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 공주들의 농간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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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오놀의 말에 움찔 떨더니 엘레오놀을 바라보는 레이시.
엘레오놀이 지금 여기에서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항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눈치를 살펴보다가 엘라가 줬었던 종이를 펼쳐보았다.
그 종이에 적혀 있는 건 이번에 오라토리엄 왕국에서 새로 만든다는 항구 도시의 이름과 정보.
레이시는 엘라가 이 종이를 주면서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엘레오놀을 바라봤고, 이내 심호흡을 깊게 하면서 천천히 대화를 이어갔다.
“바, 바다라……. 관광하기에 좋은 바다라면 알고 있지만, 배를 타본 적이 없어서 엘레오놀 공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다는 잘 모르겠네요. 정말 죄송해요.”
“어머? 그런가요? 으음……, 그럼 뱃놀이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혹시 괜찮으시다면 레이시 씨가 추천하는 바다가 어디인지 알려주시겠어요?”
“네! 그, 그러니까……, 에리켈이라는 이름의 어촌인데, 이번에 새로 도시로 개발하는 중인 도시랍니다. 괜찮으시다면 한 번은 방문하셔도 좋을 거예요.”
레이시가 자기가 예상한 도시의 이름이 나오자 싱긋 웃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레이시가 미리 준비한 글을 읽는 것 같이 말하자 레이시가 누가 준비한 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거래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내 직접적으로 무역에 대한 키워드를 꺼내면서 대화를 그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키워드는 바로 엘레가 선물이라고 보내준 예술품.
동양의 예술가와 협업해서 만든 예술품들이었기에 엘레오놀은 어렵지 않게 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고, 레이시는 무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움찔 떨다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를 취했다.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는 게 맞고.
그렇게 대화를 피하려고 하자 엘레오놀은 그럼 자기가 오라토리엄에 와서 새로 사귄 친구를 소개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말에 엘레오놀의 수하를 소개하려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네요. 레이시.”
“……에? 루, 루룬 씨?”
“반가워요.”
분명 연맹국의 사람이 올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상인일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엘레오놀이 부른 사람이 누구일까 고민하던 레이시였지만, 엘레오놀이 소개한 사람은 레이시의 예상 밖에 있던 사람이었다.
엘라의 전 여친이자 마케르크 가문의 영애인 루룬.
레이시는 그녀가 자기 눈앞에 나타나서 자리에 앉자 당황하는 얼굴로 루룬과 엘레오놀을 번갈아봤고, 루룬은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쓰게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주의를 줬다.
“레이시 씨, 그런 식으로 제가 올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면 거래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해요.”
“에……? 아, 아니. 그, 그것보다 왜 루룬 씨가……? 루룬 씨는 배그를 다스리지 않나요……?”
“다스리는 건 마케르크 가문. 저는 마케르크 가문의 영애로서 조언을 해주는 역할. 하지만 이번에 엘레오놀 공주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해주셔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수도로 올라왔답니다.”
“제, 제안이요?”
“네, 엘레오놀 공주님 설명을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알겠어요. 아, 이번에는 수첩을 봐도 괜찮죠?”
“아, 아으으으……. 부탁드려요.”
혼란스러운 레이시와 다르게 이 상황이 마냥 즐거운지 이번에는 수첩을 써도 되냐고 물어보는 엘레오놀.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반응에 자기만 혼란스러운 거냐며 머리를 부여잡다가 어찌됐건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싱긋 웃으면서 수첩을 펼치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이번에는 반드시 제대로 된 삿된 말을 하겠다면서 헛기침을 여러 번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레이시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네……? 아, 으응……. 본인이 희망한다면 엘레오놀 공주님의 이야기에 동의해요.”
“그렇죠? 저는 항구의 이용 권한을 거래하기 위해서 3년 전부터 조사를 이어왔답니다. 여러 사람이 있었고 여러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죠. 하지만 반년 즈음 전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이성적으로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사람이 등장했답니다.”
“그게 저……로군요?”
“네. 엘라 공주님께서 사랑을 오롯이 바치는 존재. 그 존재는 제 거래를 확 진행할 수 있는 존재였답니다. 왜냐면 엘라 공주님께서는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과 비교했을 때 거의 무급 봉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적은 보상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엘레오놀이 말하는 내용은 레이시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엘라가 그동안 왕가에게 받아왔던 것은 왕족으로서 간신히 체면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은 돈과 여자의 뒷수습뿐이었고, 그 때문에 왕가는 언제나 엘라가 지금처럼 왕가를 돕게 하기 위해서 엘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고…….
그리고 자기와 만나기 전에는 언제든지 왕가를 위한 일을 때려치우기 위해서 그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자기와 결혼하기 위해서 왕가와의 거래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그렇기에 레이시는 엘레오놀을 바라보면서 여기까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엘레오놀은 레이시가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이자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것들도 원하겠지만, 엘라 공주님이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건 레이시 씨와의 결혼이겠죠. 왕가에서도 딱히 그걸 막을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레이시 씨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깨끗한 사람이니까요.”
“제가 야차이기 때문이죠?”
“정확하게는 태어난 시간과 엘라 공주님과 함께한 시간이 거의 동일한 야차이기 때문이죠. 하여튼 다른 귀족 영애를 안겨줘서 그 가문이 정치에 개입할 여지를 주는 거나, 타국의 여자를 들여서 스파이가 아닌지 조사하는 것보다는 몇백 배 편한 일이 될 테니 왕가에서는 엘라 공주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고 그를 위한 밑준비를 했겠죠.”
“셰런 미인 대회…….”
“네, 왕가 주최의 대회죠?”
레이시가 홀린 듯이 말한 말에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레이시가 거기까지 이해했다면 그 이후로는 이해하기 쉬울 거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오라토리엄의 국왕님께서는 고민하셨을 거예요. 기껏 셰련 미인 대회를 열어서 레이시 씨를 우승시킨다고 해도, 지지기반이 없는 상태니까요. 그런 상태라면 다른 귀족들이 레이시 씨를 우습게 보고 엘라에게 접근해 불륜을 유도한다거나 아니면 레이시 씨를 이용하려 들 테니까요. 저번 환영회 때 한 영애의 태도를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
엘레오놀의 말에 심각한 표정을 하는 레이시.
안 그래도 자기 때문에 엘라와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기에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말에 진지한 얼굴로 엘레오놀을 쳐다보고 있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가 자기를 쳐다보자 싱긋 웃으면서 자기가 그 부분을 거래에 이용하려고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최대한 적게 받고 온전한 항구를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수가 무엇일까?”
“엘라 공주님을 도와주는 거죠……? 공주님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국왕님께서 다른 귀족들을 막아줄 테니까요.”
“네, 정확하게는 엘라 공주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레이시 씨에게 지지자를 만들어주는 거죠. 마침 제가 점찍어뒀었던 재능 있는 사람들 중 레이시 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루룬 씨고요?”
“변경백 가문의 영애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보여줬던 분이니까요.”
고리타분한 변경백 가문의 사람들을 실력으로 휘어잡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배그를 운영한 그 실력.
항해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게 유일한 흠이지만, 그 정도 흠이라면 자기가 항구에 투자하는 것으로 항해에 대해 많은 지식을 지닌 사람을 보내면 된다.
거기에다가 루룬의 배경도 완벽하다.
엘라의 전 여자친구이자 헤어진 이후로도 엘라와 그럭저럭 괜찮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레이시에 대해 호감을 품고 움직이고 있다.
다른 왕자나 공주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오라토리엄 왕가 그 자체를 지지하고 있어 파벌 싸움에서는 한 발자국 물러나 있지만, 그렇다고 권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며 자기 보호 목적 이상으로는 그 권력을 이용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하늘이 자기를 도와주는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완벽한 사람.
루룬은 엘레오놀에게 그런 사람이었고, 루룬 또한 자기 재능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 거리낌 없이 엘레오놀의 손을 잡았었다.
자기 재능을 꽃 피우면 그대로 레이시와 엘라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루룬의 망설임을 없애는데 한 몫 했었다.
“3년의 준비. 그 동안에 저는 이 정도의 재료를 준비했고, 레이시 씨만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연맹국은 부동항을 얻게 되겠죠.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저의 적대세력……, 그러니까 오라토리엄 왕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의 힘은 줄어들 거고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싱긋 웃으면서 설명이 끝났다고 말하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이제 거래의 성취는 자기 손을 떠났다면서 레이시를 빤히 쳐다봤고, 레이시는 그런 엘레오놀의 시선에 움찔움찔 떨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거 제가 선택할 수 있을만한 일이 아니잖아요…….”
“후후, 그래서 싫으신가요?”
“……아뇨, 일 자체는 좋아요. 저도 엘라에게 받기만 하는 건 이제 싫고, ……마냥 아무것도 모르는 메이드로 있을 수는 없는 거겠죠?”
“엘라 공주님과 결혼할 거면요. 하지만 갑자기 정치에 대해서 배우겠다거나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레이시 씨는 딱 봐도 어……, 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될 정도로 바가지 맞을 상이니까요! ……뭐, 애초에 이런 복마전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요.”
“아, 아하하하…….”
엘레오놀의 삿된 말 수첩에서 나온 말에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그 정도는 레이시도 인식하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루룬을 쳐다봤고, 루룬은 레이시의 시선이 자기에게 닿자 자기를 믿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저는 엘라의 전 여자친구예요. 그리고 지금은 다른 사람과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부고요. 여러모로 불장난을 치기 쉬운 상황이죠. 그래도 저를 믿어주신다면 저는 레이시 씨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루룬 씨는 믿고 있어요. 루룬 씨에게서는 엘라에 대한 경애심만이 느껴지니까……. ……저를 지지한다고 하면 조금 많이 힘들지도 몰라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 루룬 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배려해서 움직여야 할 거예요.”
“자유롭게만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쉬운 일이죠. 그럼 거래는 성사된 거죠?”
“네, 저를 도와주세요.”
애초에 결과는 정해져 있는 거래였다.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거래가 끝났다는 생각에 축 늘어지기 시작했고, 루룬은 그런 레이시를 보면서 수고했다면서 싱긋 웃으며 잡담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잡담의 주제는 어느 간식이 맛있으니 다음에 같이 한 번 먹어보자는 것과 엘레오놀의 삿된 말 노트.
딱 눈앞에 있는 것들을 보며 잡담을 하고 있었고, 레이시는 엘레오놀과 함께 삿된 말 노트를 바라보면서 대체 이런 말을 왜 쓰고 싶은 건지 물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루룬은 그런 레이시를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이내 뭔가 레이시가 달라보인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레이시.”
“네?”
“저번보다 좀 찌지 않았나요? 미인 대회 때보다 배 쪽이 약간…….”
“에? 으응? 먹는 건 그렇게 안 변했는데…….”
“그런가요?”
“네, 먹는 건 미스트가 짠 식단대로 먹으니까요.”
“미스트 씨가 식단을 준비하셨다면 살이 찔 리가 없는데.”
“흐으응, 레이시 씨, 잠시 손을 내밀어 주실 수 있나요?”
“네? 네.”
루룬의 말에 배가 신경 쓰이는지 배를 바라보면서 엘레오놀에게 손을 건네는 레이시.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손을 잡고 스킬을 사용했고, 이내 놀란 얼굴을 하다가 싱긋 웃으면서 삿된 말 노트를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레이시의 손을 잡고 레이시에게 충격받지 말라고 말하는 엘레오놀.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말에 자기가 뭔가 큰 병에 걸렸나 싶어서 긴장한 얼굴로 엘레오놀을 바라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가 자기를 쳐다보자 입을 열었다.
“축하해요, 회임하셨어요.”
“……하?”
“역시 아기는 계획대로 생기기보다는 화끈한 불놀이를 하다가 사고로 생기는 법이네요! 역시 속도는 위반해야 제 맛이죠!”
이번에는 삿된 말을 막지 못한 레이시.
하지만 레이시의 머리에는 그런 사실은 전혀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제, 가……? 임신했다고요?”
“네, 방금 회복 마법으로 레이시 씨의 몸을 진단해보니까 레이시 씨의 몸에서 2개의 생명이 느껴졌어요.”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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