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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81화 (281/542)

〈 281화 〉 회임­3

* * *

미스트의 말에 어떻게든 힘을 내서 선물을 받기 시작하는 레이시.

고작해야 앉아서 선물을 계속 받으면 되는 일이라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레이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급속도로 지치기 시작했고,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다.

“…….”

축 늘어져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미스트에게 턱짓으로 더 이상 사람들을 받지 말라고 말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서 인사만 받았는데도 죽을 거 같아요.”

“피곤하면 말하지.”

“으응, 엘라가 일하는 데 저만 힘들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지금은 레이시를 위해서 일하는 거니까 힘들면 말해. 알겠지?”

“그럴게요. 그나저나 저 혼자서 저걸 다 받아들이기엔 너무 힘들 거 같은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해요?”

“보통은 하수인들에게 맡기지.”

“하수인이요?”

“응. 지지자들. 직접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알려준 다음에 다른 사람들은 전부 지지자에게 맡기는 거야. 뭐, 그렇게 해도 몇 날 며칠은 걸리는 중작업이 되겠지만.”

“저는 지지자가……. 한 분 있네요.”

“응?”

“루룬 씨.”

“루룬?”

“그, 임신했다는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요. 엘레오놀 공주님께서 항구의 이용권리를 사기 위해서 3년 동안이나 준비 작업을 하셨는데 그 준비 작업 대상으로 루룬 씨를 선택했대요.”

“루룬……. 내게 네가 생겼다는 걸 알고 정한 거구나?”

“그, 네. 죄송해요.”

“아니, 이해되는 인선이네. 레이시는 괜찮아?”

“네?”

“레이시가 싫다고 하면 루룬 대신에 다른 사람을 고르라고 말할게.”

“괜찮아요. 엘라가 바람을 안 피운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루룬 씨도 지금은 약혼하셨다고 했으니까요.”

“……으응.”

“그것보다 엘라, 저, 루룬 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음. 내일 이야기하고 올게.”

“네에에, 근데 아직 점심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왜 이렇게 힘들까요…….”

“안 하던 일을 해서 그런 거겠지. 조금 잘까? 응?”

뭔가 평소보다 과보호네…….

아니, 어쩔 수 없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얼굴을 붉히면서 아랫배를 끌어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똑같이 얼굴을 붉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따라 들어가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엘라도 날개로 덮어주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잠깐 투덜거렸지만, 이내 날개를 있는 힘껏 펼쳐서 엘라와 레이시를 덮어주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행동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그대로 미네르바의 품에서 천천히 잠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엘라가 질투를 느꼈지만, 이내 레이시가 새근거리면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자 질투가 무슨 소용이냐며 배시시 웃다가 셋이서 그대로 휴식을 취했고, 미스트와 아샤는 밖에 남아 자기들이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스트는 받은 선물의 정리를, 아샤는 제 13 벽천화 기사단과 함께 경호를 어떻게 할지를…….

그렇게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자 심심해졌는지 미스트는 아샤에게 같이 자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또 뭔가 헛소리를 하려는 미스트의 움직임에 눈살을 확 찌푸리면서 시끄럽다고 말했다.

“차가우셔라.”

“헛소리하지 말고 일이나 해. 우리가 쉬면 레이시가 힘들어지잖아.”

“후후, 그러네요. 열심히 해야겠어요.”

“…….”

미스트의 말에 가볍게 혀를 차는 아샤.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말에 레이시의 추종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아샤는 미스트의 말에 엘라와 레이시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면서 루룬에게 갈 거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미스트는 루룬은 어차피 엘레오놀과 함께 올 테니 우리들이 직접 데리러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아샤는 미스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레이시를 지지할만한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다.

“레이시가 그동안 만난 귀족들은 루룬 빼면 전부 골빈년들 아냐?”

“으응? 아샤.”

“왜?”

“아샤도 귀족이죠? 그것도 백작.”

“…….”

“그리고 마리아 씨도 남작이고.”

“야, 설마…….”

“사랑하는 레이시를 위한 거니까 할 수 있죠? 아~ 물론 걱정하지 마세요. 아샤를 귀찮게 하는 귀족들은 제가 단둘이 긴밀히 이야기할 테니까요.”

“난 도움 안 된다.”

“아하하, 아샤에게 그런 걸 바라지 않아요. 그건 화덕에 불을 붙이고 빵이 얼기를 기대하는 거랑 똑같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랑은 지금 이상은 친해질 수 없을 거 같네.”

“지금 이상으로는 친해질 수 없을 정도로 친하다는 거죠?”

“너 일부러 이러지?”

“후후, 뭐, 자세한 일은 제가 할 테니까 아샤는 밖에 계신 마리아 시트러스 남작님과 함께 레이시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해주세요.”

“……자신 있는 거지?”

“후후, 제가 누구라고 생각해요?”

아샤의 질문에 눈을 차갑게 식히면서 웃는 미스트.

아샤는 미스트의 눈에 한숨을 푹 내쉬더니 레이시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내 달라고 말한 다음 경비 계획서를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미스트는 아샤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같이 일어나 왕궁으로 갔다.

도착한 곳은 엘레오놀과 루룬이 항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곳.

루룬은 미스트가 갑자기 찾아오자 놀란 눈을 했지만, 엘레오놀은 미스트를 보자마자 미스트의 목적을 알겠는지 싱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20년.”

“15년.”

“아쉽네요. 후후, 역시 시장에서 하는 흥정과는 달라서 힘드네요.”

“네……?”

엘레오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룬.

루룬은 엘레오놀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물어봤고, 엘레오놀은 미스트를 도와주는 대가로 항구의 이용 권한을 5년 더 길게 샀을 뿐이라고 말했다.

“레이시 씨에 대한 강한 지지가 필요한 거죠?”

“네. 단, 레이시가 스트레스를 받는 방법으로는 안 돼요.”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제가 항구에 대한 투자금을 늘리죠. 레이시 씨의 회임을 축하하는 것으로 오라토리엄 왕가와 엘라 공주님에게 동시에 선물을 드리면 될까요?”

“네, 그럼 저는 저희 왕국의 공작들의 치부를 발언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계약 기간을 5년 늘려 15년으로 맞추도록 할게요.”

막힘 없이 이어지는 대화.

루룬은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이내 미스트가 누구인지, 그리고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레이시가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는지 떠올려보고는 무 사람의 대화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레이시 씨, 많이 지치셨나요?”

“아무래도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거기에다가 레이시는 지지세력도 없으니까 어떻게든 레이시의 눈에 들어서 지지세력에 들기 위해 질척거리면서 시간을 끄니 더 힘들어 하더라고요.”

“오늘 저녁에 만찬회가 있던데……, 그때 지지하겠다고 선언하면 될까요?”

“네, 부탁드릴게요.”

루룬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그럼 국왕에게 가보겠다고 말하는 미스트.

엘레오놀은 미스트의 말에 계약 기간에 대한 것을 부탁한다면서 손을 흔들었고, 미스트는 엘레오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루룬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국왕에게 가는 미스트.

국왕은 업무를 보다가 미스트가 들어오자 엘라를 대신해서 왔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국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른 사람들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자 국왕은 사람들을 물린 다음 미스트에게 뭘 원하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몇 가지 물건을 국왕의 책상에 내려놓으면서 네 공작 가문의 적당한 치부라고 자기가 내려놓은 물건을 설명해주었다.

“이걸로 공작 가문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항구의 계약 기간을 5년 늘려주세요.”

“으음, 새 아가에게 필요한 일이니?”

“지지세력이 없는 왕자비가 어떻게 되는지는 국왕님께서 제일 잘 아시죠?”

엘라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자기 말을 따르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투로 말하는 미스트.

국왕은 미스트의 말에 엘라도 같은 의견이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라면 자기보다 더 공격적으로 말했을 거라며 싱긋 웃어보였다.

그러자 그건 그렇다며 웃음을 터트리는 국왕.

국왕은 미스트가 건넨 물건을 보더니 이 정도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미스트에게 레이시를 만찬회에 데리고 올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국왕의 질문에 노력해보겠다면서 웃었다.

“이제 막 임신한 거지만, 레이시는 이제 홀몸이 아니니까요.”

“하하! 그렇군. 음, 음. 손녀의 태명은 뭐로 할까?”

“그거는 공주님의 권한이니까 국왕님께서는 얌전히 선물이나 준비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자네……, 그래도 내가 국왕인데 너무한 거 아닌가?”

“으음, 이거 보시고 이야기하시겠어요?”

“으응?”

미스트가 국왕에게 건넨 건 평범해보이는 수첩이었다.

가죽으로 겉표지를 만들고 평범한 종이로 안을 채운 수첩.

국왕은 아무리 봐도 평범한 수첩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게 뭐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국왕의 질문에 싱긋 웃으면서 수첩의 안을 보라고 말했다.

“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음, 만찬회의 준비가 바쁠 거 같군. 크흠, 크흠.”

“푸훗.”

수첩을 보고 크게 헛기침하는 국왕.

집사는 그런 국왕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고, 국왕은 집사의 질문에 조용히 수첩 안을 펼쳐서 보여줬다.

그러자 보이는 건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쓰여진 여자애의 이름.

수첩에는 중성적인 이름에서부터 시작해서 여자애의 이름으로 쓸만한 단어가 빼곡하게 적혀있었고, 집사는 그 이름들의 향연에 엘라가 태명을 짓는 것에 얼마나 기대를 품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무언가 광기가 느껴질 정도의 애정.

이런 애정을 가진 일을 국왕의 힘으로 빼앗으면 엘라가 레이시가 임신했다는 이유로 왕국을 위해서 일하는 걸 멈출지도 모르니 태명에 대한 건 엘라에게 맡기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집사는 크게 헛기침하면서 자기가 생각한 걸 머릿속에서 지우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집사와 국왕의 반응에 싱긋 웃으면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레이시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하는 국왕.

미스트는 국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저택으로 돌아갔고, 아샤는 미스트가 돌아오자 마리아의 설득은 끝났다면서 미스트에게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봤다.

“그냥 오늘 저녁에 있을 만찬회에 갑옷을 입지 말고 제복이나 양복을 입고 오세요.”

“……그게 끝?”

“네, 그렇게 하면 기사가 아니라 귀족으로서 참석한다는 거니까요. 그렇게 참석하기만 한다면 국왕님이 어떻게든 해줄 거예요.”

“뭔가 시시하네.”

“결과가 거창하다고 행동도 거창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미스트의 말에 눈을 깜빡이는 아샤.

미스트는 아샤의 반응에 키득키득 웃다가 레이시는 깼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일어나려면 두어 시간은 더 걸릴 거라고 말했다.

“그럼 다른 일이나 준비해볼까요?”

“응? 또 준비해야 하는 거 있어?”

“네, 옷이요. 기왕이면 레이시가 제일 돋보일 수 있는 옷으로 준비하고 싶네요. 그리고 레이시를 지지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안 좋은 옷을 입으면 얕보일 수 있으니까 두 분의 옷도 준비해야겠네요.”

“제 옷도 준비하는 건가요?”

“네, 그러니까 배신할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마리아 남작님.”

“했다간 대장한테 맞아 죽으니까 안 할 거예요.”

“후후.”

마리아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미스트.

미스트는 우선 아샤와 마리아의 옷부터 고르자면서 두 사람을 드레스 룸으로 데리고 갔고, 아샤는 미스트의 말에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레이시를 위한 일이라는 말에 얌전히 드레스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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