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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66화 (266/542)

〈 266화 〉 불구대천­1

* * *

“저 사람들이 마지막이다. 주인.”

“그래요?”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레이시와 미네르바는 다시금 바쁘게 움직였다.

엘라가 방해받지 않고 수도로 돌아가려면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됐으니까.

그렇기에 레이시는 모자란 잠을 미네르바의 품 안에서 보충하면서 빠르게 움직였고, 그런 노력 덕분에 레이시와 미네르바는 엘라가 말했었던 습격자를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럼 마저 해볼까요?”

“알겠다, 주인.”

그동안 레이시가 습격자들을 처리하고 있던 게 알려졌는지 꽤 방비가 잘 되어있는 캠프.

하지만 레이시는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숨을 고르다가 계속해서 캠프를 지켜보며 사람들이 방심할 때를 기다렸고, 아침이 되기 직전에 그대로 미네르바와 함께 날아올랐다.

계속된 야영과 불침번으로 피로가 극으로 올라간 때, 그리고 해가 뜨면서 빛이 생겨 방심하기 시작한 때.

그 시각에 어스름을 타고 습격하자 습격자들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모두 제압당했고, 레이시는 이걸로 끝이라 다행이라면서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창녀 주제에 왕족의 이름을 더럽히는 엘라에게 충성을 바치다니! 네가 그러고도 오라토리엄 왕국의 시민이냐!? 오라토리엄의 왕가는 정화되어야만 한다!”

“……에.”

그렇게 레이시와 미네르바가 둘이서 꽁냥거리고 있자 무시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습격자는 악을 쓰며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레이시를 도발했다.

오라토리엄 왕가의 순수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는 습격자.

물론 그런 말은 레이시에게 닿지는 않았다.

일단 서류상으로는 오라토리엄 왕국의 시민이긴 하지만, 딱히 애국심이 있는 게 아니라 엘라에 대한 애정으로 오라토리엄 왕국에 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사실 엘라가 행복하다고만 하면 왕가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기에 레이시는 고개를 확 꺾은 채 엘라에게 욕한 것만 기억하고 습격자를 가만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침묵을 유지하면서 고개를 꺾어 사람을 빤히 쳐다보자 습격자는 레이시를 보면서 움찔 떨었고, 레이시는 뱀 같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그렇게 블루드가 좋은지 물어봤다.

“당연하지! 블루드 왕자님은 아이야트 같은 녀석은 비교도 안 되는 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자질을 못 알아보고 퇴출시키다니…… 현 국왕은 암군이다!”

“그래요?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이요?”

“흥……, 우리 오라토리엄 왕국이 원래 가졌어야 할 위치를 가지는 데 필요한 일이다.”

“당신이 죽어도요?”

“블루드 왕자님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희생할 것이다!”

……북한 수준의 세뇌교육을 받은 걸까?

레이시는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고 바치겠다는 습격자의 말에 한숨을 길게 내쉬다가 미네르바에게 적당히 기절시켜두라고 부탁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습격자의 명치를 강하게 때렸다.

푸욱­하면서 깊게 들어가는 주먹.

습격자는 단숨에 눈이 위로 돌아가더니 앓는 소리를 내면서 고꾸라졌고, 레이시는 엘라가 올 때까지 3일 정도 남았다는 걸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외롭네요.”

“그런가?”

“네, 미네르바가 곁에 있어줘서 무섭지는 않은데……, 앞으로 3일동안 저희 둘뿐이잖아요? 조금은 외롭죠.”

3일 동안 혼자.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없었다면 엄청 무서웠을 거라면서 어색하게 웃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미네르바는 어떠냐고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기는 레이시와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어서 기쁠 뿐이라며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피식 웃으면서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고양이처럼 머리를 비벼오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입을 맞춰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다가 그동안 같이 놀자면서 레이시를 보채기 시작했다.

사냥놀이라도 하겠냐면서 자기가 먹을 걸 잡아오겠다고 말하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자기는 사냥은 싫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 나비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서인지 엄청난 마력을 소비하는 레이시.

순간 현기증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충격이 레이시를 덮쳤지만,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기대는 것으로 현기증을 참아냈고, 나비는 레이시가 어지러워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마로 레이시의 몸을 툭툭 건들였다.

“후아아……, 그래도……, 전투식량만 먹을 수는 없으니까 같이 사냥 해볼까요!”

“응! 나만 믿어라 주인!”

레이시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먼저 숲으로 들어가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고 첫 날에는 습격자의 캠프에 있는 향신료와 미네르바가 잡은 사슴으로 배부르게 밥을 먹었다.

그리고 이튿날, 레이시는 붙잡은 습격자들을 굶겨 죽일 수는 없기에 목구멍에 어제 먹다 남은 죽을 사람들의 목구멍에 쑤셔준 다음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습격자들을 구출하거나 도와주기 위해서 지원군이 오지 않았을까 싶어서 하는 탐색.

레이시는 나비의 등 위에 미네르바와 함께 올라타서 주변을 걷기 시작했고, 예상보다 평온한 숲의 분위기에 레이시는 산책하는 것 같다며 싱글벙글 웃으며 숲안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레이시는 숲 밖에 무언가 위험한 것이 있다면서 본능이 경종을 울려대자 눈을 크게 뜬 채로 숲 밖을 바라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고개를 돌린 채 멍하니 한쪽을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레이시를 껴안았다.

“주인, 저기에 뭔가 있나?”

“네, 있어요. 미네르바는 안 느껴져요?”

“……? 잘 모르겠는데, 주인. 강한 녀석의 기척은 없다.”

미네르바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자기 스킬을 떠올리고는 미네르바를 바라보는 레이시.

자기가 탐지할 수 있는 종류의 위험은 하나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가 되는 상황과 사람.

그럼 저 앞에 있는 존재는 강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떨릴 정도로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까?

레이시는 거기까지 생각하자 침을 꿀꺽 삼키면서 미네르바에게 도망치자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숲의 안쪽에서 한 무리의 휘황찬란한 기사들이 앞으로 나왔고, 레이시는 그 모습을 보고 흠칫 떨었다.

“누, 누구세요……?”

로브의 후드를 꾹 누르며 경계하는 레이시.

레이시가 기사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기사들의 틈에서 한 명의 사람이 나왔다.

나이는 이제 막 40대가 되었을까?

주름이 조금씩 지기 시작한 모습.

기사들의 갑옷과 마찬가지로 숲을 돌아다니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한 복장에 레이시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 남자를 바라봤고,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레이시에게 긴장을 풀라는 듯 손짓했다.

“나는 블루드 란트 오라토리엄, 그대의 이름은 뭐지? 엘라의 문양을 달고 있는 걸 보면 엘라의 메이드인가? 하하, 내 여동생에게 특이한 메이드가 생겼다고는 들었는데 그렇게 강한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메이드라니, 이렇게까지 특이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

남자의 자기 소개에 몸을 바짝 굳히는 레이시.

레이시는 블루드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로 블루드인건가 싶어서 바짝 긴장하면서 블루드를 쳐다봤고, 블루드 주변에 있는 기사들은 레이시의 반응에 무엄하다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네르바는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당장이라도 기사들과 싸울 준비를 끝냈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를 진정시키면서 블루드를 바라보며 눈을 차갑게 식혔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냉정하게…….

미네르바가 아무런 기척을 못 느낀 걸 보면 지금 저들 중에서는 미네르바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마법사나 궁수도 없으니까 원거리 공격도 없고, 말이 있기는 하지만 나비와 비교할 정도는 안 되니까 여차하면 미네르바와 함께 도망칠 수 있다.

그러니 진정하자.

그렇게 혼잣말한 레이시는 나비의 등에서 내려오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블루드 왕자님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리고 저번에 엘라 공주님을 습격한 사람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공주님을 습격했었는데,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그렇지 못하다면 저는 당신을 경계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무력의 우위는 자기에게 있다.

자세히보면 자기가 제압한 사람들보다는 강하지만 내가 이길 수 있다.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빠르게 진정하면서 여차하면 상대방의 팔다리를 부술 생각을 하면서 채찍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역으로 긴장하는 기사들.

기사들은 레이시의 눈에 살기가 감돌자 야차가 어떤 존재인지 떠올리면서 칼과 방패를 뽑아 들었고, 미네르바는 그런 기사들의 행동에 헛웃음을 들이키며 나비의 등을 가볍게 두들긴 다음 레이시의 앞에 섰다.

약간의 마찰이라도 생긴다면 그대로 격돌해서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처럼 되는 분위기.

그 분위기 속에서 블루드는 태연한 얼굴로 레이시에게 명령서를 내밀었다.

국왕의 인장으로 찍은 명령서.

몇 번인가 봤었던 독특한 마력 패턴에 레이시는 움찔 떨면서 블루드를 바라봤고, 블루드는 레이시의 시선이 자기에게 향하자 자기는 국왕의 명령을 받고 엘라를 호위하러 왔다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 짓는 미소.

……분명 그런 미소이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인형이 사람을 흉내 내는 것 같은 미소에 레이시는 좀처럼 반응하지 못하다가 자기는 엘라에게서 여기에서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아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했고, 블루드는 레이시의 말에 그러면 지금 야영지로 쓰는 곳으로 안내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침을 꿀꺽 삼키다가 이것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블루드가 기사들을 진정시키는 걸 보면서 미네르바에게 여차하면 저 사람들을 전부 죽여서라도 도망치자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안 그래도 그럴 셈이었다면서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시 후, 습격자들의 야영지에 도착한 블루드는 레이시에게 습격자는 어디에다 제압해뒀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블루드의 질문에 대답하려다가 이내 입을 꽉 다물면서 자기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흐음, 그건 어째서지?”

“말할 수 없어요.”

왠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지금, 습격자들을 죽일 생각이다.

엘라가 필요하면 죽여도 된다고 말했었지만, 그건 자기가 위험에 처했을 때의 이야기지 그냥 죽게 내버려두라는 건 아니었다.

“후후, 너무 긴장하는 거 아닌가?”

“제게 있어서 아직 블루드 왕자님은 적이라고 생각되거든요.”

“너! 메이드 주제에 건방지다!”

레이시의 말에 발끈하면서 레이시의 어깨를 밀치는 기사.

기사는 레이시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겠다면서 주먹을 치켜들고 얼굴을 때리려고 했다.

평소의 레이시였다면 주먹에 맞고 주변 사람들이 되갚아줬겠지만, 지금 레이시는 미네르바와 동등할 정도의 공격성을 지닌 상태.

레이시는 기사의 주먹을 잡더니 그대로 손에 힘을 주었고, 기사는 레이시가 자기 주먹을 막자 당황하다가 이내 주먹이 글러브 채로 으스러지기 시작하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악!”

“……지금 제가 메이드라고 얕보시는 건가요? 저는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의 메이드. 당연히 엘라 공주님을 만족시킬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겠어요?”

자기가 아샤나 미스트와 동등한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거짓말하는 레이시.

사실은 두 사람과 싸우는 순간 제압당해서 땅바닥을 뒹굴겠지만, 기사들은 레이시에 대해서 알지 못해서인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레이시를 바라봤다.

“부디, 제가 당신들을 해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주먹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기사를 보고는 혀를 차면서 미네르바와 함께 습격자들을 묶어놓은 곳으로 가는 레이시.

블루드는 그런 레이시를 바라보면서 못해도 이틀 뒤에는 엘라가 여기까지 오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틀 뒤에가 기대되는 군. 후후.”

과연 내 여동생은 내 선물에 어떻게 반응할까?

화를 낼까?

아니면 웃으면서 넘어갈까?

블루드는 그런 생각들에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 드물게 진심으로 웃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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