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생일 선물1
* * *
“으음, 이 여관, 방음은 대단하네.”
“아하하, 그러네요, 공주님.”
이른 아침.
레이시가 일어날 시간이 되자 엘라와 미스트, 그리고 아샤는 레이시를 계속해서 재우고 속이기 위해서 레이시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본 건 나체로 미네르바의 품에 안겨 쿨쿨 자고 있는 레이시였다.
지난 밤에 얼마나 거칠게 했는지 레이시는 세 사람이 들어오면서 바람이 불었는데도 반응하지도 못하고 미네르바의 품에 안겨서 자고 있었고, 미네르바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으르렁거리면서 귀찮다는 듯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엘라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미네르바에게 레이시를 붙잡아둘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엘라의 말에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레이시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날개로 레이시의 몸을 덮어 다시 재우는 미네르바.
엘라는 꺼진 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였고, 레이시는 따뜻해진 방 안의 기온에 좀 더 편하게 누워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음 놓고 메모 한 장을 남기고 빠져나가는 엘라와 미스트, 아샤.
엘라는 밖에 나오자마자 우선 귀금속을 다루는 곳부터 가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장신구를 선물할 거냐고 물어봤다.
“레이시는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머리를 정리할 수 있는 것으로 주문하게. 어제 돌아다니다보니까 야시장에 비녀라는 걸 팔던데 그걸로 머리를 정리할 수 있게 해주면 하고 다니지 않을까?”
“음, 그건 그러겠네요.”
“덤으로 인첸트도 좀 하자. 레이시가 반응하지 못하는 공격에서 지켜주게.”
“좋네요. 무슨 마법을 거실 생각인가요?”
“우선 자동 방어 마법 정도는 해줘야겠지? 덤으로 급할 때는 폭탄으로 사용할 수 있게 심연마법도 넣어놓자. 자가포식 마법이면 괜찮지 않을까?”
“음~ 공주님.”
“응?”
“제 인첸트 스킬이 아무리 수준이 낮아서 원본의 40~50%정도 밖에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가포식은 조금……. 레이시가 휘말리지 않을까요?”
“아니, 위험할지도 모르잖아? 위력을 한 30%로 낮추고 사용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럴까요…….”
위력을 아무리 죽여봤자 특정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걸 먹은 다음에 심연 속으로 사라지는 마법은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을까?
미스트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자기가 몇 가지 마법을 더 넣어서 위력을 약하게 만들면 괜찮겠지 싶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첸트 할 마법에 대해서 엘라와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샤는 진지한 얼굴로 전략 병기를 만들려고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다가 한숨을 내쉬다가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비녀라는 것부터 고르자고 말했다.
“선물인데 모양부터 정해야하지 않겠어? 인첸트는 어차피 나중에 할 거잖아.”
“아, 그것도 그러네. ……음, 가자. 그럼 비녀로 하는 게 좋겠지?”
“그러던지.”
어제 히데 자작에게서 들은 귀금속 가공점에 들어가는 엘라 일행.
엘라는 장인이 마중 나오자 손짓으로 장인을 앉힌 다음 비녀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비녀에 사용해줬으면 하는 금속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여기 금속은 내가 직접 제공하도록 하지.”
“헉……!”
일반인은 평생을 노력해도 만질 수도 없는 금속과 보석을 제공하는 엘라.
장인은 눈앞에 놓여진 재료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엘라에게 정말로 이 금속을 사용하는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장인의 질문에 그럼 사용하지도 않을 것들을 주겠냐며 어깨를 으쓱이면서 조건을 걸기 시작했다.
“무게는 100g 이하로 만들 것. 그러면서도 6위계 마법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내구성을 지닐 것. 에메랄드로 비녀를 장식할 것. 기간은 5일 주지. 충분하지?”
“노,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노력은 필요 없어. 성공시켜. 자네는 히데 자작이 추천해준 장인이잖나. 성공 할 수 있겠지? 드워프 장인.”
“끅…….”
엘라의 말에 위장약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장인.
하지만 한 나라의 공주 앞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자기 가게가 멀쩡할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장인은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장인의 대답에 흡족하게 웃더니 레이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레이시가 어떤 사람인지 상세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엘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 장인의 긴장은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우선 사용자가 왕족이 아닌 왕족이 아끼는 메이드라는 것도 한몫했지만, 레이시에 대한 것을 말할 때의 엘라의 모습이 애인과 커플링을 맞추는 처녀와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레이시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엘라처럼 행동하겠지.
즉, 이건 왕가의 명령이 아니라 귀족의 처녀 아가씨를 만족시키는 일!
그렇게 생각한 장인은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면서 호언장담했고, 엘라는 그런 장인의 말에 흡족하게 웃다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 선물로는 뭐가 좋으려나……. 채찍?”
“그건 내가 저번에 줬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레이시는 채찍 거의 안 쓰잖아. 지금 쓰고 있는 거면 충분할 거야.”
“그럼 팔찌라도 줄까? 비녀보다는 면적이 크니까 다른 마법을 넣을 수도 있겠지. 음, 그러네, 이번에는 흑마법으로 해서 해저감옥 마법이라도 넣어볼까?”
“너, 아까부터 레이시를 걸어다니는 전략병기로 만들 셈이야?”
극단적인 공격마법인 흑마법에서도 잔혹하기로 유명한 마법.
사용자의 마력량에 따라 수압이 결정되는 물방울을 소환해서 상대방을 가두는 마법으로 테이밍한 동물을 먼 거리에서도 소환할 수 있는 레이시가 사용한다면……, 아마도 사람 머리만한 바위가 주먹 수준으로 압축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엘라를 쳐다봤지만, 엘라는 그런 아샤의 시선에 아샤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당연하다는 듯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레이시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지켜줘야 하는데 이런 5~6위계 따리의 마법으로는 불안하지. 물건이 견디기만 했다면 심판의 눈동자나 최후의 날 같은 걸 인첸트 했을 거야.”
“제정신이냐…….”
엘라의 말에 질린다는 얼굴을 하는 아샤.
엘라는 그런 아샤의 시선에 그럼 너는 뭘 선물해줄 거냐고 골라보라고 말했고, 아샤는 갑자기 대결을 걸어오는 엘라의 행동에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다용도 쿠크리 나이프를 들었다.
“이거면 괜찮지 않을까? 도끼로도 쓸 수 있고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고 무두질에도 쓸 수 있어. 주방용 칼을 잃어버린다면 주방용 칼로도 쓸 수 있지.”
“센스 없어. 우리 레이시가 너네 부하인줄 알아?”
“실용성 쩔거든, 등신아.”
“팔찌랑 비녀가 훨씬 낫겠네.”
아샤의 대답에 아샤를 비웃으면서 자기가 준비한 선물이 몇 배는 낫다고 말하는 엘라.
아샤는 그런 엘라의 대답에 눈썹을 까딱거리다가 팔찌나 비녀 같은 것보다는 쿠크리가 훨씬 낫다면서 중지를 치켜들었고, 엘라는 그런 아샤의 대답에 레이시에게는 자기 선물이 몇 배는 더 실용적일 거라며 아샤를 비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험악해지는 분위기.
레이시가 있었다면 단번에 자기 때문에 싸우는 거라면 둘 다 그만 두라고 울었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그럼 생일 선물을 레이시에게 줬을 때 누구의 생일 선물로 가장 기뻐하는지로 겨루면 되지 않냐며 중재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요?”
“흐응……. 좋은 수네. 우리끼리 싸우면 칼부림 날 거 같고.”
“미스트, 너도 하는 거겠지?”
“네, 저도 낄게요.”
“좋아, 그럼 두 시간 뒤에 저 광장에서 보자.”
“하, 진 사람은 어떻게 할래?”
“레이시 생일파티 할 때 알몸에 리본만 두르고 ‘내가 선물이야.’라고 말하기.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런 말 하는 건 이긴 사람이 정해주자.”
“……? 어, 뭐, 그러지.”
아샤의 내기 내용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라.
알몸에 리본만 두르고 내가 선물이라고 말하는 거, 그거 그냥 연인끼리 하는 이벤트 같은 거 아닌가?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아샤가 의기양양하게 웃자 일단 그렇게 하자며 각자 생일 선물을 고르자고 말했고, 엘라의 말에 미스트와 아샤는 각자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시간이 흐르고 광장에서 모인 아샤와 미스트는 각자 자기가 준비한 선물을 말했다.
“나는 여전히 쿠크리 나이프. 이거 하나만 있으면 도끼나 칼을 챙길 필요가 없으니까 밖에서 야영할 일이 꽤 있는 레이시에게 좋을 거야.”
“저는 남성용 가터벨트요.”
“남성용 가터벨트……?”
“네, 레이시, 언제나 셔츠의 밑잔을 신경 쓰면서 불편하다고 했거든요. 이거면 셔츠 밑단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으니까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요, 구조상 승마할 때도 불편함이 없을 거고.”
두 사람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엘라.
아샤야 간단하게 이길 수 있겠지만, 미스트는 아무래도 어렵겠는데…….
물론 아샤가 정한 벌칙을 한다고 해도 자기는 부끄러운 게 전혀 없지만, 그래도 이기고 싶었기에 엘라는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조금 이른 생일파티를 끝내고 레이시가 정신을 못 차릴 때 자기 선물을 내놓자고 말했고 이내 미스트에게 이번 주 안에 파티를 열 수 있냐고 물어봤다.
“파티요? 으음, 이른 파티를 연다고 하면 열 수 있죠. 여관은 이미 빌려뒀고 개조의 허락만 받는다면 준비할 수 있어요.”
“좋아, 어차피 레이시와 만난 날에 시간이 비는지 안 비는지 확신할 수도 없으니까 생일 파티를 일찍 열자. 이랬다가 다음에 또 쉴 수 있으면 그 때 또 작게 우리들끼리 파티를 열면 되니까.”
“……푸훗,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고 장인이 3일 뒤에 오라고 했었지? 그 사이에 이 근처에서 처리할 일들을 처리하자. 미스트! 보고 해.”
“레이시가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하죠.”
“그래.”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여관으로 돌아가는 엘라.
엘라는 생일파티 때 레이시에게 선물을 어떻게 줄지 고민하는 모습이라 미스트는 엘라에게 자기가 레이시에게 가보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스트를 보냈다.
“레이시? 일어났나요? 들어갈게요?”
두 번 노크 이후 3초 기다리다가 다시 두 번 노크.
안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피식 웃은 미스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이내 셔츠만 간신히 차려입고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피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조용히 웃다가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아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입술에 키스한 흔적 남아있다고요?”
“……!?”
레이시가 고양이 수인이었다면 지금 이 말로 꼬리가 바짝 서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크게 놀라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뒤쪽의 미네르바를 보고 정리할 시간을 줄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5분 정도 문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미스트.
미스트는 밖에 나가서 회중시계로 시간을 보기 시작했고, 딱 5분쯤 될 때 레이시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방에서 나왔다.
“으음, 셔츠 정리가 조금 덜 됐어요.”
“아……. 으으으…….”
얼굴을 붉히면서 미스트의 손길에 몸을 베베 꼬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가리다가 도망치듯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레이시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손을 흔드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인사에 헛기침하다가 빈자리에 앉았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테이블에 종이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가 이 도시에서 해결할 일인데, 우선 뭐부터 해볼까?”
“으, 으음……, 해수 구제는 미네르바와 제가 할까요?”
“그래? 그럼 산적은 내가 처리할게.”
“그럼 난 몬스터 처리.”
“어머, 그렇다면 저는 다과회 참석에 나갈게요.”
각자 일이 정해지자 한 5일은 걸리겠다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힘들겠다고 중얼거리면서 걱정하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생일파티까지 시간을 잘 끌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씩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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