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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21화 (221/542)

〈 221화 〉 말할 수 없었던 이유­3

* * *

처음에는 몬스터가 나온 줄 알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나비의 눈에 그렇게 상처를 입힐 수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비의 뒤에 하양이가 보이고, 하양이의 새하얀 털이 붉게 물들어 있는 걸 보고는 점점 그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냐면 보통 사족보행 짐승의 등에는 상처가 나지 않으니까.

얼굴을 맞딱트리고 싸운다면 머리와 목덜미, 배, 다리에 상처가 나고 만약 더 큰 동물과 싸운다면 등을 깨물 바에는 목덜미를 깨물어 목을 부러트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등에는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2가지.

하나는 적의 피가 하양이의 등에 튀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양이가 등에 태우고 다니는 사람의 피가 묻었다는 것.

미네르바가 다친 거라면 하양이가 도망치기 전에 이미 싸움에 휘말려서 죽었거나, 자기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소거법으로 남은 건…….

“레이시…….”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샤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고, 이내 너무 오래 달려서 토사물을 질질 흘리던 하양이가 다가와 무릎을 꿇어 자리에 앉자 하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등 뒤에 태운 레이시를 바라봤다.

자기가 준 옷 덕분에 뼈까지 다치지는 않았지만, 살과 근육이 끊어진 데다가 팔뚝과 허벅지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레이시.

레이시는 출혈이 이어져서 피가 모자라기 시작했는지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채로 하양이의 털을 붙잡고 있었고, 독에 중독됐는지 눈은 풀려서 동공이 잔뜩 확장된 채로 수축하다가 다시 확장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자 다시 한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엘라.

엘라는 대체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다가 미스트에게 레이시를 치료하라고 명령했고, 이내 자기를 향해 걸어오는 영주를 똑바로 쳐다봤다.

능글맞게 웃고 있는 영주.

영주는 어제 도적이 나온다고 말해주었는데 못 들은 것 같다면서 혀를 차다가 엘라를 비웃기 시작했다.

딱히 영주가 미친 건 아니었다.

영주가 이렇게 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2년 전부터 엘라가 행하는 행동의 수위가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엘라는 아카데미의 사람이 자기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 그대로 잿더미로 만들어 산에 뿌려주었고, 귀족이 자기 사람에게 시비를 걸면 그 가문 자체를 탈탈 털어서 재산을 뺏어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사람이 레이시를 비웃고 깔봐도 레이시의 일이라면서 그냥 넘어갔고, 다른 가문의 영애가 레이시가 받는 총애를 질투해서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해도 그냥 봐주고 넘어갔다.

그렇기에 텐하우의 영주는 엘라가 레이시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변했다고 생각하면서 엘라에게 다가가 엘라에게 정말로 안 됐다고 말하면서 왕국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구나 저렇게 되는 거냐며 엘라의 성질을 건들였다.

그리고 그런 영주의 행동은 엘라의 이성을 완벽하게 끊게 만들었다.

손가락을 가볍게 들더니 영주의 다리를 부러트리는 엘라.

그 얼굴은 아직도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멍한 얼굴이었기에 괴리감이 몇 배나 커졌고, 영주는 뚜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꽈배기처럼 뒤틀린 자기 다리를 보고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아, ……아? 야…….”

영주를 힐끗 바라보다가 기사를 바라보는 엘라.

기사는 그 모습에 흠칫 떨면서 뒷걸음질 치려고 했지만, 엘라가 손을 들고 손가락질하자 그대로 허공에 떠오르더니 왼쪽 팔이 점점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다른 신체는 멀쩡한데 왼쪽 팔만이 비정상적으로 부푸는 기사.

기사는 그런 자기 몸에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 팔을 쳐다봤고, 엘라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기사의 팔은 마치 풍선의 양 끝을 잡고 가운데로 밀어붙이는 것처럼 이두근이 기형적으로 커지더니 이내 커다란 소리가 나면서 피부와 근육이 터지며 피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뼈가 훤히 보일 정도로 근육과 살을 잃어버린 기사.

기사는 몰려오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엘라는 전혀 신경 안 쓴다는 듯 훤히 드러난 기사의 뼈에 회전을 걸기 시작했고, 이내 기사의 팔에는 수많은 주름이 잡히더니 엘라가 마력을 해제하자마자 산산히 부서지더니 이내 세빙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툭하고 떨어지는 종이.

엘라는 기사의 팔에서 종이를 잡아 들더니 그 종이를 레이시를 안고 오는 미스트에게 건네주고는 위조 여부를 판단하라고 말했고, 미스트는 잠시 서류를 읽고는 위조라고 말했다.

“왕가의 인장과는 마력 패턴이 다르네요.”

“위조죄……, 아니, 국가전복죄의 형벌은?”

“9족의 사형. 길드의 경우에는 길드의 간부와 그의 9족 몰살. 협력업체에게는 재산의 압수와 강제노역형입니다.”

미스트의 설명에 레이시를 힐끗 보고는 허공에 매달린 남성을 바라보는 엘라.

엘라는 기사를 바라보더니 종이를 내놓으라고 말했고, 기사는 엘라의 말에 그렇게 할 것 같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협박뿐이다.

엘라는 레이시와 만나고 나서부터는 사람을 거의 죽이지 않았고 산적과 반역자만을 죽였다.

오라토리엄 왕가의 제 1왕자, 블루드 란트 오라토리엄의 직속 부하인 자신을 죽여서 법적인 분쟁을 만들 각오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기사는 소리를 질러대면서 엘라에게 놓지 않으면 블루드에게 호되게 당할 거라며 엘라를 역으로 협박했고, 엘라는 기사의 협박에 레이시가 눈을 찡그리며 손끝을 파르르 떨자 검은 화살을 만들어서 목을 꿰뚫었다.

“케렉……?”

그 모습에 당황하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사.

엘라는 무덤덤한 얼굴로 기사에게 다가가더니 이내 기사의 갑옷을 맨손으로 뜯어내고는 기사의 품 안에 있는 종이를 끄집어냈다.

여러 사람의 이름이 적힌 종이.

엘라는 미스트에게 종이를 건네준 다음 무덤덤하게 시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리를 들어 기사의 시체를 마구잡이로 밟기 시작했다.

철판이 깔린 군화로 밟자 금방 곤죽이 되어 버리는 기사의 시체.

엘라는 기사의 시체가 완전히 망가지자 기사의 몸에 마력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이내 기사의 시체는 꿈틀거리다가 이내 다시금 크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에에에엑! 끄에에에에에에엑!”

듣기 어려울 정도로 거친 괴성.

인간의 목에서 나온다고는 믿기지 않는 비명에 사람들은 그제야 엘라가 약해지고 유해진 엘라가 아니라 자기가 알던 엘라였다는 걸 깨닫고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치려고 하자 땅에서는 검은 혼령들이 나와 사람들을 막았고, 엘라는 미스트에게서 레이시를 받아서 조심스럽게 안더니 근처에 있던 아샤와 미스트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부 살려서 가져와. 저 녀석 외의 사상자는 용납하지 않아. 저 녀석들의 9족까지 포함한모두를 생포해.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한다면 내 손으로 죽인다.”

“알겠습니다. 공주님. 이것을…….”

엘라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복약을 꺼내 나비를 바라보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시선에 그제야 나비의 몸이 상처투성이라는 걸 깨닫고는 나비를 하양이의 등에 엎드리게 하고는 나비의 눈과 몸에 약을 뿌려주었다.

그리고 하양이의 등을 타고 자리를 벗어나는 엘라.

엘라가 벗어나자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자기들이 좆됐다는 걸 깨닫고 자기는 저들에 의해서 누명을 썼을 뿐이지 실제로 엘라를 적대할 의사는 없었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발을 뗄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너무 흘렀고, 미스트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면 전원 죽을 뿐이라며 가볍게 협박한 다음 아샤를 바라보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처리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아무래도 공주님을 상대하는데 이런 것들만 보낼 정도로 블루드 왕자님이 멍청하지는 않으시거든요.”

“……그냥 네 원래 얼굴을 보이기 싫은 거지?”

“후후.”

아샤의 말에 작게 웃는 미스트.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웃음에 발걸음을 옮겨 엘라가 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고, 미스트는 미스트가 사라지자 머리를 가볍게 쓸어 올리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정말 다행이었다.

엘라가 기사를 죽이지 않았다면 자기가 먼저 이성을 잃고 날뛸 뻔 했으니까.

그렇기에 미스트는 정말 다행이라며 싱글벙글 웃다가 단검을 소환해서 병사들을 바라봤고, 병사들은 간부에게서 들었던 미스트의 정보에 대해 떠올리면서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엘라가 하룻밤 사이에 멸문시켰던 캘러미티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캘러미티의 완성작.

암살자의 정점이라고 불렸던 그 가문의 생존자라는 사실에 블루드의 말단 병사들은 긴장하면서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블루드가 붙여준 마스터급 전투 간부들을 떠올리고는 병사들은 간부들을 불렀다.

그러자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는 기사의 시체의 머리를 박살 내면서 그림자에서 간부가 꾸물꾸물 기어 나왔고, 미스트는 그런 간부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아갈레타 가문의 텐페. 너를 죽이면 우리 가문이 명실상부한 암살자의 정점이 되는 건가?”

“어머, 이게 누구인가요? 제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만년 2인자 소리나 듣는 아갈레타의 벌레셨네요. 아하하, 반가워요.”

“흐……, 사라진 것들의 허깨비 주제에 잘도 떠드는군.”

“어머, 제가 수다스러웠나요? 후후, 죄송하네요. 아갈레타의 벌레들은 이래서 대하기 힘들단 말이죠. 제가 조금만 눌러도 빼액~ 빼액~ 시끄럽게 울잖아요.”

“야차에게 혼이 나가서 둔해진 네 녀석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만.”

“……헤에~. 확실히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은 제가 떨어지는 것 같네요.”

스멀스멀 살기를 내뿜으면서 눈동자를 공허로 물들이는 미스트.

미스트는 입술을 이죽이다가 단검을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기 시작했고, 텐페는 그런 미스트의 동작을 보고 똑같이 웃다가 자기 힘에 대해서 과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갈레타의 텐페. 인간을 초월한 레어 8의 암살 스킬 흑살지주의 보유자. 드래곤마저도 암살할 수 있는 암살자지.”

“그래서요?”

“아직 위기감이 없나보군.”

몸이 여러 개로 늘어나는 텐페.

그것뿐만이 아니라 텐페의 몸은 이리저리 변형되어서 거미처럼 팔과 다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안 그래도 길쭉길쭉하고 얇았던 팔이 이상하게 변형되자 병사들은 흠칫 떨면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미스트는 그 소리를 듣고는 엘라의 명령을 떠올린 다음 땅바닥을 잘 보고 걸으라며 사람들에게 주의를 줬다.

“다 좋은데 그 검은 선은 넘지 마세요. 넘게 된다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돼서 저 시체처럼 계속 비명을 지르게 될 테니까요.”

미스트의 말에 기사의 시체를 보는 사람들.

시체는 머리가 박살 났는데도 비명을 지르듯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스스로의 관절을 파괴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에 흠칫 떨면서 발걸음을 멈추고 부디 텐페가 미스트를 이기길 기도하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이는 건 텐페였다.

텐페는 얇은 수리검을 몇 개 꺼내더니 어둠 속으로 녹아 들어가더니 이내 미스트를 보면서 그런 복장으로 전장에 설 생각이었냐면서 미스트를 놀렸고, 미스트는 텐페의 말에 그저 싱글벙글 웃다가 어떻게 죽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암살자 동지니까 죽음을 어떻게 할지 정도는 마음대로 고르게 해드릴게요. 편하게 안면을 취하듯 죽을래요? 고통 속에서 발버둥치다 죽을래요?”

“제 3의 선택지다. 캘러미티의 유산인 네 팔과 다리를 자르고, 눈을 뽑고, 이빨을 전부 뽑은 다음 약물 절임으로 만들어서 아갈레타의 거미를 기르는데 사용해주지.”

“어머……, 그럼 저는 제 4의 선택지를 선사해드릴게요. 장담하는데 당신은 당신의 입으로 아갈레타를 저주하면서 살아가다가 편안하게 노화해서 죽을 거랍니다.”

“그럼 시작하지……. 거미의 새끼집이 되어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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