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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217화 (217/542)

〈 217화 〉 이번에 해야 할 일은­1

* * *

“너, 어제 애를 얼마나 괴롭힌 거야?”

“……닥쳐.”

다음 날, 몬스터를 피하기 위한 길을 고치기 위해서 다른 도시로 출발한 엘라는 마차 안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다가 마차를 몰고 있는 아샤를 보며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엘라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베고 자는 레이시.

그런 레이시는 끙끙거리면서 몸을 뒤척이며 자고 있었다.

레이시가 그렇게 불편하게 자는 이유는 어젯밤 처음으로 먹은 감정 때문이었다.

검고 찐득거리고, 질척거리며, 사람의 몸에 들러붙어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 감정.

레이시는 어젯밤 처음으로 부의 감정에서 비롯된 연정을 먹었고, 그 탓인지 그 감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잠을 자면서 그 감정을 받아들이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물론 야차가 아니라 그런 걸 알 리가 없는 엘라와 미스트는 예상 이상으로 어젯밤이 격했다고 생각하면서 아샤를 쳐다봤고, 태생부터가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을 모두 먹으면서 자라난 아샤는 레이시가 괴로워 하는 이유를 모르고 정말로 어제 좀 힘들게 했나 싶어 죄책감을 팍팍 느끼고 있었다.

하긴 어제는 지구력 훈련을 위해서 몸에 무거운 걸 달고 안 쉬고 계속 뛰었는데 밤에 쉬려고 할 때 갑자기 덮친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아샤는 어젯밤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했었던 자신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차분하게 생각해본다면 기사들이 앵겨온다고 해도 레이시가 자기나 엘라를 배신하고 다른 곳으로 갈 리가 없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는데 어젯밤엔 대체 왜 그랬던 걸까?

고스트 계통의 몬스터에게 홀렸나?

잠시 그렇게 생각해봤지만, 그랬다면 자기가 먼저 반응해서 마력을 담은 수도로 가볍게 처리했을 거란 생각에 아샤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내 어젯밤에 대한 걸 억지로 잊기 시작했다.

어떻게 됐든 간에 자기가 잘못해서 레이시를 괴롭힌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렇기에 자기는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군말 없이 마차를 몰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마차 안에서 끙끙 거리는 레이시를 살폈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시는 평온하게 자기 시작했다.

“도로가 불편했나?”

“허리가 아픈데 흔들리면 조금 그렇지. 이 마차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흔들리긴 하니까.”

“하아…….”

엘라의 말에 다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머리를 부여잡는 아샤.

엘라는 그런 아샤의 모습이 신기한 듯 연신 웃었고, 아샤는 자기가 잘못한 게 있어 엘라의 웃음에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계속 끙끙 앓으면서 마차를 운전했다.

“흐음, 그나저나 왜 이렇게 마차가 없지? 산길이 막혔다면 텐하우로 가는 길은 여기 밖에 없지 않아?”

“응? 글쎄? 원래대로 돌아가려면 빙 돌아가야만 하니까 내가 갈 때까지 텐하우에서 머무는 거 아냐? 어차피 이 근방의 상인들이라면 대부분이 무기상일 거고, 영주도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 잘 대접해줄 거 아냐. 그러면 굳이 빠져나올 메리트가 없지. 그리고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파는 녀석들은 이미 다른 도로를 이용할 거고.”

상인은 돈으로 움직이는 자.

당장에 손해가 없다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말하자 아샤는 눈을 깜빡이다가 한숨을 내쉬며 텐하우에서 거래하는 물품을 생각했다.

하긴 식료품이나 그런 것들은 상하기 전에 다른 길을 이용해서 다른 도시로 갔을 거고 무기 같이 유통기한 긴 물건들을 유통하는 사람들은 그 도시에 계속 있어도 문제가 없을 테니 영주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엘라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만들려고 할지도 모른다.

만약 엘라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그 무엇보다 큰 기회를 얻는 것이니 이득이고, 만약 엘라와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해도 영주나 다른 상인과의 친분을 쌓고 휴가를 얻으니 딱히 손해를 보는 건 없다.

그러니 아마 지금 텐하우에 있는 상인들은 딱히 움직이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엘라는 자기 허벅지를 배고 쿨쿨 자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기가 텐하우에 가는 이유는 도로의 재정비 공사를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됐고, 그렇게 공을 맡기게 된다면 상인들은 그걸 빌미로 티타임을 가지든 식사자리를 가지든 가지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귀찮은 정치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의 뺨을 콕콕 찔렀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몸을 비척거리면서 엘라를 꽉 끌어안았다.

분명 한 시간만 자고 교대하기로 했는데, 벌써 3시간째 꿈나라에 빠져있는 레이시.

그 모습도 마냥 귀엽다고 느끼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어떻든 간에 사랑스러운 건 사실이었기에 엘라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쿠션을 머리에 배고 레이시를 껴안고 자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차를 멈춰 세우더니 마부석에 앉아서 교대하자고 말하는 미스트.

미스트는 아샤에게 계속 앉아 있으면 피곤할 테니 마차 안으로 들어가서 쉬어라고 말했지만, 아샤는 이 정도로는 지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계속 가자고 말했다.

“마차 안에 들어가기가 꺼려지시는 거예요?”

“……알면서 묻지마.”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돌리는 아샤.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대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아샤에게 간식을 건네주었고, 아샤는 미스트가 내민 육포를 대충 씹어 먹더니 이내 잠이 깨는 풀을 꺼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샤는 도로 바깥쪽을 바라봤고, 이내 나비와 함께 노는 미네르바가 보였다.

낮게 날면서 술래잡기를 하듯 몸을 휙휙 돌리는 미네르바와 그런 미네르바를 잡기 위해서 앞발을 연신 휘두르는 나비.

남이 본다면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비의 펀치는 동작만 크지 힘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샤는 나비와 미네르바가 따라오는지만 한 번 확인하고는 정말로 부럽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저렇게 아무런 생각을 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자괴감에 한숨을 푹 내쉬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가 씹고 있던 풀을 뭉쳐서 도로 밖으로 뱉어냈다.

그러자 미스트는 아샤를 달래주기 시작했고, 아샤는 미스트가 자기를 달래주려고 하자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마음이 조금씩 풀리자 한숨을 내쉬면서 이마를 붙잡았다.

“레이시라면 분명 아무 신경도 안 쓸 걸요? 사랑하는 사이니까 그런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할 거예요. 오히려 아샤가 이러고 있으면 괜히 신경 써서 아샤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걸요?”

“그거야 그렇겠지…….”

레이시라면 그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어떤 얼굴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면서 자기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표정을 이리저리 바꾸어보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모습에 키득 웃다가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한번 탐탁하지 않다는 얼굴을 하면서 미스트의 조언을 따라보는 아샤.

아까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얼굴이 나오자 아샤는 복잡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면서 마차를 몰았고,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모습에 쿡쿡 웃다가 그래서 어젯밤에는 어떻게 했기에 레이시가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리냐고 물어봤다.

“…….”

부끄러운 질문에 가볍게 눈을 흘기는 아샤.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시선에 쿡쿡 웃으면서 레이시를 위해서 알아두고 싶다고 말했고, 아샤는 미스트의 말에 작게 앓는 소리를 내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기사들이 레이시의 몸을 보고 음탕한 눈으로 봤다는 것과 그 모습에 질투를 느꼈다는 것, 그리고 그 질투심에 휘말려서 미네르바와 레이시의 잠자리에 난입해버렸다는 것.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최대한 부드럽게 했다고 했다지만, 레이시에게는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 ……아니, 솔직히 잘 모르겠다. 뭐가 뭔지.”

“그렇군요. 으음, 레이시가 많이 아파 보이지는 않으니까 그냥 평소처럼 대해주세요. 그게 가장 좋을 거예요.”

“그게 되겠냐…….”

자기 때문에 레이시가 아프게 됐는데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

아샤는 그런 걸 할 수 있을 정도로 철면피가 아니었기에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눈만 돌려서 앞을 쳐다봤고, 미스트는 불편하게 앞을 바라보는 아샤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선을 슬쩍 미스트에게로 돌렸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부탁한다고 말하는 아샤.

아샤는 미스트에게 신세를 지게 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지 잠시 입을 우물거리다가 미스트에게 꽤 많이 변한 것 같다면서 말을 건넸다.

별 의미 없이 한 말.

미스트가 여기에서 맞받아치면 무안해지겠지만, 미스트는 그럴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아 아샤의 말을 받아주면서 어디가 그렇게 변한 거 같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미스트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그런 부분이 변했다고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쭈뼛거리고 있을 땐 계속해서 말을 걸어서 아무런 생각도 못 하게 만들었을 텐데, 지금은 그 생각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냐며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아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이더니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확실히 변했을지도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시에 아샤도 꽤 변한 것 같지 않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미스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아샤를 가만히 바라봤고,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시선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미스트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이내 뭔가 반박하기 어려운 말처럼 느껴지자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돌렸다.

사람을 보는 것이 누구보다도 정확한 미스트가 그렇게 말한다면 아마 그럴 확률이 높겠지.

그렇기에 아샤는 미스트의 말을 딱히 부정하지 않고 다시 육포를 꺼내 입안에 남아있는 풀의 쓴맛을 지우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아샤의 반응에 이런 부분이 변한 거라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자 한숨을 내쉬면서 육포를 건네는 아샤.

“이거 입에 넣고 그 입 좀 다물어.”

아샤의 퉁명스러운 말에 작게 웃다가 육포를 입에 넣고 지퍼를 잠구는 시늉을 하는 미스트.

아샤는 장난스러운 미스트의 제스쳐에 한숨을 내쉬면서 마차를 계속해서 몰았다.

그리고 도착한 중간 야영지.

평소라면 상인들로 꽉 차 있을 야영지에는 모험가밖에 보이지 않았고, 아샤는 그 모습에 상인들은 텐하우에 머물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야영을 준비하기 위해 레이시를 깨웠다.

“레이시, 슬슬 일어나. 야영지야.”

“응베!?”

아샤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여는 레이시.

자는 도중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말이 튀어나왔지만, 졸려서인지 레이시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 아샤를 보고 이어서 밖을 바라봤고, 하늘에 달이 떠있는 것을 보고는 멍하니 있다가 다급하게 아샤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저 얼마나 잤어요!?”

“괜찮아. 일부러 안 깨운 거야. 몸은 어때? 좀 괜찮아? 자면서 끙끙 앓던데 허리라거나 아픈 곳은 없고?”

“아, 아으그으으으…….”

아샤의 걱정에 앓는 소리를 내면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피식 웃더니 이마를 가볍게 튕기고 야영 준비만 가볍게 도와달라면서 그릇을 내밀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저녁 준비만큼은 열심히 하겠다면서 미스트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마차 안에서 키득키득 웃는 엘라.

아샤는 그런 엘라의 웃음에 불길함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뜨다가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아샤를 놀리면서 옷을 차려입었다.

“이야, 자기 여자한텐 되게 따뜻하네.”

“입 닥쳐, 쳐죽인다.”

“레이시를 볼 땐 꿀이 뚝뚝 떨어지던데 나를 쳐다볼 땐 살기가 뚝뚝 떨어지네. 나쁜 새끼. 그러고도 네가 내 친구냐?”

“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게 신기하네. 매일 나 골려먹을 생각만 해대는 주제에.”

“아니거든?”

“그럼 뭔데?”

“종일 레이시에 대해 생각하다가 가끔씩 레이시에게서 마음이 멀어지면 널 놀릴 궁리를 하는 거지. 엄연히 다르다?”

“……어련하시겠어요. 미친년아.”

엘라의 말에 결국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서 모닥불을 만드는 아샤.

엘라는 그런 아샤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기지개를 켜면서 아샤가 쌓아올린 장작에 불을 붙이고 야영을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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