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화 〉 공주들의 농간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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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샤가 옆에 앉자 자연스럽게 차를 따라 건네주는 레이시.
아샤는 또 레이시가 건넨 차를 자연스럽게 받아 마시면서 엘라와 레이시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엘라는 레이시의 이야기를 듣고 엘레오놀이 무슨 생각인지 파악했는지 한숨을 내쉬면서 엘레오놀의 요구에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음…….”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다.
생리적으로 혐오감이 드는 건 그녀와 자기가 정반대의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고 그 혐오감이라는 것도 블루드를 상대하는 것처럼 크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순순히 엘레오놀의 거래를 받아들이는 건 마음에 걸렸다.
이유는 그녀가 자기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뭘 원하는지 추측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자기가 닮은 건 자기 사람은 끔찍이도 아낀다는 것과 웬만해서는 갈등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 그리고 갈등을 겪게 된다면 가차없이 상대방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어버리는 것말고는 없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멀리서 지켜보고 남이 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이야기라 확신은 할 수 없지만.
하여튼 그런 공통점을 제외하면 아예 근본적으로 다르니까 엘레오놀이 무슨 짓을 할지 전혀 예상이 안 간다.
그리고 그런 거래를 레이시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맡길 정도로, 레이시에게 부담을 줄 생각도 없다.
자기가 주는 부담은 엘레오놀의 다과회를 준비하는 것까지.
그렇게 정해뒀기에 엘라는 한참이나 고민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샤는 눈을 깜빡이다가 우선 일의 진행 상황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며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건 전부 알고 있어. 그래서 레베카 새언니에게 줄 선물도 생각해뒀고. 준비해야 할 건 레이시가 나설 거래에 대한 거야.”
“너는 다과회에 안 나갈 셈?”
“아니, 나가겠지. 나가는데……, 아마 거래 자체를 레이시를 중점으로 할 걸?”
“그건 어떻게 아는데?”
“만약 나와 거래를 직접 하고 싶었다면 레이시를 부르지 않았겠지. 나와 거래를 하고 싶었으면 국왕에게 직접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편하고,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면 저번 환영회 때 나에게 직접 말을 걸었을 거야. 그렇게 하면 우리 둘이 대화를 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라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거든. 그런데 그러지 않고 레이시에게 다과회를 맡긴다는 건 레이시와 무언가 거래를 하고 싶다는 거겠지.”
“그냥 친구를 사귈 때 쓰는 방식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런 거라면 이런 귀찮은 방법을 쓸까?”
레이시에게 뭔가 선물해주고 싶다.
단순히 그런 거라면 훨씬 간단한 방법이 길가의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니 이런 귀찮은 짓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레이시를 불러들여서 거래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건데…….
엘라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면서 한숨을 깊게 내쉬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한숨에 다 괜찮을 거라면서 엘라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뭔가 그 사람을 보면서 위험하다는 느낌은 안 들었거든요.”
“그래?”
“네. 제 스킬에 걸리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위험 감지 능력이 있는 스킬, 연정의 야차.
레이시는 그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었다고 말하며 악의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정치적인 위험까지 감지할 수 있었던 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레이시가자기를 걱정된다는 듯 쳐다보자 레이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엘레오놀에게 적의가 없다는 건 알아. 다만 적의가 없고 호의만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걸 돌려줘야 하는 입장이라 분석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런 거예요……?”
“그런 거야. 왕족과 왕족 간의 이야기니까.”
“으으으응…….”
엘라의 말에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사과에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냐며 레이시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자 레이시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엘라는 레이시가 걱정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밝게 바꾸어서 다시 엘레오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여튼 거래는 딱 정확하게 해야 나중에 귀찮은 일이 안 생기니까 엘레오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는데……, 우리가 알 수는 없겠지? 미스트.”
“네, 그러네요. 지금부터 정보를 모아볼까요?”
“……아니, 지금 상세한 걸 찾으려고 한다면 늦을 거 같네. 그러니까 추측만 들려줘.”
“흐음, 레이시. 엘레오놀 공주님께서 레이시에게 권력을 주겠다고 말했죠?”
“네.”
“그렇다면 레이시에게 권력을 주기 위한 거래가 나올 건데……, 항구에 대한 권리라고 한다면 레이시에게 신 항구 도시 건설의 권리를 주려는 거 아닐까요? 거래 대상을 레이시로 콕 집어서 거래를 제안한다면 이야기가 들어맞잖아요.”
싱긋 웃으면서 자기 추측을 말하는 미스트.
“다른 귀족들이라면 귀찮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요. 여기가 연맹국이었다면 엘레오놀 공주님께서 지니신 인맥과 재력으로 완벽하게 통제하겠지만 여기는 오라토리엄 왕국이니까 그게 불가능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엘레오놀 공주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변수가 발생하지 않을 인물과 부동항에 대한 거래를 진행한다.”
“……그게 저에요?”
“레이시는 저희만 있다면 돈도 뭐도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큰 돈이 오고 가는 거래는 못 한다고요?”
“권력을 주기 위해서 권한을 줄 뿐이지 레이시가 직접 처리할 필요는 없어요.”
“네?”
“레이시가 그 거래를 맡게 된다면 귀족들은 레이시에게 자기에게 그 권한을 주지 않겠냐면서 레이시에게 접근할 거예요. 거기에서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저와 엘라 공주님, 아샤가 막아낼 거고요. 그렇다면 레이시의 눈치를 보고 레이시의 지시를 따르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만 취하는 현명한 사람만이 남겠죠. 항구 도시를 짓고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고 레이시에게……, 정확하게는 공주님이겠지만요. 하여튼 공주님에게 대들지 않고 순종적인 사람들이 2~3명 레이시를 따른다면 그건 상당한 권력이 되겠죠.”
“…….”
미스트의 말에 머리가 아프다는 듯 앓는 소리를 내는 레이시.
레이시는 전생의 감각으로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한 다음 엘라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미스트의 추측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미스트의 추측이 맞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다른 이유보다는 미스트가 말한 이유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게 훨씬 말이 되니까.”
“그래요?”
“응.”
“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거래……, 받아들이긴 할 건데, 이대로 엘레오놀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건 짜증나니까 수작질이나 좀 부려둘까?”
“수작질이요?”
“응. 수작질.”
이대로 거래를 받아들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엘레오놀의 수작질에 놀려지는 것이니 자기도 뭔가를 하겠다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로 무슨 짓을 할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를 바라보더니 히죽 웃었다.
“레이시.”
“네?”
“흥정 해볼래?”
“흥정이요……?”
“그래, 엘레오놀이 뭘 네게 주겠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첫 제안부터 곧바로 자기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제안을 저울에 올리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레이시가 흥정해서 최대한 엘레오놀에게서 뜯어내봐.”
“그, 그럴 수 있을까요?”
“응? 실패해도 상관 없어. 할 수 있으면 해봐라는 거지.”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에게 자기들이 레이시를 나름 도와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엘레오놀에 대한 건 전혀 모르겠지만, 엘라나 미스트 같은 다른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하면 불안해할 건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다과회의 준비를 이어나갔고, 이후 다과희의 날이 되어 벽천화 기사단에 방문하게 되었다.
뭔가 크게 흥분한 얼굴로 숨을 고르고 있는 마리아와 다른 기사들.
그렇게 남자가 좋은 걸까…….
여자가 되긴 했지만, 전생의 영향 때문인지 여자를 좋아했던 레이시는 그들의 모습에 한참을 어색하게 웃다가 자리에 앉아 엘레오놀을 기다렸고, 엘레오놀은 벽천화 기사단에서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말한 사람들을 데리고 벽천화 기사단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티세트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후후, 그렇게 딱딱하게 있지 않아도 좋아요. 오늘 저희는 알몸의 친분을…….”
“와아아아아앗! 그러니까 그 수첩은 보지 말아주세요…….”
“……에에, 애인들이 만들어준 단어집이라 써보고 싶은데요?”
“그, 삿된 말이 아니라면 괜찮아요. 그, 여기는 다과회잖아요……? 저희 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
레이시의 말에 불만 섞인 얼굴을 하는 엘레오놀.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반응에 그 수첩에 적힌 말들이 전부 삿된 말이라는 걸 깨닫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조금이라면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고 말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말에 이번에는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동안은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수첩에 있는 말들을 하고 싶었던 건지 자연스럽게 수첩에 있는 상황을 연출해가면서 수첩에 있는 삿된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샤처럼 공격적이라거나 그러지는 않고 그냥 어린애가 뭣 모르고 쓰는 것 같은 삿된 말들.
하지만 말의 수위는 꽤 높았기에 레이시는 얼굴을 붉히면서 엘레오놀을 쳐다보고 있었고, 엘레오놀은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싱긋 웃으면서 너무 천박했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어디에 계시나요?”
“네?”
“레이시 씨의 뒤에 있는 하피……, 미네르바 씨라고 하던가요? 미네르바 씨 외에도 아샤 씨나 미스트 씨, 그리고 엘라 공주님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게, 다른 분들은 공주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러 가셨다고 했어요. 죄송합니다.”
“흐으응~.”
레이시의 말에 비음을 흘리면서 레이시를 쳐다보는 엘레오놀.
자기가 이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확실히 레이시.
누군가와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도 않고 레이시에게 다과회를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으니 레이시 이외의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보통이라면 신분이 대등한 사람을 한 명 쯤은 데리고 올 건데…….
이건 엘라의 짓일까?
엘라가 자기에게 곧바로 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다.
아마 그 이유를 물어본다면 내게 줄 선물을 구하러 갔다거나 급하게 선물을 구하느라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하겠지.
국정이나 다른 일이라면 일의 경중을 들먹이면서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지만, 상대방을 위해 일했다고 말한다면 자기가 뭐라고 할 수 없게 되니까.
그리고 이렇게 거래를 늦춘다는 건…….
자기가 엘라가 아니라 레이시와 거래를 하게 만들어서 레이시의 이름을 드높이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엘레오놀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피식 웃으면서 엘라에게 어울려주기로 했다.
자기가 레이시와 직접 거래를 하게 된다면 조급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정도 인상은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엘레오놀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항구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참, 레이시 씨.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정말 죄송한데 부탁 하나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부탁이요?”
“네. 저는 호수에서 요트를 모는 것이 취미인데, 이번에 범선을 구하게 되어서요. 바다에서 한 번은 타보고 싶은데 연맹국의 바다는 매우 거칠어서 초심자가 갈 곳이 못 된답니다. 레이시 씨. 그래서 드리는 부탁인데 어딘가 초보자도 즐길 수 있는 좋은 바다를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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