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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20화 (220/542)

〈 220화 〉 말할 수 없었던 이유­2

* * *

레이시를 습격한 괴한들은 모두 블루드의 수하였다.

비록 말단의 말단이지만, 직속 부하였고 블루드를 위해서라면 모두 가볍게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증거로 마법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자기 목숨을 대가로 하는 마법을 익힌 상태였고, 충성의 맹세로 스스로 노예의 각인을 새긴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나비가 진형을 붕괴하고 동료들을 죽일 땐 동료의 죽음을 이용해서 레이시를 죽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눈앞에 보이자 그런 각오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피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숨을 거칠게 내쉬는 미네르바를 보자마자 느낀 것은 자기가 화가 잔뜩 난 사자의 앞에 놓여진 토끼처럼 됐다는 것.

아무리 열심히 도망치든, 이빨을 드러내도 미네르바에게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을 느끼자 괴한들의 마음속에서는 약물의 효과를 무시하고 전신을 지배하는 공포심이 솟구쳐 올랐고, 이를 다다닥 떨고 소변을 지리면서 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레이시를 바라보고 있는 미네르바를 바라봤다.

손톱이 삐죽 튀어나와 날카롭게 빛을 내면서 자기 살갗을 찌르고 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레이시를 바라보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하양이와 나비에게 명령을 내렸다.

“미스트에게 가라. 저쪽이다. 빨리 가라.”

레이시를 제외하면 이 무리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미네르바의 명령에 빠르게 움직이는 하양이와 나비.

미네르바는 하양이와 나비가 움직이자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괴한들을 바라봤고, 괴한들은 미네르바의 시선이 자기에가 닿자 반사적으로 나이프를 들고 항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터져나가는 한 명의 머리.

머리를 잃은 몸은 당장이라도 앞으로 달려나갈 듯한 자세로 무기를 들고 있다가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이내 심장의 박동에 맞춰서 검붉은 피를 꿀럭꿀럭 토해냈다.

거기에 있는 그 누구도 처음에는 그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가 부서지는 소리도 뒤늦게 울릴 정로도 빠른 속도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본능적으로 방금 그게 미네르바가 무언가를 해서 그랬다는 걸 깨닫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레이시가……, 주인이……, 처음 보는 사람은 되도록 죽이지 말라고 말했었다.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굳이 다칠 필요 없이 안 싸우면 그만이라고.”

천천히 입을 여는 미네르바.

쇠를 긁는 끔직한 목소리에 괴한들은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막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움직이는 순간 미네르바가 뭔가 해서 자기 머리를 부술까봐 손을 올리지 못하고 그대로 미네르바의 독백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주인이 다쳤다……. 이런 걸 보고 그 명령을 따를 사람은 없다…….”

손톱을 세우더니 그대로 팔을 움직이는 미네르바.

아직 거리는 닿을 거리가 아니었지만, 미네르바가 팔을 휘두르자 그대로 한 괴한의 무릎 아래가 사라지면서 괴한이 엎어졌고, 괴한들은 그제야 아까 머리가 박살난 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미네르바가 마력을 날린 것이다.

손톱에 마력을 담아 휘두르는 순간 손톱에 담은 마력을 날려서 자기를 공격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기들과 싸우는 것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무리의 몇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켜서 도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만 같아진다면 어떻게든 미네르바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자기들이 끌고 온 대형 와이번이 하늘에서 미네르바를 덮쳤고, 그 모습에 괴한들은 잘 됐다고 소리를 쳤다.

한 마리를 구하는데 중~대형 상단 하나를 통째로 소모하는 대 괴수.

거기에다가 온갖 약물을 투여했으니 죽이지 못 한 거구나!

그렇게 생각한 괴한들은 와이번이 이대로 미네르바를 죽여서 자기들이 레이시를 쫓아가서 죽일 수 있게 해달라고 빌며 와이번에게 자기 생명을 나눠서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 그래도 피부 위로 불룩 튀어나온 혈관이 더욱 도드라지더니 와이번은 괴성을 지르면서 미네르바에게 브레스를 쏘았다.

바위가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황금색으로 변하고, 이내 새하얗게 변하면서 녹아내릴 정도의 고온의 브레스.

이걸 맞았으면 아무리 미네르바라도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괴한들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 순간 광풍과 함께 와이번의 날개가 뚝 하고 덜어졌다.

“끼에에에에엑!”

“살려줬으면 도망쳤어야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새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발을 와이번의 몸에 문대는 미네르바.

그 발에는 아마도 와이번의 것일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괴한들은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와이번이 불을 내뿜을 때 미네르바가 피할 것이라고 예상한 와이번의 위와 양 옆은 주시하고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와이번은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미네르바에게 다시 한번 브레스를 뿜어댔고, 미네르바는 와이번의 몸을 박차고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괴한들은 그 속도에 입을 멍하니 벌렸다.

보통 하피의 비행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다.

보통은 12m/s이며 보통 모험가 길드에서 찾아가서 퇴치할 정도라면 그 2배인 24m/s이다.

하지만 지금 눈으로 보이는 미네르바의 비행속도는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1초에 70m는 족히 움직이는 것 같은 속도.

눈으로 좇아서 보는 것도 힘든 그 속도에 괴한들은 무기를 든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미네르바를 바라봤고, 와이번은 금방 미네르바의 움직임에 익숙해졌는지 하늘로 입을 벌린 채 다시금 브레스를 쏘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속도가 2배 정도 빨라지더니 그대로 뚝 떨어지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몸을 총알처럼 회전시키다가 와이번의 머리 바로 앞에서 몸을 회전시키면서 몸에 휘감고 있던 바람에 마력을 담아 터트렸고, 와이번의 머리는 그대로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즉사.

하지만 그것만으론 자기에게 대들었던 와이번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겠는지 미네르바는 와이번의 목의 단면 위에 서서 있다가 발톱을 세워 살짝 뛰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와이번의 시체를 짓밟는 미네르바.

미네르바의 몸이 다시 와이번에게 닿자 마치 그 부근의 중력만이 수백 배로 강해진 것처럼 와이번의 몸은 형평없이 으깨지더니 목뼈와 척추가 망가지면서 몸이 이상하게 변했고, 흉골과 늑골은 산산조각나서 피부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르르륵…….”

하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 다시 한번 날아오르더니 이번에는 몸에 바람을 휘감고 그대로 와이번의 시체에 발을 내다 꽂았다.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피와 육편이 흩날리며 완전히 곤죽이 되는 와이번의 시체.

그 시체의 모습에 미네르바는 괴성을 지르면서 분노를 표출했고, 미네르바를 보던 괴한들은 아까 했었던 자기의 판단이 순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금 각오를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 되찾았다가 사라진 각오는 아까보다도 더 강한 절망감을 선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 조직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진형.

통하지 않을 무기와 마법.

압도적으로 부족한 무력.

헛죽음.

그런 것들을 떠올리자 괴한들은 자기들은 이런 식으로 죽을 게 아니라 좀 더 위대한 일을 위해서 목숨을 잃어야 한다면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도망치는 사람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괴한들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그렇게 모인 괴한들을 보고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하양이의 등에 업혀서 도망치던 레이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양이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나비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를 지키지도 않고 둘에게 마력을 쏟아붓고서 자기 몸에는 상처를 남긴 레이시의 모습.

미네르바는 맨 처음에 죽인 괴한의 몸을 뒤적거리다가 단검을 꺼내 쥔 채로 근처에 있던 괴한의 허벅지에 손톱을 박아넣었다.

그리고 손의 악력으로 괴한을 거꾸로 잡은 미네르바는 그대로 괴한의 몸에 단검을 꽂았다가 뽑기 시작했다.

푹푹­거리는 소리와 함께 괴한의 몸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단검.

괴한들은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덜덜 떨다가 미네르바의 손에 잡힌 괴한의 허벅지가 찢어져서 땅바닥에 떨어지자 괴한의 등을 바라봤다.

난잡하게 난도질 되어 있는 등.

그 모습에 바들바들 떨다가 다른 사람이 잡혀가서 다시 난도질당하자 그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도중에 미네르바가 그만두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러던 도중에 한 사람이 한 사실을 깨닫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건 바닥에 엎어져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등 뒤에 남은 상처가 모두 일정하게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그 위치는 자기들이 일부러 급소를 피해 찔렀었던 레이시의 등에 난 상처는 위치와 깊이가 모두 똑같았다는 것.

그것이 괴한들에게 알려주는 건 간단했다.

무릎 아래로 살덩어리가 사라진 사람은 과다출혈로 죽을지도 모르겠지만,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순순히 항복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

왜냐면 레이시를 이용해야 했기에 그런 식으로 상처를 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미네르바가 손바닥으로 그 사람의 머리를 후려쳐서 처음 죽었던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줬다.

머리가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가다가 잠시 후 목에서 피를 내뿜으면서 쓰러지는 시체.

미네르바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대로 하라며 피가 묻은 손을 시체의 옷으로 닦았고, 그 모습에 괴한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만약 상대가 레이시였다면 지금처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상대가 레이시였다면,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임을 가진 자였다면 그들은 최후의 최후까지 죄책감을 느끼게 해주겠다면서 그들이 모두 죽는다고 해도 최후의 최후까지 오라토리엄 왕국에 정당한 후계자를 위로 올리겠다면서 목숨을 바쳤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레이시가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그리고 고문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고 만약 자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다고 해도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 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갈 것이다.

그런 상대에게 목숨을 바쳐서 공격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들은 부상도 입히지 못하고 기억에도 남지 못하고, 블루드의 기록에서도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네르바가 중간에 마음을 바꾸길 기대하면서 얌전히 미네르바의 고문을 받는 것.

그리고 다른 한쪽이 엘라를 제대로 압박할 수 있도록 기대하면서 미네르바를 붙잡아 두는 것.

그렇게 생각한 괴한들은 최대한 넋을 잃은 연기를 하면서 반대쪽의 사람들이 제대로 하길 바라기 시작했다.

“……정말이냐?”

그 시각 타국의 군인들과 대치하고 있는 엘라.

엘라는 눈을 찌푸리면서 영주를 바라봤고, 영주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리고 그런 영주의 앞에는 한 무리의 군인이 엘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길을 막은 건 왕가의 명령을 받아서 행한 건데 그걸 왜 치우고 공사를 했냐고 따지는 군인.

군인의 손에는 왕가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가 있었고, 엘라는 영주가 자기를 속였다는 것에 이를 살짝 갈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감정을 추스렸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시 길을 막아주면 되는 거겠지?”

“그런 소리가 아니잖습니까!”

기사에게 큰 소리를 들은 엘라를 쳐다보며 키득키득 웃는 귀족들과 상인, 병사들.

엘라는 스트레스가 확 올라오는 걸 느끼며 그냥 미안하다고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끝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땅이 울리더니 하양이와 나비가 달려왔고, 엘라는 그런 두 마리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나비의 눈에 피가 줄줄 흐르는 걸 보고는 천천히 얼굴을 굳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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