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197화 (197/542)

〈 197화 〉 천공섬­3

* * *

“이제 눈 뜨셔도 괜찮아요.”

“아…….”

미스트의 말에 천천히 눈을 뜨는 레이시.

미스트는 단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레이시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우선 공터부터 찾아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섬찟했던 소리와 다르게 깔끔한 주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선 섬 중앙으로 가볼까요? 저쪽으로 가면 될 거 같아요.”

“으응……. 또 마수가 나타나지는 않겠죠?”

“네, 그럴 거예요. 일부러 피 냄새를 퍼트리기도 했고, 저 멀리 시체를 걸어두기도 했으니까 숲에 이질적인 것이 들어왔다는 걸 깨달았을 거예요. 저희를 관찰하겠죠.”

마수는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신수들은 우리가 위험한 존재인지 판단하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숲속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피식 웃다가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숲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뭔가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요…….”

“자연적으로 늘어나는 거였을까요?”

한 시간 가량 쉬지 않고 걸으면서 숲 안을 탐색하는 레이시와 미스트.

하지만 두 사람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결국 레이시는 휴식을 취할 겸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기 위해 공터에 앉아 미스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봤다.

“두 시간 정도 좀 더 조사해보고 그 때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면 자연적으로 마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마수를 줄이도록 할까요?”

“으으응…….”

미스트의 말에 유해생물을 구제하는 걸 떠올리고는 안색을 굳히는 레이시.

레이시는 전생에서 할아버지를 도와주다가 닭을 생매장하며 살처분했던 게 떠올라 입을 잠시 막았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자기 편의를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을 신경 쓰는 건가 싶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신경 쓰이세요? 동물을 죽이는 게.”

“그, 네……. 그런데 해야겠죠? 안 그러면 재해가 일어나니까.”

“으음, 레이시는 강하네요. 착하다고 쓰다듬어드릴까요?”

“저 어린애 아닌데…….”

미스트의 말에 투덜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미스트에게 기대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질 수 없다는 듯 등 뒤에서 레이시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품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레서판다를놓아주었다.

그러자 쪼르르 달려가기 시작하는 레서판다.

몸을 버둥거리면서 붕대를 풀었는지 레서판다는 레이시의 허벅지에 붕대를 남겨둔 채 쪼르르 숲으로 달려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 모습에 잘 됐다며 웃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러진 다람쥐를 치료해줬을 때도 이런 감정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질투할까 싶어 미네르바의 목에 걸어둔 초커의 장식털을 만지작거리면서 미네르바는 다치지 말라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걱정에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주인.”

“네?”

“레서판다가 주인을 부르는 거 같다.”

“에?”

한참을 미네르바와 손장난을 치다가 미네르바의 말에 고개를 돌리는 레이시.

그러자 레서판다가 숲에 들어가다말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고, 레이시는 그런 레서판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미스트를 바라봤다.

“일단 따라가볼까요? 신수니까 뭔가 도움을 주겠죠.”

레이시의 시선에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일단 따라가보자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레서판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뭔가 갑자기 멈춰서는 레서판다.

레이시와 미스트는 레서판다가 갑자기 멈추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레서판다가 멈춰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뭔가 하나가 떠오른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실험을 해보자면서 몸을 돌려 아까 앉았던 그루터기에 다시 앉았다.

그러자 다시 움직이는 레서판다.

미스트가 일어나면 멈추고, 미스트가 앉으면 움직이고…….

레이시는 그런 레서판다의 움직임에 레서판다가 미스트를 경계하고 있으며 자기와 미네르바만 다른 곳으로 안내하려고 한다는 걸 깨닫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왜 자기랑 미네르바는 되는데 미스트는 안 된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이내 미스트가 쓰게 웃으면서 단검을 꺼내고 화려하게 빙빙 돌리다가 다시 소매 속으로 숨기자 안타깝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미스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나는 안 죽였구나…….

미네르바는 아예 야생동물처럼 먹을 것만 죽이고 자기를 죽이려는 녀석만 죽였다고 했으니 합격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미스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안 다치고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다칠 것 같으면 도망치세요. 아시죠?”

“네. 미스트도 위험하면 도망치세요.”

“그럴게요. 그럼 나중에 뵈요.”

미스트의 말에 숨을 깊게 내쉬더니 다녀오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미네르바만 믿는다며 몸을 살짝 기댔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환하게 웃으면서 앞장서서 레서판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 레이시와 미네르바.

안쪽으로 이동할수록 숲의 나무는 점점 키가 커져서는 햇빛이 잘 들지 않을 정도가 되었고, 레이시는 그런 숲의 분위기에 조금씩 압도당하면서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자 다시금 점점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 햇빛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숲 안쪽을 바라봤다.

나무를 중심으로 커다란 호수가 있는 숲 안쪽.

지상에 있던 호수보다는 작았지만, 적어도 직경 5m는 되겠다고 생각한 레이시는 레서판다가 멈춰서 호수를 보라는 듯 호수 바로 앞에서 앉아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레서판다를 바라보는 레이시.

레서판다는 레이시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쏠리자 호수를 손바닥으로 참방참방 수면을 두들겼고, 레이시는 그런 레서판다의 행동에 시선을 호수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천천히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무언가.

레이시는 수면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형상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호수를 바라봤고, 레이시의 시선을 느낀 건지 호수 아래에서 꿈틀거리던 것은 천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으아아…….”

그 모습을 보고 약간 아연실색하는 레이시.

엔트 다음에는 거대한 뱀이냐며 당황하다가 금방 평정심을 되찾고서 뱀을 바라봤고, 미네르바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레이시를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섰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처음 겪는 텔레파시에 화들짝 놀라며 뱀을 바라봤다.

“다, 당신인가요?”

“그렇다네. 야차여.”

“어, 으으응……. 그, 그러니까 당신이 레서판다를 시켜 저희를 불렀나요?”

“시킨 건 아니라네, 나는 그 아이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그 아이가 자네들을 내게 소개한걸세. 아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커다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거대한 뱀.

레이시는 거대한 뱀이 한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마수의 이상증식이 자연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냐고 물어봤고, 거대한 뱀은 레이시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금 이 일은 내가 죽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네……?”

뱀의 말에 당황하며 뱀을 쳐다보는 레이시.

뱀은 그런 레이시의 시선에 싱긋 웃더니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좋을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그런 뱀의 질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듯 앓는 소리를 내다가 처음부터 모든 걸 설명해줄 수 있을지 물어봤다.

그러자 어렵지 않다며 뱀은 설명을 시작했다.

“신수와 마수, 이것들이 생기는 이유를 아나?”

“그……, 아뇨, 거기에서부터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

“좋네. 신수와 마수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좀 더 쉽게 다루기 위해서 선택받는 존재일세. 신수들은 하사받은 힘으로 생명이 안전하게 태어나고 성장하도록 돕고, 마수는 그 힘으로 살아있는 것의 투쟁본능을 자극하고 서로 싸우게 만들지. 그리고 그건 지금까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네.”

“지금까지라는 건……?”

“내가 오래 살면서 너무 많은 지맥의 힘을 빨아들였지. 그러다 보니 지맥은 나를 죽일 마수를 마구잡이로 늘이기 시작했고, 내가 머무는 지역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마수의 폭력적인 성향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지.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이 섬 아래에는 온갖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지 않나?”

“그, 그러고 있어요. 탄생제가 중기까지 진행되었다고…….”

“역시 그렇군…….”

레이시의 대답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는 뱀.

레이시는 그런 뱀의 모습에 쭈뼛거리다가 이 일이 일어난 원인을 알고 있으면 해결 방법도 알고 있냐고 물어봤고, 뱀은 당연히 알고 있다며 싱긋 웃었다.

“자네가 나를 죽이면 된다네.”

“……네?”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생긴 문제이니 내가 죽으면 해결되는 일. 하지만 마수나 악한 자가 나를 죽이면 그 즉시 악한 자들의 기운이 승리를 선포하며 날뛰다 지쳐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파괴하겠지. 그러니 자네가 나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네. 어린야차여.”

“네에!? 저, 저는 못 할 것 같은데…….”

“으음, 자네가 뭔가 죽이는 걸 어려워 한다는 건 보자마자 깨달았다네. 하지만 자네가 아니면 안 된다네.”

“미, 미네르바도요?”

“어려울 걸세.”

“어……, 어어…….”

뱀의 말에 크게 당황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을 하는 레이시.

뱀은 그런 레이시의 얼굴에 지금 당장은 자기가 힘을 억누를 수 있으니 괜찮지만, 진지하게 자기를 죽이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는 그런 뱀의 이야기에 일행과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오겠다고 말했다.

“으음, 알겠네. 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해주길 바라네.”

“네, 그럴게요…….”

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시.

레이시는 복잡한 얼굴로 뱀과 레서판다의 배웅을 받다가 미스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이내 미스트에게 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렇군요. 너무 오래 살았기에 지맥이 그를 제거하기 위해 마수들을 만들었고, 탄생제를 막으려면 레이시처럼 착한 사람이 그 뱀을 죽여야 한다는 거죠?”

“네. 그런데 저는…….”

“뱀을 죽일 수 없어서 일단 저희와 이야기를 해본다고 시간을 벌고 온 거고요.”

“네. 맞아요. 그……, 죄송해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이런 식으로 해서…….”

“괜찮아요. 이런 말을 제게 그대로 전해줬다는 건 뱀을 죽일 각오가 안 되었을 뿐 할 의지는 있다는 거니까요. 레이시가 망설이는 이유는 뱀에게 고통을 주면서 죽일 거 같아서죠? 그 부분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보죠. 우선 섬에서 내려가볼까요?”

레이시가 망설이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웃는 미스트.

미스트는 우선 엘라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의 방침을 정하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섬에서 내려갈 거냐고 물어봤다.

“당연하죠?”

“으응, 올라올 때 꽤 무서웠는데.”

“아하하, 괜찮아요. 떨어져도 레이시를 구해줄 테니까요.”

“그런 말을 하면 더 무섭잖아요…….”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미네르바를 꽉 끌어안고 잘 부탁한다고 속삭이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말하더니 이내 그대로 섬밖으로 뛰어내렸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비명을 지르다가 미네르바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야영지의 바닥에 발이 닿자 울먹거리다가 미네르바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세게 찔러대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손가락질에 이래서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소설이 있구나 싶어 헤실거렸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얼굴에 한숨을 푹 내쉬다가 엘라와 아샤를 기다리자며 마차에 앉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