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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19화 (219/542)

〈 219화 〉 말할 수 없었던 이유­1

* * *

“미네르바는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간 걸까?”

엘라와 말을 나눈 이후 공사장에 찾아간 레이시.

그 와중에 미네르바는 뭔가 이상한 게 있으니 확인하고 온다면서 다른 곳으로 날아갔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하양이가 멈춰서자 공사장을 천천히 살펴봤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먼저 10시간씩 번갈아서 공사하던 인부가 한 명도 안 보였다.

숲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도시 안에 있을 때부터 느꼈던 불길함은 점점 더 강해져서 이제는 의식하고 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으면 덜덜덜 떨렸다.

평소랑 하나 다를 것 없는 풍경.

그렇게 생각했지만, 레이시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해 겁먹은 얼굴로 도로 공사장을 쳐다봤고 이내 숨을 거칠게 내쉬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

레이시는 그런 자기 숨소리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고 동시에 채찍을 뽑아 그대로 휘둘렀다.

생각하기 전에 먼저 몸이 움직이는 레이시.

그 순간 단검이 땅에 떨어졌고, 레이시는 땅바닥에 깊숙하게 박힌 단검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키면서 숲의 안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숲 안쪽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딱 봐도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

처음에는 산적 같은 도적들인가 싶어서 레이시는 바짝 긴장하면서 사람들을 바라봤지만,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 것과 무기의 상태가 평범한 무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산적 같은 온화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저기……. 누구세요?”

“저 야차군.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 맞나?”

“……아니라고 한다면요?”

“이미 다 알고 왔으니 그런 말은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방심하지도 않고 무기를 드는 괴한들.

레이시는 그 괴한들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차라리 방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하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천천히 몸의 방향을 돌리는 하양이.

괴한들은 하양이가 뿔을 틀자마자 다시 단검을 던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채찍을 크게 휘두르며 최대한 단검들을 쳐내기 시작하며 동시에 미네르바의 이름을 불렀다.

“미네르바아아아아아아아아!”

미네르바를 소환하려고 하는 레이시.

하지만 레이시는 마력이 빠져나가지도 않는 걸 느끼며 당황하기 시작했고, 괴한들은 소환하려고 하는 거라면 포기하라며 레이시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미네르바라는 하피에게는 괴수가 갔을 것이다. 대형 와이번에 온갖 약물을 투여했으니 최소 30분은 붙잡을 수 있겠지. 엘라와 미스트, 그리고 아샤는 타국의 군인과 용병들이 막고 있겠지.”

“하아, 하아……!”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우리는 너를 굳이 죽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죽이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 그럼……, 이야기를 할까?”

하양이가 도망치는 걸 멈추고 괴한들을 바라보자 괴한 중에서 대장쯤 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레이시에게 말을 걸었고, 레이시는 그런 괴한의 말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가 어떻게 할지 망설이기 시작했다.

아샤의 가르침대로라면 저 사람들은 나를 살려주는 척하다가 이야기를 다 들으면 죽일 생각이다.

그리고 자기 생각도 그랬다.

인질범들이 인질을 살려서 돌려 보내주는 경우보다는 인질을 죽여서 시체를 보내는 쪽이 더 많으니까 아마 죽을 확률이 더 높겠지.

그리고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안 보인다지만, 제압당하는 순간 아샤가 저번에 말했듯이 팔다리의 힘줄이 끊긴 채 어떤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

남자라면 그런 것 없이 바로 죽겠지만……, 지금 난 여자.

그렇기에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면 도망쳐야만 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자기를 살려주겠다고 말하는 괴한의 말과 싸우기 싫다는 마음이 합쳐지자 레이시는 좀처럼 투지를 불태우지 못하고 숨을 계속해서 거칠게 토해냈고, 괴한들은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레이시가 단검을 쳐내는 모습을 보면 기술은 둘째 치더라도 힘은 아샤나 미네르바와 동등한 수준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도 어느 수준의 이야기지 저렇게 작은 몸에 저렇게 강한 힘이 깃들어있다면 힘만으로도 제압하기 무척이나 어렵다.

그렇기에 괴한들은 레이시의 마음을 꺾기 위해서 공을 들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괴한들의 생각에 이끌리듯 천천히 채찍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강하게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괴한들은 레이시가 모르는 사이에 레이시를 완벽하게 포위했고, 레이시의 집중력을 흩트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후, 후으. 한 가지 질문 괜찮을까요?”

“물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러는 거예요?”

괴한들을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의 눈은 혼란과 공포, 두려움, 굴복감이 뒤섞인 눈으로 괴한을 바라봤고, 괴한들은 그런 레이시의 눈빛에 어쩌면 엘라와 미스트, 아샤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 목적을 말해주었다.

“엘라를 죽인다. 엘라를 죽여야만 오라토리엄 왕국의 적법한 후계자가 다시 왕위로 복권할 수 있다.”

“……!?”

“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지. 미네르바라는 하피와 사랑을 나누는 것 같은데 그냥 하피와 도망치고 살아라. 오늘의 일을 무덤까지 가져간다면 그냥 내버려두지.”

“하, 하아……! 하아악……! 그런 거라면…….”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레이시의 눈동자.

괴한들은 어쩌면 쉽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레이시의 대답을 기다렸고, 레이시는 그런 괴한들의 말에 거칠게 소리쳤다.

“하양아! 달려어어어어어어어!”

“아쉽군.”

레이시의 말에 단검을 던지는 괴한들.

레이시는 팔뚝이나 허벅지에 길게 베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하양이에게 괴한들을 돌파하라고 명령했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마력을 먹어치운 다음 전신에서 녹색의 마력잔향을 내뿜으면서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검을 든 사람이 나무에서 뛰어 내리면서 레이시를 찍으려고 했고, 레이시는 그 사람을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그리고 떨어지기 직전, 레이시의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을 본 괴한은 순간 오한이 들었다.

“커헉!?”

피격음 너무 커서 들을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하게 채찍을 쳐버리는 레이시.

장검을 든 괴한은 몸통이 부러지는 충격에 눈을 크게 뜨다가 낙법을 치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러자 레이시의 등에 단검을 던져버리는 나머지 괴한들.

레이시는 옷 덕분에 뼈까지는 다치지 않았지만 살과 근육이 찢어졌고 화살이 한 번 꽂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에 눈앞이 번쩍거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여기에서 정신을 놓는 순간 죽는다는 걸 떠올린 레이시는 흩트러지는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비녀를 뽑아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녀를 괴한들에게 가리키면서 비녀를 기동시키는 레이시.

비녀는 레이시의 녹색 마력을 있는 힘껏 삼키더니 그대로 엘라가 인첸트한 마법을 발동시켰고, 괴한들은 그 마법에 잠시 멈칫거렸다.

허공에 생긴 거대한 구체.

마치 살아있는 것을 찾듯 몇 번 회전하던 구체는 괴한들을 보고 뿔을 만들며 달려들었고, 괴한들은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피하며 레이시를 쫓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레이시는 엘라를 흉내를 내듯 주먹을 꽉 쥐면서 마력을 움직였고, 동시에 구체는 산산조각이 나면서 괴한들의 진형을 찢어버렸다.

그러자 괴한들은 혀를 차면서 레이시를 바라봤다.

산양을 지킨다고 산양에게 마력을 쏟아 넣어서 자기 몸을 지키지 못한 레이시.

그 몸에는 독을 바른 단검을 몇 개나 꽂혀있었고, 괴한들은 그런 레이시의 몸에 피식 웃었다.

저런 몸으로는 도망치지 못한다.

도망치더라도 얼마 안 가서 쓰러지겠지.

그렇게 생각한 괴한들은 괜히 레이시를 쫓아가서 다치지 말고 레이시를 천천히 쫓아가기로 했고, 진형을 짜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핏물이 길게 이어져 있는 길.

괴한들은 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면서 레이시를 발견할 때마다 단검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 전처럼 무의식적으로 하양이에게 마력을 불어넣으며 하양이를 지키는 레이시.

그런 만큼 레이시의 몸에는 상처가 쌓이기 시작했고 레이시의 얼굴은 금방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잘 판단했다고 생각하는 괴한들.

엘라의 연인이 된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은 야차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호전성과 전투 센스가 없으며 엘라의 자애라고 불릴 정도로 성격이 유하다.

그러니 엘라를 파고들 거라면 레이시다.

시체를 잘라서 내던져서 이성을 잃게 만들든, 아니면 인질로 삼아서 함정을 잔뜩 파둔 곳으로 유도하든, 자기들이 유리한 장소로 엘라를 불러들여서 죽이면 된다.

그렇게 블루드를 왕위 계승권을 지닌 사람으로 바꾸고 오라토리엄 왕국을 지배한다.

“흐흐흐…….”

그렇게 생각한 괴한들은 음험한 웃음을 흘리면서 레이시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쫓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자기를 따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울먹거렸다.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괴한들이 소환을 방해하는 데다가 지금 세 사람도 각자 위험에 처한 거 같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계속해서 허벅지로 하양이를 꽉 잡았고, 하양이는 등 뒤에 타고 있는 레이시의 숨이 점점 약해지자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태라면 도망치다가 레이시가 죽는다.

하지만 자기가 저들을 모두 물리치자고 한다면, 전부 죽일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레이시가 죽는다.

레이시는 자기 무리의 일원.

무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건데 무리의 주인을 죽인다면 그건 본말전도가 된다.

그렇기에 하양이가 선택한 방법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순간 근육질의 몸을 크게 부풀리는 하양이.

그리고는 하양이는 그대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파동으로 인해서 몸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괴성.

괴한들은 그 괴성에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이를 다다다닥 떨다가, 이내 그것이 동료를 부르는 울음소리라는 걸 깨닫고 레이시를 죽이기 위해서 단검을 던졌다.

하지만 하양이는 그대로 몸을 돌려 레이시를 자기 목에 매달리게 한 다음, 자기 몸으로 단검을 막아냈다.

그러더니 다시 달리며 연달아 소리를 지르는 하양이.

괴한들은 하양이가 울면 울수록 점점 조급해지며 레이시를 어떻게든 죽이려고 했지만, 하양이는 그럴 때마다 레이시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몸으로 단검을 막아내면서 레이시를 지켜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결국 성과를 맺었는지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나비가 나와서 괴한의 몸을 토막냈고, 레이시의 근처에 오자마자 마력을 받기 시작했는지 나비의 몸에서도 초록색의 마력잔향이 나오기 시작했다.

“크하앙!”

“이런 씨발!”

그 모습에 거칠게 욕하면서 나비를 상대하기로 한 조원들을 욕하는 괴한들.

그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괴한들의 반격 때문에 나비의 몸에는 칼이 몇 개 꽂혔지만, 나비는 그런 것들은 그럴수록 더욱 거칠게 날뛰면서 괴한들을 찢어 죽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괴한들은 더 이상 물리적인 수단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한 명이 자폭 마법을 통해서 나비의 눈에 상처를 낸 다음, 레이시에게 달려들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터지는 괴한의 몸.

나비의 눈에는 괴한의 자폭으로 인해서 길게 일자로 상처가 났고, 몇몇 괴한들은 그 틈을 이용해 자기 목숨을 제물로 나비의 몸을 묶기 시작했다.

사령마법 특유의 더러운 마력과 함께 괴한의 몸에서 튀어나오는 장기와 핏줄.

그 내구성은 원래라면 무척이나 약했겠지만, 목숨과 마력을 모두 사용한 고기 끈들은 나비를 묶었고, 괴한들은 나비가 멈추자 그대로 하양이를 쫓아 칼을 던졌다.

원래 목표는 레이시를 포획해서 엘라를 협박할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였지만……, 그게 안 된다면 죽여서 엘라에게서 이성을 빼앗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 행동.

하지만 그 순간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고, 흙먼지 속에서 커다란 날개가 펼쳐졌다.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주인……, 주인……, 레이시, 레이시! 레이시! 레이시! 레이시이이이!”

히스테릭한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지르는 날개의 주인,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하양이의 등 뒤에 올라타서 반쯤 풀린 눈으로 숨을 헐떡이는 레이시를 보더니 피눈물을 흘리면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괴한들은 괴성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선명하게 느껴지는 죽음의 형태에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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