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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95화 (295/542)

〈 295화 〉 에일렌­2

* * *

레이시의 진통은 꽤 오래 이어졌다.

인간처럼 하루의 절반 정도 이어진다거나 엘프처럼 며칠간 이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몇 시간이나 이어지자 엘라는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무력감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 나와 의자에 멍하니 앉아 미스트의 보고를 기다렸다.

“……괜찮아?”

“괜찮지. 나는, 괜찮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아샤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엘라도 적지 않게 맛이 갔다고 생각하며 아예 죽으려고 하는 미네르바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방 안쪽을 바라봤다.

문 하나가 막고 있지만, 선명하게 들리는 레이시의 비명.

어지간하면 큰 소리를 안 내는 레이시가 너무 아프다며 비명을 질러대자 아샤도 점점 평정심을 잃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리다가 레이시를 호위하러 나온 마리아에게 원래 출산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거냐고 물어봤다.

“아, 아하하……. 레이시 씨는 오히려 좀 나아 보이는데요?”

“저게?”

“네, 저희 언니가 아이 낳을 때에는 아예 말도 못 하고 기절하기 직전까지 갔거든요. 그……, 말할 수 있다는 걸 보면 그래도 조금 낫다고 봐요.”

“……그러네.”

아프다고 말할 수 있으면 당장에 죽지 않는다.

그런 마리아의 말에 아샤는 틀린 말은 아니라며 자기 마음을 달래봤지만, 다시 레이시의 신음이 귀에 들리자 숨을 크게 들이키면서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놓았다.

언제든지 도끼를 뽑을 수 있는 자세.

그 모습을 본 마리아는 엘라에 비해 태연해 보여도 역시 아샤도 긴장하고 있구나 싶어 어색하게 웃으면서 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터지는 아기의 울음 소리.

꽤 크게 울리는 목소리에 저택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미스트가 문을 막아서자 동시에 멈칫하며 미스트의 보고를 기다렸다.

“레이시도 아기……, 에일렌도 무사해요. 레이시는 지금 자고 있으니까 조용히 해주세요. 공주님, 공주님은 5분 뒤에 들어오시겠어요? 피 같은 걸 정리해야 해서…….”

“아, 알았어.”

잔뜩 지친 얼굴의 미스트.

얼마나 긴장한 건지 몇 시간 사이에 입술까지 바짝 말라버린 미스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더니 방으로 들어갔고, 엘라는 미스트의 보고에 축 늘어지며 얼굴을 가렸다.

“후우우우…….”

“괜찮아?”

“으, 으응……. 그래. 미안하지만, 저택 주변 부탁할게.”

엘라가 의자에 앉아 크게 안도하자 아샤는 자기도 안심하면서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말을 하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아샤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스트가 부탁한 일을 아샤에게 그대로 부탁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샤.

아샤는 엘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다음 기사단을 통솔해서 밖으로 나갔고, 미네르바는 그런 아샤의 모습에 갈팡질팡하다가 아샤를 따라 저택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미스트는 엘라에게 들어와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며 손짓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긴장된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자……는 거지?”

“네, 자고 있어요. 그러니 조용히 해주세요.”

정말 죽은 듯이 자고 있는 레이시.

그동안에도 꽤 많이 잤었지만, 오늘은 정말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에일렌을 보고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자꾸만 차오른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눈을 비비다가 억지로 웃어봤고, 이내 다시금 눈물이 차올라서 울먹거리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초 단위로 바뀌는 엘라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오늘은 이 방에서자라며 작은 간이용 침대를 하나 꺼내주었다.

“레이시는 살이 아플 정도로 아플 테니까 다른 침대에 주무세요. 회복 속도라거나 이런 건 레이시의 몸 상태를 살펴봐야 할 거 같아요. 이런 기록은 캘러미티 가문에도 없었으니까 저도 대략 계산했거든요.”

“그래, 수고했어.”

“공주님도요. 그럼 저 먼저 잘 테니까 공주님도 주무세요.”

“응.”

미스트의 말에 레이시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다가 의자를 들고 오는 엘라.

미스트는 그 모습을 보다가 조용히 담요를 건네준 다음 방구석에 미리 준비해둔 간이침대에 그대로 몸을 던졌고, 엘라는 미스트가 쓰러지는 걸 보고는 의자에 앉은 채 레이시의 손을 잡고 레이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엘라는 천천히 흔들리는 자기 손에 화들짝 놀라 깬 다음 침대에 누워있는 레이시를 바라봤고, 이내 레이시가 입을 벙긋거리자 곧바로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목……, 목말라요오오오오…….”

말하고 나서 부끄러워진 건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리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조금만 기다리라더니 거의 뛰다시피 걸으면서 아래로 내려갔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움직임에 얼굴을 붉히며 몸을 비틀어댔다.

분명 사랑한다거나 걱정끼쳐서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왜…….

그야 몇 시간이나 울어대면서 물도 음식도 아무것도 못 먹었다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밤새 내 곁을 지켜준 건데…….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비틀어대다가 자기 침대 옆에 작은 요람이 보이자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킨 다음 요람의 안쪽을 살펴봤다.

“아…….”

그러자 보이는 작은 아이.

자기가 낳은 아이…….

레이시는 곤히 자는 에일렌의 얼굴에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걸 느끼며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손가락을 에일렌에 손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대로 레이시의 손을 움켜쥐는 에일렌.

전생에 조카가 막 태어났을 때도 이렇게 손가락을 잡혔었는데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에헤, 에헤헤…….”

쉰 목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웃게 된다.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되고 싶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엄마가 되는 게 확정되었을 때도 남자였을 때의 기억이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었는데 마치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저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에일렌……, 에일렌……. 에헤, 에헤헤헤…….”

목이 따가울 정도로 아픈 것도 잊고서 멍하니 이름을 부르다 배시시 웃는 레이시.

그렇게 한참을 웃으면서 아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찌르고 있자 엘라가 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고, 엘라는 레이시가 에일렌이 있는 요람을 보고 웃고 있자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다는 걸 실감하면서 조심스럽게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뭔가 평소와 다르게 횡설수설했지만, 뜻만은 확실히 전해지는 엘라의 속삭임.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속삭임에 똑같이 횡설수설하다가 엘라가 컵을 건네주자 조심스럽게 물을 마시면서 배시시 웃으면서 다시금 요람을 바라봤다.

귀여운 아이.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머리조차 스스로 가눌 수 없는 아이였지만, 레이시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걸 느끼며 자꾸만 웃게 되었고, 엘라도 별반다르지 않은 얼굴로 에일렌이 잠든 요람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일렌이 갑자기 울기 시작하자 엘라와 레이시는 동시에 화들짝 놀라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며 당황했고, 잠에서 깬 미스트는 아마 배고파서 울고 있는 거라면서 능숙하게 에일렌을 안아 레이시의 품에 안겨주었다.

“목과 등을 전체적으로 받쳐주세요.”

“이, 이렇게요?”

“네. 그렇게요. 그리고 실례할게요.”

그리고는 레이시의 옷을 반쯤 벗겨 가슴을 노출시키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손길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에일렌이 가슴을 입에 물자 곧바로 입술을 깨물었다.

“아아아아……! 파앗……!”

애들이 의외로 빠는 힘과 잡는 힘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건 너무 세잖아!

젖꼭지가 떨어질 정도의 충격에 놀란 레이시는 발가락을 오므렸다가 미스트를 올려다봤고, 미스트는 너무 아프면 에일렌을 가슴에서 살짝 떨어트려 놓으라고 조언했다.

“네, 그 정도로. 그 다음에 적당히 빨면 그대로 가슴을 내어주세요. 이렇게 어린애면 훈육이 아에 안 통하니까 이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아, 아하하하…….”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하긴 말이나 감정을 앞세우기 이전에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 아이니까 이러는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애가 빠는 힘이 너무 세서 가슴을 입에서 떼어놓는다니…….

레이시는 순간 엄마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우물쭈물거리다가 미스트가 괜찮다고 말하자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에일렌에게 젖을 물렸고, 몇 번이나 세게 빨 때마다 가볍게 떼어놓자 꽤 얌전하게 레이시의 가슴을 입에 물기 시작했다.

“다 먹이면 어린애는 트림을 시켜줘야 하니까 말씀해주세요. 저는 아침 준비해서 올게요. 다음에는 에일렌을 재운 다음에 레이시의 몸 상태를 한 번 살펴봐요. 일단 출혈도 출혈이고 뼈의 상태를 확인해봐야 할 거 같아요.”

“……뼈요?”

“골반이 열렸었거든요. 야차니까 회복이 빠를 것 같지만 제대로 회복하고 있는지는 보고 싶어요.”

미스트의 말에 자기 하반신을 바라보다가 정말로 자기 뼈가 열렸냐고 물어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체 모형을 허공에서 꺼내 대충 얼마만큼 벌려졌는지 보여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설명에 경악하면서 자기 하반신을 바라봤다.

“용케 안 죽었네요. 저…….”

“아하하…….”

“그런데 뼈가 저 정도로 벌려지는 거였군요. 처음 알았어요.”

레이시의 말에 그저 웃다가 금방 준비하고 오겠다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가 내려가자 에일렌에게 계속해서 젖을 먹이면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고, 이내 엘라가 자기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느끼고는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를 쳐다봤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레이시에게 다가와 입을 맞춰보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가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에일렌의 얼굴을 보고는 배시시 웃으면서 행복하다고 말해주었다.

비록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여자친구도 생겼고 가정도 생겼다.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고, 그 외의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그렇게 말하자 엘라는 레이시가 부럽다는 얼굴로 레이시의 가슴을 물고 있는 에일렌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도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네? 뭐를요?”

“가슴, 나는 못 주거든.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뭔가 생산하는 기능은 완전히 상실해서 스킬을 배우더라도 못 만든다더라. 이래서는 엄마 실격이네.”

“……괘, 괜찮아요! 제가 주면 되니까요.”

“풉……. 고마워. 그것보다 에일렌 이제 안 먹는 거 같은데?”

“아, 진짜다. ……트림 어떻게 시키죠?”

“잠시 맡겨줄래?”

“여기요.”

엘라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에일렌을 엘라에게 넘겨주는 레이시.

그러자 엘라는 조금은 해본 느낌으로 에일렌을 어깨에 기대게 하더니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에일렌은 잠시 몸을 움찔거리더니 귀엽게 트림을 한 다음에 엘라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기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귀엽게 자기를 시전하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에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며 배시시 웃으며 에일렌의 뺨을 조심스럽게 찔러보았다.

“응우우…….”

“푸훗, 귀여워라…….”

“트림은 나왔나요?”

아침 밥을 내려놓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미스트가 들고 온 밥과 음료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시선에 피식 웃으면서 밥을 건네주었다.

“그럼 그거 다 먹은 다음에는 건강 검진 할게요.”

“네에~.”

“후후, 맛있게 드세요.”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방 안의 온도와 습기를 조절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배시시 웃더니 이내 거의 하루 만에 먹는 밥을 빠르게 비워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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