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착각 가득한 무도회1
* * *
“뭐야? 이제 오는 거야?”
“아, 아샤! 일 끝나셨어요?”
“응, 그리고아직 안 씻었으니까 달라붙지 마.”
“에헤헤헤.”
엘라와 레이시가 마탑에서 석궁을 받아오고 저택으로 돌아오자 반겨주는 아샤.
레이시는 오랜만에 보는 아샤의 얼굴에 아샤에게 잘 지냈냐고 물어보면서 다가갔고, 아샤는 자기를 껴안을 것 같은 레이시의 모습에 미리 손을 뻗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
그러자 레이시는 잠시 입술을 샐쭉 내밀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손님용 욕실로 안내하겠다고 말했고, 아샤는 평소보다 좀 더 깍듯한 레이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엘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다.
“왜?”
“아니, 기분이 좋아보이는데 더 예의를 차리잖아. 이상하지 않아?”
“……풉.”
“왜 웃는데?”
“아니, 그게. 이야기하자면 좀 긴데, 슈레이가 레이시에 대한 걸 착각했어.”
“으응……?”
아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는 못하고 웃음을 억지로 참기 시작하는 엘라.
아샤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정말로 무슨 일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 모습에 미스트가 엘라를 대신해서 마탑에서 있었던 일을 대신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아샤는 복잡한 얼굴로 문앞에서 자기에게 얼른 오라며 손짓하는 레이시를 바라보게 되었다.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멋대로 판단하다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건 꽤 흔한 일이고, 몇 번인가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으응? 안 오세요?”
“아니, 갈게.”
이 정도로 시원하게 엇나가니까 오히려 웃지도 못하겠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슈레이의 일이니 슈레이가 알아서 하겠지 싶어 어깨를 으쓱인 다음 레이시를 따라 들어갔고, 레이시는 아샤가 욕실에 들어가자 저번에 아샤가 들고 온 옷을 들고와서 욕실 앞 선반에 올려두었다.
“옷, 선반에 올려뒀어요!”
“응, 고마워.”
“저녁은 드시고 오셨어요?”
“응, 애들하고 1차 뛰고 왔지. 술도 좀 마셨고.”
“에헤헤, 그럼 물 준비해드릴게요. 꿀 타드려요?”
“아니, 물만 줘.”
아샤의 말에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더니 거실에서 엘라와 이야기를 나누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시선은 욕실 쪽으로 고정하다가 이내 욕실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물을 들고 아샤에게 갔다.
그러자 자기 뿔을 긁적이다가 물을 받아마시고 레이시의 이마를 가볍게 때려주는 아샤.
아샤는 슈레이가 말한 게 뭔지 설명해줄까 하다가 이내 알아서 하겠지 싶어 다과회 혹은 무도회에는 뭘 입고 나갈 거냐고 물어봤다.
“정장 입고 갈 거면 가게 알려줄게. 꽤 괜찮은 곳이 있어.”
“정말요?”
“응, 엘라가 사주는 것처럼 초호화 드레스는 아니겠지만, 충분히 고급 양복이고 돈은 경비로 사용해서 신청하면 될 거야.”
“으응, 그럼 양복이 좋으려나.”
“에? 양복 입게?”
아샤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아샤에게 어떤 종류의 정장이 어울릴지 물어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자기는 그런 건 잘 모르니 나중에 가게 사장에게 물어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일 같이 옷을 보러 가자며 웃었다.
그러자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정장을 입을 거냐면서 소리를 내는 엘라.
읽고 있던 소설에 책갈피를 끼우고 덮은 엘라는 드레스를 입어보지 않겠냐면서 미스트와 노출도가 심하지 않은 드레스를 알아봤다며 카탈로그를 레이시에게 건네주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무릎 바로 위에 치맛자락이 있는 거보면 길이도 적당하고.”
“에…….”
“싫어?”
“그, 조금……. 추울 거 같기도 하고 쓰타킹을 신는다고 해도 속옷이 보일 수도 있으니까 싫은데…….”
“그래……?”
“그럼 이런 건 어떤가요?”
“더 짧잖아요, 미스트…….”
“그렇지만 이건 바지처럼 되어있는 걸요?”
“네?”
엘라의 제안을 부끄럽다는 이유로 거절해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다가도 억지로 입힐 생각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카탈로그를 덮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스트가 다시 제안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제안에 황당하다는 듯 미스트를 쳐다봤다.
미스트가 제안한 건 엘라가 조금 전에 제안한 것보다 좀 더 짧은 치맛자락의 드레스.
레이시는 미스트의 제안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런 걸 입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냐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대답에 비슷한 옷을 입어보고 결정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요. 어때요?”
“에…….”
그리고 미스트가 들고 온 옷을 보자 작게 소리를 내면서 옷을 이리저리 바라보는 레이시.
하긴 전생에서도 아이돌들이 입긴 했었지.
치마 바지.
이 세계에서도 있을 줄은 몰랐지만, 이런 거라면 운동할 때 입는 짧은 반바지를 입는 개념으로 입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방에 들어가서 미스트가 건네준 투 피스 드레스를 입은 다음 몸을 빙글 돌려봤다.
“으음, 적어도 어깨는 가려지면 좋겠는데…….”
어깨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복장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면서 어깨를 쓰다듬는 레이시.
브래지어의 경우에는 미스트가 건네준 투명 브래지어를 입으면 된다지만, 아무래도 어깨가 그대로 훤히 노출되는 건 부끄러웠다.
마지노선은 어디까지나 민소매.
그렇게 말하자 미스트는 레이시의 조건을 들어주면서 장식이나 이런 건 달려도 상관 없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아샤를 힐끗 바라보면서 몸에 피어싱을 하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픈 건 싫으니까…….
그렇게 말하자 미스트는 알겠다면서 그럼 이브닝 드레스도 괜찮은 거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속옷이 안 보인다면 괜찮아요!”
“후후, 그렇군요. 언젠가는 그냥 치마도 입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 아하하……, 노력해볼게요.”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검은색 계통의 드레스를 한 벌 준비하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드레스를 입는다는 레이시의 말에 히죽 웃다가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바지 형태로 된 거면 괜찮아?”
“음~ 아무래도?”
“그럼 다음에 드레스도 그렇게 사야겠네.”
“굳이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 드레스 같은 건 은근히 많이 필요하니까. 갖출 수 있을 때 갖추는 게 좋지.”
“네? 왜요?”
“참석하는 파티에서 얼마나 격식을 차리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입어야 하고, 가문 대대로 좋아하는 색이 있어서 드레스코드가 따로 지정된 경우에는 그 색에 맞춰야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 저택에 드레스룸만 2개인거 보면 모르겠어?”
“…….”
엘라의 말에 질린다는 얼굴을 하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레이시는 시종이니까, 레이시가 직접 파티에 나갈 게 아니라면 내가 준비해주는 드레스를 입으면 돼. 거기에다가 영 귀찮다 싶으면 정장을 입으면 돼고. 정장은 만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니까.”
“으응, 그럼 이번에도 정장 입고 가면 안 돼요?”
“응, 그건 안 돼. 드레스 차림을 보고 싶은걸.”
“우으응. 미스트가 더 예쁠 건데.”
“나는 레이시의 드레스 차림을 보고 싶은 거지, 미스트가 보고 싶은 건 아니니까.”
“알았어요. 이번만이에요?”
레베카가 끼여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순순히 드레스를 입겠다고 말하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다가 파티가 기대된다며 레이시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제발 다른 왕족들에게 시선이 쏠리면 좋겠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엘라의 저택을 방문해서 무도회의 제목을 뭐로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는 레베카.
레이시는 차를 끓여 내오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런 게 꼭 필요한 건지 물어봤고, 레베카는 레이시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번 파티의 목적이 레이시가 엘라의 메이드로 자격이 있으며 엘라는 레이시를 무척이나 아낀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인데, 주제가 아무래도 좋은 거면 설득력이 떨어지잖아요?”
“그런가요…….”
“음, 되도록 레이시 양이 우리 엘라의 소중한 사람이란 게 드러나는 문구면 좋을 텐데 말이죠. 엘라, 좋은 생각 없어?”
“글쎄요? 저는 귀족들이 시비를 걸면 그대로 무시하고 레이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줄 생각이어서 별 생각을 안하고 있었네요.”
“아직 결혼은 생각 없는 거지?”
“네, 레이시도 아직 생각이 없는 거 같고, 저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고민이네.”
커피를 마시면서 웃는 레베카.
레이시는 레베카의 웃음에 어색하게 웃다가 한숨을 내쉬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한숨에 피식 웃더니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건 어떠냐며 입을 열었다.
“애인이라고 공식 발표하는 건?”
“아, 그거 괜찮네. 애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뿐이라면 결혼 수준으로 심각하지도 않고.”
“같은 거 물어봐서 정말 죄송한데……, 꼭 해야 해요……?”
사귄다고 공식적으로 말한다니.
전생에서 CC를 통해 봤었던 생지옥을 떠올린 레이시는 이상한 얼굴로 엘라와 레베카를 바라봤지만, 두 사람은 레이시의 시선에도 아무렇지 않은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뭐가 문제냐고 물어봤다.
“그게, 아니. 그러니까……. 음, 아무래도 부끄럽잖아요? 사귄다고 공식적으로 말한다니……. 말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괜찮지 않아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는데 꽤 필요한 일이라서.”
“정말요?”
“응. 안 그러면 귀족들과 계속 말씨름을 해야하는 데 그런 건 아무래도 귀찮잖아? 힘들기도 하고.”
“으응…….”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그래도 조금은 부끄럽다면서 레이시는 몸을 베베 꼬았고, 레베카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엘라를 쳐다봤다.
그러자 레이시를 숨기듯 레이시를 껴안는 엘라.
레이시의 얼굴은 그 포옹 덕분에 더욱 붉어졌지만, 엘라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혀를 내민 다음 레이시에게 그렇게 말해도 괜찮은지 물어봤다.
“으응, 꼭 필요한 일이라면서요. 부끄럽지만 참아볼게요.”
“그래? 고마워.”
엘라는 레이시의 대답에 싱긋 웃더니 레베카를 보면서 무도회의 주제는 레이시가 공식적으로 엘라의 연인이 되는 걸 알리는 것으로 하자고 말했고, 이내 레이시가 궁금해하던 걸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까 슈레이 언니와 돌로로스 형부는 오기로 했습니까?”
“아, 그 두 사람? 오기로 했어.”
“그렇구나. 지금쯤이면 꽤 골치아파 하겠네요.”
“아하하.”
엘라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레베카.
레베카는 슈레이처럼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슈레이와는 다르게 레이시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에 엘라의 말에 시원하게 웃으면서 혀를 빼꼼 내밀었다.
아마 지금쯤이라면 레이시의 성격을 예측하지 못해서 머리를 감싸쥐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레베카는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고, 엘라는 레베카의 웃음에 똑같이 웃다가 레이시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뭐, 언니는 언니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저희도 준비해볼까요?”
“응, 그러자. 그럼 레이시 양, 옷 갈아입고 와보실래요? 미스트 씨가 말하길 미네르바 양에게 줄 옷도 배송 됐다는 것 같으니까 미네르바 양도 같이 갈아입고 오세요.”
“네에.”
어차피 자기 일도 아니고 혼자서 머리를 이상하게 쓰다가 골머리를 썩이는 걸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와 미네르바에게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말했고, 동시에 미스트에게는 화장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며 무도회에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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