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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80화 (280/542)

〈 280화 〉 회임­2

* * *

레이시가 엘라에게 임신 사실을 고백한 다음 날.

술을 마시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끝까지 어울린 탓인지 아니면 엘레오놀과의 거래가 끝난 탓인지 레이시는 드물게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흐아아아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서 기지개를 켜는 레이시.

레이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하양이와 나비의 축사를 깨끗하게 치워준 다음 목욕하며 일과를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를 보면서 반갑게 웃으면서 청소는 잘 했냐고 물어봤다.

“에헤헤……, 아침 먹을 수 있을까요?”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엘라나 다른 사람들은요?”

“엘라와 아샤는 아침 일찍 왕궁에 갔고, 미네르바는 아직 자고 있어요.”

“그렇구나.”

아침부터 안 보인다 생각했더니 왕궁에 갔구나…….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멍하니 미스트를 바라보다가 자기 아랫배를 바라봤고, 이내 뭔가 평소보다 더 튀어나온 것 같은 배에 얼굴을 붉히면서 배를 가렸다.

그러자 작게 웃으면서 아직 그렇게 배가 나와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추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아직도 자기가 준비가 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부모가 되는 건 별 거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여기에서 제대로 된 부모를 지닌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엘라?

국왕과의 사이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부모, 자식 관계는 아니다.

거기에다가 어머니와의 관계는 뭐라고 말하지도 못하게 아무런 추억도 없으니까 더더욱.

나?

……암살자 가문에다가 친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당주라는 인간은 자기가 살아있는 것을 가려서 죽인다고 뇌에다가 수술을 해서 영구적인 흉터를 남겼다.

미네르바?

애초에 남자를 납치, 강간해서 아이를 낳은 다음 무리에서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갖다 버리는 종족이라서 논외다.

아샤는……, 아샤는 문자 그대로 부모가 없고.

그렇기에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우물거렸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다가 미스트도 모르는 게 있냐며 살짝 머리를 기댔다.

그러자 쓰게 웃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정작 중요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같이 알아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후후, 그러게요. 같이 알아봐요. 음~ 다섯 명이서요.”

첫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질투를 안 느낀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서로에게 독이 될만한 행동을 할 만큼 정신 나간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다.

그러면 레이시가 슬퍼하니까.

그러니까 모두가 레이시의 아이가 누구와 누구의 아이든 진심으로 자기 아이처럼 생각하고 키울 생각이다.

그렇게 정해뒀었기에 미스트는 다섯이서 힘내자면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새삼스럽게 자기가 전생 기준으로 보면 돌멩이를 맞을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는 이세계.

지구가 아니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는 둘이 아니라 다섯이니까 수학적으로 2.5배 쉬울 거라며 기합을 넣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웃음을 작게 터트리다가 레이시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렇게 서로 꽁냥거리면서 늦은 아침밥을 먹고 있자, 엘라와 아샤는 왕궁에서의 일을 모두 처리했는지 피곤하다는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고, 레이시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입가를 닦으면서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수고하셨어요오오~.”

“……에헤헤, 안아줘.”

“네에~.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레이시를 보자마자 배시시 웃으면서 팔을 벌리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애교를 부리자 똑같이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를 꽉 끌어안았고, 엘라는 레이시를 안자 피로가 풀린다는 듯 축 늘어지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에게 사과했다.

“으응? 왜요?”

“그게, 일단 아빠한테 보고를 해야 해서……. 그, 말해버렸거든.”

“아……. 으응, 국왕님은 뭐래요?”

하긴 생각해보면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닌데 보고해야지.

인륜지대사라고 말할 정도로 중대한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국왕이 난리를 피울 걸 떠올리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엘라와 함께 식탁에 갔고, 엘라는 레이시의 웃음에 국왕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쓰게 웃었다.

“우선 레이시가 아기를 가지게 된 것에는 최대한 빠르게 시간을 내서 축하해주겠다고 했어.”

“에, 에헤헤……. 조금 부끄럽네요.”

“그리고 선물들이 올 거야. 한 달 정도.”

“헤에~ 선물……, 네?”

엘라의 말에 무슨 선물이 올까 기대하다 말고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확인하듯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가 들은 게 맞다며 말을 이어갔다.

“내 생일이나 이런 거면 나와 친분이 없으면 전부 거절하면 되는데, 그……, 내가 나중에 결혼하겠다고 공인한 사이의 여자가 임신을 한 건 조금 다른 이야기라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벤트거든. 그래서 아빠가 공문을 내릴 거고 약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는 엄청 올 거야. 선물이.”

“아, 아아아……. 전, 전국에서 오는 거네요?”

“응. 왕가에 대한 충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최선의 선물을 주겠지. 그래서 오늘부터 선물들이 올 거야.”

“아하하하……. 선물들이라니 뭔가 신기한 말이네요.”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말하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정말로 괜찮은건가 싶어 레이시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자기는 모르겠다면서 아샤에게 아샤도 말하라며 팔꿈치로 아샤의 옆구리를 찔러댔고, 아샤는 엘라의 눈치에알겠다면서 자기도 할 말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저택 근처에 건물이 3개쯤 새로 생길 거야.”

“……네?”

“하나는 벽천화 기사단이 쓸 거고, 나머지 둘은 임시 창고. 전국에서 선물이 오니까 저택에 모두 보관하기는 힘들거든.”

“그, 벽천화 기사단분들은 왜 여기에 와요?”

“네가 임신했으니까 호위하러 오는 거지. 유산이라도 되면 안 되잖아. 안 그래도 엘라는 메이드가 적다고 이야기를 많이 듣던 중이었으니까 벽천화 기사단에서 하위 기사단을 만들어서 올 거야.”

“하위 기사단이요……?”

“응, 임시 명명으로는 벽천화 제 13기사단이라는 거 같던데?”

“왜 13이에요?”

“엘라가 13번째 자식이거든.”

“그렇게 형제자매가 많았어요?”

아샤의 말에 엘라를 바라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다들 영지를 하사받아서 왕궁에는 신년맞이 행사가 아니라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샤에게 말을 끊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괜찮다면서 마리아를 비롯해서 몇몇 사람이 상주할 거라고 말하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단장이 여기에 있어도 되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평상시에는 큰 임무가 없으니 괜찮다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 큰 임무가 있으면 마리아는 빠지겠지만 다른 기사들은 근처에서 계속 경호를 서줄 거야. ……그냥 이웃집이 생겼다고 생각해.”

“으응, 네에……. 근데 창고가 필요할까요? 선물이 그렇게나 많이 와요?”

“그건 내가 말하기보다는 직접 보는 게 좋겠네.”

레이시의 질문에 레이시를 일으켜 세우더니 저택의 다락방으로 가는 아샤.

보통 창고로만 쓰는 방이었기에 레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여기에 왜 왔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다락방의 창문을 말없이 열어주었다.

“밖에 봐.”

“밖에 뭐……. ……뭐예요? 저게?”

“그러니까 마차는 선물들이고, 수레는 인부들이지 뭐.”

다락방이 밖을 보기 좋은 곳이 아니라 편하게 밖을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수십 개의 마차가 일렬로 늘어섰다는 것만은 알 수 있는 바깥.

레이시는 그 마차의 행렬에 질린다는 얼굴로 멍하니 밖을 바라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저게 다 선물이라고 말해주었다.

“저것도 지금 검수된 것만 온 거야. 독이나 저주가 걸린 물품이 오면 안 되니까.”

“……정말요?”

“응. 거기에다가 부피가 큰 선물은 나중에 창고가 완공되면 전달할 거고.”

“저는 저런 것들 다 받을 자신이 없는데요?”

“그럼 나중에 국왕에게 줘버려. 짬처리 때리는 거지만, 일단 선물을 받아두기만 한다면 그 다음부터는아무래도 좋은 일이니까.”

“국, 국왕님에게 짬처리…….”

아샤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을 하는 레이시.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혼자서 저 선물들을 처리하는 건 무리라 레이시는 아샤의 말대로 국왕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락방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엘라에게 다가가서 그대로 힘없이 안기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가 밖의 행렬을 봤다는 걸 깨닫고 어색하게 웃었고, 그렇게 레이시와 엘라가 껴안고 있자 숙취로 고생하는 미네르바가 내려와 레이시에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주, 주인, 머리가 아프다아아…….”

“아, 아하하. 많이 아파요?”

“응. 많이 아프다.”

그리고 그 모습에 긴장을 풀고 피식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기 위해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선물은 받는 수밖에 없으니 레이시가 편한 시간에 일하기 시작하자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갈까요?”

“그래. 참, 레이시. 선물을 받다 지치면 조금만 쉬고 싶다고 말해. 그럼 이 근방에서 교통을 정리하고 있는 벽천화 기사단이 알아서 정리해줄 거야.”

“마리아 씨, 지금 와 계세요?”

“절찬 일하는 중이야. 귀족들끼리 싸우는 걸 막느라 죽어가는 거 같던데?”

“으응…….”

엘라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미네르바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나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가 구워뒀던 쿠키를 조금 챙기더니 밖으로 나갔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밖에 나가자 자연스럽게 레이시의 뒤를 따라다니며 양산을 펼쳐주었다.

“……으응, 조금 부담스러운데요.”

“어쩔 수 없어요? 레이시는 이제 일개 메이드가 아니라 공주님의 반려라고요? 공식적으로도 말이죠.”

“아, 아하하…….”

미스트의 말에 쓰게 웃으면서 미스트의 봉사를 얌전히 받는 레이시.

레이시는 주변의 둘러보다가 엘라의 말대로 귀족들간의 싸움에 고생하는 마리아에게 가서 쿠키를 입에 넣어주었다.

“흐웁?”

“수고하시네요. 마리아 씨.”

“아, 레이시…… 님.”

“에헤헤, 전처럼 불러도 괜찮아요.”

“아닙니다. 레이시 님을 편하게 부를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두 백작분께서 선물을 먼저 드리겠다고 하십니다. 서류를 통과시켜 준 자가 실수로 같은 번호를 부여했더군요. 그래서 난감해 하던 참입니다.”

“흐으응…….”

평소보다 딱딱한 마리아의 태도.

조금은 낯선 모습에 레이시는 속으로 ‘공무를 볼 땐 이런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하다가 마리아의 말에 열심히 말다툼하던 사용인들을 바라봤고, 사용인들은 레이시가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 흠칫 떨다가 각자의 주인에게 가서 빠르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레이시는 엘라라면 여기에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면서 엘라를 흉내내며 입을 열었다.

“제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다툰다라……. 여러분들은 제가 서로 모르는 사람이 다투면서까지 내미는 선물을 받아드는 탐욕적인 사람으로 보이세요?”

“그……!”

“두 분의 문양. 외웠으니까 엘라 공주님에게 말씀을 드릴게요. 마리아 씨.”

“……아, 네!”

“두 분이 계속 싸우신다면 말씀해주세요. 엘라 공주님께 대신 보고해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드세요. 미스트 선배랑 같이 만든 쿠키에요. 이건 음료수고요.”

“아, 감사합니다!”

레이시의 말에 훨씬 편해졌다면서 아무도 못 보는 사이에 윙크하는 마리아.

레이시는 마리아의 대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미스트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고, 이내 이걸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 거냐며 미스트를 바라봤다.

“그러네요……, 최소 수십 번?”

“……듣기만 했는데 너무 힘들어요.”

“푸후훗, 괜찮아요. 제가, 그리고 공주님이 곁에 있잖아요?같이 힘내기로 했죠?”

“……으응, 에헤헤.”

“우리같이 힘내봐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합을 다시 한번 더 넣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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