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화 〉 돌아가는 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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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미네르바……, 아니, 레이시가 한 건가?”
아침이 되자 다음 야영지로 출발하는 엘라.
엘라는 마차를 타고 길거리를 걷다가 아마도 자기를 습격하려고 했을 사람들이 나무에 데롱데롱 매달려서 소리를 지르는 걸 보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다가 습격자의 얼굴을 보며 미스트에게 누가 했을지 물어봤다.
얼굴에 남은 흔적을 보면 레이시의 주먹으로 친 것 같지만, 레이시가 제압했다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과격한 일처리 방식.
레이시가 갈 때 각오를 다지고 나갔으니 레이시가 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평소의 레이시와 너무 매치가 안 된다.
그렇기에 엘라는 미스트에게 누가 한 것 같은지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몸에 남은 흔적은 레이시의 흔적밖에 없으니 아마도 레이시가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왜, 카지노에서도 저희랑 같이 할 때는 제 흉내를 잘 냈잖아요? 사람 협박할 때는 아샤를 흉내냈고. 이번에는 미네르바를 흉내낸 게 아닐까요?”
“그러려나?”
“아마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연기는 못하는 데 저희 연기는 되게 잘하는 걸 보면 연정의 야차만의 효과일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엘라.
엘라는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이런 일에서는 미네르바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레이시에게서 떨어지지 말고 같이 도망치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헀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그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에는 너무 위험한 적이 나타났을 땐 미네르바가 적을 상대하고 레이시가 도망칠 시간을 버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미네르바가 곁에 있을 때 레이시의 전투능력이 올라간다면 둘이서 같이 적을 상대하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다음에 만나면 그렇게 해야겠다고 말하면서 오늘은 중간 야영지를 한 번 건너뛰고 다음 야영지까지 가자면서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어쨌든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기사들은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차를 빠르게 몰기 시작했다.
“아, 오셨어요?”
그리고 세 번째 야영지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을 처리하고 쉬고 있었는지 미네르바의 품에 안겨서 배시시 웃는 레이시.
몸 곳곳에 타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를 잔뜩 뭍힌 채로 웃는 레이시.
살벌하게 보이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온화한 그 모습에 엘라는 어색하게 웃다가 레이시에게 쉬는데 방해한 거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가 물을 건네주자 얼굴을 닦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레이시는 중간부터는 미네르바에게 옮겨달라고 해서 사실 처리하는 건 오전 3시쯤에 전부 끝냈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미스트가 세웠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라는 점점 레이시의 연정의 야차라는 스킬이 타인을 흉내내는 종류의 스킬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스킬까지는 흉내 내지 못 하는 것 같은데, 어쩌면 나중에는 스킬까지 흉내낼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가 대암흑마도천을 사용하면서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가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마차 안에서 쉬겠냐고 물어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질문에 잠시 눈을 빛내더니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눈을 미네르바처럼 만들며 고개를 살짝 꺾는 레이시.
레이시는 마치 미네르바처럼 지금 움직여야 딱 좋을 때 기습할 수 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다.
“다치치 마. 다치면 내가 너무 슬플 거 같아.”
“네, 안 다치고 올게요.”
“이거 들고 가. 포션이야. 다치면 발라.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붙일 수 있는 거니까 다치면 아끼지 말고 뿌려.”
“아, 아하하하……. 네, 그럼 다녀올게요.”
엘라의 말에 엘라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대고는 미네르바에게 안기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미스트와 이야기하다가 레이시가 다가오자 레이시를 안아준 다음 레이시에게 목적지를 물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라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오늘은 거기에서 주무세요.”
“그래, 조심해.”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다음 야영지까지 천천히 날아간다고 하면 오후 5시쯤에는 도착할 거고 그러면 딱 해질녘이 지는 시간에 기습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채찍을 쥐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얼굴에 침을 꿀꺽 삼키다가 숨을 거칠게 쉬었다.
그러자 다시 부드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호흡에 어디 아픈 거냐고 물어보면서 미네르바의 뺨을 쓰다듬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니다.”
“그러면요?”
“아, 아니……, 으응……. 아무것도 아니다. 집중하자. 주인.”
“네, 그럴게요.”
미네르바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미네르바의 뺨을 쓰다듬는 레이시.
레이시는 시간을 맞춰서 천천히 날아가는 미네르바의 뺨을 연달아 쓰다듬어주며 칭찬하다가 5시가 되자 호수에 물을 길러 나오는 걸 확인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자기를 호수에 빠트려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늦게 나오면 곧바로 구하러 가겠다면서 호수에 물을 길러 나오기 전에 레이시를 호수에 넣어줬다.
레이시가 떨어지는 충격에 물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오더니 이내 끊기는 물방울.
미네르바는 하늘 위에서 호수를 바라보다가 레이시가 습격자가 물을 뜨기 위해서 커다란 가죽 포대를 물에 넣자마자 물 안으로 끌고가자 움찔 떨었다.
그리고 10초 후, 호수에서는 습격자가 차고 있던 칼이 던져졌고, 레이시는 기절한 습격자를 질질 끌고 올라왔다.
“푸후우우……, 미네르바라면 힘으로 어떻게 했을 건데 저는 그럴 자신이 없으니까 이럴 수밖에 없네요. 아하하…….”
“아직 무기를 든 사람을 상대하는 게 무섭나?”
“아무래도요.”
“주인도 신체 강화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네르바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이런 일이 많으면 채찍 스킬을 버리고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제압한 사람을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남자를 나무 위에 묶은 다음 다시 미네르바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서 습격자 캠프를 바라봤다.
한 번에 많은 수를 준비하면 들키기 때문인지 8명에서 10명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습격자들.
지금의 레이시라면 힘으로 전부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아샤의 말로는 채찍이라는 무기는 다루기 어렵고 까다롭다는 듯하지만, 레이시와 저들의 힘의 차이는 고양이와 호랑이 수준의 차이니까.
비록 날붙이를 들어서 레이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가 호랑이를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지 않는가?
하지만 레이시는 성급하게 힘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사냥에 들여도 되는 시간이 길어서일까?
레이시는 차분하게 숲 안을 바라보다가 궁수는 없는지, 숨은 적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했고, 이내 다른 게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레이시가 두 번째로 처리한 사람은 물을 길러 갔던 사람이 오지 않자 그 사람을 찾으러 나온 사람들.
두 사람이 한 명의 조가 되어 나온 걸 보고 레이시는 잠시 난처한 듯 쳐다보다가 미네르바에게 자기가 한 사람을 잡으면 다른 사람을 제압해달라고 부탁했고 나무를 끼고 돌 때 갑자기 확 낚아채 목을 꽉 조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소리를 지르려는 습격자.
하지만 미네르바는 그 순간 습격자의 배를 걷어차서 호수에다 빠트렸다.
“좋아요, 이거로 6명 남았죠?”
“네.”
“그럼 마저 처리하죠.”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이제는 꽤 능숙하게 나무를 타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자기처럼 앉은 채 멍하니 습격자들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무장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점점 더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레이시는 그야말로 사냥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힘이 부족하고 전투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기습하고 적을 분단시키고 공포를 심어주고 있다.
마치 자기처럼…….
그렇게 생각하자 미네르바는 나무 위에서 쪼그려 앉아 기절한 사람을 던져줄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자기를 끌어안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지금은 일하는 중이지 않냐면서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목덜미를 약하게 깨물다가 이내 레이시의 목에서 입을 떼더니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에? 미네르바?”
“꼭 주인이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는 짧게 중얼거린 다음 사람들을 전원 때려 눕히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오늘은 일찍 끝났으니 두, 세 곳 만 더 정리하고 쉬자고 말했다.
그러자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레이시를 껴안고 날아올랐고 적의 경계심이 강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상대방을 전부 제압하기 시작했다.
죽이지는 않았지만, 한 동안은 걷지도 못할 정도로 심하게 제압하는 미네르바.
어차피 엘라를 죽이려던 사람들이라 레이시는 그 사람들이 다쳐도 딱히 아무렇지 않았지만, 미네르바의 분위기가 갑자기 변한 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지 조심스럽게 미네르바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숨을 고르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레이시에게 한 사람을 놓쳐서 그런데 제압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미네르바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무기가 부러진 채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겁에 질려 미네르바를 바라보는 습격자.
그런 습격자의 앞으로는 커다란 나무가 발톱에 갈린 듯 톱밥이 날리고 있었고, 미네르바는 손에 바람을 휘감은 채 습격자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놓쳤다고는 말할 수 없는 모습.
레이시는 어째서 미네르바가 놓쳤다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습격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주먹을 휘두르자 그 주먹을 피한 다음 습격자를 내려다봤다.
“힉…….”
미네르바라면 여기에서 어떻게 했을까?
뭐,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습격자가 다시 앞으로 달려들자 정강이를 신발 앞축으로 걷어차 넘어트렸고, 동시에 넘어지는 습격자의 머리를 잡고 무릎으로 안면을 세게 걷어찼다.
그리고 확인사살로 넘어지는 습격자의 배를 강하게 한 번 걷어차는 레이시.
기술만 충분하면 지금이라도 오우거를 죽일 수 있는 레이시의 발차기를 연달아 맞은 습격자는 죽지는 않았지만, 코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채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후아…….”
그 모습에 안도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수갑을 꺼내서 습격자의 팔을 뒤로 돌려서 양 손의 엄지부터 고정시켰고, 그 다음에는 손목과 팔목을 고정시켰다.
이래놓으면 팔을 움직이지 못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습격자의 다리를 꽁꽁 묶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했었던 미네르바를 바라봤고, 미네르바는 얼굴에 피가 튄 레이시를 보자 다시금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레이시를 껴안고 습격자들이 쓰는 텐트에 집어던졌다.
“꺄흑!?”
“하아, 하아……. 저 새끼들 옮기고 올 테니까, 거기에 있어라.”
“에……?”
잔뜩 흥분해서 이성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조차 안 되는 미네르바의 모습.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움찔 떨다가 미네르바가 강풍을 일으키며 사라지자, 침을 삼키면서 텐트 안에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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