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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75화 (275/542)

〈 275화 〉 공주들의 농간질­1

* * *

나름 성공적으로 끝난 엘레오놀 환영회.

레이시는 이 정도면 자기가 앞으로 나올 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는 말에 헤실헤실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엘라 공주님. 국왕님의 전언입니다.”

“응?”

바로 방금 전까지.

엘라는 레이시와 손장난을 치다가 국왕의 전언이라는 말에 인상을 와락 찌푸리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전령은 엘라의 표정에 움찔 떨더니 조심스럽게 국왕이 엘라에게 내린 명령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에, 엘레오놀 공주님이 다과회를 열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엘레오놀 공주님의 메이드들에게 다과회의 준비를 맡기면 타국의 사람이 왕궁의 시설을 이용하는 일이 되어 송구스럽다면서 여기에서는 오라토리엄 왕국의 사람에게 맡기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그런 거면 레베카 새언니나 슈레이 언니에게 맡기면 되지 않아? 왜 내게 오는 거지? 그 두 사람이 바쁘다면 사리아 새언니도 있지 않나?”

“그게……, 엘레오놀 공주님이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님을 콕 찝어서 지명하셨습니다.”

“……하?”

“국왕님께서는 나쁜 제안이 아니니 엘라 공주님께 전언을 전해두라 하셨고, 엘레오놀 공주님께서도 이번 제안을 받아주신다면 교역 확대에 좀 더 긍정적인 검토를 하시겠다고 하셔서…….”

“그래서, 꼭 해야 한다는 거지?”

“그, 네. 그렇습니다.”

오라토리엄 왕국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손해도 없는 일.

감수할 손해라고 한다면 제대로 된 다과회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 받을 비판뿐이고 얻는 건 꽤 많은 일.

이렇게 엘레오놀이 오라토리엄 왕국에 이득을 주는 건 엘레오놀의 투자.

엘레오놀은 블루드의 제안에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 아마 이것은 항구에 대한 투자이겠지.

자기를 믿고 따라준다면 이 정도의 이익을 줄 수 있으니 얌전히 자기와의 거래에 나서라는 투자.

그렇게 된 이상 오라토리엄 왕국으로서는 엘레오놀의 거래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거래에 나서지 않으면 연맹국의 공주를……, 더 나아가면 연맹국을 무시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거고 안 그래도 오라토리엄 왕국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미련 곰탱이나 눈만 좋은 활잽이가 그것을 핑계로 군사적인 도발을 할 테니까.

중립국이니 그냥 무시하고 반격해도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 근방의 나라 모두가 전쟁에 휘말리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상한 논리로 우리 왕국을 공격하겠지.

딱히 걱정은 안 되지만……, 피할 수 있는 마찰을 굳이 만들어서 귀찮은 짓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니 여기에서는 레이시가 엘레오놀의 제안을 듣는 게 맞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머리를 긁다가 한숨을 푹 내쉬다가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엘라가 자기를 쳐다보자 엘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고는 우물쭈물거리기 시작했다.

“꼭 해야 하는 일이죠?”

“응.”

“그럼 할게요.”

“미안해. 언제나 신세지네.”

“그런 말은 제가 해야죠.”

엘라의 사과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어떻게 준비하면 되냐고 물어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엘레오놀이 원하는 다과회의 종류에 따라 다를 거라면서 미스트를 불렀다.

그러자 막 구워진 쿠키를 들고 나타나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입에 쿠키를 넣어주면서 이야기는 들었다고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가볍게 투정을 부려봤다.

“다른 메이드들도 많을 텐데 왜 굳이 저일까요?”

“글쎄요? 어제 환영회에 가셔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그게……, 엘라 공주님에게 관심이 있고 저에게는 성적인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시긴 했는데 그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시진 않을 거 아니에요?”

“아, 그거 때문일 거 같은데요?”

“네?”

“엘레오놀 공주님이 오라토리엄 왕국에 방문한 건 부동항이 필요해서잖아요? 다른 3면에는 내륙과 연결되어 있고 엘레오놀 공주님이 다스리는 영지는 겨울에는 바다가 얼어버리니까.”

“그, 그렇죠……?”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

그렇기에 레이시는 거기까지는 이해했다면서 미스트에게 다음 설명을 요구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구의 이용권 같은 건 그렇게 쉽게 저울 위에 올려둘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거래가 아니에요. 오고 가는 돈의 규모도 몇백억은 될 거예요. 신 항구 도시를 만든다고 해도 초기 10년은 세금 차감 및 투자 유치로 몇억은 들어가겠죠.”

“에, 에에…….”

“지금 엘레오놀 공주님이 이렇게 레이시를 부르는 건 그 거래를 위해서 오라토리엄 왕가에 자기가 항구를 위해서 뭘 어디까지 제공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과정이에요. 보통은 여기에서 접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이 자기 패를 더 드러낼지 말지 정하겠죠.”

“그럼 무척이나 중요한 일인 거 아니에요?”

“네, 그렇죠. 국가의 거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니 무척 중요하죠.”

“…….”

“아, 그래도 이번 일은 평범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요?”

“네. 엘레오놀 공주님은 지금 개인적인 호의로 움직이고 계시니까요.”

“구, 국가적인 일이라면서요. 그래도 괜찮아요?”

“엘레오놀 공주님과 엘라 공주님은 그래도 괜찮아요. 그래도 되는 능력을 지녔으니까요.”

“엘레오놀 공주님이 그렇게 강하세요? 그런 느낌은 안 들었는데……?”

“강하다는 게 아니에요. 엘레오놀 공주님은 경제적인 지배능력이 뛰어나세요. 연맹국 북부는 전부 엘레오놀 공주님의 손에 있는 상태고 중앙에도 꽤 큰 영향력을 보일 수 있겠죠.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연맹국의 맹주보다 커요. 이번에 엘레오놀 공주님이 반 억지로 이번 거래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것이 근거가 되었겠죠.”

“블루드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요……?”

“그건 핑계에요. 엘레오놀 공주님이 원하셨다면, 없던 이유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 그저 공작을 덜해도 되니 그냥 어울려주시는 거겠죠.”

미스트의 말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떨떠름한 얼굴로 미스트를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기에게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느끼다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래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뭐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꽤 빠르게 기분을 갈무리하는 레이시의 모습에 싱긋 웃으면서 자기가 도와줄테니 다과회의 준비를 하자고 말했다.

“레이시.”

“네?”

“레이시가 생각할 때 엘레오놀 공주님께 필요한 공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으으음.”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엘레오놀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보기 시작했고, 이내 적당히 엘레오놀에게 필요한 것을 떠올렸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요.”

“네?”

“다른 것보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환영회 때 제가 앉아있던 소파에 오셨는데 그것과 동시에 엘레오놀 공주님의 남자들이 일종의 벽을 만들어서 저랑 공주님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었어요. 그리고 엘레오놀 공주님은 이상한 수첩을 보시면서 웃으셨고요.”

“무슨 수첩이었나요?”

“……그, 좀 삿된 말로 가득한……, 그런 대화집이요. 그걸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재미있어 하셨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말하지 못할 거라……, 그 수첩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최선일 거라 생각해요.”

“그렇군요. 그런데 레이시.”

“네?”

“그런 거라면 왜 레이시에게는 처음부터 쓰셨을까요? 삿된 말이라면서요?”

“으으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던 거 아닐까요? 엘라도 가끔 그렇게 말하잖아요? 미스트도 그렇고.”

“하긴 한 나라의 경제를 혼자서 몇십 퍼센트 단위로 움직이는 분이라면 사람 보는 눈은 충분할 거 같네요.”

“그렇죠?”

“그럼 다과회 장소를 정해야 하는데……, 우선 저희 저택은 안 되요. 너무 개인적인 공간이라 엘레오놀 공주님을 따라온 사람들이 반대하겠죠. 그렇다고 왕궁의 장소나 제 2내벽에 있는 파티회장을 쓰기도 그러네요. 상대방이 적어도 후작 정도였으면 바깥의 파티회장을 사용하겠지만, 엘레오놀 공주님은 왕족이니까요.”

“으으응, 아, 조금 괜찮은 곳이 있어요. 에헤헤…….”

“네? 지금 섭외할 수 있나요?”

“아샤랑 다녀올게요.”

“아하.”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가 어디로 갈 생각인지 깨닫는 미스트.

미스트는 수고하라면서 손을 흔들었고, 자기 이름이 나오자 속옷 차림으로 물을 마시던 아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부탁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기가 도와줄 일이 있다면 도와주겠다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옷을 차려입고 레이시가 가자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그러니까 여기에서 엘레오놀 공주님과의 다과회를 열고 싶다고…….”

“네! 안 될까요?”

“아니……. 저희 기사단인데…….”

레이시의 말에 난처하다는 듯 아샤를 바라보는 마리아.

마리아는 아샤에게 도와달라는 듯 시선을 보냈지만, 아샤는 마리아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벽천화 기사단의 일 중에 접대도 있지 않냐면서 어깨를 으쓱이며 레이시를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 그거는 그렇긴 한데…….”

“왜? 무슨 문제 있어?”

“그러니까……, 문제는 없어요. 없는데 타국의 공주니까지 저희가 호위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일하기 싫다고?”

“얼마 전에 왕비님의 호위라는 초대형 임무를 끝냈다고요. 거의 한 달 동안 제모도 못 하고 있다가 어제 제모하고 오늘은 호스트바에 갈 생각이었다고요.”

“좋네. 제모도 끝냈으면 추가적으로 외모를 가꿀 필요는 없다는 거네?”

“…….”

“해.”

“아흑…….”

“대신에 이번 일이 끝나면 엘라의 이름으로 휴가를 주도록 해볼게.”

“휴가라고 해도 하루잖아요……. 내일이면 호스트가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말해도 어차피 할 거잖아. 그냥 잔말말고 해. 나중에 사비 털어서 호스트 바 빌려줄게.”

“히이이잉…….”

아샤의 말에 울상을 짓고 훌쩍거리는 마리아.

마리아는 본방까지는 못 가더라도 미남들의 스트립쇼는 보고 싶었다면서 쿨쩍거렸고, 아샤는 마리아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마리아를 바라봤다.

그러자 마리아는 아샤는 여자를 좋아하니 상관 없겠지만 자기는 남자를 좋아한다면서 남자를 보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마리아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남자라면 어떻게든 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에? 정말요? 레이시가 아는 남자가 있어요?”

“제가 아는 남자는 아니고 엘레오놀 공주님의 남자들을 빌릴 수 있어요. 저번에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빌려주신다고 하셨어요.”

“그거 잘못하면 불경죄로 제 모가지가 날라갈 거 같은데요? 타국이라고는 하지만 공주님의 애인을 빼돌리는 거잖아요.”

“엘레오놀 공주님이 허락하셨는데……, 그럼 사진 보고 정하실래요?”

“끄으응…….”

레이시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는 마리아.

마리아는 일단 일은 일이니 서류 준비는 혼자서라도 끝내놓고 있을 테니 사진을 들고 와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는 마리아의 말에 배시시 웃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아샤의 손을 잡고 엘레오놀에게 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레이시가 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가 따라오자 아까 사비 털어서 그런가는 건 괜찮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피식 웃더니 레이시의 머리를 꾹 눌러주었다.

“네가 걱정할 정도로 재들이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아. 그리고 네가 걱정할 정도로 돈을 적게 벌지도 않고.”

“그래도요.”

“그것보다 엘레오놀 공주에게서 남자를 빌린다니, 할 수 있겠어? 그 여자 꽤 집착이 심하다는 것 같던데.”

“으응~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흐응~ 그래?”

“네. 남자 빌린다고 해서 질투해요?”

“설마.”

“에이~ 설마가 아닌데.”

아샤의 반응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아샤의 볼을 콕콕 찌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다가 머리를 꾹 눌러주면서 앞을 보라고 투덜거렸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이내 엘레오놀이 머무는 곳으로 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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