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화 〉 엘레오놀 환영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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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오놀의 말에 벙쪄서 엘레오놀을 바라보는 레이시.
엘레오놀은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수첩을 펼쳐 읽어보기 시작했고, 이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나?’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다른 말로 블루드에 대한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내 남친의 자…….”
“아아아! 아, 알겠으니까요!? 블루드 왕자님에 대해 타국의 왕자를 보는 것 이상의 생각은 품고 있지 않다는 거 잘 알겠으니까요!?”
그러자 다급하게 엘레오놀을 막는 레이시.
자칫 잘못했으면 공주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꺼낼 뻔했다며 레이시는 숨을 거칠게 내쉬다가 엘레오놀을 바라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가 알겠다고 말한 게 만족스러운지 싱긋 웃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제가 블루드의 아군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알, 알겠어요……. 그런데 그러면 왜 엘라 공주님께 오셨어요……? 엘레오놀 공주님은 남자를 사랑하시는 거 아니셨나요……?”
엘라가 말한 걸 생각해본다면 엘레오놀은 전형적인 이성애자.
동성애자인 엘라와의 결혼 같은 건 싫어할 거고, 어쩌면 동성애 혐오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엘레오놀을 바라보자 엘레오놀은 눈을 깜빡이다가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한 가지 심리학적 지식을 뽐내기 시작했다.
“레이시 씨. 그거 아시나요?”
“네?”
“사람의 정신 상태는 딱딱 나누어지지 않는답니다. 저희의 언어체계는 상당히 제한적이라 애정과 우정 사이의 감정을 표현할 때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사이에서 한참을 헤매고 증오와 꺼려진다는 감정 사이에서는 ‘싫다’와 ‘미워한다’ 사이에서 한참을 헤매죠.”
“그, 그런가요?”
“네, 단맛을 좋아……, 아. 으음, 이쪽 예시가 더 좋으려나요?”
“아뇨!? 수첩은 보지 마시고 이야기해주세요.”
무슨 수첩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충고가 들어있는 수첩은 아니다.
그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레이시는 엘레오놀을 말리면서 평범하게 예시를 들어달라고 말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말에 싱긋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단맛을 좋아한다고 해도 단맛이라는 건 포괄적인 이야기잖아요? 저는 사과의 단맛을 좋아해요. 하지만 설탕에서 느껴지는 단맛은 좋아하지 않죠. 하지만 또 꿀의 단맛은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그렇다면 저는 단맛을 좋아하는 걸까요? 싫어하는 걸까요?”
“그, 그건……. 좋아……하는 거겠죠?”
그 정도면 그냥 단맛이 싫다기보다는 설탕이 싫은 수준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엘레오놀을 바라보자 엘레오놀은 피식 웃으면서 자기가 여자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딱 그런거라면서 레이시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갰다.
“여자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관심가는 여자라면 꽤 있답니다? 지금 당신도 제 흥미를 꽤 끌어당기고 있고요.”
그리고 레이시는 그런 엘레오놀의 행동에 엘레오놀에 대해서 깨닫고 말았다.
이 사람은 이성애자니 동성애자니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은…… 잡식성이다……!
그걸 깨닫자 레이시는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아 오르면서 손끝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다가 레이시에게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 오라토리엄 왕궁을 방문한 건 엘라 공주님때문이에요.”
“……에?”
“레이시 씨에게도 관심이 있긴 하지만, 관심이 있는 건 엘라 공주님이거든요.”
“에……?”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노리는 것 같더니 갑자기 엘라를……?
레이시는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엘레오놀의 말에 움찔움찔 떨면서 엘레오놀을 바라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표정에서 레이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었는지 자기가 설명이 부족했다며 사과하고는 그대로 추가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아, 관심이 있다고 해도 엘라 공주님께 느끼는 관심은 레이시 씨에게 느끼는 관심과는 또 달라요? 엘라 공주님은 침대 위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거든요. 다만, 엘라 공주님과 제 상황이 얼추 비슷해서 관심이 있다는 거지.”
“그게 무슨 의미이신가요?”
“엘라 공주님은 살아남기 위해서 왕가에 충성을 바치신 거죠? 저도 살아남기 위해 연맹국의 부품이 되기로 선언했거든요. 오늘 온 것도 그 일의 일환이에요. 불굴의 대장군이나 숲속의 매께서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하실 거고 다른 분들은 세력 다툼이 있으니까요.”
“으, 으응……. 그, 그렇군요.”
“하여튼 살아남기 위해서 국가에 충성을 바치고 은퇴 이후의 생활을 위해서 준비한다. 그 부분에서 저는 엘라 공주님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수십 명의 애인을 구하는 것도 저랑 비슷했고 말이죠.”
“아…….”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엘라 공주님께서 한 명의 사람에게 모든 걸 바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흥미가 돌더라고요. 그 사람이 누구길래 그 엘라 공주님이 한 명에게 사랑을 바치고 심지어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있는데도 자기는 그 사람 한 명만 바라보는 걸까……, 하고. 그런데 실물을 바라보니 뭔가 이해가 될 거 같네요. 후후…….”
“에? 에에……?”
“어떠신가요? 하룻밤의 불장난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저라도? 레이시 씨가 괜찮다면 저기에 있는 남자 중 몇 명 정도는 빌려드릴게요.”
“아, 아니요. 저는 남자는 조금……. 그리고 엘라 공주님에게 더 이상의 애인은 만들지 않기로 약속을 해서 밤놀이도 조금…….”
“아하, 그러신가요? 아쉽네요. 후후. 그럼 엘라 공주님에게 허락을 받으면 해주실 건가요?”
능글 맞게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접근하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마치 뱀처럼 웃으면서 레이시의 손을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행동에 흠칫 떨면서 이 사람이라면 정말로 엘라에게 허락을 받으러 갈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이상한 수첩을 보면서 욕설하는 것만 봐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는데……, 어쩌면 이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엘레오놀을 바라보고 있자 엘레오놀은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면서 싱긋 웃더니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될 건데, 레이시 씨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메이드라서 괜한 권력을 지니면 엘라 공주님에게 민폐가 될 거 같아서 최대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어머? 그러면 나름 귀찮은 일이 생긴답니다. 최소한의 권력은 손에 쥐고 계셔야죠. 안 그러면 아까 그 여자처럼 당신을 귀찮게 하는 일이 생길 거랍니다.”
엘레오놀의 말에 아까 자기에게 말을 걸었던 사라의 얼굴을 떠올리는 레이시.
엘레오놀은 레이시가 무언가 떠올리는 얼굴을 하자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라토리엄 왕국은 중립국이지만, 그렇게 중립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확실한 변수가 될 수 있는 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레이시 씨처럼 아무런 힘도 없는데 중립이라고 선언하면 먼저 공격당할 뿐이랍니다.”
“그, 그런 건가요? 하지만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인데…….”
“도와드릴까요?”
“네……?”
“물론 무료로 해주겠다는 건 아니랍니다. 레이시 씨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손을 잡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쉽게 건들지 못할 정도의 권력을 절 수 있다며 레이시를 바라보았고,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제안에 쭈뼛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사라가 자기에게 다가와서 달갑지 않게 인사했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엘레오놀의 손을 잡는 게 맞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엘레오놀이 너무 꺼림칙하다.
도와주는 이유도, 뭐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꺼림칙하다.
적어도 엘레오놀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는 무리.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라가 걱정되니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대답에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직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러자 그런 엘레오놀을 막듯 귀족들 사이를 빠져나와 레이시에게 돌아오는 엘라.
엘라는 엘레오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와 즐겁게 이야기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더니 이내 레이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이시, 돌아가자. 파티의 주인공을 혼자서 독차지 하면 다른 귀족들에게 질투를 사게 될 거야.”
“아, 그러네요. 그럼 감사했습니다. 엘레오놀 공주님.”
“아니요, 뭘요. 저야말로 즐거웠습니다,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님.”
레이시의 인사에 싱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추는 시늉을 하면서 자기가 한 제안을 고려해달라고 속삭였고,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말에 움찔 떨다가 엘라의 뒤로 숨듯이 움직이며 엘라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자 레이시의 손을 잡아주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고 물어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쭈뼛거리면서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으로 가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걸음을 옮겨 프라이빗룸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엘레오놀과 했던 이야기를 말해주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말을 듣고는 엘레오놀이 정말로 블루드를 싫어하는 거냐며 레이시에게 되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질문에 자기가 볼 때는 엘레오놀이 블루드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아, 그리고 엘라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
“네, 살기 위해서 계승권을 포기하고 은퇴 후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과 예전에는 그……, 좀, 여러 애인을 뒀다는 거나 그런 부분에서요.”
“그래……. 그렇다면 레이시의 말이 맞겠지.”
“그리고 자기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달라고 했어요.”
“무슨 제안?”
“제게 권력을 주겠다는 이야기요.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으면 다른 귀족 영애들이 저를 계속 엘라의 여자친구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할 거라면서 어느 정도의 권력을 지니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어요.”
“……흠. 영 없는 이야기는 아닌데…….”
레이시의 이야기에 눈을 가늘게 뜨는 엘라.
엘레오놀이 레이시에게 한 이야기는 경우에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이야 자기 눈치를 보느라 레이시에게 접근하지 않고 있다지만, 대대적인 행사를 하면서 자기가 레이시와 떨어지면 레이시에게 접근해서 이런저런 짓을 할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레이시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엘레오놀의 제안을 덥썩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꺼림칙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엘레오놀과 자기는 그다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좋은 제안을 해오는 걸까?
단순한 호의?
단순한 호의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기에는 엘레오놀과의 접점이 없어도 너무 없다.
차라리 여러 번 대화를 나눠봤고 무언가 공통된 주제라도 가지고 있다면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손을 잡든 뿌리치든 할 텐데…….
너무 꺼림칙하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를 바라보더니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의견을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조심스럽게 거절하고 싶다고 말했다.
“뭔가 꺼림칙해요……. 아니, 그것보다는 그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잡아먹힐 거 같아서 무서워요.”
“응? 무슨 소리야?”
“그 사람, 그러니까……. 상대방의 성별은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더라고요…….”
“…….”
레이시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레이시를 꽉 끌어안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질투심에 자기를 끌어안자 얼굴을 붉히다가 이내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배시시 웃으며 같이 엘라를 껴안았다.
“그럼 적당히 거절하는 쪽으로 대답한다?”
“네에~.”
“후우, 애인이 너무 귀여워도 힘드네.”
“아하하하…….”
“그럼 우리, 슬슬 돌아갈까? 이 이후에는 다른 귀족들에게 양보해야 하고.”
“네, 그래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품에 안겨서 뺨을 비비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두 사람은 그렇게 저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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