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93화 (293/542)

〈 293화 〉 돌아가는 길­2

* * *

도시 명명식은 다행히 잘 끝났다.

애초에 루룬의 결혼식을 포함해 단상에 올라가 이것저것 이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잘했다거나 그런 말이 나올 일도 아니었지만, 도시 명명식은 사고 없이 끝났고, 레이시 일행은 그것을 자축하기 위해서 루룬의 저택에 모여서 만찬을 즐기며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저는 연맹국으로 돌아가야겠어요.”

먼저 도시로 돌아가야겠다면서 술을 마시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자기가 가진 재산과 토지를 들고 이 나라에 이민을 오고 싶다면서 너스레를 떨었고, 그동안 꽤 친해진 건지 엘라는 엘레오놀의 말에 킥킥 웃다가 심사만 통과한다면 환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작게 웃으면서 연맹국을 멸망시킬 거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농담이라지만 해도 괜찮은 거냐며 미스트의 눈치를 살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얼굴을 보고는 농담이 아니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맹국이니까 연맹만 없어지면 연맹국이 아니게 되잖아요?”

“……에?”

“어차피 연맹국 내부에서도 의견을 주로 내는 왕들은 정해져 있고, 맹주도 벌써 몇십 년째 한 가문이 도맡아 하고 있으니까 의외로 연맹 붕괴는 쉬울지도 몰라요? 아마 엘레오놀 공주가 연맹국에서 나가겠다고 선언하시는 순간 연맹이 붕괴될 걸요?”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에요?”

“연맹으로서는 위험하지만 왕국으로서는 안전한 상태죠. 그냥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진다는 소리에요.”

“에. 에에…….”

레이시의 반응에 작게 웃으면서 연맹이 붕괴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려고 하는 미스트.

하지만 그건 자기가 설명하는 게 낫겠다면서 엘레오놀에게 양해를 구했고, 미스트는 엘레오놀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다시금 과일을 깎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레오놀은 미스트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에 레이시에게 자기가 지금 어떤 노력을 해서 연맹을 유지시키고 있는지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연맹이라고 해봐야 연맹이 구축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이미 각 왕들의 균형은 생각보다 오래됐어요. 사실 제가 막 태어났을 때도 연맹국에서 단일 왕국이 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요.”

“그렇구나…….”

“근데 그렇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게 뻔해서 노력했죠. 다섯 살 꼬맹이도 아는 걸 그 장군 두 분께서는 영 모르시더라고요. 아니면 알고도 전쟁을 굳이 처하고 싶어서 개지랄병을 떠는 거거나.”

싱긋 웃고 있음에도 이마에 혈관이 돋아나는 엘레오놀.

레이시는 그런 엘레오놀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다가 엘레오놀을 진정시키기 시작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말에 확실히 오늘은 뒷풀이 중인데 이렇게 화를 내면 안 되겠다면서 레이시를 보며 웃었다.

“그래서 이제 왕궁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그, 네. 아마도 돌아갈 거예요. 이제 돌아가면 2~3주 정도밖에 안 남아서.”

“축하드려요.”

“에헤헤…….”

엘레오놀의 축하인사에 얼굴을 붉히곤 멋쩍게 웃는 레이시.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웃음에 나중에 선물을 따로 보내겠다면서 싫은 것이 있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말없이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라는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하인들이 술을 들고 오는 걸 보고는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엘라는 마셔도 괜찮은데.”

“됐어. 너랑 있는 게 더 좋아.”

레이시를 끌어안으면서 웃는 엘라.

엘라는 잠시 배에 귀를 대봐도 괜찮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움직인다…….”

시간이 꽤 지나서인지 이제는 발길질도 하는 두 사람의 아이.

엘라는 레이시의 배에 귀를 배고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멍하니 소리를 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키득키득 웃다가 엘라를 닮아서 발을 많이 구른다며 농담하기 시작했다.

“푸훗, 건강할 거 같네.”

“에헤헤…….”

그러자 다행이라면서 레이시를 천천히 눕히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뺨을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키득키득 웃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장난에 똑같이 손장난을 치다가 엘라가 왠지 모르게 긴장한 것처럼 보이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다.

“아, 아아아아니!”

“……더 수상하게 보이는 거 알죠?”

“…….”

“푸훗, 무슨 일이에요? 이렇게 저에게 드러낼 정도라면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아니, 심각한 일일지도 몰라.”

침을 꿀꺽 삼키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엘라.

레이시도 덩달아 긴장하길 원하는 건지 엘라는 진지한 얼굴로 레이시를 바라봤지만,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러운 얼굴이라 레이시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무슨 일이기에 그러냐며 깍지를 꼈다.

그러자 엘라는 진지한 이야기라면서 레이시에게도 진지할 것을 부탁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콧소리를 살짝 내다가 혀를 빼꼼 내밀고 키득키득 웃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얼굴로 심각한 일이라고 말해도 전혀 심각해 보이지 않거든요?”

“……그렇게 내 얼굴이 이상해?”

“이상해요. 구체적으로는……, 그러네요. 미스트가 갑자기 미네르바처럼 행동하겠다면서 반말을 했을 때 엘라가 지을 법한 얼굴이에요.”

“그게 무슨 얼굴이야?”

“쿡쿡, 그러게요? 무슨 이야기일까요?”

키드득 웃으면서 엘라에게 무슨 일이냐며 엘라를 옆에 눕히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자기를 옆에 눕히자 꿍얼거리는 목소리로 나름 심각한 이야기라며 분위기를 다시 한번 잡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엘라가 끙끙거리는 게 안쓰러웠는지 피식 웃으면서 엘라의 장단에 맞춰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이기에 공주님께서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실까요?”

“우리 애 이름, 정해봤어.”

“아…….”

엘라의 말에 엘라가 이렇게까지 긴장한 이유를 깨닫게 되는 레이시.

레이시는 눈을 깜빡이다가 앉아서 들을지, 아니면 일어나서 들을지 물어보며 어정쩡하게 앉았고, 엘라는 레이시를 자기 품에 껴안으면서 그냥 이대로 들어주라고 말한 다음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것뿐이지만, 왜 이렇게 긴장되는걸까?

엘라는 이해가 안 되는 일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레이시의 손을 매만지다 깍지를 끼고 레이시의 배를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엘라가 심호흡하며 긴장하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편하게 말해보라며 엘라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자 숨을 깊게 내쉬면서 레이시에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속삭이는 엘라.

“에일렌……. 에일렌 어때?”

“으응……. 에일렌……. 예쁜 이름이네요.”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몸을 기대기 시작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의 손을 잡고서 이대로 재워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옆에 누우면서 레이시를 재워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시가 잠들자 그대로 옆에 누워서 레이시의 뺨을 찔러보는 엘라.

“에일렌…….”

이제 자기 딸이 될 아이의 이름.

그렇게 생각하자 엘라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바람 빠지는 웃음을 터트리다가 다시금 레이시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레이시의 얼굴을 찬찬히 내려다봤다.

아이의 얼굴은 누구를 닮았을까?

성격은 레이시를 닮았으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나만큼 강해야겠지.

아니, 내가 그동안 에일렌을 잘 지켜주면 되는 거겠지.

엘라는 부모에게 보호받은 적이 없는 만큼 에일렌을 잘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레이시의 옆에 눕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끙끙 앓으면서 머리를 부여잡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뭐 그리 술을 많이 마신 거냐며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손길에 머리를 비비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아하하, 미네르바도요?”

“으응……?”

“어제 엘라도 그런 소리를 했거든요. 그래서, 중요한 문제라는 게 뭔가요?”

“으응……. 나중에 저택에 돌아가면 레이시랑 잘 사람은 누구인지 고르기로 했다. 얼마 안 남았으니까……. 중요한 일이라 하고 싶었다.”

“아하하…….”

“그래도 이기긴 했다…….”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이제 밤에 아파도 자기가 다른 사람을 깨울 수 있다며 배시시 웃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술을 얼마나 마셨냐며 이야기를 돌렸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손가락을 8개 펼쳤다.

“세상에……, 3명이서 8병이나 마신 거예요?”

“……? 무슨 소리냐? 한 사람당 8병이다. 그 뒤에는……, 미스트에게 이기겠다고 막 마셔서 기억 안 난다.”

“세상에나……, 미쳤어요? 다음부터 그러지 마요. 저를 도와주고 싶다는 건 알겠지만, 너무 위험하잖아요.”

“으, 으응.”

레이시가 목에 걸린 초커를 잡으면서 미네르바에게 잔소리하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를 말없이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다음에 또 이렇게 무리해서 술을 마시면 그땐 정말로 화낼 거라며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손길에 배시시 웃다가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다.

“머리가 안 아파지는 거 같다.”

“바보.”

“에헤헤…….”

“놀리는 건데도 좋아요?”

“응, 좋다.”

미네르바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웃음에 같이 웃다가 이내 머리가 아프다며 레이시에게 안기며 칭얼거렸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소파에 앉아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오늘 떠나는 거죠?”

“응, 미스트는 그렇게 말했다. 마차에 들어가서 쉬고 싶나?”

“먼저 가도 괜찮으면 그러고 싶네요. 그게……, 으응, 요즘 따라 점점 숨 쉬는 것도 힘들고 그래서…….”

뺨을 긁으며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생각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다며 배시시 웃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머리를 부여잡더니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스트에게 갔다 오겠다.”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미네르바의 말에 손을 흔들며 미네르바를 배웅한 레이시.

그러자 일을 끝내고 온 건지 정장 차림의 엘라가 엘레오놀과 함께 방에서 나왔고, 레이시는 엘라의 모습에 손을 흔들면서 배시시 웃었다.

“아침부터 일하신 거예요?”

“떠나려면 떠날 때 준비도 잘해야 하니까. 일이 일이니까 후야제까지 해주고 싶었지만……, 더 늦어지면 안 되고 사람에 따라서는 2주 정도 빠르게 출산하는 경우도 있다니까 지금 나가야 해서 좀 빠르게 일하는 중이지.”

“아하하하…….”

“일어나자. 좀 더 쉬고 가고 싶긴 한데……, 다음 야영지까지 가려면 조금 빡빡 하니까. 조금만 힘내줘.”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를 일으켜 세우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뒤에 있는 엘레오놀에게 사과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요. 중요한 일이 코앞인데 이렇게 제 부탁을 들어줬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걸요. 그것보다 제가 한 말을 기억해주세요.”

“국경 쪽으로 오지 말라는 이야기요?”

“네. 전면전은 되지 않겠지만, 국경의 사람들끼리는 꽤 마찰이 있을 거예요.”

“알겠어요. 꼭 주의하도록 할게요.”

어차피 일을 못 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갈 일이 있으면 조심하자.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레오놀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에 마차에 올라탔고, 루룬은 레이시가 마차에 올라타자 가까이 다가가 한 편지를 건넸다.

“수도로 돌아가면 제가 레이시 씨를 지지한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될 거예요. 한동안은 엄청 소란스러워질 테니 제가 드린 편지를 국왕님에게 전달해주세요. 그러면 국왕님께서 레이시 씨가 항구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으로 꾸며주실 거예요.”

“아, 아하하하…….”

“그럼 힘내세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응원해주는 루룬.

레이시는 그런 루룬의 응원에 덩달아 긴장하다가 인사를 나눴고, 미스트는 두 사람이 대화를 끝내자 마차를 몰아 수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