각한 일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자기 아이가 아님에도 사랑으로 아이를 보살피는 일 자체에 대해서는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레이시는 아이는 역시 친부모가 직접 키워야 아이가 애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이시가 생각하는 유모는 대단하고 또 존경해야 할 사람이지만, 자기는 웬만하면 고용하고 싶지 않은 사람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레이시의 생각은 딱히 유별난 생각은 아니었다.
레이시는 모르겠지만, 옷 입는 것도 시종과 하녀들에게 부탁하는 귀족 영애도 결혼하고 아이를 직접 낳았을 때 그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자기 아이는 자기만 만질 수 있다며 다른 건 몰라도 아이만은 직접 키우는 귀족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미스트는그런 레이시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시의 마음을 꺾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흐아아아암…….”
레이시와 엘라의 아이인 에일렌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으니 최소한 자기 70%는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과제를 내주고 일주일이 흐른 시간.
그동안 레이시는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하양이와 나비를 돌보는 것도 직접 처리하며 열심히 일했고, 덕분에 레이시의 눈에는 다크 서클이라는 자랑스러운 훈장이 생겨 있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피로의 ‘ㅍ’자도 느끼지 못하는 야차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매우 이례적인 모습.
하지만 미스트는 그동안 레이시가 어떻게 지냈는지 전부 쳐다봤기에 침을 삼키면서 낮잠을 자는 레이시를 바라봤다.
“흐앗!?”
눈을 붙이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에일렌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에일렌에게 가는 레이시.
레이시는 에일렌이 울기 전에 에일렌을 안고서 에일렌이 왜 우는지 확인했고, 이내 에일렌이 잠이 안 와서 칭얼거린다는 것을 알아내고서는 에일렌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재워주기 시작했다.
“자장……, 자장…….”
자장가까지 불러주며 에일렌의 등을 토닥이는 레이시.
그런 레이시의 노력 덕분인지 에일렌은 칭얼거리다 말고 그대로 잠에 빠져서 새근거리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에일렌이 잠들자 에일렌을 요람에 내려놓을까 고민했지만 그랬다가 몇 번 울렸던 기억 때문인지 그대로 에일렌을 안은 채 방을 천천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스트.”
“네?”
“나는 주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은데……, 주인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질투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주인, 일주일 동안 지금 14시간 잤다. 저러다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
“그렇기는 한데……. 제가 안으려고 해도 자기가 힘이 닿을 때까지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면서 괜찮다고 말해서요. 그렇다고 제가 억지로 떠맡으면 레이시가 자책할 거 같아서 그렇고…….”
그리고 그런 레이시의 모습을 본 미네르바는 걱정이 잔뜩 담긴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엘라가 있었다면 엘라에게 에일렌을 맡기면 되겠지만, 엘라는 며칠 전 국왕에게 명령을 받아 아샤와 함께 몬스터 구제를 전문으로 하는 부대를 방문한 상황.
빨리 돌아온다고 해도 앞으로 며칠은 걸린다.
그동안에 레이시가 견딜 수 있을까?
평범하게 잠을 적게 자는 거라면 걱정하긴 해도 이렇게까지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시가 잠을 안 자는 건 그런 평범한 상태가 아니었다.
에일렌이 작은 목소리로 칭얼거리기만 해도 곧바로 반응해서 위로 올라가는 상태.
그건 다르게 말하면 무슨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곧바로 반응할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고, 그건 곧 휴식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 상황에서 낮잠을 포함해서 14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
아니, 제대로 깊게 잠든 건 그것의 절반이나 되면 다행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우물쭈물거리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레이시가 일어선 채로 눈빛이 흐리멍텅해지자 한숨을 내쉬면서 미스트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레이시, 에일렌은 요람에 눕힐 테니까 조금 쉬어요.”
“네? 하지만 에일렌, 울고 말 거예요?”
미네르바의 신호에 어쩔 수 없이 레이시를 재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레이시에게 말을 거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가 말을 걸자 눈빛이 돌아오더니 에일렌을 품으로 안아들었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자기마저도 경계하자 쓰게 웃었다.
모성애가 강한 엄마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증상.
심한 사람은 자기 남편에게서도 아이를 보호하려 든다던가?
만약 레이시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미스트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일어선 채로 쓰러질 것 같았기에 미스트는 웃음기를 천천히 지우면서 레이시에게서 에일렌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단호한 목소리로 레이시를 혼냈다.
“쉬어요.”
“하, 하지만…….”
“쉬어요. 메이드장의 명령이든, 레이시의 애인의 명령이든,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으니까, 지금은 쉬어요. 알겠어요?”
이번만큼은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미스트.
하지만 레이시는 미스트의 품에 있는 에일렌을 보고 안절부절못하며 미스트가 노려보자 울먹거리면서 에일렌의 엄마는 자기라면서 작게 항의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한숨을 내쉬다가 진지한 얼굴로 거울을 보고 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크게 움찔 떨더니 거울을 바라봤고, 이내 엉망이 된 자기 얼굴에 눈을 깜빡이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기는 괜찮다면서 미스트에게 팔을 내밀었다.
“…….”
“에, 에헤헤…….”
“하아아아아……. 그럼 침대에서 자요. 이게 한계에요. 알겠죠?”
그리고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졌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다가 레이시를 침대에 눕힌 다음 에일렌을 레이시의 품에 안기는 미스트.
그러자 레이시는 안심한 듯 에일렌의 뺨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잠들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등 뒤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움찔 떨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네르바를 바라봤다.
“저러면 주인, 금방 깨버리고 말 거다.”
“저, 저게 최선이었어요. 미네르바라면 저기에서 더 강하게 말할 수 있어요?”
“…….”
“못 하겠죠?”
“그, 그렇지만……. 근데 저대로 둬도 괜찮은 건가?”
베개에 머리를 눕히자마자 자는 레이시.
어지간히 피로가 쌓이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는 모습에 미네르바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레이시를 쳐다봤고, 미스트는 미네르바의 말대로 에일렌이 울기라도 한다면 단번에 깨어날 레이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좋을 리가 없다.
아무리 야차라지만 수면 부족이 이어진다면 몸에 어떤 영향이 생길지도 모르고, 알게 모르게 레이시가 힘들어서 성격이 나빠진다거나 주변 귀족들의 시비를 견디지 못하고 울어버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유모라는 직업이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보육원이라는 곳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부모 둘이서 아이를 키우려고 한다면 할 수가 없으니까 있는 거다.
아이를 하나 키울 때엔 마을 하나가 동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레이시는 자기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그걸 혼자서 해내고 있고, 거기에다가 일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었다.
차라리 레이시가 인간이라서 힘에 부쳐서 중간에 포기해버렸다면 조금이라도 설득할 수 있었겠지만, 레이시는 야차.
이런 일은 특유의 신체 능력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설득하기도 힘들었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자고 있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가 왜 이렇게 아이에게 집착하는 건지 이유를 하나씩 생각하며 레이시가 편하게 잘 수 있게 방 안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미스트의 배려 속에서 레이시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꾸는 꿈의 정체는 아직은 기억이 선명한 남자였을 시절의 꿈.
초등학생 때 엄마와 아빠, 두 사람과 함께 동물원에 간 기억으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엄마의 손을 잡고 사자를 구경하던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소풍에 갔을 때 엄마가 싸줬었던 도시락을, 못된 짓을 해서 혼났을 때, 상을 받아 칭찬받았을 때의 이야기를.
엄마가 되었다는 것 때문인지 레이시는 근래에 이런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었고, 그리고 그 꿈은 레이시의 모성을 계속해서 키워나갔다.
사실 레이시의 엄마가 좋은 엄마인 건 맞았지만, 레이시가 꿈에서 보는 것처럼 이상적인 엄마는 아니었다.
그녀도 꽤 많은 실수를 한데다가 오해 때문에 레이시를 혼낸 적도 있으며 무엇보다 레이시가 생각하는 것처럼 혼자서 레이시를 키워내지 않았으니까.
물론 3~4살 때부터는 혼자 키웠지만, 그 전에는 이웃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시부모와 친부모, 그리고 유모 서비스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이 없는 레이시는 자기 엄마는 에일렌보다 훨씬 까다로운 아기였었던 자기를 혼자서 키워냈으니 자기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꿈을 꾸는 도중에도 귀를 열어두고 에일렌에게 온 신경을 몰두하기 시작했다.
“흐앗!”
그리고 에일렌이 우는 것 같다는 느낌에 곧바로 눈을 뜨는 레이시.
낮잠에 빠지고 한 시간.
제대로 잔지 30분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었고, 레이시는 에일렌이 입을 우물거리면서 뭔가 찾자 자연스럽게 셔츠의 단추를 풀어헤친 다음 에일렌에게 자기 가슴을 내어주었다.
“으응, 많이 먹으렴……. 흐아아암~.”
자고 일어나자마자 가슴을 내어줘서인지 눈을 깜빡거리면서 에일렌을 바라보는 레이시.
깨는 것과 동시에 꿈을 꾸고 있다는 것도 잊었지만, 그 기억의 잔향만큼은 남아 레이시는 멍한 정신 속에서 대학생 때 했었던 체험 활동에 피식 웃으면서 에일렌을 바라봤고, 이내 에일렌을 바라보며 자기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가슴 모양을 한 걸 가슴에 달거나 배에 물주머니를 달았을 뿐이었는데, 이제는 진짜 내 가슴에서 만들어지는 모유를 아이에게 먹이고 있구나.
“쿡쿡…….”
그런 생각에 레이시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에일렌을 바라봤다.
하긴 내가 여자가 되어서 젖을 먹이고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일까?
에일렌이 귀여운 내 자식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데 모성애를 느끼든 부성애를 느끼든 뭐가 그렇게 변할까?
에일렌은 내 자식이고 사랑으로 키워야 하는 소중한 아이인데.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열심히 밥을 먹고 가슴에서 입을 떼는 에일렌을 안고서 트림을 시켜주었고, 에일렌이 트림을 하자 그대로 에일렌을 다른 방식으로 안아 등을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방 잠드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을 보면서 역시 에일렌은 전생의 자기와 다르게 착한 아이라면서 웃다가 에일렌을 한쪽 팔로 안고서 이 세계의 육아책을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전생의 육아책과 다를 게 없었지만, 마력이라는 정체불명의 힘 때문일까?
육아책에는 레이시가 상상도 못 하는 병들이 적혀 있었고 레이시의 눈을 사로잡아 다른 곳으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병들도 있었다.
그런 병들 중에서도 특히나 레이시의 시선을 잡아끄는 병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특이한 마력앓이란 병이였다.
병 자체는 심각하지 않았지만, 마력이 많은 마법사의 아이는 100% 걸리게 되는 병.
그 문구에 꽂힌 레이시는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는 둥의 다른 문구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곧바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에일렌은 마법사의 정점인 엘라의 아이.
그렇다는 건…….
“미, 미스트으으으……. 있어요?”
“네에. 무슨 일이세요?”
“호, 혹시 이 병…….”
“아, 그다지 심한 병은 아닐 거예요.”
“여, 여기 엄마가 허브를 먹는 게 괜찮다는데 구할 수 있으면 그…….”
“네, 준비해드릴게요.”
레이시의 모습에 쓰게 웃으면서 허브 쿠키를 구워주겠다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안도하는 듯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엘라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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