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 회귀3
* * *
하양이의 등에 올라타서 마을에 돌아가는 엘라는 자기 품에 안긴 레이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회복약과 마법의 도움으로 상처가 모두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는 레이시.
아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조심스럽게 잠을 자고 있는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다.
피가 빠져서 조금 차가웠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지는 부드럽게 따뜻한 뺨.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반응이 없다.
그냥 평범하게 자는 거라면 이렇게 장난스럽게 만질 때마다 레이시는 몸을 비틀거리면서 간지럽다며 웃어줬는데, 지금은 그런 것 없이 죽은 듯이 자고 있다.
칼에 맞아서, 독에 중독되서…….
그렇게 생각하자 엘라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다.
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레이시의 몸은 튼튼한 데다가 사용된 독은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마비독에 집사복에 막혀서 주요 혈관이나 신경, 뼈, 장기는 다치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레이시를 치료한 사람은 미스트.
외과적으로나 마법적으로나 전부 완벽하게 처치를 끝냈으니까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레이시는 금방 회복해서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왕가의 쓰레기 때문에 레이시가 다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레이시가 열심히 해서 어떻게든 도망치긴 했지만, 화살에 맞는 것조차 견디기 버거워했었던 레이시의 등에 수많은 칼이 꽂혔다.
그 사실에 엘라는 손끝이 파르르 떨리면서 잠을 자는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제발 살아달라며 빌면서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런 엘라의 앞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막아서기 시작했고, 엘라는 하양이와 나비가 멈춰서서 경계하는 소리를 내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기 앞을 막아선 사람들을 쳐다봤다.
전원이 로브에 스태프를 들고 있는 모습.
거기에다가 그런 그들의 뒤에는 4m 크기의 골렘이 있었고, 엘라는 그 모습에 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온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님 되시지요? 흑마법의 총아라고 불리시는 분이 꼴이 말이 아니시군요.”
“…….”
“그럼 오늘은 제 작품의 희생양이 되어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모습에 엘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 심하게 화가 나서 화를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화가 나버려서 되려 자기를 죽이겠다고 선언하는 그 마법사들이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저들은 정말 자기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기의 변덕에 의해서 땅을 기고, 생사가 결정되는 녀석들 주제에 자기를 죽이겠다고?
레이시를 다치게 한 녀석들이 감히 나를?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나비와 하양이는 엘라가 자기 주인의 반려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심장이 멎어버릴 정도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고개를 들면 죽는다.
자기와 엘라의 관계가 어떻게 되든 엘라의 기분에 따라서 죽는다.
그렇기에 나비와 하양이는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났고, 엘라는 레이시를 껴안은 채로 마력을 쑤셔 넣은 마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진행 경로에 들어가면 당장이라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은 광폭한 마탄.
하지만 엘라의 앞을 막아선 사람들은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골렘을 앞으로 내밀었고, 골렘의 몸에 닿은 마탄은 골렘의 안으로 흡수되듯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눈가를 씰룩이는 엘라.
마법사들은 엘라가 눈썹을 씰룩거리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우리의 기술이 어떠냐며 엘라에게 자랑했고, 엘라는 마법사의 자랑에 눈을 빙글 돌려 마법사들을 바라봤다.
“흐흐흐……, 고대의 공허석이 어떻습니까? 마력을 흡수하는 재질로 만들어진 광물! 지금은 기술이 소실되어서 어떻게 발견할 수가 없으니 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걸작이라고 할 수 있죠!”
“…….”
“자,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마법사의 천적을 만나셨는데!”
“…….”
“아! 혹시라도 지원군이 오기를 기대하시는 거면 포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미스트에게는 아갈레타의 텐페가 갔고 아샤에게는 동양의 대 검호 천광이 갔으니!”
자기에게 가해지는 마력을 흡수한다.
그리고 그것을 에너지로 바꿔서 자신을 공격하는 마법사를 죽인다.
그것이 엘라의 눈앞에 있는 골렘의 작동원리였고, 그렇기에 엘라를 상대하기로 한 마법사는 이미 이겼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면서 엘라를 바라봤다.
엘라가 미스트처럼 마법을 제외하더라도 수단이 많다면 지금처럼 자신만만하게 웃을 수 없겠지만, 엘라는 미스트처럼 만능이라기보다는 아샤처럼 극단적인 특화형.
그렇기에 마법사는 확신을 가지면서 레이시를 껴안고 있는 엘라를 바라봤고 이내 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막기 시작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마법사의 천적이니 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도주뿐.
그렇기에 마법사는 제자들에게 나비와 하양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진형을 짜라고 말했고, 마법사의 제자들은 진형을 짜고 나비와 하양이가 움직이는 순간 공격하겠다는 듯 위협을 가했다.
하지만 엘라는 그런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듯 다시 마탄을 두어 발 쏘기 시작했고, 마법사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엘라가 맛이 갔나 싶어서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무리도 아니라며 웃기 시작했다.
미스트는 텐페가 죽였을 거고, 아샤는 천광에게 죽었을 것이며, 도주로도 막혔으니까.
예상보다 시시했지만, 이것으로 대암흑마도천의 칭호는 자기의 것이 될 것이며 자기는 엘라를 대신해서 오라토리엄 최강의 마법사가 되어 주지육림을 즐기게 될 것이다.
“으흐흐흐…….”
그렇게 생각하자 마법사는 나이에 맞지 않게 흥분이 올라오는 걸 느끼며 엘라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엘라의 마력 출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 올라가는 걸 느끼며 순간 경직되었다.
“어……?”
처음에는 감탄이 튀어나왔다.
한 명의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마력을 쏟아붓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기에 역시 대암흑마도천은 다르긴 다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마력이 계속해서 쏟아지자 점점 당황하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이내 공허석 골렘에서 몸이 금이 가기 시작하자 당황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오르는 건 마법사의 장점인 벼락마법.
전기 계통의 마법을 자주 사용하는 마법사였기에 마법사를 상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무로 된 방패를 준비했었지만, 마법사는 그런 상대를 비웃듯 고무를 뚫는 수준의 힘을 지닌 벼락으로 상대방을 공격했었다.
그것처럼 엘라가 골렘에게 마력을 부어넣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골렘이 망가지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마법사는 자신의 걸작은 안 된다면서 다급하게 엘라에게 마법을 날리려고 했지만, 주변 마력은 이미 엘라의 것으로 가득 찼는지 마법사가 마력을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제는 경악하는 마법사.
마법사는 예상 외의 사태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골렘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골렘이 엘라를 쓰러트리길 기대하면서 골렘을 바라봤다.
하지만 골렘은 엘라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몸이 바스라지기 시작했고, 마법사는 그런 골렘의 모습에 안 된다면서 자기 제자들에게 엘라에게 활을 쏘든 뭘 하든 어떻게든 해서 말려보라고 소리쳤다.
“으, 으응…….”
그리고 그 소리에 눈을 파르르 떠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레이시가 깨기 전에 적들을 지워버리기 위한 마법을 사용했다.
“흑마법 9위계다크매터.”
엘라의 목소리가 울리자 그대로 마법사들은 전원 외우주의 무언가로 변해버렸고, 레이시는 모두가 사라진 곳에서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엘라……?”
“응, 나야. 정신이 들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사해. 하양이도, 나비도 전부 치료받았어.”
“에헤헤…….”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눈을 깜빡거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를 끌어안다가 왠지 모르게 피곤하다고 말하면서 뺨을 비볐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괜찮다면서 조금만 더 자라고 말했다.
“아직 독이 덜 풀려서 그래. 조금만 더 자자. 응?”
“……으응, 다른 사람들이 괜찮은지 보고 싶어요.”
“그래. 그럼 마차로 돌아가서 기다리자. 마차에 마법을 걸어둬서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줄게. 돌아가자……, 응?”
애처롭게 레이시의 뺨을 만지작거리면서 눈웃음을 짓는 엘라.
레이시는 기절하기 전에 봤었던 미네르바를 보고 싶었지만, 엘라의 눈이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자 뜨고 있던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러자 금방 잠드는 레이시.
이번에는 건들 때마다 반응하는 레이시의 모습에 엘라는 정말 다행이라며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나비와 하양이, 그리고 레이시와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런 생명체도 보이지 않는 주변.
엘라는 그런 풍경을 무덤덤하게 쳐다보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하게 죽는 거라면 너무 쉽게 죽는 거라면서 사령술을 사용해 그들의 영혼을 자신의 손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엘라는 그들의 영혼을 이용해 라이프 베슬을 만든 다음 마력으로 고문하기 시작했고, 엘라에게 대적했던 마법사들은 영혼이 찢어지는 고통에 절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일은 없었다.
엘라는 라이프 베슬에서 흘러나오는 비명에 레이시가 혹시라도 깨서 회복이 늦어지면 안 되니까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만들었고, 이내 다시금 레이시를 조심스럽게 안고 도시로 돌아갔다.
그러자 보이는 인부들.
인부들은 엘라가 레이시를 껴안고 오자 흠칫 떨다가 무슨 일이냐면서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그런 인부들의 모습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9족까지 몰살시켜주지.”
“……네?”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도 좋아. 그러면 너를 도와준 사람, 네 가족, 네 친구까지 모두 죽겠지만.”
차갑게 식은 눈.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한 얼굴에 인부의 대장은 다급하게 엘라에게 자기들은 협박을 받았다고 변명했지만, 엘라는 그런 대장의 변명에 피식 웃더니 대장의 옆에 있던 어린 아이를 보고 입을 열었다.
“저건 네 아이?”
“그, 그게!?”
“말해.”
“제, 제, 제 아이입니다……! 제 아이만큼은 제발 살려주세요! 제, 제가 잘못한 겁니다! 그러니 제발……! 제가 협박을 못 이겨서 영주님의 제안을 수락한 겁니다! 그러니 제발!”
“내가 죽인다고 했어?”
“그럼 제 아이는……!”
“네가 죽여.”
“……네?”
싱긋 웃으면서 자애로운 분위기를 보이는 엘라.
하지만 그런 엘라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자애와는 무척이나 거리가 먼 말이었다.
“네가 네 딸을 죽여. 맨주먹으로 패고, 물어뜯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씹어먹어서 죽여.”
“어, 어째서……, 제가, 제가 잘못한 겁니다!”
“……그래서? 왕족과 관련된 죄는 기본이 3족 몰살이야. 어떻게 죽이는지, 자비롭게 단번에 죽이든 고문을 하든 그건 내 마음이야. 협박당했을 뿐이라고……? 좋아, 그럼 내기할까? 나중에 내가 조사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 만약 정말로 협박당했을 뿐이라면 여기 인부들만 가볍게 교육만 시키고 보내주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히이……!”
“그럼 하루 뒤에 조사할 거니까 알아서 해. 레이시가 회복이 덜 됐는데 잠에서 깨는 순간, 이 도시 자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줄 알아.”
눈을 가늘게 뜨면서 바닥에 주저앉아서 덜덜 떠는 아이를 바라보는 엘라.
엘라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가볍게 비웃다가 이내 자기 마차로 돌아가 레이시를 마차 안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뺨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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