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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94화 (294/542)

〈 294화 〉 에일렌­1

* * *

레이시의 몸상태를 배려해서 천천히 수도로 돌아가는 레이시 일행.

미스트의 계산은 언제나 신기할 정도로 정확해서 레이시는 출산일을 2~3주 정도 남기고서 수도의 왕궁에 도착했고, 레이시는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국왕에게 가서 편지를 건네주었다.

“아아, 새아가, 이걸 전해주려 직접 온 거니?”

“네. 그……, 아버님.”

국왕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국왕은 레이시의 대답에 눈가를 가리더니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눠주는 건 레이시밖에 없다며 눈물을 삼켰고, 레이시는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스트에게 자기가 전해주겠다고 말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가.”

“네?”

“그, 손녀가 태어나면 나, 나도 안아볼 수 있을까?”

“아, 아하하하…….”

절실한 눈으로 레이시를 바라보는 국왕.

레이시는 그런 국왕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엘라가 괜찮다고 하면 안아주게 해주겠다고 말했고, 국왕은 레이시의 말에 절망하듯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엘라의 허락을 받겠다는 건, 완곡한 거절의 의미니까.

그렇게 생각한 국왕은 레이시의 눈치를 보면서 엘라에게 잘 부탁한다며 속삭였고, 레이시는 국왕의 말에 왜 시집살이가 제일 힘든지 알 것 같다는 생각에 쓰게 웃었다.

기왕이면 처가살이가 힘든 걸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노력해볼게요.”

“크흠, 그럼 잘 부탁하네.”

레이시의 대답에 뒤늦게 근엄한 척 헛기침하는 국왕.

레이시는 그런 국왕의 헛기침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국왕은 레이시의 웃음에 부끄러워졌는지 다시 한번 헛기침하면서 사람을 불러 레이시를 배웅해줬다.

“잘 다녀왔어?”

“네. 국왕님께서 사람을 좀 막아보겠대요.”

“조금인가…….”

“아무래도 완전히 막는 건 무리라고 하더라고요. 귀족들이 반발할 거라면서요.”

딱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기가 5살 때 암살자에게 죽다가 살아났을 때도 왕족 외에는 출입 금지라고 말했는데도 국왕이 모든 일을 해결하려 든다면서 억지로 병문안을 왔던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 나머지 사람은 자기가 막아주겠다며 레이시를 안심시켰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를 꽉 끌어안았다.

“후아아……. 몸이 불편해지니까 자꾸 기대기만 하네요. 죄송해요.”

“기대, 기대도 괜찮으니까.”

레이시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조용히 뺨을 비비기 시작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애교에 눈웃음을 지으면서 레이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만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3주…….

3주가 지나면 레이시가 출산할 것이고 에일렌이 태어날 거고, 자기는 그때 레이시가 겪을 고통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에게 편하게 기대라며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눈가를 파르르 떨다가 그대로 눈을 감고 엘라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후후, 또 자는 건가요?”

“응.”

“사람마다 임신했을 때의 반응이 다 다르다던데……, 레이시는 그게 졸음으로 나타나는 모양이네요.”

요즘따라 더 많이 자는 걸 보면 아이가 확 크는 것 같다고 말하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다가 긴장되기 시작했다며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작게 웃으면서 긴장을 해도 레이시가 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엘라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을 흘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라.

엘라는 창문으로 가서 커튼을 가볍게 젖혔고, 몰려오는 사람을 보고 한숨을 내쉬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레이시가 아빠한테 다녀온지 몇 분이나 됐다고 저렇게 몰려오는 걸까?”

“이런 건 먼저 오는 쪽이 유리하잖아요?”

“안 맞을 수 있는 매는 안 맞는게 더 나을 텐데.”

“후후, 그건 그렇지만요.”

엘라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손님들을 불러오겠다고 말하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레이시에게 연을 대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적당히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편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엘라의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의 어딘가에 박혀 있을 나사가 빠져버린 사람들.

양성구유 스킬을 사용한 거라면 자기와도 즐겨달라며 매달리는 사람도 있었고, 돌려서 돌아가달라고 말하면 전혀 들어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최악은 레이시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안전한지 안전하지 못한지 알지도 모르는 물건을 들이미는 사람들.

출산이라고 한 적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임산부에게 좋다는 듯 말하면서 음식이나 향초 같은 걸 내밀 때마다 엘라는 왕가에 충성을 바치는 공주 연기를 그만두고 팔불출이나 할까 고민했고, 그런 엘라의 생각을 읽은 미스트는 레이시의 출산을 준비하는 동시에 엘라를 달래기 시작했다.

“지금 일이 생기면 레이시가 불안해할 거라고요?”

“알아, 알아. 그러니까 참고 있잖아?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레이시를 두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처음엔 나를 협박하는 줄 알았다고.”

향초가 뭐로 만들어졌는지, 그 성분을 어떻게 확인할지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설령 그 선물이 연맹국의 왕족이 보낸 거라고 해도 다 거절할 생각이었으니까.

애초에 임산부에게 선물을 보내는 건 임산부의 몸에 직접 닿지 않는 것을 보내는 게 상식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미스트를 빤히 쳐다보다가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다른 건 몰라도 요 1년 이내에 죽인 사람의 숫자가 확 줄어들었으니 안심하는 거 아니겠냐며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사람을 안 죽이면 예의를 안 차려도 되는 거야?”

“문명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왜 더 예의 같은 걸 따지겠어요? 예의를 안 차려도죽을 위기가 없으니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고,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으니까 예의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거 아니겠어요?”

“역설이네. 문명을 갖추고 지혜를 갖췄기 때문에 예의를 잊어버리게 되는 건가?”

미스트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그동안에 온 선물들을 정리하는 엘라.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버리는 거 아니겠냐면서 너스레를 떨면서 마찬가지로 선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반지나 귀걸이를 보낸 녀석은 그나마 쓸만하다는 걸까?”

“레이시에게 어울리는 것들은 아니지만요.”

“하긴 그런 거 보면 싹수가 노랗지? 대놓고 바람 피우자니……. 뭔 정신 머리야?”

“그나마 쓸모있는 사람들은 이런 예술품을 보낸 사람들이네요. 적어도 눈치는 있잖아요?”

선물을 정리하면서 선물을 보낸 가문을 분류하는 엘라와 미스트.

아샤는 그런 두 사람의 곁에서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그렇게 사람을 분류하는 이유가 뭐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이번에 보고 안 볼 사이 아니야?”

“기본적으로 그렇긴 한데 여차하면 써먹을 수 있는 사람과 써먹을 수 없는 사람을 구별해둬야 하지 않겠어?”

“……내가 볼 땐 다 써먹을 수도 없는 폐급 같은데.”

“이래서 고급 인력하고만 일했던 사람은 안 된다는 거야.”

“시끄러워.”

엘라의 웃음에 눈을 흘기다 한숨을 내쉬는 아샤.

아샤는 가만히 구경해서 뭐하겠냐며 소파에 앉아서 미스트가 작성한 리스트를 보다가 엘라를 도와 사람을 분류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천장이 무너지면서 미네르바가 뚝 떨어졌다.

미네르바가 떨어지면서 생긴 충격에 비산하는 나뭇조각과 종이들.

세 사람은 그런 광경에 놀라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말을 더듬는 미네르바를 보고는 왜 그러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 크, 크, 크…….”

“왜 그래? 말을 해.”

“큰일……. 큰일이……!”

“…….”

숨을 과하게 쉬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미네르바.

엘라는 어딘가 이상한 미네르바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미네르바가 큰일이라는 말을 반복하자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는 그대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자 엘라의 눈에 방 안에서 배를 움켜쥔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레이시가 보였고, 엘라는 고통스러워 하는 레이시의 얼굴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끼며 뒤따라온 미스트를 불렀다.

“……공주님, 제가 준비할 때 동안 레이시를 안심시켜주세요, 아샤는 국왕님과 제 13 벽천화 기사단에게 보고. 미네르바는 두꺼운 수건을 있는 대로 들고 와 주세요.”

그러자 곧바로 미리 준비해둔 의료용 장비들을 허공에 꺼내면서 지시를 내리는 미스트.

미스트가 다른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지시 계통의 스킬을 사용하면서까지 명령을 내리자 미네르바도 금방 정신을 차린 다음 움직이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엘라와 함께 레이시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고통 때문에 제대로 된 대답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있는 힘껏 고통을 참고 미스트의 질문에 대답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잔뜩 뭉그러진 레이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시에게 호흡을 가르쳐주면서 방안을 소독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눈물로 일그러진 풍경 속에서 엘라가 자기 손을 잡고 있자 덜덜 떨면서 엘라를 바라봤다.

“추, 출산일……, 며, 며칠 남아있었는데……. 에, 에헤헤……. 에, 엘라 닮아서 그런 거예요. 이거…….”

그리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돌려보는 레이시.

진통이 조금 가라앉아 머리가 맑아지자 레이시는 엘라의 눈가를 닦으면서 농담을 건넸고, 엘라는 레이시의 농담에 피식 웃으면서 다음 레이시가 자기에게 해준 것처럼 레이시의 눈가를 닦아줬다.

“그러네, 미안해.”

“에헤헤…….”

“많이 아파?”

“아까는 아팠는데 지금은 조금 가라앉았어요.”

“그렇구나.”

“잠시만 실례할게요.”

엘라가 레이시와 이야기하면서 레이시를 진정시키고 있자 다가와서 흥건하게 젖은 레이시의 속옷과 바지를 벗기는 미스트.

그런 다음 미스트는 레이시의 음부에 맺힌 액체의 색을 확인하고는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다고 생각하면서 빠르게 계산을 바꾸기 시작했다.

“좋아요. 레이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요. 어떤 것부터 들을래요?”

“나쁜 이야기는 안 들으면 안 돼요?”

“아하하……. 좋은 이야기부터 해드릴까요?”

“나쁜 소식부터 말씀해주세요…….”

“나쁜 소식은, 앞으로 엄청 아플 거예요.”

“으흐으윽……. 좋은 소식은 뭐예요…….”

“인간처럼 10시간 넘게 진통을 겪지는 않을 거 같아요.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거든요.”

미스트의 말에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울먹거리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어중간한 의사들보다 레이시의 몸을 잘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면서 다독여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울먹거리다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며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 아파요!”

“네, 괜찮아요.”

육체가 완성된 상태로 태어나는 야차이기 때문인지 진통을 느끼는 주기와 길이도, 그리고 출산의 진행 상황도 역시 인간보다 빠르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면서 의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레이시가 어느 정도의 단계에 왔는지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몰려오는 고통 속에서 들리는 미스트의 속삭임에 안심하면서 엘라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생각보다 레이시가 아파하는 것 같아 마른 침을 삼키는 엘라.

“괘, 괜찮은 거지?”

“괜찮게 만들 거예요. 그러니까 공주님은 레이시를 달래주세요. 산모가 불안해하면 진통을 느끼는 시간이 길어지거든요.”

“으, 으응!”

미스트의 대답에 화들짝 놀라며 레이시의 땀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주는 엘라.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몸 안에 감도는 긴장감을 애써 삼키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단 쉽다.

그래, 그렇지 않아?

그러니까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하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긴장을 죽여나간 미스트는 의료용 장갑을 끼고 천천히 레이시의 몸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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