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천공섬4
* * *
“흐음, 역시 바질리스크는 귀찮다니까.”
야영지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자 피칠갑을 한 채로 야영지에 들어오는 두 사람.
피의 색이 인간의 붉은 것이 아닌 초록색이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꺼려지는 모습이라 레이시는 물을 떠서 두 사람에게 가져다주었고, 엘라는 레이시가 물을 가져오자 고맙다면서 몸을 씻으며 천공섬에서 뭔가 발견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거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면서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고, 엘라는 레이시가 자기 눈치를 보자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서 뱀을 죽이겠다고 말하지 못한 이유를 물어봤다.
“그, 그게……. 그러니까…….”
엘라의 질문에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돌리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가 뱀을 죽일 마음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죽일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그래?”
“그……, 네. 뱀은 제가 뱀을 죽여야만 한다고 했는데 저는, 그러니까…….”
“깔끔하게 죽일 방법이 없다. 이거지?”
“네.”
“곤란하네. 뱀이 그렇게 말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아마 카르마 수치가 선인 사람이 죽여야 한다는 건데 우리 중에는 카르마가 +쪽에 있는 사람은 레이시, 너밖에 없어.”
“으윽.”
엘라의 말에 앓는 소리를 내면서 시선을 피하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우선 뱀을 편하게 보낼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엘라가 벗은 옷을 정리해 빨기 시작했다.
“으아, 찐득거려…….”
“바질리스크니까. 이래서 바질리스크는 싫단 말이지.”
레이시에게 옷을 잘 부탁한다며 옷을 벗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노력해보겠다며 옷을 물에 불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조심스럽게 아샤에게 뱀을 고통 없이 죽일 방법이 없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다가 독을 쓰면 될 거라고 말했다.
“도, 독이요?”
“뱀의 몸통 두께가 30cm 정도면 도끼로 어떻게든 고통 없이 죽이는 방법을 가르쳐주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며. 그렇다면 단기간에 무언가를 고통 없이 죽이는 방법 같은 건 못 가르쳐줘.”
“그런…….”
“미스트! 마법은 가능해?”
“아뇨, 마법은 오히려 더 힘들겠죠. 몸은 계속 움직였지만, 마력은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야하는 걸요?”
“그러니 독밖에 없네. 그거라면 취급 방법만 알아내고 먹이면 끝나니까.”
“으, 으으으으…….”
아샤의 설명에 앓는 소리를 내는 레이시.
레이시는 고민을 이어가면서 한참을 버둥거리다가 이내 아샤의 말 외에는 딱히 해결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그 뱀도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각오하고 있을 거야.”
“그건……, 그렇지만요. 그래도……, 안락사라니, 제가 그런 걸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도. 하지만 재앙을 막을 수 있잖아. 이번만큼은 힘내줬으면 해.”
아샤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헤실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샤의 말대로 힘내보겠다면서 기운을 차렸고, 아샤는 레이시의 반응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면서 레이시의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그러는 것도 잠시 일의 중요도가 중요도라서 그런지 아샤는 금방 표정을 싹 바꾸고 레이시에게 뱀을 죽일 방법을 떠올려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엘라와 미스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우선 이번 일을 하게 될 레이시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은데, 요구사항이 있을까?”
“뱀을 죽일 때 통증이 없었으면 해요. 최대한 편하게 보내주세요.”
“그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너를 위험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다른 건?”
“다른 건 없어요.”
“좋아, 그럼 미스트, 미스트는 독을 준비해줘. 그리고 레이시에게 갑옷도 준비해주고. 아샤는 계속해서 나랑 같이 몬스터를 처리하자. 탄생제가 진행중이라는 걸 알고도 그냥 있을 수는 없어.”
“그래.”
의논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고, 레이시도 그런 걸 알고 있어서 뱀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으니까.
그렇기에 엘라는 가벼운 추가 지시만 내리고 다음 날에 다시 움직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라와 아샤의 옷을 세탁하기 시작했다.
초록색의 찐득거리는 피가 잔뜩 늘러붙은 엘라와 아샤의 옷.
레이시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피를 닦다가 엘라가 옆에 앉아 커피를 건네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양손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엘라는 빨대를 꽂아서 레이시에게 커피를 건넸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에 기대어 커피를 마셨다.
자기 입맛에 맞춰서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은 커피.
레이시는 달달한 커피가 입에 들어오자 스트레스가 가시는지 배시시 웃다가 세탁을 끝내고 빨랫줄에 아샤와 엘라의 옷을 걸었고, 뚝뚝 떨어지는 투명한 물방울에 지친다는 듯 입을 열었다.
“피……, 맞죠?”
“응, 피야. 되게 끈적거리지? 이래서 바질리스크는 사냥하고 싶지 않은 거야.”
“아하하하.”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씻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손을 전부 씻자 고맙다면서 레이시에게 머리를 기댔고, 레이시는 평소와 다르게 엘라가 기대오자 당황하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엘라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엘라는 키득 웃으면서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쭈뼛거리다가 괜히 그런다면서 엘라에게 투덜거렸다.
그러자 피식 웃으면서 부끄럽냐고 물어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그럼 안 부끄럽냐며 커피를 마시면서 눈을 흘겼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푸흐흐 웃다가 하지만 정말로 고마워서 하는 말이라며 눈을 감았다.
“레이시가 없었다면 이번 일은 엄청나게 힘들어졌을 테니까,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는 거야.”
“으으으응…….”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그리고 부끄러우니까 고맙다는 말 금지.”
“아하핫! 알았어, 사랑해.”
“어째서 더 부끄러운 말을 하는 거예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투덜거리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볼을 살짝 꼬집다가 잘 부탁한다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내일 할 일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엘라는 일어나자마자 레이시의 이마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춘 다음에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했고, 아샤도 레이시에게 연막탄을 건네주며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위험하면 터트리고 도망쳐.”
“네, 그럴게요. 두 사람도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래, 그럴게.”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이마를 가볍게 튕기고 야영지를 떠나는 두 사람.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제 자기들도 가보자면서 미네르바에게 안겼고,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조심스럽게 안더니 그대로 날개를 펼쳐서 다시 천공섬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천공섬에 도착한 레이시.
레이시는 다시 한번 천공섬에 발을 디디자 품에 있는 독약이 무겁게 느껴져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미네르바의 손을 잡고 빨리 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레이시를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보면서도 앞장서서 길을 가르쳐주는 미네르바.
저번에 왔을 때 길을 외워뒀었기에 두 사람은 이번에는 레서판다의 안내 없이도 헤매이지 않고 커다란 뱀에게 갔고, 커다란 뱀은 뭔가 각오한 듯한 레이시의 얼굴에 눈을 깜빡이다가 자기를 죽이러 왔냐고 물어봤다.
“네……. 죄송해요.”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네, 어린 야차여. 이건 죽어야 할 때에 죽지 못 했었던 동물이 이제야 죽는 것뿐이니.”
“으, 으응…….”
뱀의 말에 쭈뼛거리다가 품에서 독을 꺼내는 레이시.
뱀은 레이시의 품에서 꺼낸 걸 보다가 그걸 마시면 되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독을 설명해주었다.
“어제 엘라와 아샤가 죽인 바질리스크에서 추출한 독이래요. 마시는 순간 내부 장기부터 석화가 진행되어 천천히 고통 없이 죽는다고 했어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가 들어드릴 테니 마음껏 말해주세요.”
그리고 설명을 끝내고는 다시금 쭈뼛거리기 시작하는 레이시.
안락사든, 살처분이든 살아있는 것의 죽음을 도와준다는 생각에 레이시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고, 뱀은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천천히 입을 벌리더니 레이시에게 독을 넣으라는 듯 혀를 낼름거렸다.
그러자 레이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뱀의 입에 독을 부어주었고, 뱀은 레이시가 독을 전부 부어주자 만족한다는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네. 나를 죽여줘서.”
“아, 아하하…….”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렇군. 어린 야차여. 진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네?”
“죽기 전에 다른 생명체를 도와도 지맥은 뭐라고 하지 않겠지. 도와주겠네.”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어가는 뱀.
“야차는 다른 존재의 감정을 받아서 태어난다네. 그것이 나쁜 감정이든, 아니면 좋은 감정이든.”
마수와 신수에 대한 것을 처음부터 시작했기 때문인지 뱀은 야차에 대한 것도 처음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뱀은 레이시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차는 한 번, 진화를 이루어내지. 그리고 그 진화를 이루어낸다면 야차는 그 때부터 진정한 야차가 되는 걸세.”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린 야차여. 자네가 다른 야차를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감정에 휘둘려서 미쳐 날뛰는 존재가 진정으로 하나의 존재로 완벽하게 독립했다고 생각하나?”
눈을 가늘게 뜨고 머리를 내미는 뱀.
레이시는 뱀의 말에 당황하다가 자기에게 머리가 다가오자 뱀의 머리를 끌어안고 쓰다듬어주었고, 뱀은 레이시의 체온에 눈을 천천히 감고서 말을 이어나갔다.
“어린 야차여, 야차는 자기를 태어나게 해준 감정에서 독립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의 생명체가 될 수 없다네.”
뱀의 말에 아샤에 대한 것을 떠올리는 레이시.
뱀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레이시의 손길이 변하자 레이시에게 짐작 가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감정을 먹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게 아닐세. 야차란 우리가 지맥에서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정이라는 걸 먹는 생명체. 그러니 그건 당연한 거지. 하지만 감정에 의존하는 건 감정을 먹는 것과는 다르단 걸세.”
“으으으응…….”
뱀의 말에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레이시.
뱀은 그런 레이시의 목소리에 이해한다는 듯 작게 눈을 뜨다가 다시금 눈을 감고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내 말이 이해가 안 되겠지. 그러니 딱 한 번, 두 시간 동안만 강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마법을 걸어주도록 하겠네. 기억하게나, 어린 야차여. 시동어는 개화라네.”
“개화요……?”
“그렇다네. 개화라네. 기억하게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사용하게나.”
말을 끝내자 집중하듯 몸의 비늘을 파르르르 떠는 뱀.
레이시는 그런 뱀의 움직임에 당황하며 말리려고 하다가 이내 자기 몸을 반딧불 같은 마력이 감싸고 돌자 멍하니 그 마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독이 돌아 죽었는지 뱀은 축 늘어져서 마지막 숨결을 내쉬었고, 레이시는 그런 뱀의 모습에 당황하다가 이내 숲 안쪽에서 여러 동물이 나오자 조심스럽게 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돌아가요. 미네르바.”
“으응, 알겠다. 미스트에게 신호를 보내겠다.”
“네…….”
죽은 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시.
레이시는 뱀이 한 말을 떠올리다가 미네르바가 자기 손을 잡자 뱀에게서 시선을 떼고 미스트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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