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6화 〉 도시 이름을 지으러 갔다가 주례를 봐주게 된 건에 대해1
* * *
“으으응, 그럼 저희 항구 도시로 가는 거예요?”
“그래, 루룬이 다스리는 항구 도시에 가는 거야. 아직 이름도 안 지은 따끈따끈한 신 도시에.”
두 달만의 외출에 살짝 들뜬 레이시.
레이시는 하양이의 배 위에서 하양이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다가 엘라에게 어디로 가는 건지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모습에 안절부절 못하다가 레이시가 하양이에게서 내려오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에게 무슨 일을 하면 되는지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도시에 가서 이름을 지어주는 거야.”
“……네?”
“이름 후보는 이미 정해졌어. 세 개 중에 하나가 좋다는데 어때?”
“아, 아니. 잠시만요. 제가 도시 이름을 정한다고요?”
“응, 안 그러면 루룬이 국왕을 지지하는 거로 보여서, 너를 지지한다는 이미지가 약해지니까.”
“에엑……. 그런 일은 너무 부담스러운데.”
“돈이나 이런 게 오고 가는 건 아니야. 그냥 이름만 정하는 거야. 이름을 네가 정해서 왕가가 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어.”
“그런가요…….”
엘라의 말에 전생의 정치인들을 떠올리고는 그들이 한 것처럼 그냥 이름을 짓는 시늉을 하면 되는 건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시의 부담을 덜 방법이 있지는 않나 고민하다가 이내 지금 가는 이름 없는 항구 도시에 엘레오놀이 머물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레이시를 안심시켰다.
“응, 참고로 엘레오놀 공주도 거기에 있으니까 뭣하면 이름 짓는 것도 엘레오놀에게 맡기고 발표만 레이시가 하면 돼.”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응, 어차피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은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의 배우자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중요하지 다른 건 아무래도 좋거든.”
“아, 아하하하……. 엘레오놀 공주님이 말씀해주신 거랑 관련이 있는 거죠?”
“응,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목숨이 걸리면 되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주제에 정치적인 건 어지간하면 사형이 안 나오니까 마구 나댄단 말이지. 국경 근처에 있거나 탈주병 처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오히려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데 말이지.”
“그거야……, 직접 안 보면 엘라가 자기를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 하는 거 아닐까요?”
“응?”
“가끔 볼케릭 아주버님……? 께서 편지를 보내시거든요. 왕족은 밑의 사람들이 도발해도 직접 나서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누가 도발하면 말하라고 하셨어요. 자기는 왕궁의 예절과 규절을 관리하는 사람이니까 몰래 주의를 주겠다고 했어요.”
“흥, 쓸데없는 짓을 하네…….”
“아하하……, 그렇게 싫어요?”
“싫지. 볼케릭 오라버니의 엄마가 개지랄병을 떨어서 애초에 좋은 인상도 없고 쓸데없이 빡빡하거든. ……나를 나름 신경 쓴다는 건 알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야.”
엘라의 말에 쓰게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의 뺨을 쓰다듬어주다가 그럼 슬슬 출발하자면서 마차에 올라탔고, 엘라는 레이시가 마차에 올라타자 같이 마차에 올라타면서 수도를 떠나기 시작했다.
마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레이시가 임신해셔 미스트와 아샤가 번갈아 가면서 운전하게 되었고, 레이시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왠지 자기만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같아 마차를 타고 움직이는 내내 계속해서 두 사람에게 간식을 건네주거나 잡담을 주고받으면서 계속해서 두 사람이 심심해하지 않게 노력했다.
“레이시, 안 졸려? 우리는 괜찮으니까 먼저 자.”
“레이시가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알지만, 그렇게 너무 강박적으로 하면 몸에 안 좋잖아요? 레이시가 아프면 저희도 신경 쓰이니까 편하게 있어주세요.”
……물론 돌아오는 건 두 사람의 낮잠 명령이었지만.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의 명령에 피곤하지 않다며 떼를 써봤지만, 두 사람은 레이시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눈이 감기는 게 다 보이니까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라며 레이시를 눕혔고,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제가 졸린 게 티나요?”
“응, 평소에는 하루 내내 일해도 멀쩡했는데 요즘에는 두어 시간 일하면 꾸벅거리잖아.”
배 안에서 태아가 급속도로 크는만큼 남들의 곱절의 피로를 느끼는 레이시.
엘라는 그 점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우리가 눈치를 못 챌 거 같냐고 물어보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선을 피했고, 엘라는 레이시가 시선을 피하자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건강을 신경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너 없을 때도 이렇게 다녔으니까. 거기다 미네르바가 있어서 고기 같은 건 오히려 부담이 적어. 야영지도 마차를 그대로 캠프로 써버리니까 준비를 안 해도 돼고.”
“으으응…….”
“그러니까 피곤하면 자고 있어.”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네르바를 불렀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부름에 배가 불편해서 그런 거냐며 자연스럽게 자기 몸을 내어줬다.
그러자 작게 사과하면서도 금방 잠드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어차피 기한은 널널하게 잡았으니 천천히 가자고 말했고, 미스트와 아샤는 엘라의 말에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라며 천천히 마차를 운전했다.
그렇게 일행들의 배려 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항구 도시에 도착한 레이시.
엘라는 새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레이시를 깨울지 말지 고민하다가 레이시가 이런 풍경을 좋아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어깨를 흔들었고, 미네르바의 품에 안겨서 자던 레이시는 누군가 어깨를 잡고 흔들자 정신을 차리고 하품을 길게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착했어, 지금 건물 짓고 있으니까 한 번 볼래?”
“정말요? 흐아암…….”
엘라의 말에 팔을 땅에 짚고 일어나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에게 그렇게 일어나면 허리에 부담이 크다면서 레이시의 몸을 받쳐주었고, 레이시는 일어나자마자 엘라가 껴안아주자 얼굴을 붉히며 과보호라며 작게 투덜거렸다.
“과보호인 편이 좋아.”
“……바보.”
“그래서 어때?”
“헤에에…….”
아직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의 날.
하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 통나무와 벽돌을 이리저리 옮기는 사람들은 이 날씨도 덥다는 듯 웃통을 깐 채로 건축 자재를 옮기고 있었고, 레이시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작게 감탄했다.
“건물이 지어지는 건 처음 봐요.”
“창고 짓는 거 봤잖아.”
“……그, 그거랑은 조금 다른 걸요? 거기는 ‘노동!’이라는 느낌이라면 여기는 ‘생활!’이라는 느낌이잖아요.”
“쿡쿡, 그래? 그럼 안으로 들어가볼까?”
“네에.”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라와 팔짱을 끼는 레이시.
미스트는 햇빛이 세다며 레이시의 머리 위를 가려주었고, 미네르바는 자기도 레이시를 도와줄 수 있다면서 레이시의 앞에 서서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혼자 남아 눈을 깜빡이는 아샤.
아샤는 잠시 한숨을 내쉬다가 마차는 자기가 주차하고 올 테니 먼저 가라며 손짓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미안하다며 몇 번인가 사과하다가 기어코 마부석에 올라와 아샤의 볼에 입을 맞췄다.
“빨리 가.기사가 하는 일을 하는 건데 호들갑이야…….”
“그래도 고맙잖아요. 언제나 대신 일해줘서 고마워요.”
“……대신 일하는 거 아냐.”
그러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자기 얼굴을 가리는 아샤.
아샤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레이시에게 조심해서 내려가라고 말하더니 천천히 마차를 몰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아샤가 멀리 떨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다가 엘라가 저 멀리서 경비병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다시 엘라에게 쪼르르 다가가 엘라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럼 조금 구경할까?”
“네에~.”
엘라의 말에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시 외각을 빙 둘러서 가는 레이시.
아무것도 없던 땅에 교역만을 위한 도시를 만든다고 하더니 외벽을 짓고 있는 사람들.
레이시는 성벽을 지어지는 것도 처음 본다면서 눈을 빛내다가 이내 성벽이 조금 낮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엘라의 손을 잡아당겼다.
“엘라, 엘라.”
“응? 왜?”
“성벽……, 조금 낮은 거 같지 않아요?”
“어? 왜? 적당한 거 같은데?”
“으응? 지금 저 성벽 3m 정도죠?”
“그러네. 어차피 누군가 쳐들어온다면 바다를 통해서 오지 이 근처에는 중형 몬스터도 없어서 저 정도면 괜찮아.”
“……정말요? 저도 가볍게뛰어 넘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저거로 괜찮아요?”
“푸흐흐, 확실히 하양이나 나비나 가볍게 뛰어넘겠네. 그런데 일반인은 못 뛰어. 그리고 이 정도 성벽을 단번에 뛰어서 넘어갈 정도의 산적이라면 성벽이 거의 쓸모가 없고. 그래서 이정도면 돼.”
“헤에……, 그렇구나아~.”
엘라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그런 건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배시시 웃다가 주변의 인부들이 자기를 쳐다보자 움찔 떨면서 엘라의 소매를 잡았고, 엘라는 레이시가 긴장한 걸 눈치 채고는 피식 웃으면서 귀족이 와서 그냥 구경하는 것뿐이라며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췄다.
“지금 여기에는 귀족이 거의 안 오니까 아무래도 신기하겠지. 거기에다가 새로 만드는 도시니까 뭔가 감시관이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을 걸? 그럼 아무래도 신경 쓰이지 않겠어?”
“아하……, 그렇구나.”
“그런 거야.”
이제 막 국왕의 명령을 받아 만들기 시작한 도시.
그런 도시에 귀족들이 올까?
온다고 해도 항구 도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고 루룬이 도시가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을 축하하는 날에 얼굴 도장이나 찍으러 오겠지.
엘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들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고 말하면서 성벽을 계속 구경하다가 도시의 안쪽으로 걸어갔고, 경비병들은 레이시가 경비초소로 다가오자 경례 자세를 취한 다음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루룬 마케르크 님께 연락을 준 참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습니까?”
“아, 그래.”
개발 중인 도시에 찾아온 귀족이니 국가의 명령을 받아 온 귀빈이라고 생각한 걸까?
딱히 틀린 판단도 아니라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초소에 들어가 햇빛을 피한 다음 기껏 바다에 왔는데 수영복은 못 입게 됐다며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집 안에서라면 입어줄 테니 밖에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라며 엘라를 말리기 시작했다.
“후후, 질투날 정도로 꽁냥거리시네요. 루피너스 남작님.”
“왔어?”
“네, 파우스트 공주님.”
그리고 그렇게 손장난을 치면서 가볍게 투닥거리자 들어오는 루룬.
루룬은 공적인 자리라 그런지 일부러 거리를 벌리려는 듯 두 사람의 성씨를 말하면서 인사했고, 레이시는 그런 루룬의 행동에 당황하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루룬은 자리에 앉아달라고 부탁한 다음 엘라에게 서류를 내밀었고, 엘라는 루룬이 내민 서류를 대충 훑어보다가 자기는 경제나 발전 쪽에는 쥐약이니 알아서 설명해달라고 말했다.
“항구의 일은 경험자와 기술자가 많은 엘레오놀 공주님의 도움을 받아서 길드를 설립, 보고를 받고 있고 도시의 건설은 저와 제 배우자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 뭔가 문제는?”
“현재 상황으로는 없습니다. 1주일 내로 루피너스 남작님의 명명식의 준비를 끝낼 수 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그럼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은 곳이 필요한데…….”
루룬의 보고에 수고했다며 루룬의 공적을 치하하다가 경비병을 힐끗 바라보는 엘라.
경비병들은 이제 신분을 알게 된 엘라의 시선에 화들짝 놀라더니 최대한 절도를 유지하면서 밖으로 나갔고, 엘라는 그런 경비병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편하게 이야기하라며 루룬에게 더 보고할 건 없냐고 물어봤다.
“너도 결혼하지?”
“아하하, 눈치 채셨나요?”
“아무래도눈치 채지. 약지에 반지를 끼면. 그렇지?”
“에? 아, 아아! 축하드려요.”
“……풉. 감사합니다, 레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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