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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178화 (178/542)

〈 178화 〉 착각 가득한 무도회­3

* * *

무도회는 평범하게 진행됐다.

귀족들은 아이야트와 슈레이의 사이에서 간을 보면서 줄타기했고, 이미 소속이 정해진 몇 명은 레이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하고…….

전형적인 정치판.

엘라는 여기에 춤을 추는 척 하면서 편을 가르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면서 저것들은 언제쯤 변할까 고민하다가 옆에 있는 레이시를 바라봤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여자 파트 추는 거죠?”

“네, 그러네요.”

“……발 밟으면 어쩌죠?”

지금 사람들이 편을 가르고 있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춤을 추다 발을 밟으면 어쩌냐면서 겁을 먹고 있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다가 주변 귀족들이 순서를 정했는지 천천히 다가올려고 하는 눈치를 보이자 레이시에게 아샤와 먼저 춤을 추고 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샤도 남자 파트를 더 잘 추니까 아샤와 춤 추고 와. 아샤라면 네가 스텝이 꼬여도 금방 풀어줄 걸?”

“네? 엘라는요?”

“음,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올게. 아이야트 오라버니나 슈레이 언니나, 내가 먼저 가서 인사해야 하거든.”

한숨을 내쉬면서 이래서 격식 있는 자리는 불편하다고 말하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샤는 엘라의 행동에 레이시의 손을 잡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잠시 당황하다가 미네르바에게 여기에서 얌전히 있으라고 말한 다음 아샤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틈 사이에 끼였다.

“일단, 그거 바지지?”

“네? 아, 네.”

“그래도 장식이나 프릴 같은 게 있으니까 평소보다 보폭을 조금 좁게 잡아. 긴장 풀고. 엘라가 말한 것처럼 흐트러져도 내가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응, 네. 알았어요. 아샤.”

저번과 다르게 옆구리에 들어오는 팔.

레이시는 반대로 아샤의 겨드랑이 쪽으로 팔을 집어넣어 아샤의 어깨를 끌어안았고, 아샤는 레이시가 자기 품에 안기듯이 가까이 다가오게 되자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허리를 두른 팔에 힘을 주면서 평소보다 보폭을 작게 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실 춤이라고 해봐야 스텝은 5개 밖에 없고 그걸 반복하며 빙글빙글 돌 뿐이지만.

검무에 비하면 리드하기 무척 편했기에 아샤는 능숙하게 레이시를 리드했고, 레이시는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착각될 정도로 편하게 리드해주는 아샤에게 몸을 맡기고는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잠시 피해보는 아샤.

아샤는 주변의 귀족들을 힐끗 쳐다보다가 무도회장 곳곳에 배치된 벽천화 기사단의 애들이 보이자 잡담하기 시작했다.

“레이시.”

“네?”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레베카 왕자비님과 함께 벽천화 기사단에 방문했다고 했었지?”

“네. 아카데미의 실습을 위해서요. 아하하하……,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조금 이상하긴 했네요.”

“그래서 어땠어? 왕자비님과 마리아, 두 사람과 떠들었다며.”

“으음…….”

아샤의 말에 두 사람과 나눈 대화가 떠올라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아래로 내리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턱을 살짝 들어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레이시는 아샤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대충 춘화나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하며 아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입을 다물고 있다가 조용히 사과하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사과에 어색하게 웃다가 아샤의 어깨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줬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손길에 조용히 허리를 끌어안고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계속해서 레이시를 리드했다.

그리고 음악이 끝나자 아샤는 레이시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놓아주면서 레이시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면서 머리를 조심스럽게 정리해주었다.

꽃을 떼어내 마법으로 고정해둔 레이시의 머리카락.

녹색의 머리카락에 핀 꽃들을 바라보자 아샤는 저도 모르게 그 꽃을 만지작거렸고, 레이시는 자기 머리를 만지는 아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샤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아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하더니 레이시에게 샴페인을 마시지 않겠냐고 물어보면서 레이시를 데리고 칵테일 만들고 있는 바텐더에게 갔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난처하다는 얼굴로 바텐더를 바라봤다.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마시고 싶냐, 마시고 싶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마시고 싶다는 마음이 좀 더 컸다.

칵테일이라는 걸 마셔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하지만 그렇게 호기심에 몸을 맡기기에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 몸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했고, 왕족이 셋이나 모인 파티라 술을 마시면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서 걱정됐다.

“으으으응…….”

그렇기에 레이시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바텐더를 바라보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무래도 실수할 거 같아서 안 되겠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아샤는 레이시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저번에 레이시가 가출했다가 술 마시고 실수한 것이 떠올라 입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다가 레이시의 손을 잡았다.

“무 알코올 칵테일도 많으니까 그거 주문해.”

“아, 정말요?”

“응. 왼쪽에서 주문하면 돼.”

아샤의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왼쪽 바텐더에게 가는 레이시.

레이시와 바텐더는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바닥이 두꺼운 하이볼 잔에 차가운 음료를 받아왔고, 아샤는 레이시에게 뭘 받아온 거냐고 물어보면서 하이볼을 마셨다.

“코코아요.”

“……어.”

“우우, 애 같다고 생각했죠?”

레이시의 투정 섞인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하이볼을 마시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가 대답하지 않자 어차피 마실 거라면 달달하고 맛있는 게 좋지 않겠냐며 변명 아닌 변명을 말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이번에는 작게 웃으면서 레이시의 이마를 가볍게때렸다.

그러자 레이시는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다가 빨대로 차가운 코코아를 마시기 시작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장식을 흐트러지겠다 싶어 허리를 끌어안고 미네르바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미네르바도 마실래요?”

“응!”

꽤 오래 기다려서인지 보자마자 자기가 화났다는 걸 어필하듯 레이시를 쳐다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미네르바의 허벅지에 앉고 코코아를 건네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행동에 배시시 웃다가 코코아를 마시다가 다른 귀족들이 전해주라고 한 것이 떠올라 레이시에게 건네주었다.

“으응? 뭐예요?”

“편지……? 나는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다.”

미네르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편지를 펼쳐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편지를 읽어보다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편지를 대신 읽어보기 시작했다.

조금 많이 꼬긴 했지만, 대부분은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는 말이 적혀있는 편지.

엘라가 총애하는 메이드라고 직접 만나자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이야기로 돌려서 이야기한 것 같았지만…….

“그나저나 오라토리엄 왕국에서 가장 강한 모험가는 수도가 아니라 다른 변경 도시를 거점으로 잡고 활동하고 있었구나. 왜일까요?”

“거기가 그 녀석 고향이라서 그래.”

“헤에, 아는 사이에요?”

“뭐, 왕궁에 몇 번 온 걸 봤으니까. 엘라를 존경한다는 것 같더라.”

“그렇구나~.”

레이시는 돌려 말한다고 생각조차 못하는 모습이었다.

편지를 보면서 왜 정치적인 이야기를 자기에게 하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면, 편지가 잘못 온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편지를 대충 내려놓고 엘라나 찾아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질문에 잠시 편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엘라를 찾아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엘라를 찾기 시작했다.

인파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미네르바와 아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엘라와 미스트를 찾은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와 미스트에게 다가가 엘라의 손을 잡았고, 엘라는 귀족들을 상대하다가 레이시가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잡자 마침 잘 왔다며 작게 웃으면서 귀족들을 바라봤다.

“엘라 공주님, 공주님 앞으로 편지가 온 거 같아요.”

“음, 그래? 그렇다는군. 미안하지만, 자리를 좀 비워도 괜찮겠나?”

“아, 네, 다음에 또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군요.”

“그래, 그대들과의 대화를 기대하고 있겠네.”

근엄한 말투로 귀족들에게 인사한 다음에 레이시의 손을 잡는 엘라.

엘라는 귀족들이 물러나자 레이시가 익히 아는 평범한 말투로 돌아와 투정부렸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작게 웃다가 엘라에게 온 것 같다는 편지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엘라는 잠시 편지를 읽다가 편지를 불태워 없애버렸고, 레이시가 놀라자 괜찮다면서 레이시를 달랬다.

“그것보다 우리 레이시가 생각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있지?”

“……아.”

그리고 엘라의 말에 단숨에 편지에 대한 걸 잊어버리고 엘라의 눈치를 보는 레이시.

엘라는 자기 눈치를 보면서 부끄러워하는 레이시의 모습에 자꾸만 입꼬리가 씰룩거렸고, 레이시는 엘라의 입꼬리를 보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렇게 좋아요?”

“응, 좋아.”

“아으으으……. 전 부끄럽다고요.”

“당당하게 있으면 되는데, 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그런 말이 부끄럽다고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손바닥으로 가리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그래도 발표할 시간은 다가온다며 레이시의 볼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놀렸고, 레이시는 엘라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버둥거리다가 엘라가 놓아주지 않자 축 늘어진 채로 훌쩍였다.

싫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공개 연애를 해야 한다는 게 영 부끄러운 듯한 모습.

레이시는 자기가 연예인도 아닌데 꼭 이래야 하냐고 다시 한번 물어봤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진짜로 싫으면 안 해도 괜찮다며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췄다.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서 할 뿐이니까 굳이 안 해도 돼.”

“…….”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우으, 아뇨…….”

엘라의 설명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냥 하자고 말하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작게 웃다가 레이시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면서 고맙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고 이번만이라며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이번에만 그런 거니까 지금 부끄러운 것만 참아내면 된다.

이번에만 참으면 엘라가 훨씬 편해지니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잠시 숨을 깊게 내쉬더니 아드레날린이 잔뜩 올라와 붉어진 얼굴로 엘라의 손을 잡았고, 엘라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기 손을 잡는 레이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레베카가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아아, 귀빈 여러분들,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 군요. 잠시만 집중해주실 수 있을까요?”

부드럽게 울리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레베카의 목소리.

귀족들은 그런 레베카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옆에서 부끄러운 듯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바들바들 떠는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경들이 많은 소개를 내게 주선해주었지.”

먼저 짧게 입을 여는 엘라.

엘라는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 훑어 본 다음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그 제안들을 거절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나를 걱정해주는 경들의 편지가 늘어서 이유를 설명해줘야만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레베카 왕자비님에게 부탁해서 자리를 만들었네.”

“으으…….”

“내가 경들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내가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과 연애를 하고 있어서네. 그동안에는 레이시가 비밀로 하고 싶어서 숨겨뒀지만……, 레이시가 경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힘들어하는 나를 걱정하고 배려해주었기에 이렇게 말하게 됐군. 후우……, 하하, 공식적으로 말하려니 조금 긴장되는군.”

피식 웃으면서 분위기를 가볍게 환기하는 엘라.

이윽고 엘라는 레이시의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더니 레이시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공식적으로 발표하도록 하지. 나,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은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과 연애 중이네. 그러니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소개해주겠다는 발언은 자제하도록. 이상일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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