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때 이른 생일 파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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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저 마차를 타고 지정한 도로를 타고 제가 지정한 도시까지 갔다가 돌아오시면 됩니다. 경비나 이런 건 저희가 다 지원하고요. 도로의 불편한 점이 있다면 보수하고 싶은데, 저의 신분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적어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으으음…….”
레이시가 마음이 변하기 전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재빠르게 설명을 덧붙여서 말하는 돌로로스.
레이시는 돌로로스의 말에 잠시 혹했지만, 이내 자기 신분을 떠올리고는 아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엘라 공주님의 메이드라서요. 공주님에게 허락을 받고 와도 될까요?”
솔직히 말해서 아르바이트로 따지자면 최상의 아르바이트였다.
여행 경비 지원이 이루어지는 캠핑 여행을 하고 소감문을 쓰면 되는 거니까 꿀알바도 이런 꿀알바가 따로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자기는 엘라에게 고용된 몸이었다.
계약서엔 없었지만, 아마 투잡은 금지되어 있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하는 일만 해도 꽤 힘든 편이고.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돌로로스의 말에 엘라가 허락하면 생각해보겠다고 거절했고 돌로로스는 레이시의 거절에 역시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레이시의 신분은 엘라의 연인.
마음만 먹으면 엘라의 권한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한 수준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기를 경계해서 함부로 의뢰를 받지 않고 어디까지나 엘라를 통해서 모든 걸 처리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왕궁 내의 일을 처리할 땐 엘라를 통해서 하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한 거겠지.
그리고 반대로 물리적인 일이라면 미네르바를 시켜서 처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고…….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야차다.
그렇게 생각한 돌로로스는 레이시의 대답에 환하게 웃으면서 그럼 엘라에게 먼저 물어보고 오겠다면서 인사한 다음 자리를 떠났고, 레이시는 허리를 숙여 돌로로스를 배웅한 다음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네요. 동양식, 한 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엘라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나?”
“엘라도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공주님에게 이런 말 하기엔 조금 이상하지만 제 사장님은 엘라니까 엘라의 말을 따라야죠.”
“그런가……?”
레이시의 말에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자기라면 레이시가 하고 싶은 거라면 뭐든 해줄 거라고 말하면서 레이시의 한쪽 팔에 팔짱을 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애교에 작게 웃다가 빨리 돌아가자며 미네르바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저택에 돌아가자마자 티타임 세트를 꺼내 다과를 예쁜 접시에 조심스럽게 옮겨 담은 다음 찻물을 우리기 위해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침에 말해줬던 일정에 딱 맞춰서 돌아오는 엘라와 미스트.
레이시는 두 사람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의 겉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었고, 엘라는 레이시에게 잘 지내고 있었냐고 물어보며 기지개를 쭉 켜기 시작했다.
“꽤 갑갑했나 보네요.”
“키스마크 가지고 시비를 걸어서.”
“……그거야 다들 그렇게 하죠. 대체 일하는 자리에 키스마크를 달고 가면 어떻게 해요?”
“아빠는 괜찮다는 눈치였는데.”
“…….”
엘라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린다면서 이마를 매만지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미스트에게 차를 준비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끓인 물의 냄새를 맡더니 주전자와 찻잎을 고르더니 잔을 5개 꺼내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기도 마시는 거냐며 뿔을 긁적이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같이 마시자면서 아샤를 자리에 앉힌 다음 하나 남은 자기 옆자리에 미네르바를 앉혔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자리 배치에 투덜거리다가 레이시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남은 미스트가 미네르바와 엘라 사이에 자리 잡고 앉아서 잼과 잼칼을 꺼내와서 스콘에다 잼을 발라 각자의 접시에 나눠주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응? 별 건 없었어. 10년 동안 걸려있던 제제가 좀 풀려서 조금 돌아다니기 편해졌다는 이야기?”
“네? 제제가 있었어요?”
“응. 있었어. 왕궁에 올라온 청원을 처리하러 움직여도 가는 길과 오는 길이 정해져 있고 도시에 방문할 때마다 위치를 보고해야 했거든. 그런데 그게 좀 풀렸어. 루트를 여러 개 만들어둘 테니 가는 길과 오는 길은 다르게 해도 괜찮다고 하네.”
“잘 됐네요. 엘라가 노력해서 얻은 거잖아요?”
“어, 뭐, 그렇지. 쿡쿡.”
반쯤은 레이시에게 지레 겁을 집어먹은 슈레이의 덕분이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것에 대한 보답을 받은 거니 레이시의 말도 틀리진 않았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미소에 엘라의 기분이 좋아 보여 같이 웃다가 미네르바가 스콘을 보고 포크를 역수로 쥐자 잠시 말린 다음 미네르바의 스콘을 잘라 포크로 찍어 먹여주었다.
그러자 손을 아래로 내리고 스콘을 받아 먹는 미네르바.
엘라는 레이시와 미네르바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누군가 저택의 문을 두들기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택을 방문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허, 헉!? 공주님!?”
“무슨 일이야?”
“도, 돌로로스 부마님께서 편지를 전해주셨습니다. 엘라 공주님께서 수취하셨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도장을 찍어주시겠습니까?”
“아, 돌로로스 형부가? 쯧, 알겠어. 무슨 일인데?”
“그건 편지를 읽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렇겠지?”
엘라가 직접 나올지는 몰랐는지 엘라가 문을 열고 나오자 기겁하는 배달원.
엘라는 그런 배달원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도장을 들고 와서 배달원이 내민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었고 이내 배달원이 자리를 뜨자 편지 봉투를 대충 뜯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의 내용은 레이시에게 한 곳을 방문했다가 돌아와서 그 소감을 물어보는 것.
아마 레이시와 친분을 쌓으려고 한 거겠지.
하지만 편지가 자기에게 왔다는 건 레이시가 자기는 메이드이니 자기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걸거고…….
그렇게 생각하자 엘라는 문득 레이시가 자기 애인이자 메이드라는 게 뿌듯해져서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엘라가 자기를 끌어안다가 자리에 돌아가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무슨 일이었냐고 물어봤다.
“음, 돌로로스 형부한테 온 거야.”
“아……, 혹시 그 아르바이트 관련된 이야기인가요?”
“아르바이트?”
“그러니까 여행 아르바이트 비슷한 거잖아요? 여행하고 후기 남기기.”
“어, 뭐, 그렇게 말하면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네. 긍정적으로 검토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가고 싶어?”
“으으으으음……, 가고는 싶은데……. 음, 으음……. 돌로로스 부마님의 부탁으로 가는 건 조금 그러네요.”
“응? 왜?”
“왠지 부마님의 돈으로 여행을 가면 부마님이 정해준대로 즐기다 와야 할 거 같으니까요? 여기에 있는 모두와 여행을 갈 거면 자유롭게 가고 싶어요.”
“음, 하긴 그렇지? 그럼 그렇게 대답할까? 다음 의뢰가 그쪽 지역으로 가는 길인데 그 길을 들려서 가자.”
“정말요?”
“응, 영역 다툼에서 진 와이번이 민가에 내려오고 있다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논과 마을이 전부 불타서 피해를 냈어. 구제해야지.”
“으응……, 그렇구나.”
“어쩔 수 없잖아? 사람을 해한 동물은 계속해서 사람을 해하는 법이야.”
“알고 있어요. ……조심해야 해요?”
“걱정 마, 와이번 따위에 당할 내가 아니지.”
레이시의 걱정에 피식 웃으면서 자기를 믿으라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이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가볍게 자기 뺨을 때린 다음에 언제 출발하냐고 물었고, 또 동시에 지금 당장 짐을 챙길지 물어봤다.
많이 발전한 레이시의 모습.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이 대견해서 흐뭇하게 웃다가 출발은 모래이니 내일은 나비와 하양이의 산책은 가볍게 시키고 미스트와 여행의 채비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고, 아샤에게는 자기 대신에 보고서를 국왕에게 제출해달라고 부탁했다.
“너는?”
“책 읽을 거야.”
“……쯧, 뭐, 알았어.”
엘라의 말에 살짝 짜증을 내는 듯 싶더니 이내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차를 한 입에 털어넣는 아샤.
엘라는 그런 아샤를 보고는 미스트에게 부탁해서 편지지와 펜을 받아들더니 화려한 필기체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그 모습을 보고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자면서 티타임 세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혹시 바깥으로 심부름을 나가야 하는 일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양이와 나비 산책 갔다 오면서 일 보고 올게요.”
“으음, 그럼 여기로 가서 캠핑 도구 좀 빌려오시겠어요? 빌려올 물품은 적어드릴게요.”
“네에~.”
미스트가 적어준 심부름 물품을 보고 미네르바와 함께 자리에서 나가는 레이시.
아샤는 엘라가 때맞춰서 보고서 겸 편지를 작성해서 건네주자 레이시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면서 미네르바와 함께 셋이서 저택에서 나갔고 엘라는 세 사람이 나가는 걸 확인하고는 미스트를 불렀다.
“레이시의 생일, 며칠 남았지?”
“대략 두 달 남았네요.”
“셰런 미인 대회나 정기 보고회, 그리고 연말 모임 같은 거 다 처리하고 나면 나한테 여유 시간은 얼마나 남아?”
“일주일이요.”
“그럼 현실적으로 생일 준비하는 거, 이번이 마지막이겠네?”
“네, 눈코뜰새 없이 바쁠 테니까요. 어쩌면 레이시의 생일 당일에도 바빠서 제대로 축하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럼 차라리 이번 일 끝내고 돌아와서 곧바로 생일 파티를 열까?”
“그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흐으으음.”
미스트의 말에 난감하다는 듯한 얼굴로 수첩을 보는 엘라.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번에는 레이시의 생일이라는 이벤트가 끼여 있어서인지 아무래도 신경 쓰였다.
뭔가 애인에게 소홀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첫 생일인만큼 뭔가 기쁘게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미스트는 엘라의 반응에 일단 생일과 관련된 일은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서 하지 않겠냐면서 엘라에게 눈앞에 있는 일부터 처리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엘라는 미스트와 함께 이번 의뢰를 처리할 준비를 끝마쳤고, 적당히 시간을 때운 다음 의뢰를 나갈 시간이 되자 미스트가 모는 마차에 올라타 바로 옆에서 나비를 타고 따라오는 레이시와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아샤도 돌로로스 형부도 그랬는데 동양의 요리에 관심이 있다면서?”
“으응~ 조금이요?”
“하긴 빠에야나 리조토 같은 게 나오면 평소보다 밥을 좀 더 많이 먹었었지. 으음~ , 레이시.거기 가면 같이 식당 순회라도 해볼까?”
“그럴까요?”
엘라의 눈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하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레시피북 같은 걸 선물로 사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엘라가 말을 멈추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재주 좋게 몸을 숙여 마차의 안을 엿보았다.
그러자 엘라를 대신해서 레이시의 시선을 잡아끄는 미스트.
미스트는 자기가 아는 동양의 음식을 말하면서 어떤 게 맛있을 것 같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마차 안을 보는 걸 멈추고 미스트의 말에 음식을 상상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네요, 그러니까……, 음. 냉면? 이라는 게 제일 기대되요!”
“그런가요? 하긴 파스타는 전부 뜨거운 상태로 먹으니까 차가운 면이 기대될지도 모르겠네요.”
“에헤헤, 그렇죠?”
“그나저나 레이시는 이상한 곳에서 도전적이네요.”
“에에~. 뭐 어때서 그래요?”
미스트의 말에 꺄륵 웃으면서 미스트는 어느 요리가 가장 기대되냐고 물어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답해주면서 엘라에게 바톤을 넘겨주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해주었다.
“나는……, 음, 주먹밥. 일하면서도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대 돼.”
“에에, 그런 이유로요?”
“초봄부터 5월 중순까지는 진짜 본격적으로 바쁜 시기니까 그런 생각밖에 안 드네.”
“으으응……, 힘내요?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아, 힘들면 언제든지 어리광 같은 거 받아줄게요!”
“응, 힘낼게.”
레이시의 말에 웃으면서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하품에 졸리면 먼저 자고 있으라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먼저 자겠다고 사과한 다음 레이시의 생일파티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면서 천천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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