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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68화 (268/542)

〈 268화 〉 불구대천­3

* * *

“공주님.”

“응.”

레이시가 잠들자 엘라에게 말을 거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마부석과 연결된 창문을 열면서 말해보라고 명령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블루드의 시비를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봤다.

“뭘 어떻게 해?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엘라는 미스트의 질문에 혀를 차면서 가볍게 짜증냈다.

솔직히 말해서 연맹국의 군대는 무섭지 않았다.

일반 병사들은 몇만이 몰려와도 아샤와 벽천화 기사단을 벽으로 내세우고 폭격을 몇 번 날려주면 알아서 도망치거나 항복할 것이다.

암살자들은 미스트 선에서 정리될 것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적들은 미네르바가 정리하든 자기가 정리하든 정리할 수 있다.

연맹국의 곰탱이라거나 눈만 좋은 박쥐 새끼는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어차피 거기는 영웅급이 2명이고 이쪽은 미네르바까지 포함하면 4명이다.

단순 수치로만 봐도 2배니 어떻게든 상처 없이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만약 블루드가 도발해서 결투를 벌이든 그냥 죽여버리든 죽이는 순간 일이 커지게 된다.

“후우우우…….”

엘라의 군사적인 가치는 군단 3개.

사람들마다 다른 평가를 내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군단 3개에서 4개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엘라는 한 명이니까.

만약 엘라가 블루드를 죽인다면 연맹국에서는 블루드의 죽음을 조사하겠다고 나설 것이고, 엘라에게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요구해서 엘라를 도발할 게 뻔하다.

그러면 엘라는 연맹국의 요구를 거절할 것이고, 연맹국은 그런 엘라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엘라를 품고있지 못하게 계속해서 견제할 것이다.

그렇다면 크든 작든 전쟁이 일어나겠지.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엘라는 당연히 전쟁에 참전할 것이고, 그렇게 엘라가 전쟁에서 군인들을 죽이면 주변국들은 엘라를 비난하겠지.

안 그래도 주변 국가에서 비대칭 전력이라고 말하면서 전쟁에 나오지 않도록 협정을 맺으려고 하는 엘라다.

그런데 알라의 잘못으로 일어난 전쟁에서 엘라가 사람들을 죽인다?

그렇다면 주변국들은 자기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서 오라토리엄 왕국으로 쳐들어올 것이고 전선이 늘어나면 어떻게 할 수 없게 되버린다.

어디까지나 엘라는 한 명이니까.

그렇기에 엘라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병에 걸린 척하면서 저택에서 은거할지 물어봤고, 엘라는 그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레이시가 힘들어 하고 있는데 굳이 밖에 나가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자기 허벅지를 베고 누워서 자고 있는 레이시를 바라봤다.

세상 모르게 잠을 자는 레이시.

그동안 강물로 몸을 씻었는지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비누나 이런 게 없어서인지 평소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체취.

달콤하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다는 것만이 확실하고 나머지는 뭐라고 한 마디로 형용하기 어려운 냄새.

엘라는 그 냄새를 맡자 기분이 풀리는 걸 느끼면서 한숨을 깊게 내쉬었고, 미스트는 엘라의 한숨에 슬쩍 앞을 쳐다봤다.

블루드의 마차.

어차피 엘라가 자기를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일부러 더 무방비하게 있는 모습.

블루드니까 어쩌면 자기를 죽이라고 명령한 다음 자기 반응을 살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자기는 엘라와 레이시를 위해서 그 암살자를 죽이겠지.

블루드가 그 모습을 보고 즐길 걸 생각하자 미스트는 속이 뒤틀리는 걸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이성을 되찾고 싱긋 웃었다.

자기는 메이드.

엘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계속해서 마차를 몰았고 아샤는 미스트의 눈을 힐끗 쳐다본 다음 블루드의 기사들을 쳐다봤다.

방금 자기 동료들이 당했는데 기묘할 정도로 침착한 반응.

다들 죽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게 훤히 보이는 눈이라 아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가볍게 찬 다음 미네르바에게 손짓했고, 미네르바는 아샤의 손짓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비의 등에서 내려 아샤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여차하면 레이시 데리고 튀어.”

“……?”

“저 새끼는 자기 목숨도 도구로 쓸 녀석이야. 어쩌면 자기를 습격하게 시킬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레이시 데리고 수도로 튀어. 그게 가장 안전해.”

“알았다.”

아샤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앞에 걸어가는 블루드를 보면서 가볍게 살기를 내뿜으면서 대놓고 블루드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블루드의 기사들은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겁을 먹은 듯 칼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서 미네르바를 경계했다.

조금만 마찰을 일으키면 당장에 피보라가 불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다행이게도 그 뒤로는 블루드도, 엘라도 별 다른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부드럽게 지나갔고, 엘라는 무사히 수도에 도착했고 국왕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흐음, 수고했다. 3일 정도 휴일을 줄 테니 푹 쉬거라.”

“알겠습니다.”

국왕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엘라.

레이시는 저택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엘라가 오자 반갑게 맞이하면서 잘 됐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를 껴안으면서 입을 맞췄다.

“우읍!?”

“흐웁……, 쯉, 쯉…….”

레이시의 혀를 가볍게 깨물고 빨다가 입을 떼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입을 떼자 입을 가리면서 얼굴을 붉혔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짧게 사과한 다음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후우우우…….”

“괜찮아요?”

“응, 괜찮아. 조금 지쳤을 뿐이야.”

“엘라가 지쳐요?”

“왕궁 분위기가 살벌해서. 주변 사람들이 전부 긴장하고 있잖아.”

“아…….”

주변 사람들이 전부 긴장해서 자기도 어쩔 수 없이 긴장하게 된다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왕궁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왕족이 사는 곳인데다가 여러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라 평소에도 되게 긴장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뭔가 그런 것과는 다른 긴장감이 가득하던 왕궁.

자칫 잘못하면 죽는다는 느낌이 강했었던 왕궁의 분위기에 레이시는 침을 삼키면서 엘라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며 엘라의 손을 잡았고, 엘라는 레이시가 긴장하자 괜찮을 거라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췄다.

“어차피 블루드도 이 저택에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없으니까.”

“그런 건가요?”

“응. 여기는 국왕이 인정하는 나의 저택이니까. 블루드가 내게 싸움을 걸고 싶다고 해도 여기에 억지로 들어오려고 하면 국왕의 권력에 도전하는 게 되니까 안 할 거야. 거기에다가 내가 남작이나 자작 같은 게 아니라 공주니까 더더욱.”

블루드가 원하는 건 전쟁.

그런데 블루드가 악인이 되어버린다면 연맹국에서 선뜻 나서기 어려워진다.

아니, 아예 나서지 않겠지.

어디까지나 선인이어야만 주변 국가에 도움을 받고 어떻게든 해볼만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에게 안심하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천천히 엘라에게 몸을 파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소파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애욕을 느끼기 시작했고, 동시에 손가락으로 서로에게 장난치기 시작했다.

가볍게 깍지를 꼈다가 손가락을 간지럽히면서 눈치를 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눈치에 레이시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혀를 가볍게 놀리면서 레이시에게 하자는 신호를 줬고, 레이시는 엘라의 신호에 얼굴을 붉히다가 좋다는 듯이 깍지를 끼지 않은 손을 엘라의 허리에 올렸다.

그러자 무릎을 들어 레이시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는 엘라.

오랜만의 집.

이대로 하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약간의 흥분을 느끼면서 엘라를 올려다봤지만, 그 순간 눈치를 모르는 누군가가 문을 두들기면서 안에 있는지 물어보며 그 흐름을 끊어버렸다.

당연히 입술이 샐쭉하게 튀어나오는 엘라.

엘라는 문을 두드린 게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문을 열었고, 이내 보이는 블루드의 얼굴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블루드를 올려다봤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부드럽게 웃는 블루드.

하지만 여전히 인형이 억지로 인간 흉내를 내는 것 같아 불쾌한 얼굴에 엘라는 눈을 확 찌푸렸다가 블루드에게 돌아가라고 말했다.

“네 결혼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레이시를 건들 작정이라면 각오해.”

하지만 블루드는 엘라를 가볍게 도발했고, 엘라는 블루드의 도발에 그대로 넘어가주면서 눈을 날카롭게 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자기는 레이시를 건들 생각이 없다며 레이시를 알고 있다는 눈치를 주는 블루드.

엘라는 블루드를 가볍게 노려보다가 뒤따라오는 기사에게 살기를 쏘아냈고, 기사는 그런 엘라의 살기에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저택의 밖에서 대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러 오신 거죠?”

그 다음에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레이시의 옆에 앉아서 블루드를 바라보는 엘라.

블루드는 싱글벙글 웃다가 엘라의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연맹국의 북극의 공주, 엘레오놀 공주를 아니?”

“알고 있지만, 왜 물어보죠?”

“후후, 엘라, 네가 여자를 좋아한다길래 엘레오놀 공주와의 중매를 주선해줬단다. 한 번 만나고 오렴.”

“…….”

히죽 웃으면서 좋은 제안이 아니냐고 물어보는 블루드.

엘라는 블루드의 말에 제정신인가 싶어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블루드를 노려봤다.

엘레오놀 공주.

외모에 대한 칭찬은 많지만, 그와 동시에 남자를 말려서 죽인다는 악명이 자자할 정도로 남자를 밝히는 색에 미친 여자.

그런 여자가 자기와 만나면 할 이야기가 뭘까?

많이 만나보지도 못했고, 대화는 아예 해보지도 않아서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좋은 이야기는 안 나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매를 서겠다고 말하고 엘레오놀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건, 이 중매가 연맹국에……, 아니, 엘레오놀에게 큰 이득이 된다는 거겠지.

연맹국은 항구를 얻기 위해서 온갖 수작을 부리고 있고, 블루드의 도움을 받아서 오라토리엄 왕국에 접근한다면 엘레오놀이 소속된 가문이 연맹국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테니까.

그런데 그건 그쪽 이야기지 이런 이야기는 마음대로 거절해도 되는 이야기다.

자기는 이미 국왕에게 레이시에게 결혼할 생각이라고 말했고, 국왕도 왕위 계승권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왕가를 위해서 일하는 나를 위해서 레이시와의 결혼을 인정하고 그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그런 이야기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블루드에게 가는 게 맞지 않겠냐면서 블루드의 제안을 거절했고, 블루드는 엘라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나저나 어쩌면 좋을까?”

“……?”

“엘레오놀 공주는 이미 오고 있는 중이거든.”

블루드의 말에 눈을 확 찌푸리고 대놓고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내기 시작한 엘라.

블루드의 말대로라면 엘레오놀 공주는 자기를 만난다는 핑계로 찾아와서 다른 짓을 하려고 하는 거겠지.

엘레오놀이 원하는 건 항구의 이용권인가?

블루드는 도발할 수 있고, 엘레오놀은 항구에 대한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서로 나쁘지 않다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헛웃음을 날리면서 자기는 관심 없다며 돌려보내라고 말했고, 블루드는 엘라의 말에 그건 할 수 없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히죽 웃었다.

“레이시 양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레이시 양은 고작해야 남작이니까요. 이해해주세요?”

딱히 진짜로 이해를 구하지는 않는다는 듯 입술을 뒤트는 블루드.

엘라는 그런 블루드의 웃음에 블루드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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