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착각 가득한 무도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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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왕자비가 준비한 칵테일 파티.
파티 홀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서로 머리를 빠르게 돌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3명의 왕족이 모인다.
엘라의 경우에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현 왕가에 대한 충성만을 바치고 있으니 예외로 두더라도 아이야트와 슈레이는 달랐다.
둘 다 국왕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는 유력 후계자.
거기에다가 두 사람은 내건 슬로건도, 각자의 성격도 전혀 딴 판이었기에 두 사람에게 붙었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익도 전혀 달랐다.
아이야트는 자유로운 문화와 독창적인 기술 개발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고 예술가와 마탑의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어, 아이야트를 지지하면 가문 내부에서 연구원을 양성해 가문만의 독특한 기술을 만들어 가문의 상징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슈레이의 경우에는 엄격한 치안과 정확한 상법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으며 상인을 비롯한 여러 길드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니 슈레이를 지지하게 된다면 개인의 자산을 쌓을 수 있겠지만, 아이야트 때와 다르게 가문 특유의 무언가를 만들 수는 없겠지.
아이야트의 경우에는 자기의 위치가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위로 올라갈 기회가 많다.
슈레이의 경우에는 안정적이지만, 반대로 자기 위치는 지금 이 자리에서 고정되어 변하기 힘들 것이다.
모험할 것인가, 아니면 이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귀족들은 어느 쪽이 자기에게, 그리고 자기 가문에게 이득일지 머릿속으로 팽팽히 계산하면서 칵테일을 들었고, 파티 홀 한구석에서 슈레이는 레이시에 대한 것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서 귀족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누가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누가 방해가 될지 판단하고 집사에게 쪽지를 건네는 슈레이.
집사는 슈레이가 건넨 쪽지를 보더니 지금 착수하겠다면서 다른 집사를 불러서 밑준비를 시켰고, 돌로로스는 그런 슈레이의 모습에 괜찮은 거냐고 물어봤다.
“과로하는 거 아냐?”
“으, 으음……. 괜찮아. 미안해, 아이를 가지려면 아버님이 왕위에서 내려오시기 전인 지금 밖에 없는데.”
“아냐, 괜찮아. 그나저나 어떨 거 같아? 그 레이시라는 사람은.”
“아직까지 전혀 파악이 안 돼. 미스트와 동급이라고 보는 게 편하지 않을까?”
“그 정도야……?”
예전엔 왕국 특수 수사 기사단의 대장이었던 돌로로스.
그렇기에 돌로로스는 미스트의 과거사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슈레이의 말에 마른 침을 삼키면서 정말인 거냐며 슈레이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슈레이는 아직 확실한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마탑에서 있었던 일을 돌로로스에게 전해줬고, 돌로로스는 슈레이의 압박에도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순수한 메이드를 연기했다는 슈레이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슈레이가 누구인가?
어렸을 때부터 제왕학의 일환으로 귀족들과 상인들을 상대하면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하는 압박하는 것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슈레이가 압박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돌로로스는 슈레이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면서 레이시에 대한 평가를 바꾸기 시작했고, 이내 긴장된 표정으로 파티 홀의 문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렇게 긴장하고 있자 커다란 음악소리와 함께 홀의 커다란 문이 스르륵 열렸고 이내 레베카가 먼저 파티홀에 들어왔다.
그러자 우르르 몰려가서 레베카에게 인사하는 귀족들.
돌로로스도 레베카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고, 레베카는 돌로로스의 표정을 보고는 환하게 웃더니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번에 처제와 그의 소중한 사람을 만날 장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보다는 제게 이런 기회를 준 엘라 아가씨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자기에게 감사하지 말라는 듯 몸을 돌려서 손을 문을 향해 돌리는 레베카.
돌로로스는 그런 레베카의 행동에 손길을 따라 눈을 돌렸고, 엘라의 뒤에 숨어서 쭈뼛거리면서 나오는 레이시를 보고 감탄했다.
여성 편력이 화려했던 그 엘라를 유혹해낸 야차라고 해서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레이시의 외모를 보자 단숨에 이해하게 되버렸다.
저런 외모에 미스트 수준으로 사람을 유혹할 수 있다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유혹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돌로로스는 외모에 현혹당하지 않게 상대는 미스트와 비슷한 수준의 괴물이라고 속삭이고는 레이시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엘라 처제. 그리고 그쪽이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님 되십니까?”
“네, 넷! 레, 레이시 루피너스라고 합니다!”
“하하,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손을 내밀자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레이시.
돌로로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수사관의 감으로 레이시를 파악하려고 애쓰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돌로로스의 시선에 움찔 떨면서 엘라의 손을 잡고 엘라의 뒤에 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엘라에게 시선이 가게 되는 돌로로스.
엘라는 돌로로스의 시선이 자기에게 꽂히자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관심이 많아 보인다면서 말을 걸었고, 돌로로스는 엘라가 말을 걸자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제의 소중한 사람이라는데 관심이 저절로 가게 되더군요.”
“우리 레이시는 경찰이나 상인하고는 별로 안 친해서 형부의 관심은 조금 부담스러운데요?”
반쯤 농담하듯 말을 건네는 엘라.
하지만 돌로로스는 슈레이의 지지기반을 콕 집어 말하는 엘라의 말에 엘라가 자기를 레이시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려고 한다고 느꼈고, 아직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던 돌로로스는 그럴 일은 없다고 말했다.
“아하하, 여기에는 정치인으로 온 것이 아니라 슈레이의 남편으로 온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흐응~, 그렇다는데?”
“배려는 감사하지만, 저는 이제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야차잖아요? 아마 돌로로스 님과 즐겁게 대화하긴 힘들 거예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평범하게 왕가의 식구끼리 이야기를 나누자는 겁니다.”
레이시의 말과 행동에 속으로 작게 혀를 내두르는 돌로로스.
돌로로스가 봐왔던 야차는 전부 악의로 미쳐 날뛰는 맹수와 같은 존재였고, 지금은 엘라의 기사가 된 아샤 또한 이성으로 칼끝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뿐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레이시는 어떠한가?
머리의 뿔과 특징적으로 생긴 눈동자만 아니라면 어떻게 레이시를 야차로 볼 수 있을까?
그냥 미인이며 단아한 메이드라고만 생각했겠지.
그런데 고작 태어난지 1년?
돌로로스는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다며 혀를 내두르다가 미스트와 똑같이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슈레이의 말이 떠올라 마른침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이번 무도회에서 슈레이와 만나게 될 건데, 혹시 다른 왕족들과 만나신 적이 있습니까?”
“네? 네.”
“아, 누구를 뵈었습니까? 아이야트 전하는 아니실 거고…….”
“볼케릭 왕자님이요.”
“……아.”
레이시의 대답에 작게 탄식하는 돌로로스.
하필이면 엘라와 사이가 안 좋은 왕족을 만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한 돌로로스는 대화 주제를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기회를 살려 레이시를 파악하기 위해서 레이시의 눈을 살폈다.
그리고 섬칫한 초록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혹시 돌로로스 님이나 슈레이 님도 엘라 공주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볼케릭 왕자님처럼…….”
아까까지의 상냥한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차갑게 식어서 적인지 아군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빠르게 움직이는 눈동자.
연쇄살인범, 그것도 특수한 연쇄살인범을 봤을 때 자주 봤었던 눈빛에 돌로로스는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다가 레이시의 뒤에 있던 미네르바와 아샤가 동시에 자기를 쳐다보자 자기가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입을 열었다.
“아뇨, 그, 볼케릭 왕자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희는 엘라 공주님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 그, 그렇구나아~. 아하하…….”
돌로로스의 말에 다시 분위기가 확 바뀌는 레이시.
헤프지만, 그렇기에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웃음에 돌로로스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을 풀다가 음악이 흘러나오자 정신을 차린 다음 레이시에게 사과했다.
“아, 이런, 제가 두 분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미스트 씨, 그리고 아샤 씨. 엘라 공주님과 루피너스 남작님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돌로로스 오라토리엄님.”
가볍게 사과한 다음 슈레이에게 돌아가는 돌로로스.
슈레이는 돌로로스의 눈빛이 잔뜩 굳어있자 레이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고, 돌로로스는 볼케릭의 이름이 나왔을 때의 레이시의 모습을 묘사해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엘라에게 해가 가는 상황이 온다면 무조건 이를 드러낼 거야.”
“이야기를 이상하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야 할 거야. 태어난 지 1년도 안 됐다는데 미스트와 비슷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어. 엄청난 학습능력을 지녔다고 봐야겠지. 추측이지만 지금 엘라에게 걸려있는 제제들도 얼마 안 가서 알아낼지도 몰라.”
돌로로스의 말에 골치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슈레이.
“……엘라에게 걸던 제제를 약화시켜야 하려나.”
슈레이가 엘라에게 제제를 가한 이유은 엘라가 왕가의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모험가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엘라가 모험가처럼 활동하지 못하게 알게 모르게 제제를 걸어왔는데……, 그것도 엘라가 왕가에 충성을 바칠 때의 이야기지 지금 이 상황에서 엘라에게 걸어둔 제제를 그대로 풀어둔다면 자기가 왕이 된다면 그대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그만 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자기와 오라토리엄 가에 대한 비판과 비난으로 이어질 것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규칙을 만들기 어려워진다.
“조금은 풀어주는 게 맞겠지?”
“……아마도.”
그렇게 생각한 슈레이는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웨이터가 들고 다니는 샴페인을 받아들고는 가볍게 목을 축였다.
“오늘, 시간 내줄래?”
“우리 공주님의 명령을 받들죠.”
슈레이의 부탁에 스트레스를 풀어주듯 농담으로 대답하는 돌로로스.
슈레이는 그런 돌로로스의 말에 피식 웃더니 잔을 가볍게 흔든 다음 샴페인을 비웠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이시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가리면서 버둥거렸다.
“아, 아으으으으……. 화난 거 안 들켰겠죠……?”
“풉, 괜찮아. 괜찮아. 저쪽도 볼케릭 이름이 나왔을 때부터 화날 거라고 예상했을 거니까.”
네가 이렇게 순수한 건 예상하지 못 했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다시 한번 웃음이 튀어나오려고 해서 웃음을 참기 위해 마른세수를 하고는 칵테일을 마셨고, 레이시는 그저 웃고 있는 엘라의 모습에 입술을 샐쭉 내밀고는 엘라의 옆에 앉아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너무 만지면 꽃 떨어지니까 만지지 말아주세요.”
“네에.”
그러자 레이시의 손을 잡아 내려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자기 머리카락에 걸린 꽃들을 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다가 그래서 언제 발표할 거냐며 엘라를 보고 얼굴을 붉혔다.
“기대하고 있었어? 부끄러워 하길래 싫은 줄 알았는데.”
“우, 우으으으으……! 해, 해야 한다면서요!”
“싫으면 안 할 건데?”
“으으으응!”
“그래서 싫어?”
“……시, 싫진 않아요.”
“그런 말은 싫다고 했지?”
능글맞게 웃으면서 어떻게든 자기와 공개 연애하는 걸 좋다고 말하게 유도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웃음에 한숨을 내쉬다가 그렇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싶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겠으니 빨리 말해보라며 레이시의 볼을 콕콕 찔렀다.
그러자 눈을 가볍게 흘기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엘라의 손을 잡고 작게 속삭였고, 엘라는 레이시의 속삭임에 배시시 웃다가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무도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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