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 도시 이름을 지으러 갔다가 주례를 봐주게 된 건에 대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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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그 넓이를 제외하면 영주의 결혼과 도시의 명명식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나무를 뼈대로 세우고 판자를 박아놓은 단상을 제외하면 조각상 하나 없었고, 심지어는 근처에 주택도 없어 아무래도 휑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광장.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은 이제 막 지어지는 도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활기.
다른 도시나 마을에서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활기뿐이었고, 자연스럽게 도시를 구경하고 있던 레이시는 그 활기에 시선이 꽂혀 멍하니 입을 벌렸다.
“후에에에……, 저기 미스트.”
“네, 무슨 일이에요?”
“으음……, 도시 명명식 같은 거나 영주님의 결혼식 같은 거, 솔직하게 말해서 이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이죠……? 저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지만, 엘라의 말대로라면 아무래도 좋은 일인 거 같던데.”
“맞아요. 도시 이름은 일부러 셋 다 비슷한 이름으로 후보를 정해뒀고, 루룬의 결혼은 축하할 일이긴 하지만, 솔직히 이 분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에요. 길드의 수뇌부들에게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왜 이렇게……, 음,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후후.”
“그러니까……, 그게, 그……, 열정……, 어……, 미친 것처럼 일해요……?”
미스트의 말에 입을 우물거리다가 다시 한번 광장에 단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어떻게든 좋게 말해보려고 열정적이라느니 정열적이라느니 이런저런 단어를 꺼내려고 노력했지만, 다시 사람들을 바라보자 도저히 좋게는 못 말하겠는지 한숨을 내쉬면서 결국 입에 담아두기만 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공사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다.
자기가 앞으로 살 도시고 돈을 많이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은 돈만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열심히 할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모두가 웃통을 벗고서 서로 자재를 던졌다가 받고, 뭔가에 홀린 듯이 망치질을 하는 모습은 미쳤다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레이시는 그 광기에 짓눌려서 조심스럽게 미스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양산을 잡지 않은 손으로 레이시의 손에 깍지를 끼면서 인부들이 왜 이렇게 열성적인지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아마 레이시의 도시 명명식과 결혼식이 끝나면 한 번 풀어줄 거거든요.”
“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왕가의 명령을 받고 온 사람들이에요. 돈도 돈이지만 명예도 명예대로 받고 오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덤으로 이 도시에서 산다고 했을 때 노후도 어느 정도 보장받고요.”
“으응.”
하긴 대기업 같은 경우에는 새 지부를 만든다고 했을 때 자원하면 아파트나 교육 같은 걸 지원해줬었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여기에서 레이시가 별로였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네? 제가요? 제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후후, 알아요. 만약에요. 만약~.”
“만약이라면…….”
그러니까 회사에 새로운 지부를 만들었는데 거기를 감찰하러 간 대표 이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거지?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전생의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하며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얼굴에 작게 웃다가 말을 이어갔다.
“뭐, 저희도 그걸 고려해서 일부러 더 천천히 온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아무래도 루룬 씨는 사람을 잘 다루니까 거의 한계에 다달을 정도로 항구쪽이 인력을 돌았다가 일주일 내로 단성을 완성시키고자 한 것 같네요.”
“그, 그렇군요……. 그런데 그런 거면 저 사람들은 무서워해야하지 않아요? 잘못하면 돈이고 뭐고 다 물려주게 생겼는데.”
“사람을 부려먹을 때 ‘이거 못하면 너 혼나!’라고 말하며 사람을 부려먹는 사람은 하수예요. 사람은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일할 땐 정말 최소한의 일만 하게 되거든요. 루룬 씨는 변경의 일을 처리하면서 그런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이에요.”
“그럼요……?”
“아마 오라토리엄 왕가와 엘레오놀 공주님과의 거래가 끝나고 난 다음에 처음에 성대하게 파티를 열어줬겠죠. 술과 고기, 음악과 놀 거리가 가득한 파티를요. 한 3일 정도 해줬으려나? 그런 다음 저희가 가겠다고 편지를 보냈을 때 사람들을 모으고 말했을 거예요. 왕족이 오게 될 거라고.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공포를 느끼겠죠. 항구는 완벽하게 준비 중인데 단상은 준비가 안 됐고, 보통의 귀족들은 항구의 준비 상태보다는 단상의 준비 상태에 더욱 신경을 쓸 거니까요. 물론 레이시는 안 그렇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럴 거예요.”
“으응…….”
“하지만 여기에서 루룬 씨가 자기가 엘라 공주님과 협상을 하고 올 테니 일주일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일을 제대로 하게 된다면 처음 열어준 파티와 비슷한……, 아니, 그것보다 더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네? 저희 처음부터 일주일 뒤에 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루룬 씨라면 아마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사, 나흘밖에 시간이 없을 거라고 말했을 거예요. 실제로 사, 나흘이면 단상의 기초 공사는 끝낼 수 있으니까요. 지금만 봐도 뼈대는 거의 다 완성됐잖아요?”
“아…….”
“숙련공에 신분이 보증된 사람들이 몰려온 거예요. 이 정도 공사는 가볍게 하죠. 하여튼, 그런 식으로 사, 나흘이면 죽을지 살 지가 정해지는데 갑자기 루룬 씨가 갑자기 시간을 늘려주고 갑자기 또 파티를 준비해준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으, 으음……? 기쁘겠죠?”
“풉! 뭐, 기쁘기야 하겠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동앗줄이 내려오면, 그리고 그 동앗줄의 너머에 천국이 있다면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져요. 그게 저 모습이고요. 좋은 의미의 광기라는 거죠.”
“아, 아하하하……. 사람 부리는 게 험하네요…….”
“뭐, 바닷사람이니까 잘 견디지 않겠어요?”
반쯤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제정신을 유지 못 하는 게 정상이다.
미스트가 그렇게 설명해주자 레이시는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웃음에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수도와는 다르게 노점상도 없고 딱히 거리의 바드도 없지만, 활기찬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
레이시는 그 풍경에 배시시 웃으면서 미스트에게 머리를 기댔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얼굴에 이런 풍경이 좋은 건지 물어봤다.
“왕궁이 싫은 건 아니에요. 그래도 뭐랄까……, 왕궁에서는 이런 느낌은 못 받잖아요.”
“후후, 그건 그렇죠. 이런 뜨거운 온기는 느끼기 힘들죠.”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중에 이런 곳에서 살고 싶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잠시 앞을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미스트가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속이 뚫리는 풍경도, 사람 사는 온기가 느껴지는 곳도, 미스트랑 다른 사람이 없다면 좋아할 수가 없으니까요.”
“후후,역시 나중에 레이시를 빼앗아버릴까……. 공주님의 아이를 낳은 다음 도망쳐버릴까요?”
“에?”
“아니면 나중에 엘라 공주님께서 레이시를 독점하든 말든 같이 불륜이나 저지르면서 제 아이를 임신시켜버릴까요? 어차피 레이시도, 저도, 서로를 사랑하잖아요?”
레이시를 자기 품으로 끌어안더니 사람들이 안 보는 틈에 레이시의 귀를 가볍게 깨물고 혀로 핥는 미스트.
레이시는 갑작스러운 미스트의 공격에 파르르 떨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귀를 깨물었다.
그러자 얼굴을 붉히면서 미스트를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귀를 가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주변에 자기들 말을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붉어진 얼굴로 우물쭈물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 모습에 레이시의 입가로 귀를 가까이 가져가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귀가 가까이 오자 미스트가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스트의 귀에 속삭였다.
“에, 엘라의 아이 낳고, 미스트의 아이도 낳아줄 테니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싸우는 거 싫어요. 다들 사랑하는 걸요…….”
“…….”
미스트의 말에 평정심을 잃어버리며 얼굴 표정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미스트.
처음에는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얼굴을 하던 미스트.
하지만 곧 당혹감이 사라지자 미스트는 진심으로 웃으면서 입술을 쭉 찢었다가 이내 자기 눈동자와 입술을 눈치채고는 손으로 입과 눈을 매만지며 감정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니 이내 미스트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레이시가 아랫배를 소중하게 끌어안으면서 얼굴을 붉히고 있자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빠르게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스캔했고, 주변에 섞여들어갈 수 있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레이시가 자기 팔을 잡아 살짝 부푼 배 위에 올려두자 미스트는 다시금 가면을 잃어버리고 본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게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말,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말아주세요. 엘라 공주님이나 아샤 씨나, 미네르바라면 저도 그들을 좋아하고 레이시도 그들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면 저, 질투심에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 안 해요!? 이, 이런 말……. 미스트니까 하는 거예요…….”
미스트의 말에 소리를 확 높였다가 이내 주변 행인들이 쳐다보자 고개를 푹 숙이는 레이시.
주변 행인들은 레이시가 미스트의 봉사를 받으면서 길을 걷고 있자 귀족이구나 싶어 관심을 끊고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지만, 괜히 찔리는 짓을 해서인지 레이시는 영 부끄러워하면서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똑같이 얼굴을 붉히다가 이내 크게 헛기침하면서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조금 더 산책해볼까요? 이 근처에는 아직 노점상이 없지만, 항구 근처에는 노동자를 위한 노점상이나 음식가게들이 있다고 하네요. 항구니까 아마 갓 잡은 해산물을 맛 볼 수 있을 거예요.”
“네에…….”
미스트의 말에 조심스럽게 미스트의 소매를 잡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성욕이 끓어올랐지만, 이내 억지로 그 성욕을 참으면서 레이시를 노점상으로 데리고 가서 조개구이 같은 간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옷을 편하게 입고 와서일까?
일하는 감각으로 레이시와 나왔던 미스트와는 다르게 레이시는 마치 데이트하는 감각으로 미스트와 간식을 나눠 먹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웃음에 점점 가면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좋지 않다.
이건 주기적으로 남을 괴롭히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을 괴롭히고 싶을 때 그 감각이다.
딱히 이런 감각을 느낀다고 폭주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처리에 잔 실수가 생기기에 미스트는 다급하게 레이시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고,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행동에 쭈뼛거리면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야, 양치할까요? 군것질 많이 했으니까.”
“으응…….”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가볍게 씻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가 억지로 웃는 것처럼 보이자 뭔가 자기가 잘못했나 싶어서 미스트의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자기가 뭔가 실수했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왜 떨어지려고 해요?”
“마, 마차에 일이 있어서…….”
“거짓말. 거짓말 하면 싫은데……. 저랑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이건 레이시의 투정이다.
자기랑 다르게 데이트하는 감각으로 나왔다가 갑자기 들어오게 돼서 자기가 뭔가 잘못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는 투정이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당황해하면서 레이시를 달래려고 했지만, 이내 레이시가 물기 어린 눈으로 자기를 올려다보자 미스트의 이성은 천천히 끈을 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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