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회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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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그림자로 거미처럼 꾸물꾸물 기어가더니 이내 모습을 완전히 감추는 텐페.
텐페는 그런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는 미스트를 보고는 확실히 미스트가 둔해졌다고 생각했다.
세상 어느 암살자가 상대방의 암살자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데 그냥 내버려둔단 말인가?
자기들은 전사나 마법사와는 다르다.
전사는 언제 어디서 칼이 날아오든 반격할 수 있는 기술이 있고 레인저의 경우에는 다가가기 전에 눈치를 채고 화살을 쏘며, 마법사는 무의식적으로 마력의 갑옷을 두르고 있어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한다면 이쪽이 당한다.
하지만 암살자들끼리의 싸움은 준비를 얼마만큼 철저히 하느냐에 따라 달린다.
어떤 전장에서 싸우는지,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상대방을 얼마나 조사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지, 그리고 그 준비물들로 자기의 일격필살을 상대방에게 꽂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달렸다.
그리고 텐페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준비를 끝마쳤다.
지금 자기는 완전히 그림자가 되어 원한다면 팔만을 따로 다른 곳에서 소환해서 단검을 던지는 것도 가능하며, 반대로 한 곳에서 분신들을 끄집어내서 미스트의 몸을 단번에 꺾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한 텐페는 어둠 속에서 입술을 이죽이면서 미스트를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씨받이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죽이지는 않겠지만, 기는 꺾어야겠지.
그렇다면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골반을 으스러트리자.
그렇게 생각한 텐페는 들고 있던 단검을 그림자를 통해 집어 던졌고, 미스트는 날아오는 단검을 보더니 슬쩍 몸을 굽혀 단검을 모두 피해냈다.
그러자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텐페는 분신을 소환해서 미스트에게 달려들었고, 미스트는 텐페의 분신을 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위로 살짝 잡아 던졌다.
싸우기 위해 던진 게 아니라 저글링을 하듯이 가볍게 던져진 단검.
텐페는 분신을 그대로 미스트에게 돌진시킨 다음 그 단검을 눈으로 바라봤고, 이내 단검이 몇 바퀴 회전하면서 미스트의 손에 들어가자 텐페는 자기 분신을 살펴봤다.
그러자 전원 목이 잘려져 있는 분신들.
어떻게 잘린 건지 분신들의 목은 깔끔한 단면을 보이며 움찔움찔 떨고 있었고, 텐페는 미스트가 분신들을 바라보다가 본체가 있는 쪽으로 눈을 돌리자 흠칫 떨면서 미스트를 바라봤다.
“이걸로 끝인가요?”
“그럴 리가 있나……!”
순간 놀라긴 했지만, 미스트는 캘러미티 가문의 완성품.
둔해졌다고는 하지만 분신을 처리하는 것 정도야 할 수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추가 공격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단검을 수십 개씩 던지면서 동시에 목이 잘려나간 분신을 융합시켜서 그림자 골렘으로 만들어 미스트를 덮쳤다.
그러자 미스트는 춤추듯이 단검을 피하더니 여러 개의 손이 겹쳐진 듯한 주먹으로 자기를 때리는 골렘의 주먹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힘을 주면서 주먹을 돌리는 미스트.
미스트가 가볍게 주먹을 돌리자 골렘의 손목과 팔꿈치, 어깨 관절이 동시에 우득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분해되었고, 텐페는 그 모습을 보고 미스트의 그림자에서 자기 팔을 끄집어내서 미스트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잡아당기는 텐페.
그러자 미스트의 발목은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졌고, 텐페는 이걸로 됐다면서 그대로 단검을 휘둘러 미스트의 허벅다리를 잘라냈다.
“끄읍!?”
자기 다리가 나뒹굴자 당황한 얼굴로 자기 다리를 바라보는 미스트.
그 순간 골렘이 나머지 한쪽 팔로 미스트의 머리를 후려쳤고, 미스트의 목은 그대로 떨어져 나가 피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런……, 씨받이로 써야 했는데. 뭐, 이걸로 죽었다면 그 미스트도 이 정도 인간이라는 거겠지. 필요 없다.”
몸을 들썩이면서 피를 내뿜는 미스트의 시체.
그걸 본 텐페는 피식 웃더니 그림자에서 나왔고 이내 바닥에 그어진 검은 선을 보고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 좋은데 그 검은 선은 넘지 마세요. 넘게 된다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돼서 저 시체처럼 계속 비명을 지르게 될 테니까요. 뭐, 이걸로 두 번째 말해주는 거니까 지켜주시겠죠?”
“……어?”
미스트의 목소리.
텐페는 그 목소리에 당황하며 땅바닥에 시체가 없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고, 미스트는 그런 텐페의 모습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단검을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멍하니 미스트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외쳤다.
“내 씨앗으로 거미를 낳게 해주지!”
“네네~ 열심히 해봐요.”
이 거리에 무방비하게 단검을 돌리고 있다면 한쪽 손목을 희생해서 상대의 심장을 꿰뚫는다.
그렇게 생각한 텐페는 미스트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미스트의 심장을 꿰뚫었고, 미스트는 텐페의 돌진에 놀란 얼굴을 하다가 반격하다 말고 심장이 뚫려 그대로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흥, 시시하군.”
배가 살짝 긁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큰 부상은 아니고, 독도 그렇게 심하지 않다.
전설의 암살자를 죽인 것치고는 너무 시시한 부상.
역시 감정을 지닌 암살자는 너무 둔해지고 허접해진다.
텐페는 자기는 감정을 지니지 않아야겠다면서 초점이 풀린 미스트의 시체를 집어 던지면서 자기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혀를 찬 다음 다시 검은 선 앞에 섰다.
“네, 당신은 시시하게 죽을 거랍니다. 아갈레타의 이름을 저주하면서 편안하게 노화해서 죽을 테니까요.”
“……!?”
그러자 또다시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단검을 빙빙 돌리는 미스트.
텐페는 그 모습에 다시 한순간 멍하니 미스트를 바라보다가 자기가 환각에 빠졌다는 걸 깨닫고 환각을 풀라며 소리를 지르며 미스트에게 달려들었고, 이내 미스트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뚝하고 끊어져서 땅바닥을 구르는 미스트의 머리.
하지만 이제 환각이라는 걸 숨길 생각도 없는지 미스트의 머리는 단면에서 손가락 같은 게 돋아나더니 스스로 기어 와서 땅바닥에 쓰러진 시체에 자리를 잡고 다시 붙었고, 텐페는 항마력을 뚫고 들어오는 환각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진짜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남성의 거친 소리.
그 소리에 눈을 뜨자 병사들이 스스로 목을 자르려는 자기 팔을 막고 있었고, 텐페는 흑살지주가 발동되지 않은 자기 손을 보고는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면서 미스트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미스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고, 병사는 텐페의 말에 미스트를 찾으려다가 미스트가 보이지 않자 당황한 목소리로 저기에 있었다며 멍하니 손가락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림자에서 길쭉하고 이상하게 변형된 팔이 튀어나오더니 병사의 팔에 관절을 하나 추가해줬다.
뚜둑하는 소리와 함께 팔을 네 번 접을 수 있게 만들고는 사라지는 팔.
텐페는 기묘하게 뒤틀린 팔이 입고 있던 옷을 보고는 그게 미스트의 팔이며 자기 스킬인 흑살지주라는 사용한 상태라는 걸 깨닫고 멍하니 입을 벌리다가 어느새 풀린 흑살지주를 발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흑살지주는 발동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치 스킬이 통째로 빼앗긴 것처럼 발동되지가 않았고, 텐페는 그런 자기 스킬에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스킬 이터.”
상대방의 스킬을 그대로 빼앗는 스킬.
스킬의 효과만 따지자면 사기급의 스킬 같았지만, 여러 제약이 붙은 스킬.
하급 스킬의 경우에는 빼앗는 의미가 없으며, 특정 레어도 이상의 스킬의 경우에는 상대방이 깨달은 것과 똑같은 깨달음을 간직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보다도 그 스킬에 대한 숙련도가 상대방보다 높아야만 하는 스킬.
그럼 미스트가 자기보다 흑살지주에 잘 어울린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텐페는 30년이 넘는 수행을 떠올리고는 그럴 리 없다며 소리를 지르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 스킬 또한 발동되지 않았고 텐페는 자기의 모든 스킬이 봉인당한 느낌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후후후, 뭐 그렇게 겁을 먹은 얼굴이신가요? 저를 씨받이로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순간 튀어나오는 목소리.
자기 근처에서 나는 미스트의 목소리에 텐페는 단검과 독이 가득한 바늘을 꺼내 주변을 경계했고, 미스트의 목소리는 그런 텐페의 모습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어딜 봐도 보이지 않는 미스트의 모습.
딱히 마력으로 위치를 알 수 없게 흩트리는 것으로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텐페는 대체 미스트가 어디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알수 없어 침을 꿀꺽 삼키면서 미스트를 찾으려고 했고, 미스트의 목소리는 그런 텐페를 도와줄지 물어봤다.
그러자 입술을 꽉 깨물고 어디에 숨든 자기가 찾아서 찢어 죽일 거라며 크게 소리쳤고, 미스트는 텐페의 말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자기는 아까부터 여기에 있지 않았냐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득 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오는 팔.
흑살지주를 사용한 특유의 길고 기묘한 색을 지닌 팔은 텐페의 어깨를 찢으면서 튀어나왔고, 텐페는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입을 틀어막다가 이내 등에서 돋아난 손에서 눈과 입이 생기자 흠칫 떨면서 고개를 돌려 그 팔을 쳐다봤다.
“아하하하핫! 뭔가요? 그 얼굴! 멍청하게…….”
키드득키드득 웃는 팔.
텐페는 그 팔의 모습에 당황하면서 털썩 주저앉았다가, 주변에 있던 블루드의 병사들의 몸에서도 거미의 다리를 닮은 팔들이 솟구쳐 오르는 걸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흑살지주는 독살과 신체 변형, 필중과, 방어불능, 공간투과의 스킬이 뒤섞인 것.
타인의 몸에 솟아나게 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스킬이 아니다.
하지만 저것들은 뭐지?
텐페는 자기도 할 수 없는 짓을 태연하게 하는 모습에 덜덜 떨면서 그 광경을 지켜봤고, 이내 숲 안쪽은 미스트의 웃음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몸에서 돋아난 거미의 팔에서 생겨나는 수백 개의 눈과 수십 개의 입, 그리고 점점 퍼지더니 텐페에게 집중되는 독기까지.
텐페는 그것들을 견디다 못해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하면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병사들의 몸에서 튀어나온 팔들에서 거미줄이 나오더니 텐페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고, 텐페의 허벅다리는 그대로 땅바닥을 나뒹굴게 되었다.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잘리는 다리.
텐페는 땅바닥을 뒹구는 자기 다리를 보고 다리가 사라진 자기 하반신을 내려봤다.
그러자 천천히 다가오는 미스트.
단검을 빙빙 돌리면서 다가오는 미스트는 한쪽 손으로 불을 만들어 단검을 달구더니 이내 텐페의 하반신에 생긴 단면을 불로 지져주었고, 텐페는 살이 타는 고통에 사라진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언제부터 자기에게 환각을 걸었냐고 소리쳤다.
“알아서 뭐하게요?”
미스트는 그런 텐페의 질문에 싱긋 웃으면서 텐페의 이마를 단검으로 콕콕 찌르며 두개골에 노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당신은 여기에서 끝이랍니다. 벌레씨. 당신은 아갈레타의 이름을 저주하겠죠. 그것만이 중요하답니다. 안 그래요?”
앞으로 텐페는 아갈레타의 이름을 저주할 정도로 고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것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
미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텐페를 바라봤고, 텐페는 미스트에게 반격의 기회를 찾기 위해서 미스트의 신경을 건드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하! 내가 아갈레타의 이름을 저주 한다고!? 그럴 리가 없다! 난, 너 같이 무뎌지지 않았으니까!”
“헤에…… 무뎌졌다라, 그럼 확인해볼래요?”
“흥! 그 칼로 내 뇌를 도려내더라도 나는 네게 굴하지 않는다! 죽여주지……! 반드시 죽여주지! 내 팔과 내 기술로!”
“그럼 그걸 도와드릴까요? 외과적인 수술로.”
“하……?”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텐페.
미스트는 그런 텐페의 반응에 팔을 수백 개로 늘려줄 테니 기대하라면서 손가락을 튕겼고, 미스트의 신호에 병사들이, 정확하게는 병사들의 몸에서 돋아난 팔들이 텐페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사들이 충분히 가까이 오자 미스트는 바늘을 꺼내 그 팔들을 엮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늘에 의해 묶인 부분이 녹아내리면서 텐페와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이제 막 시작이라는 듯 미스트는 전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미스트는 병사들과 텐페의 몸으로 살아있는 고기 경단을 만들어내고 싱긋 웃었고, 병사들과 텐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살려줘!”
“싫어……! 싫어어어……!”
한 몸에서 나오는 수십 개의 비명.
그 고기 경단에서는 흑살지주가 발동된 팔이 이리저리 튀어나와 서로의 몸을 뜯어내면서 죽기 위해 발악했지만, 살을 뜯어내는 순간 새 살이 돋아나면서 그들을 하나의 생명체로 만들기 시작했다.
미스트는 그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웃다가 이대로 노화되어 죽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겠다면서 고기 경단에서 볼록 튀어나온 텐페의 얼굴에다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감정이 고정된채로 고기 경단이 된 기분이 어때요? 사람을 해칠 수도 없고 그저 수십 명의 좌절을 들을 수밖에 없는 그런 몸뚱아리가 된 기분은? 당신은 앞으로 영원히 감옥에 갇혀서 영원히 살아가며 자연적으로 죽기만을 기다리겠죠.”
싱글벙글 웃다가 갑자기 뚝 멈추더니 차가운 눈으로 텐페를 내려다보는 미스트.
미스트는 공허한 눈동자로 텐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작게 속삭였다.
“그럼……, 영원히 살아보세요. 그런 몸, 그런 정신으로. 영원히……. 차라리저만 공격했으면 깔끔하게 죽여줬을 건데……, 레이시를 건든 대가는 크답니다. 우선 10년 동안 그렇게 살아보실까요?”
텐페였었던 고기경단을 아공간에 집어넣으면서 영주와 상인들을 바라보는 미스트.
영주와 상인들은 자기들도 저렇게 되는 건가 싶어 비명을 지르면서 미스트에게 살려달라고 빌었고, 미스트는 그런 영주와 상인들을 차갑게 내려보다가 이내 싱긋 웃으면서 그건 엘라에게 달렸다면서 그들의 목에 쇠사슬을 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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