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 돌아가는 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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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있어서인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왕궁에 있을 때보다 꽤 빠르게 흘러갔고, 그동안 레이시는 산책을 할 때마다 자기 눈치를 보는 인부들의 모습에 인부들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해봤다.
튼튼하게만 지어진다면 장식 같은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안전을 신경 쓰면서 천천히 일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며 레이시는 인부들의 광기를 진정시키려고 해봤지 그런 레이시의 노력은 그렇게 빛을 보지는 못 했다.
레이시가 말한 건 정말 쉬엄쉬엄 일하라는 거였지만, 인부들은 엘라가 직접 쉬면서 일 하라고 말해도 죽기 전까지 일하라는 걸로 알아듣고는 더욱 빡세게 일했다.
그리고 레이시는 한참을 인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나서야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게 최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째설까요…….”
“윗사람이라는 건 원래 게으르고 능력 좋은 사람이 최고라는 법 같으니까.”
“아하하……. 그런 건가요?”
“뭐, 나는 부하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 아샤는 어떻게 생각해?”
“반 정도는 맞지. 정확하게는 일을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최고야.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대장이 게으르면 문제가 생기거든. 그리고 레이시, 지금 네가 하는 건……, 사람은 착한데 능력이 부족한 대장이 하는 일이고.”
“…….”
아샤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잘못했다고 비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쓰게 웃으면서 자기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며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손길에 어색하게 웃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다……, 전생에 할아버지 농가일을 애들하고 도와주러 갔을 땐 내가 자주 와서 힘내라고 말할 때마다 애들이 더 편해하던데…….
그거 내가 일을 도와줘서 그런가?
아니면 지금 내가 임산부라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항구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고 했으니까, 임산부인 내가 괜찮다고 말했을 때 괜히 자존심이 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멋쩍게 머리를 긁기 시작했다.
나름 열심히 도와주려고 도와준건데 방해만 해버렸네…….
죄책감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계속해서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을 천천히 멈췄다.
그리고는 레이시의 손에 자기 손을 포개보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가 손을 조심스럽게 포개자 손을 돌려 깍지를 끼더니 배시시 웃으면서 머리를 기댔고, 아샤는 레이시의 행동에 움찔 떨다가 얌전히 자기 어깨를 내어주고서 도시 명명식은 준비가 다 됐냐고 물어봤다.
“편하게 생각해. 셋 다 왕궁의 작명가가 지은 이름일 테니까. 국왕도 아마 ‘어느 이름이든 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중요한 건 엘레오놀과 교역한다는 사실.
안 그래도 오라토리엄 왕국을 적대시하던 연맹국의 사람들을 견제할 수단을 마련한다는 거지 도시의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렇게 말하자 레이시는 쓰게 웃다가 그런 정치적인 이유로 도시 이름을 아무렇게나 정하는 건 싫다며 다시 한번 이름 후보를 보기 시작했다.
“역시 이 둘 중 하나가 좋겠네요.”
“아멜리아랑 청해인가……. 하나는 동양식이네.”
“네, 동양과 교역료를 개통하기 위해서 만든 도시니까 동양식 이름을 정하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엘라, 엘라는 어떻게 생각해요?”
“나라면 아멜리아로 짓겠어. 우리 왕국 내에서는 평범한 이름이 되겠지만, 상대방 국가 입장에서는 꽤 신기한 이름이 될 테니까. 도시 이름을 청해라고 지으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되겠지만, 일반 시민의 흥미를 얻지 못해.”
“헤에~, 그렇구나…….”
“거기에다가 일반 시민이 흥미를 얻는 쪽이 좀 더 수출을 많이 하니까, 지금은 왕국식 이름으로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서 물건을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엘라의 말에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레이시의 볼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눈을 흘겼다.
“너……, 내가 모험가 쪽 지식만 있고 이런 쪽에는 지식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지?”
“네!? 에, 그, 그게! ……에헤, 사랑해요.”
“하아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도 만약을 대비한 기초 공부는 전부 받았다고.”
레이시의 대답에 더 이상 추궁하지도 못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다가 조심스럽게 애교를 부리며 엘라에게 안겼고, 엘라는 레이시의 행동에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화낸 척을 계속 해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라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금 웃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미소에 레이시의 볼을 꼬집으면서 손장난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손장난을 이어가자 미네르바는 미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레이시에게 달려가 레이시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흥.”
“아, 에헤헤…….”
그 모습에 오늘은 뭔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자기를 껴안고 볼을 부풀리자 그동안 신경을 못 써줘서 미안하다며 미네르바의 볼에 입을 맞췄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입맞춤에 언제 인상을 찡그렸냐는 듯 헤실거리다가 미스트와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오늘 저녁에 준비가 다 된다고 했다. 단상도, 술도, 요리도 전부 준비됐다고 하더군.”
“으응.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단상 아래에 아샤가 들어간다고 들었다.”
“네? 아샤가요?”
“응. 단상 밑에서 습격할 수도 있으니까 단상 아래에서 호위해야지. ……뭐, 루룬의 기사들도 호위를 서주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타인이니까 믿을 수가 없어.”
단호하게 말하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목소리에 아샤가 양보해주지 않겠다 싶어서 쓰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쉽다고 말했다.
“아샤도 저랑 같이 위에 있으면 좋을 텐데.”
“일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어깨를 으쓱이면서 다시금 스물스물 레이시의 손을 잡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자 아샤의 머리를 끌어안더니 서서히 아샤의 머리를 허벅지에 눕혔고, 아샤는 레이시의 손길에 당황하면서 거절하는 듯 하더니 이내 천천히 머리를 레이시의 허벅지에 눕혔다.
“저녁까지만 조금만 이러고 있어요.”
“……그래. 그러자.”
레이시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는 아샤.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어주다가 이내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하품에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샤는 침대에서 자고 싶다면서 레이시를 안았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발을 버둥거리다가 얌전히 아샤의 품에 안기기 시작했다.
“주인, 잘 자라.”
어느새 미네르바도 와서 자기를 껴안자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그럼 저녁까지만 잠시 실례하겠다고 말한 다음 두 사람의 사이에 끼여서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명명식을 준비해야 할 때쯤이 됐고, 레이시는 눈이 떠지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뺨을 긁었다.
“너무 잠꾸러기가 된 거 같아요.”
“사람마다 다 반응이 다르다니까 어쩔 수 없지. 피곤한 건 좀 어때?”
“이제 괜찮아요!”
레이시의 말에 무리는 하면 안 된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샤를 꽉 끌어안았고, 아샤는 레이시의 포옹에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다가 이내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들어와서 레이시를 꾸며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화장은 역시 별로라고 말하다가 미스트가 건네준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는 입을 막았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혹시 배가 압박되냐고 물어봤다.
“조금요.”
“잠시만요……. 지금은요?”
“조, 조금은 낫지만 지금도 살짝 조여요…….”
“생각보다 배가 빨리 부푸네요.”
“죄, 죄송해요…….”
“아니에요. 레이시가 잘못한 일은 아니니까요. 다행히 드레스는 10벌 정도 준비해뒀으니까 힘들겠지만, 옷을 갈아 입어주세요.”
“그럴게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옷을 갈아입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배꼽 아래에 줄자를 대고 배의 길이를 재봤고, 생각보다 빨리 부푸는 눈을 깜빡이면서 계산을 고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때요?”
“으응, 꽤 편해요.”
“정말이죠?”
“네. 편해요.”
레이시의 대답에 조금은 안심하는 얼굴을 하는 미스트.
미스트는 엘라는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내려가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차에 들어가자 반갑게 인사하는 엘레오놀과 루룬.
레이시는 두 사람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가 자기 인사를 받아주자 이 다음에 어디 갈 계획이 있는지 물어봤다.
“네? 아마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럼 제 충고 하나만 받아주시지 않을래요?”
“네?”
“국경 쪽으로는 오지 말아주세요. 방금 첩자의 말을 들었는데 불굴의 장군이 심상치가 않네요. 수명이 다 해가는 걸 느끼고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는지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무력 충돌이 있을지도 몰라요.”
“……에?”
엘레오놀의 말에 순간 입을 다무는 레이시.
레이시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엘레오놀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 말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부탁에 흔쾌히 기밀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이유는 전쟁을 피하고 싶어서.
엘레오놀은 멀쩡하게 돈을 받고 먹고 살아도 사람은 죽고 사는데 왜 그렇게 사람을 죽이려고 드는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저와 제 신하들과 함께 최대한 전쟁의 발발을 막아보긴 할 텐데 신성왕국과의 협상에서 이겨서인지 사기가 미친 듯이 솟더라고요. 하아……, 곰탱이, 곰탱이라고 욕을 먹다 보니 정말 곰탱이가 된 걸까요? 그 협상은 누가 봐도 블루드 그 또라이 새끼의 성과인데 말이죠…….”
“그……, 저, 엘라에게 듣기로는 연맹국에는 매의 눈이라는 자도 있다면서요? 그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박쥐 새끼는 겉으로는 중립하고 있지만, 지금은 자기에게 이득을 줄 거 같은 곰탱이에게 주고 있답니다. 그리고 저를 견제하고 있더라고요.”
말이 점점 거칠어지더니 삿된 말 수첩을 꺼내드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어차피 이 근처에는 자기 말고는 연맹국의 사람이 없으니 막말을 하겠다더니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아, 연맹국의 왕과 연맹주는 주변 국가의 눈치를 슬금슬금 쳐다보면서 영역을 확장하려고 하지, 장군이라는 사람들은 백성들이 죽을 걸 고려하지 않고 전쟁에 승리하면 얻을 수 있는 것만 보려고 하지……. 제 애인 중 한 명이 신성 마법으로 라이칸스로프를 찾을 수 있지 않았다면 나라의 대가리가 전부 짐승 새끼구나~ 라고 생각하고 아예 잠적했을 거예요.”
“아, 아하하하…….”
“다들 성병에 걸려서 뇌수가 매독 병원균으로 꽉 찼을 게 틀림없어요. 안 그러면 그딴 또라이 같은 판단은 못 해요. 창녀들을 잔뜩 모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요.”
혀를 끌끌 차더니 박쥐와 곰, 그리고 돼지로 한참을 욕하는 엘레오놀.
그렇게 한참 욕설을 쏟아붓던 엘레오놀은 이번에 무역을 성공시키면 전쟁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루룬과 엘라를 보면서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였고, 엘라는 자기도 전쟁은 싫으니 있는 힘껏 노력해보겠다고 말했다.
오라토리엄 왕국과 연맹국이 전쟁하게 된다면 아마 가장 먼저 불릴 건 자기일 테니까 전쟁은 막아야만 한다.
적어도 레이시와의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는 왕궁에 있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엘레오놀과 루룬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엘라의 시선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도시 명명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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