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저는 당신을 질투하고 있어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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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레이시가 여유를 되찾는 일은 없었다.
항상 아샤의 곁에 붙어서 기사들이 훈련하는 걸 빤히 지켜보는 레이시.
마치 물가에 나간 아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주변을 경계하듯이 레이시는 아샤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고, 아샤는 질투심이 잔뜩 느껴지는 레이시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면서 곤란해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레이시를 자기가 데리고 있는 게 맞았다.
엘라와 미스트를 따라 나가면 연을 만들어둬서 손해는 없는 엘라에게 딱 화를 낼 수 없을 수준으로 대접하면서 연을 만들려고 할 테니까 레이시를 떼어놓고 가는 게 이득이고, 여기에 남겨둘 거라면 자기 옆에 붙여놓아 레이시에게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훨씬 안전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기사들을 굴릴 때 잘못하는 게 있으면 욕을 해서라도 뜯어고쳐야 한다.
안 그러면 늦든 빠르든 임무 도중에 죽을 테니까.
보고서대로라면 안 그래도 이번에 레인저의 리더가 바질리스크에게 당한 건 기사들의 실수가 컸는데 이대로 약점을 내버려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의 밥이 되고 말겠지.
그건 아샤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 아니었다.
물론 기사들이 죽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기사라는 것들은 적들을 죽이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존재니까 그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기사들이 어떻게 죽든 자기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이후의 일까지 신경을 쓰지 않기에는 아샤의 프로 의식이 너무 강했다.
기사들이 그렇게 쉽게 죽어버리면 병사나 시민들의 사기에도 영향이 가고 그럼 몬스터가 도시를 공격할 때 방어 능력이 낮아진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죽겠지.
사람들의 경외심을 먹고 사는 아샤에게 그건 딱히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아샤는 프로답게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에 기사들에게 기본기를 확실히 머릿속에 때려박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레이시가 옆에 있으면 그러기가 힘들었다.
레이시는 아샤에게 있어서 욕을 할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첫 만남에서는 호신술에 필요한 마음가짐을 가르쳐준다고 욕을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레이시는 돈과 권리를 받고 전쟁에 나가는 전사가 아니라 메이드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천천히 자기가 사랑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레이시의 앞에서는 웬만해서는 욕을 하고 싶지 않다는 아샤의 바람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샤는 한참을 난감하다는 듯 구보를 뛰고 있는 기사들을 바라봤고,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샤의 손을 잡았다.
“……하아. 저기, 레이시.”
“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 기사들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거든? 그러니까 떨어져 주지 않을래? 네가 생각해도 네 생각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거의 매일 토할 정도로 자기를 굴리는 외부의 상사를 누가 좋아한다는 거야?”
자기 직속 부하였던 벽천화 기사단의 내부에서도 훈련의 강도가 너무 빡세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직속 부하가 아닌 외부 사람들이라면 오죽할까?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면서 레이시에게 떨어져 주지 않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잠시 쭈뼛거리다가 구보를 뛰면서 아샤를 곁눈질하는 기사들을 보고는 이내 말없이 아샤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긁는 아샤.
아샤는 기사들이 자기를 쳐다본 건 언제 훈련을 멈추나 싶어 자기를 쳐다봤을 뿐이라며 레이시를 달랬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자기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아샤는 너무 둔감하다며 아샤에게 핀잔을 줬다.
대놓고 연애편지를 보냈는데 왜 그런 걸 모르는 걸까?
설마 술이 아니라 커피라서 그냥 평범한 티타임으로 생각하는 걸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해서 자기는 모른다며 아샤의 팔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샤는 한숨을 내쉬다가 타임워치를 보고는 크게 소리쳤다.
“더 빨리 뛰어! 이 개새끼들아! 너네가 그렇게 늦게 뛰어서 레인저 대장이 당했잖아! 다음에도 대장이 지켜주길 바랄 거냐!? 잘됐네! 그럼 다음에는 사이좋게 먹잇감이나 되겠어!”
“악!”
“너희들의 역할은 몬스터를 밖으로 나가서 죽이는 게 아냐! 몬스터를 발견하고 성벽의 병사들에게 전해주고 병사들과 함께 농성하는 거지! 그런데 발이 느리면 어쩌자는 거야!? 뛰어!”
“아악!”
“중갑이 무거워!? 그럼 벗고 뛰던가! 목숨줄을 버리고 잘도 멀쩡히 귀환하겠다!”
기사들의 목적을 확실히 알려주면서 빨리 뛰라고 재촉하는 아샤.
아샤는 목표보다 느리게 뛰는 녀석은 pt를 하게 될 거라며 소리쳤고, 기사들은 그런 아샤의 외침에 다시 소리를 지르며 기운을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시선을 돌리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가 시선을 피하자 역시 불편하지 않냐며 빨리 돌아가서 미네르바와 차라도 마시고 있으라고 말했지만, 레이시는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에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다.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도, 필요 이상의 갈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응원은 하고 싶어도 불편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왜 고개를 돌렸냐고 물어보는 아샤.
아샤는 이번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이걸 구실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를 빤히 쳐다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기사들에게 안 들리게 아샤의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저 분들이 하는 거, 저는 가볍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
레이시의 말에 침묵하는 아샤.
아샤는 잠시 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를 생각해본 다음 레이시의 마라톤 기록을 떠올리고는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전투능력이라거나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한다고 치면 확실히 레이시가 기사들보다 몇 배는 뛰어나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두 손을 들기 시작했다.
레이시를 떼어놓는 것을 포기하고 레이시를 바라보는 아샤.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그럼 오후 훈련부터는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아샤를 계속 난처하게 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샤를 껴안았다.
그러자 한숨을 내쉬면서 오전 훈련을 진행하는 아샤.
그리고 오전 훈련을 끝낸 아샤는 레이시와 함께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아샤는 미네르바가 자기를 노려보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며 미네르바도 같이 훈련하겠냐고 물어봤다.
“주인하고 같이 있을 거다.”
“하아……, 그래라. 그래. 그쪽이 훨씬 편하겠네.”
미네르바의 말에 한숨을 내쉬다가 머리를 부여잡는 아샤.
아샤는 레이시가 끼인 마당에 미네르바가 한 명 추가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겠냐 싶어 미네르바도 같이 훈련을 하자고 말했고, 이내 깨끗하게 비운 점심이 배에서 꺼질 때쯤 레이시와 미네르바, 그리고 기사들을 불렀다.
그러자 당황하는 기사들.
기사들은 레이시도 같이 훈련을 받는 거냐고 물어봤고, 아샤가 고개를 끄덕이자 복잡한 얼굴로 레이시를 바라봤다.
레이시가 훈련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나 싶어 걱정하는 것이 절반.
그리고 훈련을 같이 하면서 훈련의 난이도가 낮아져서 실력을 쌓는 것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절반.
그런 시선으로 레이시를 바라보자, 레이시는 움찔 떨다가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시선에 알아서 견디라며 가볍게 손짓하더니 오후에도 달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옷의 무게만큼 추를 달아놓은 조끼를 입는 레이시와 미네르바.
너무나 가볍게 조끼를 들어서 입자 기사들은 당황한 얼굴로 레이시와 미네르바를 바라봤고, 이내 이어져서 들리는 아샤의 합격 커트라인에 다시 당황하며 아샤를 바라봤다.
“500m, 40초. 1초 늦을 때마다 버피 한 번이야. 뛰어.”
“네!”
아샤의 말에 저 멀리에 꽂힌 250m라는 글자가 적힌 깃발까지 뛰는 레이시와 미네르바.
기사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늦게 출발하기 시작했고, 아샤는 타임워치로 기록을 재기 시작했다.
20초도 안 돼서 왕복을 찍고 돌아오는 미네르바와 500m를 30초에 뛰는 레이시, 그리고 47초를 조금 넘어서 들어오는 기사들.
기사들의 기록은 아마 레이시와 미네르바가 상상 이상으로 빨라서 늦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정상참작의 여지를 줄 수 있었지만, 어차피 전쟁터라는 것은 항상 예상 외의 상황이 퍼지는 곳.
살기도 없는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한다면 실전에서는 더 볼 것도 없었기에 아샤는 불호령으로 기사들에게 버피를 시켰고, 미네르바에게는 추를 추가로 달라고 명령을 내렸다.
“너도 뛰어라.”
“알았어.”
그러자 눈을 찌푸리면서 아샤에게 조끼를 던지는 미네르바.
성인 남성 하나 무게 분의 조끼였지만, 아샤는 가볍게 조끼를 받아들더니 아샤는 조끼를 입고서 기사들의 버피가 끝나는 걸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500m 전력질주를 명령하는 아샤.
아샤와 미네르바는 출발선에 서더니 이내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다리에 있는 힘껏 힘을 주면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쟁상대가 생겨서 좀 더 힘을 낼 수 있게 된 미네르바와 아샤는 아무리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고, 아샤와 미네르바는 성인 남성을 한 명 업은 것과 똑같은 상태에서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500m를 달렸다.
거의 스포츠카나 다름없는 속도로 뛴 두 사람.
레이시는 그 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헥헥거리면서 출발선으로 돌아왔고, 아샤는 레이시의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 뛰네.”
“아, 아하하하……. 아샤가 훨씬 빠르잖아요.”
“뭐, 나는 초보가 쏜 화살보다 빠르게 뛸 수 있으니까.”
“날개가 접혀있지만 않았어도 내가 좀 더 빠르게 뛰었다.”
“으응, 미네르바도 엄청 빨랐어요.”
아무래도 하피용으로 만든 조끼가 아니라 그런지 갑갑하다고 칭얼거리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갑옷을 다 벗고 뛰면 자기가 훨씬 빠르다면서 아샤를 보고 으르렁거렸고, 아샤는 그런 미네르바의 위협을 가볍게 받아넘기면서 기사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빨라서 힘만 주고 제대로 달리지 못해서 또다시 제한시간을 어겨버린 기사들.
아샤는 그런 기사들에게 다시 버피를 시키면서 평정심을 지키는 것도 못 해서 어떻게 시민들을 지킬 수 있겠냐며 기사들에게 호통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큰 소리를 내면서 아샤의 지시를 따르는 기사들.
레이시는 기사 중에서 아샤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기사가 버피를 하는 걸 보자 조금은 미안해하면서도 아샤를 빼앗기지 않는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아샤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는 아샤에게 다음 훈련은 뭐냐고 물어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가 훈련을 물어보자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거리다가 체력 단련만 줄창할 거라고 말했다.
“저 사람들, 스킬은 그럭저럭 하급 기사로 써먹을 수 있을 정도있데 몸이 전혀 완성이 안 됐어. 아마 스킬 훈련을 하느라 신체 단련을 소홀리 한 거겠지. 그러니까 엘라가 갈 때까지 PT만 할 거야.”
“에헤헤…….”
아샤의 말에 작게 웃는 레이시.
이걸로 계속해서 아샤의 옆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레이시는 열심히 하겠다면서 기합을 넣었고, 아샤는 계속해서 보이는 레이시의 의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레이시의 등을 가볍게 두들긴 아샤는 다시 훈련을 시작하겠다고 말했고, 기사들에게 필요한 것들에 맞춰서 훈련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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