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 자애의 뒷면에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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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레이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와 다르게 갑갑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덥진 않나요?”
“네, 그런데 이러면 뛰기 힘든데…….”
“후후, 조금만 참아주세요.”
레이시의 머리를 비녀로 장식하면서 웃는 미스트.
레이시가 이렇게 갑갑한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오늘 해야 하는 일들 때문이었다.
우선 영주와 만나서 천공섬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 대한 후속조치를 어떻게 할지 물어봐야만 했고, 또 이곳 미텔라의 양성 중인 기사들과 함께 해수의 구제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오늘은 차려입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 되어버렸고, 레이시는 평소에는 하지 않는 장식까지 옷에 단 채로 옷매무새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내일부터는 평소 복장으로 돌아오는 거죠?”
“네. 오늘은 영주님과 만나고 다른 병사들 앞에서 움직여야만 해서 이렇게 입는 거예요.”
“후아, 그럼 파이팅 할게요!”
“후후, 네. 파이팅이에요.”
레이시의 말에 작게 웃으면서 나가자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가 미네르바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자 거기에는 어제와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서 어떻게 봐도 일국의 공주님이 된 엘라가 레이시를 반겨줬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농담을 주고받다가 엘라가 볼에 입을 맞춘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자 똑같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영주가 기다린다는 곳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리 마중 나온 병사와 함께 걷는 길거리.
레이시는 왕궁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는 호위에 조금은 갑갑하다고 생각하다가 그 생각을 잊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엘프인 거리의 사람들.
다른 종족의 사람들이 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10명 중에 6~7명은 엘프였다.
일부러 이렇게 도시를 만든 걸까?
그게 아니라면 원래 엘프들이 많이 살던 도시였었던 걸까?
벌써 1년이 지나서 나름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판타지스러운 것들을 기대하고 있던 레이시는 후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길거리를 걸었고, 아샤는 레이시가 주변을 계속 둘러보자 경비병 몰래 레이시의 이마를 가볍게 튕기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지금은 다른 걸 보지 말고 집중하라고 말하는 아샤.
아샤는 나중에 느긋하게 쉴 수 있을 테니 나중에 같이 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을 깜빡이다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혼자 다닐 생각은 없었으니까 마을을 구경하는 것도 같이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라의 뒤를 따라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고, 반대쪽에 귀족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소매를 매만진 다음 반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오는 60대 정도의 남성.
영주로 보이는 남성은 엘라에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면서 만나서 반갑다면서 저택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고, 엘라는 영주의 인사에 카리스마 넘치는 말투로 인사를 받아주며 안에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우선 천공섬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바질리스크가 발견되었다고만 말했었지.”
“네, 그렇습니다.”
“흐음, 능력이 없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하지 않은 건가?”
“네, 넷!?”
그리고 저택 안에 들어가자마자 영주를 압박하는 엘라.
엘라는 탄생제가 진행 중이었다고 말하면서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자기가 위험에 처할 뻔했다면서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영주는 엘라의 말에 흠칫 떨고 절대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며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들의 솜씨가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레인저의 리더가 바질리스크의 독에 당해서 제대로 된 조사를 못 했습니다!”
“바질리스크에 당해서…….”
“네! 보고서에 숫자가 최소 둘 이상이라고 적어두었습니다. 하, 하지만 탄생제에 대한 건 정말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군대를 요청했을 겁니다!”
“흐음……. 리더가 당했다라. 내가 기억하기로 여기의 리더는 바질리스크가 상대라면 이기긴 힘들더라도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그……, 그게…….”
“실력이 모자란 기사를 팀에 넣은 모양이군.”
“네, 숲 밖으로 튀어나온 게 그동안 고블린의 울프 라이더들 뿐이라 실전 경험을 쌓게 해줄 겸 신입 기사들에게 따라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제 부덕이니 제발 제 기사들에게는 처벌을 내리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흥, 앞으로는 좀 더 판단력을 기르도록.”
엘라는 영주의 설명을 듣더니 콧방귀를 뀌고는 앞으로 정진하라고 명령한 다음 레인저 대장에게 가서 약을 하사하겠다고 말했고, 영주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에 이번에 엘라를 호위할 신입 기사들과 함께 레인저 대장에게 갔다.
바질리스크의 독에 당해서인지 고통스러워하는 레인저 대장.
레이시는 그런 대장의 얼굴에 흠칫 떨다가 엘라가 미스트와 함께 대장에게 약을 하사할 때 아샤에게 괜찮은 거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피식 웃더니 자기는 독에 당하지도 않았으니 괜찮다고 말하며 집중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걱정을 덜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누워있는 레인저 대장에게 손수 약을 먹여준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백성들을 위해서 해수를 구제하겠다고 말하며 안내하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어디지?”
“이쪽입니다! 말을 준비해뒀습니다!”
“말은 됐다. 레이시! 준비해라.”
“아, 알겠습니다.”
남들의 앞이라 그런지 다소 딱딱한 말투로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말투에 움찔 떨다가 엘라가 남들 모르게 윙크하자 배시시 웃으면서 준비하겠다며 인사했고, 엘라는 자신을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사들에게 먼저 앞장서서 안내하라고 말하며 레이시에게 갔다.
남들이 안 보는 건물의 뒤쪽.
엘라는 레이시를 껴안으면서 놀랐냐면서 레이시의 볼을 약하게 잡아 늘어트렸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남들이 본다며 엘라의 콧잔등에 손을 올리며 엘라를 약하게 밀어냈다.
그리고는 궁금한 게 있다며 손을 드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에게 뭘 타면 좋겠냐고 물어보면서 하양이가 좋을지, 나비가 좋을지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나비를 데리고 가자고 말했다.
“사람들이 안 놀랄까요?”
“뭐, 기사들이니까 놀라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사냥에 하양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죠……. 그럼 준비할 테니 먼저 가셔서 기다려주시겠어요?”
“키스해주면 돌아갈래.”
“……사람들이 기다리잖아요.”
“그러니까 해달라는 거지.”
능글맞게 웃으면서 빨리 해달라고 조르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가 애교를 안 부려주면 힘이 안 나니까 빨리 충천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아까의 왕족 같은 모습은 어디로 갔냐며 쓰게 웃다가 이내 엘라의 허리에 손을 올린 다음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그러자 엘라는 배시시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먼저 가겠다면서 자리를 떴고, 엘라가 나가자 곧바로 미네르바가 들어오며 레이시에게 가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리슬쩍 레이시를 바라보면서 쭈뼛거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모습에 볼에 입을 맞춘 다음에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공터에 가서 나비를 소환한 다음 등자를 채우기 시작했다.
“조금 갑갑해도 참아주세요, 오늘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아, 대신 오늘 사냥한 고기는 나비가 먹을 수 있게 엘라에게 말해볼게요.”
“그러엉!”
나비는 처음에는 레이시의 등자가 갑갑하다는 듯 몸을 뒤틀어댔지만, 이내 레이시가 사냥을 나가자고 말하자 언제 투정부렸냐는 듯 등자를 얌전히 받아들였고, 레이시는 그런 나비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나비의 등에 올라탄 다음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식겁하면서 날뛰는 말들을 진정시키는 기사들.
어지간한 작은 집보다 커다란 호랑이와 그런 호랑이를 타고 있는 레이시의 모습에 기사들은 서서히 왕도에서 퍼지기 시작한 소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엘라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소문.
그리고 그 연인은 야차이며 테이머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엘라의 자애’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는 소문.
거기까지 떠올린 기사들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레이시에게도 예의를 차려야 할지 말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런 기사들의 고민을 눈치챈 엘라는 나비에게 앉으라고 말하더니 그대로 나비의 등 뒤에 올라탔다.
“자, 가자. 레이시.”
“네, 알겠습니다. 공주님.”
엘라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지도를 보더니 기사들에게 먼저 출발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봤고, 기사들은 레이시의 별명처럼 부드럽고 사근사근한 말투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나비의 목덜미를 가볍게 두들기면서 목적지를 말하는 레이시.
나비는 레이시의 명령에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갔고, 기사들은 재빠르게 달려나가는 나비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대장의 말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따라가기 시작했다.
한 10분 정도 전력으로 달리자 도착하는 마을.
기사가 도착하자 마을 주민들은 엘라에게 연신 인사하면서 감사를 표했고, 엘라는 그런 마을 주민들의 인사를 아무 말 없이 받더니 기사가 온 걸 확인하고는 오늘 죽여야 하는 사냥감의 위치를 물으라고 명령했다.
미텔라의 영주의 영향력을 인정하기 위해서 취한 조치.
기사들은 그런 엘라의 배려에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에 촌장에게 가서 해수는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고, 이내 마을 사냥꾼의 정보를 들은 기사는 엘라에게 가서 보고했다.
그러자 엘라는 레이시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고, 기사들은 메이드를 사냥에 데리고 가겠다는 엘라의 말에 당황하면서 레이시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난처해하는 레이시의 얼굴을 보고 환심을 사기 위해서 레이시는 마을 안에 두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하기 시작했다.
“레이디 루피너스는 듣기로는 공주님의 전속 메이드라고 들었는데 레이디께서 가시기에는 너무 험한 일이 아닐는지……. 레이디 루피너스께서는 마을에 머무시게 하고 저희가 다녀오겠습니다! 이번에 큰 실수를 했지만, 이번으로 그 실수를 만회하겠습니다!”
“으응? 레이시, 멧돼지다. 못 죽이겠어?”
“네? 아뇨. 그게…… 대신 고기는 나비에게 줘도 괜찮을까요?”
“그러도록. 어차피 주민들에게는 쿠미란 자작이 해수 피해에 대한 지원품을 주기로 했으니까 상관 없다.”
“그럼 다녀올게요.”
기껏 사냥에 나가지 않을 기회를 만들어줬는데 그 기회를 그대로 걷어차는 레이시의 말에 당황하는 기사들.
그런 당혹스러움은 레이시가 나비를 타고 촌장이 말한 숲으로 들어가자 더 강해졌고, 이내 숲에서 호랑이의 울음이 아래로 강하게 퍼지자 다시 한번 더 강해졌다.
그렇게 이어지는 자극에 한참을 정신을 못 차리던 기사들은 20초가 흐르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숲에 들어가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사고로부터 레이시를 지키기 위해서 숲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이 본 건 이미 몸통의 절반 이상을 씹어먹고 있는 나비였고, 기사들은 그런 나비의 모습에 숨을 멈추고 레이시를 바라봤다.
여전히 자애로운 얼굴로 나비의 등 뒤에 올라 타 있는 레이시.
하지만 그런 레이시의 아래에 있는 호랑이는 자애의 뒷면에는 흉포함이 깃들어 있다고 말해주듯 입가에 살점과 피를 치덕치덕 바른 채 뼈를 으스러트리고 있었고, 기사들은 완벽하게 상반된 레이시와 나비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며 따라온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공주님의 전언이 있었나요?”
“저, 저희는, 레, 레이디 루피너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해서…….”
“아, 그렇구나. 하지만 괜찮아요.”
“네?”
“만약을 대비해주는 건 우리 미네르바가 해주거든요. 그렇죠? 미네르바.”
레이시의 말에 순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레이시를 바라보는 기사들.
하지만 그 순간 미네르바가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기사들과 레이시 사이를 갈라놓았고, 딱 봐도 자기들이 전부 덤벼도 손끝 하나 다치게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은 기사들은 레이시를 보고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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