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자애의 뒷면에는1
* * *
“흐에에…….”
한계를 억지로 넘게 된 사람은 한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던가?
분명 그 말은 마라토너나 격투기 선수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었던 같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침대에 앉아 멍하니 소리를 내다가 옆에서 엘라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자기를 쳐다보자 멍하니 고개를 돌려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그렇게 기분 좋았냐며 레이시의 볼을 콕하고 찔러보았다.
그러자 스르르 무너지더니 이내 풀썩 쓰러지는 레이시.
힘 없이 풀썩 쓰러지는 모습에 엘라는 웃음을 터트리다가 레이시의 옆에 누워 레이시를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엘라의 체온을 느끼면서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침을 줄줄 흘렸다.
그러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이시를 바라보는 아샤.
아샤는 운동하다가 저렇게 된 사람을 몇 번 봤었던 경험 때문인지 조심스럽게 괜찮은 거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아샤가 걱정하자 자기는 괜찮다면서 하품하다가 다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아무리 좋게 봐도 정상은 아닌 모습.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간 모습에 아샤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레이시에게 이불을 덮어주었고, 레이시는 따뜻한 게 자기 몸에 올라오자 멍하니 소리를 내면서 이불을 끌어안았다.
2시간 동안의 진화.
감정을 서로 말로서 주고받는 게 아니라 직접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듯한 그 감정전달 방법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행복한 경험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 하겠냐고 물어본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사실 매일 밤 이렇게 거칠게 한다면 견딜 자신이 없었다.
실신에 취미가 들린 것도 아니고 매번 할 때마다 개구리처럼 다리를 쩍 벌린 채로 기절해서 매번 남이……,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치우게 한다니…….
레이시는 거기까지 생각하자 천천히 부끄러움이 몰려오기 시작해 얼굴을 가리고 발을 버둥거리기 시작했고, 엘라는 계속해서 이불을 차는 레이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다시금 레이시의 볼을 콕콕 찔러댔다.
그러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들지 못하는 레이시.
레이시의 발길질에 잠에서 깼는지 눈을 비비던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얼굴을 들지 못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고 뺨을 비비기 시작했다.
“일어났나?”
“으우우…….”
미네르바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나체인 걸 확인하고는 날개로 레이시의 몸을 가린 다음 미리 다른 도시로 갈 준비를 하고 있던 미스트가 준비해준 옷을 레이시에게 건넸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손길에 눈을 깜빡이다가 우선 먼저 씻자며 옷을 이불 위에 올려두고 미네르바에게 안겼다.
허리가 풀려버려서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하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허벅지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를 꽉 끌어안고 호숫물에 들어가 레이시의 발부터 천천히 씻기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아까까지 멍했던 몸에 차가운 물이 닿자 정신을 차리면서 몸을 씻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에서 레이시를 끌어안는 엘라.
레이시가 당황하든 말든 미네르바와 엘라는 레이시를 가운데에 끼우고 호숫물로 목욕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따뜻한 체온 덕분에 안 춥게 목욕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부끄러우니 일단 화를 낼지 고민하면서 두 사람에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몸이 깨끗하게 씻기자,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으면서 레이시에게 아프지는 않는지 물어봤다.
아무래도 어제 실신한 것을 신경쓰는 모습.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배려에 어색하게 웃다가 괜찮다면서 미네르바에게 몸을 맡겼고,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이불까지 데려다준 다음 레이시에게 옷을 입혀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축 늘어진 레이시를 껴안고 멀뚱멀뚱 하늘을 올려다봤고, 레이시는 다시 몰려오는 졸음에 늘어지게 하품하다가 미스트가 다가오자 입을 가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레이시에게 앉아 있으라고 말하는 아샤와 미스트.
미스트는 아침이라면서 요거트와 석류알을 섞은 것을 레이시에게 건네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가 준비해둔 아침을 먹으면서 이제 어디로 가는지 물어봤다.
“일이 끝났으니까 보고하러 갈 거예요. 모험가 길드가 유명한 도시니 구경할까요?”
“그럴까요? ……몸상태가 괜찮아지면.”
미스트의 말에 모험가 길드를 상상하며 눈을 빛내는 레이시.
하지만 이내 허리에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나중에 몸이 괜찮아지면 구경 가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작게 웃다가 마차에 앉아서 쉴 수 있는지 물어봤다.
“마차의 안은 전부 청소해뒀으니까 냄새나 그런 것도 없을 거예요.”
“아, 아하하…….”
미스트의 말에 어제 겪은 일이 떠올라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천천히 걷다가 마차에 도착하자 허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고,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당황하다가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몸을 끌어안아 자기 허벅지에 머리를 놓게 했다.
그러자 금방 잠들어버리는 레이시.
엘라는 몸을 웅크리고 자는 레이시를 보고는 옆에 누워 레이시의 몸을 피도록 껴안고 한 손으로 책을 펼쳤고, 밖을 정리하고 온 미스트와 아샤는 그런 세 사람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나비와 하양이를 데리고 와서 출발할 준비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자 엘라는 퀄커스에게 인사한 다음 가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퀄커스가 있는 곳으로 마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야영지와 도시까지 연결되어 있는 일방향적인 이차선 비포장 도로.
미스트는 그 도로를 따라 움직이다가 퀄커스에게 일은 해결하고 가니 뒤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오라토리엄 왕가에 보고하라고 말했고, 퀄커스는 미스트의 말에 일의 해결 방법이 꽤나 부드러워져서 놀랐다고 말하면서 미스트에게 과일을 잔뜩 건넸다.
“올해 나온……, 석류입니다.”
“감사히 먹을게요.”
“아닙니다……. 그럼……, 좋은 여행이……, 되시길…….”
느긋한 말투로 미스트를 배웅하는 퀄커스.
안에서 퀄커스의 목소리를 듣던 엘라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좀 더 빠르게 말하라며 농담을 건넨 다음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천천히 레이시의 녹색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손가락.
미스트는 작은 창문을 통해 엘라를 바라보다가 레이시가 모험가 길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해주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읽던 책을 덮고 잠시 레이시를 바라봤다.
하긴 레이시는 마법이라거나 모험가 길드 같은 것들에 흥미가 있었지.
어째서일까?
그런 것들에서 자유와 사랑이 있기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어주다가 이내 자기도 졸음이 몰려와 레이시의 옆에 누워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고 같은 담요를 덮고 잠을 자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자기도 주섬주섬 자리에 누워 레이시의 한쪽 옆구리를 차지했다.
그러자 한심하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아샤.
아샤는 어른이 꼴사납게 무슨 질투냐면서 투덜거렸고,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투덜거림에 실은 아샤도 저 자리에 끼이고 싶은 게 아니냐고 물어봤다.
저 자리에 끼이고 싶은데 마차를 몰아야 해서 끼이지 못하니까 괜히 질투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미스트는 재미있는 걸 발견했단 얼굴로 싱글벙글 웃었고, 아샤는 미스트가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웃으면서 자기를 쳐다보자 얼굴을 와락 찌푸리면서 그럴 리가 없지 않냐며 미스트의 말을 헛소리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가 엘라와 미스트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꼴밖에 되지 않았고, 그런 것들을 깨달은 아샤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멈추자며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마차를 모는 미스트.
아샤는 미스트의 웃음에 눈을 흘기다가 이내 얌전히 마차를 몰면서 이제부터 갈 도시에 무슨 일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해야 하는 건 보고.
보고가 끝난다면 해수 구제나 이런 것들을 도와주고 기사의 양성에도 도움을 줘야 하던가…….
해수 구제나 귀족들에게 보고하는 건 다른 사람이 하겠지만, 기사의 양성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 아샤는 문득 귀찮다는 듯 뿔을 긁었고, 미스트는 아샤가 뿔을 긁으면서 한숨을 내쉬자 키득 웃으면서 마차를 몰았다.
그리고 그렇게 꾸준히 마차를 몰자 해가 지기 전에 다음 도시에 도착한 미스트.
미스트는 마차의 검문을 받으면서 엘라에게 도착했다고 말해주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눈을 뜨고 레이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러자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몸을 일으키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밖에 성벽이 보이자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미스트에게 사과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사과에 괜찮다면서 키득 웃다가 오늘은 얌전히 쉬고 내일부터 도시를 돌아다녀보자고 말했다.
“이번 도시에서 할 일은 왕가의 위엄을 보이는 일이라 아무래도 편하거든요.”
“그런가요?”
“네, 깃발을 들고 일 같지도 않은 일을 처리하며 백성들에게 안심을 주는 게 이번 일이에요. 조금 불편한 휴가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미스트의 말에 다시 한번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다가 마차를 안으로 몰아갔고, 이번에도 영주가 마중나와 인사하자 미스트는 엘라를 대신하여 인사를 받은 다음 빈 저택으로 안내받았다.
그러자 먼저 저택에 들어가서 저택에 이상한 수작이 있지는 않는지 확인했고, 이내 감시자들이 몇몇 붙어있자 그들을 가볍게 제압해서 쫓아냈다.
그리고 분신과 몇몇 마법, 그리고 스킬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서 저택을 청소하는 미스트.
7명이 머물 목적으로 만든 적은 저택에 20명이나 되는 초일류 메이드가 생겨나자 저택은 5분도 안 돼서 새로 지은 건물처럼 변했고, 미스트는 자기가 한 청소의 상태를 확인하다 이내 만족한 듯 웃으면서 저택에서 나왔다.
“자, 들어오세요.”
“실례할게요.”
마차는 아샤에게 맡겨두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가 들어오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일찍 자라며 레이시를 침대에 눕혔고, 레이시는 자기를 아이처럼 다루는 미스트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몰려오는 수마에 그대로 잠들었다.
그러자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미스트가 준비해준 술을 마시면서 지도를 펼쳤고, 미스트는 엘라가 지도를 펼치자마자 지도 위에서 몇 가지 점을 찍으면서 각각의 점에 엘라가 받은 의뢰를 쓰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해수구제나 도적으로 변한 탈영병과 용병의 처리.
딱히 위험한 의뢰도 아니었기에 엘라는 편하겠다 싶어 기지개를 켜다가 이내 기사의 훈련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스트, 너는 육체적으로 힘든 게 낫다고 봐? 아니면 정신적으로 지치는 게 낫다고 봐?”
“공주님을 달래는 거라면 육체적으로 힘드는 게 낫죠. 저 말고도 귀여운 후배가 있어서 더더욱.”
“역시 그렇지?”
엘라의 질문에 허공에서 서류를 꺼내 건네주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가 건넨 서류를 읽다가 아니나 다를까 당연하게 끼여 있는 영주의 아들의 이름에 한숨을 내쉬면서 이번 일이 꽤 귀찮을 것 같다고 직감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탄생제로 태어난 재앙급 몬스터를 상대하고 말지. 그럼 빡세게 사냥하고 술과 레이시의 몸에 취해 자면 되는데.”
“우후후, 하지만 이번 일은 그런 게 아니네요.”
“너, 즐거워 보인다?”
“설마요. 제가 공주님이 일하실 때 레이시와 잡담을 떨며 놀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나 아무 말도 안 했었거든. 그것보다 명백히 그거잖아.”
미스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하는 엘라.
그러다가 엘라는 자기는 모르겠다며 레이시의 옆에 누워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렸고,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미네르바와 아샤에게 줄 저녁밥을 만들기 위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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