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 다들 정신 좀 차리세요?1
* * *
균형을 일그러트리던 존재가 죽었다.
미스트는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숲의 균형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진 것을 느끼고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내 레이시가 잘 해냈다는 생각에 대견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시를 마중나갔다.
미네르바와 다르게 숲 속에서 누가 자기를 따라온다고 생각하지 못해서인지 그대로 남아있는 레이시의 발자국.
미스트는 그 발자국을 따라가서 레이시를 찾기 시작했고, 얼마 안 가 숲에서 시무룩한 얼굴로 걸어나오는 레이시와 마주쳤다.
“레이시.”
“미스트…….”
뭔가 힘이 없는 목소리.
미스트는 레이시의 목소리에 왜 그러냐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조심스럽게 미스트를 끌어안고 뱀을 죽였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미스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놀랐다는 듯 레이시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배시시 웃다가 자기는 잘 했냐고 물어봤다.
“당연하죠. 레이시가 아니라면 많은 생명이 죽었을 거예요. 사람 뿐만이 아니라 많은 동식물들이요.”
“……에헤헤, 역시 그렇죠? 그럼 돌아가요.”
“네, 그래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미네르바와 함께 섬에서 뛰어내리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품에 안겨서 낙하감을 즐기다가 빠르게 줄어드는 섬을 보고는 뱀이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되어야만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는 뱀의 말.
……뱀에게 나는 감정에 휘둘리는 것처럼 보였을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떨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레이시를 바라봤다.
“주인.”
“아? 네? 도착했어요?”
“아니, 지금은 낙하중이다만…….”
등을 바닥으로 향한 채 레이시를 바라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자세에 움찔 떨다가 이내 미네르바를 믿고 왜 불렀냐고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에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가끔 산책 갈 때 5m 정도의 높이로 날아도 자기를 꽉 끌어안던 레이시가 지금은 꽉 끌어안기는커녕 자기 손에 의지하고 있다.
분명 이상한 걸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뱀을 죽인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날개를 활짝 펼쳐 낙하속도를 낮추더니 천천히 내려가면서 레이시에게 고민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안겨서 그런 건 아니라며 작게 웃다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미네르바에게 걱정하지 마라며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손길에 눈을 깜빡이다가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면서 레이시를 공주님 안기로 안았고, 어제보다 훨씬 느긋하게 날갯짓하면서 천천히 땅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차에 레이시를 놓아준 다음에 레이시의 옆에 앉아 멍하니 엘라와 아샤를 기다리는 레이시와 미네르바.
간혹 가다가 저 멀리서 울리는 굉음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다가 엘라가 꽤 힘내고 있다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레이시를 껴안았다.
그렇게 레이시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행동에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시간을 보냈고, 이내 엘라와 아샤가 돌아오자 마차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러자 엘라는 쉬고 있으면 계속 쉬고 있지 왜 나왔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질문에 두 사람이 입고 있던 가죽 갑옷을 벗겨주며 그냥 만나고 싶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몬스터는 얼마나 더 처리해야 해요?”
“글쎄? 정확한 수는 모르겠지만, 몬스터들의 세력이 약해질 때까지?”
“그건 어떻게 알아요?”
“몬스터들이 짱 박혀서 안 나오게 되면 대충 줄어든 거라고 봐야지.”
“에에에~.”
엘라의 말에 그게 뭐냐며 키득키득 웃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웃음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혹시 뱀을 죽인 것 때문에 그러는 거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젓다가 이내 아샤를 바라봤다.
뱀이 말한 감정에서 독립된 야차.
……야차에게 물어보면 뱀이 말한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호숫물에 발장구치기 시작했고, 엘라와 아샤는 뭔가 이상한 레이시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레이시가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어깨를 으쓱였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고, 기분이 나빠 보이지도 않으니 자기를 부를 일이 생기면 부르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와 아샤는 몬스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미스트의 저녁을 기다렸고, 이내 저녁이 완성되자 마차 근처에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면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답이 나오지 않은 듯 생각에 완전히 잠겨버린 레이시.
엘라는 저녁도 안 먹을 기세로 밥을 먹지 않는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겼고, 레이시는 작은 불빛과 함께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며 엘라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미스트가 뱀을 죽인 것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라는데……, 말할 수 없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면 말해줘. 혼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좀 더 낫잖아?”
“아, 으응…….”
엘라의 말에 조심스럽게 아샤를 쳐다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가 또 자기를 쳐다보자 자기와 관련된 일이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질문에 아리송한 얼굴을 하다가 관련이 있는 편이라는 이상한 대답을 했다.
그러자 아샤는 뿔을 손으로 긁다가 일단 말해보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쭈뼛거리다가 뱀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해봤다.
“제가 남들의 감정에서 독립된 존재로 보이세요?”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뱀에게 독을 먹였을 때, 뱀이 자기를 죽여줘서 고맙다면서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제게 야차에 대한 정보를 말해줬는데 야차는 진화해서 자기만의 감정을 지녀야 진정한 야차가 된다면서, 감정에서 독립해야만 한데요.”
“흐으으응.”
레이시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거리는 아샤.
뭐라고 설명은 못 하겠지만, 레이시가 뭘 말하는지 알고 있는 아샤는 확실히 그건 꽤 중요한 이야기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이시는 아샤에게 자기는 아직 감정에서 독립하지 못했는지 물어봤고, 아샤는 그건 자기가 말하기 조금 어려운 영역이라고 말해주었다.
“네가 나랑 같은 탐욕의 야차였다고 해도 말하기 어려운데 너랑 나는 아예 다른 종류의 감정이잖아. 내가 조언해주기 힘들지. 그리고 나는 엘라가 계기가 되어 경외의 야차가 되는 실마리를 잡았으니까 더 힘들어.”
“그렇구나…….”
“뭐,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 진화한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정말요?”
“응, 기껏해야 패시브 스킬에 액티브 효과가 붙는 것뿐이니까. 그렇게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레이시의 머리를 지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번 상담해보자 마음이 편해졌는지 뱀이 자기에게 걸어준 마법에 대해서도 말해주었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잠시 눈을 감다가 한 번 사용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괜찮겠냐고 물어보는 레이시.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자 아샤는 그러기 때문에 지금 사용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이 누군데 걱정하는 거야? 안 그래?”
“아, 그건……. 그러네요.”
단순한 강함으로 따지자면 여기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제일 강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확실히 레이시는 지금이 아니라면 사용해볼 기회가 없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아샤는 그럼 여기에서 뱀에게 받은 마법을 사용해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뱀에게 받은 스킬을 사용해보는 레이시.
뱀이 주의 깊게 생각하고 사용하라고 말했었기에 레이시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시동어를 말하면서 마법을 사용했고 레이시의 몸에서는 꽃이 피어나듯이 마력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으으응……, 뭔가 변한 건 없네요?”
“그러게?”
한참을 빛나다가 사라지는 마력.
레이시는 그 마력이 사라지자 뱀이 걸어준 마법이 제대로 사용됐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호수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봤고, 호수에 비친 자기 외형이 별로 달라진 게 없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아샤는 레이시에게 액티브 효과를 써봐야 알 수 있다며 레이시에게 한 번 액티브 스킬을 써보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난처하다는 얼굴을 했다.
액티브 스킬을 쓰라고 해도 뭔가 좀 알고 있어야 스킬을 사용할 건데 자기는 그런 걸 전혀 모른다.
그렇기에 난처해하던 레이시는 아샤에게 어떻게 하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멍하니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뺨을 긁적거리다가 난감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워낙 기초적인 질문이라서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일단 ‘사용한다!’라고 생각해볼래? 아무거나 좋으니까?”
“으음~ 네!”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리를 부여잡고 사용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되뇌이는 레이시.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레이시는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다시금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경외의 야차를 사용할 때의 감각을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설명에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아샤의 설명대로 하기 시작했다.
“우선 원하는 감정을 떠올리고……, 마력을 모은 다음 방출해서 그것을 남에게 전해주라는 거죠?”
“응. 그렇게 강제로 남에게 자기 감정을 때려 박는 거야. 한 번 해봐.”
아샤의 말에 저번에 아샤가 경외의 야차를 사용했을 떠올리는 레이시.
무언가 지켜진다는 느낌이 들면서 안심이 됐었던 것은 경외에서 경의 감정을 강제로 전한 거고, 아샤가 갑자기 무서워졌었던 건 외의 감정을 강제로 전달한 거구나…….
그렇다면 자기는 뭘 전달하는 걸까?
연정이니까 사랑의 감정을?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아샤가 사용했을 때를 흉내내면서 자신의 근간이 되는 연정의 감정을 강하게 퍼트리기 시작했다.
남에 의해서 강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스킬이라 미숙해서인지 필요 이상으로 퍼져나가는 마력과 작게 퍼지는 목소리.
하지만 스킬은 확실히 작동했고 아샤를 비롯한 일행들은 그런 마력을 느끼며 레이시를 바라봤다.
“……응?”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뭔가 변한 것 같은 레이시의 모습.
가장 먼저 이변을 느낀 엘라는 눈을 살짝 찌푸리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다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향기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뭔가 잘못됐나 싶어 엘라에게 다가가 괜찮은지 물어봤다.
그러자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괜찮다고 말하는 엘라.
하지만 괜찮다는 말과는 다르게 엘라는 다급하게 퀄커스에게 다른 곳에 가달라고 명령했고, 퀄쿼스는 엘라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를 떴다.
“정말 괜찮은 거죠?”
“괜찮아! 그러니까 잠시만 떨어져줄래?”
“에……? 네……?”
엘라의 말에 당황하며 엘라를 쳐다보는 레이시.
괜찮다고 했으면서 왜 멀어지라는 거고 또 갑자기 엔트인 퀄커스 씨는 다른 곳으로 보내는 걸까?
여러모로 앞뒤가 안 맞는 엘라의 모습에 레이시는 미스트를 바라봤고, 이내 미스트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 떨면서 쭈뼛거리기 시작했다.
입가에 늘 걸려있던 미소와 여유가 사라진 채로 숨을 일부러 더 천천히 내쉬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모습에 뭔가 작동되긴 했구나 싶어 조심스럽게 아샤와 미네르바를 바라봤다.
얼굴을 푹 숙인 채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아샤와 부엉이 특유의 목 관절의 유연함을 살린 목의 각도로 자기를 뚫어져라 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다가 다들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물어봤고, 미스트는 아직은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요.”
“아, 아하하……, 지, 진정하죠?”
“아, 죄송해요.”
“……네?”
“지금 마지막 남은 이성이 사라졌네요.”
“후으으읍!?”
레이시의 턱을 잡더니 그대로 입을 맞춰버리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행동에 놀라 고개를 뒤로 빼면서 입을 뗐지만, 미네르바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레이시를 껴안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두 사람이 움직이자 이내 인내심이 없어졌는지 레이시에게 다가가는 엘라.
엘라가 움직이자 아샤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당황하는 와중에 마차의 안으로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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