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오늘도 평화로운 일상4
* * *
“저기에 스토커들 있으니까 체포해.”
“네? 저, 그게…….”
“스토커라니까? 아, 기절시켜뒀으니까 체포만 하면 돼.”
레이시를 달래주면서 마탑에 도착한 엘라는 마탑의 경비를 보고는 다짜고짜 스토커가 있다면서 경비에게 잡으라고 명령했고, 경비들은 엘라의 명령에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스토커라고 말한 것들은 아마 귀족들의 하수인.
다른 귀족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는지 보고하는 사람들일 텐데 그런 사람을 체포해도 괜찮은 걸까?
괜히 귀족들에게 나중에 해코지를 당하는 게 아닐까?
경비는 그런 생각에 떨떠름한 얼굴로 엘라를 쳐다봤지만, 엘라는 경비들의 반응에 귀족들에게 털릴지 아니면 자기에게 털릴지 정하라며 싱긋 웃었고 경비들은 그런 엘라의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엘라가 기절시켜놓은 사람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으응, 꽤 많이 있었네요.”
“걱정하지 말고 마탑 구경이나 하자.”
그리고 그 사람들을 보면서 소름 끼친다는 듯 팔뚝을 쓰다듬는 레이시.
남자일 땐 그냥 경찰에 신고하면 끝나고 기분이 나쁜 건 없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또 깨닫고 싶지 않은 걸 깨닫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한숨을 내쉬면서 엘라 뒤에 숨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제 마탑을 구경할 건데 그렇게 축 늘어져 있으면 어떻게 하냐며 레이시를 마탑으로 데리고 갔다.
엘라가 레이시를 데리고 간 곳은 발명관.
신입연구원들이 만든 기묘한 물건들이 가득한 곳이었고, 레이시는 그런 물건들을 보고 금새 스토커에 대한 걸 잊고 감탄하기 시작했다.
“헤에에에…….”
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김새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끄는 발명품들.
레이시는 엘라에게 이건 뭐에다 쓰는 거냐면서 하나씩 물어보기 시작했고, 엘라는 다시 어린애처럼 변한 레이시의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직원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자 레이시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하는 마탑의 직원.
직원은 처음에는 엘라에게 걸려서 귀찮은 일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레이시가 일일이 크게 반응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자 같이 들떠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헤에에……!”
대부분은 지구에서 쓰는 물건에서 몇 단계 기능을 낮춘 물건들이었지만, 몇몇 개는 지구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물건이라 눈을 빛내며 설명을 듣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에게 신기하다면서 꺄르륵 웃었고, 엘라는 레이시가 신기하다고 말한 것들을 살펴보고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신기하기는 한데 그렇게 신기할 물건인가?
비살상 모드의 수탄을 날리는 석궁이라니, 그걸 어디에다 쓰라는 걸까?
물놀이?
레이시랑 물놀이를 한다고 한다면 쓸 수는 있겠는데, 그 외의 사용법은?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그냥 마법의 파괴력을 비살상의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하자고 생각하면서 직원을 칭찬해주었고, 직원은 엘라의 칭찬에 눈을 크게 뜨다가 황송하다면서 허리를 숙였다.
일단 귀찮다고 생각한 건 둘째치더라도, 엘라는 한 나라의 왕족이자 최강의 흑마법사이니까.
그런 엘라에게서 칭찬을 받는다는 건 한 명의 마법사로선 더 없을 영광.
그렇기에 직원은 좀 더 힘을 내서 설명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직원에게서 물을 쏘는 석궁을 받은 다음 배시시 웃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흠, 재밌어?”
“네!”
“그럼 됐고. 후후, 참, 마탑의 출입증 줄까?”
“네?”
“연 회비는 내줄 테니까 가끔씩 여기로 놀러와. 생활용 도구만 볼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겠지?”
“정말요? 미안한데…….”
“뭐, 어때? 쉴 때 제대로 쉬어야지.”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레이시의 이름으로 마탑의 출입증을 발급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엘라.
직원은 엘라의 말에 당장에 출입증을 만들어오겠다면서 발걸음을 옮겼고, 엘라는 그런 직원을 보면서 석궁으로 놀아보자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꽤나 소란스러운 바깥.
레이시는 바깥의 소란스러움에 석궁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왜 저렇게 소란스럽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밖에서 보이는 깃발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석궁으로 깃발을 조준했다.
그리고는 레이시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수탄을 쏘는 엘라.
엘라가 쏜 수탄은 깃발을 강하게 때렸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놀란 얼굴을 하면서 입을 벙긋거렸다.
“가, 갑자기 왜 그랬어요?”
“응? 아니, 아무것도 아냐.”
“다른 사람들이 화낼 거라고요. 사과하고 올게요.”
“아니, 괜찮아. 이건 오라고 쏜 거거든.”
“네……?”
“정식으로 오라고 말하면 10분 넘게는 이 자리에서 멀뚱멀뚱 서있어야 하는데 그러긴 싫거든. 나는 너랑 좀 더 오래 있고 싶으니까.”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하지만 이내 마탑의 인파를 뚫고 들어오는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이 달고 있는 문장을 보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엘라의 뒤로 걸어갔다.
“오랜만이네요? 슈레이 언니.”
“엘라, 장난이 심하네.”
“아하하, 저희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사이는 아니잖아요? 고귀한 혈통과 천박한 혈통이니까요.”
엘라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는 슈레이.
자기 어머니도 아이야트의 어머니처럼 엘라를 평등하게 대해줬다면 이야기를 좀 더 부드럽게 풀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던 슈레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부분은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생각을 끊어낸 다음 레이시를 쳐다봤고, 엘라는 슈레이의 시선이 레이시에게 꽂히자 석궁으로 바닥을 쏴서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신가요? 고귀한 피의 슈레이 언니.”
“네가 새로운 메이드를 들였다고 해서 찾아보러 온 거란다.”
“레이시가 온 건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난 일인데 이제와서요? 저랑 레이시는 괜찮으니 돌아가주세요. 후후, 지금은 내년 여름에 이거 가지고 어떻게 놀까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든요.”
수탄을 마탑 정원에 설치된 표적에다 쏘면서 피식 웃는 엘라.
슈레이는 엘라의 말에 잠시 엘라의 눈을 힐끗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레이시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하고 있는 레이시.
슈레이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잠시 눈을 찌푸리다가 레이시에게 고개를 들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슈레이의 질문에 움찔 떨다가 역시 깃발을 맞춘 게 마음에 안 드는건가 싶어 고개를 더욱 숙였다.
아무리 빨리 만나기 위해서라지만, 물총으로 상대방의 깃발을 쏘다니…….
레이시는 아무래도 화났을 거란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다가 엘라의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빨리 사과하고 돌아가자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대로 슈레이와 얼굴을 맞대는 것보다야 집에 가서 꽁냥거리는 게 편하겠다 싶어 미스트에게 석궁을 건네준 다음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잠시만요.”
“깃발 맞춘 거 때문에 그러시죠? 보시다시피 저는 천하게 노는 것밖에 못 해서요. 아아~ 죄송해요. 나중에 미스트를 시켜서 사과문을 보내도록 하죠.”
“큿…….”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듯 베베 꼬면서 대화를 일방적으로 끊으려고 하는 엘라.
평소에는 뒤처리가 귀찮아지기 때문에 하지 않는 대화 방식인데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아무래도 저 뒤에 있는 레이시만 신경 쓰고 싶어서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슈레이는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엘라가 갑자기 말을 베베 꼬아서 한다고 해도 이상한 건 하나도 없다.
붙여두었던 감시자를 전부 경비병에게 체포하라고 명령시켰는데도 억지로 찾아온 데다가 애초에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엘라가 자기와 대화해준 건 그냥 주변 신하의 잔소리가 귀찮아서일뿐, 그것을 감당하려고 한다면 지금처럼 말해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동안에는 그렇게 하지 않다가 지금와서 이런다는 건 그만큼 저 레이시라는 여자가 중요하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슈레이는 어떻게든 레이시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레이시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
“네, 넷!?”
“내 주변 사람들이 손님을 보냈다는데, 정중하게 대해줘서 감사합니다.”
“……네?”
감시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레이시가 어떻게 반응할지 살펴보는 슈레이.
자기 사람들을 기절시켜 돌려보낸 것에 대한 대답을 들으면 어떻게든 레이시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건 슈레이였지만, 안타깝게도 슈레이는 몇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 착각은 각각 이랬다.
엘라의 메이드이니 보통 성격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 것.
야차이기 때문에 아샤와 대등하거나 살짝 밀리는 실력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레이시가 직접 손님들을 처리했다고 생각한 것.
마지막으로 왕궁에서 9개월이나 보냈으니 왕궁에서 사용하는 은어 같은 것에 익숙해진 상태라고 생각한 것.
“손님이요……? 잘 모르겠는데…….”
“이 사람들이 보냈다는데 정말 모르시나요?”
“음, 네. 죄송해요. 기억이 안 나네요. 다음에 오시면 엘라 공주님의 명성에 걸맞은 대접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리고 그런 착각 때문에 레이시와 슈레이의 사이에서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우선 왕궁에서 쓰는 은어 같은 걸 전혀 모르기에 슈레이가 말한 손님을 정말로 손님이라고 생각하면서 엘라의 저택에 손님은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레이시.
슈레이가 생각하는 방향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에 레이시는 슈레이가 무안하지 않게 미소를 지으면서 슈레이를 바라봤고, 손님을 직접 처리하지 않았기에 슈레이가 건네준 문양을 보고도 레이시는 처음 본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슈레이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레이시에 대한 평가를 고치기 시작했다.
미스트보다는 못 하다고 생각했는데 미스트에게 절대로 뒤지지 않는 괴물이다.
사람의 목을 졸라 기절시켰는데도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웃을 수 있는 거지?
거기에다가 문양을 보면 비웃음을 날리든 겁을 먹든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슈레이는 레이시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봤고, 레이시는 슈레이의 시선에 미소를 지으면서 허리를 살짝 숙였다.
미스트와 똑같은 동작.
어쩌면 미스트가 훈련시킨 비밀 공작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슈레이는 침을 꿀꺽 삼키다가 레베카가 열어준다던 다과회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도 참석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는 레이시.
한껏 차가워진 초록색의 눈동자.
뱀처럼 쭉 찢어진 야차 특유의 눈동자가 보이자 슈레이는 마치 자기 목에 독니를 꽂으려는 독사를 만난 것처럼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레베카와 자기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 엘라에게 더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가 저울질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이시를 쳐다보자 레이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슈레이에게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레베카에게 말하고 오겠다고 말했고, 슈레이는 레베카와 자기를 경쟁을 붙이는 레이시의 말에 역시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다음에 뵐 수 있다면 좋겠네요.”
슈레이의 손을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레이시.
슈레이는 아직까지 자기와 거리를 두면서 저울에 재고 있는 레이시의 모습에 생각보다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고, 옆에서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던 엘라는 웃음을 억지로 삼키면서 슈레이를 초대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본 이유를 물어봤다.
“당연히…….”
“당연히?”
“왕족이 셋이나 있으면 그쪽으로 시선이 쏠릴 거잖아요.”
“푸훗!”
“주인공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고요……. 저번에 레베카 왕자비님의 다과회에 한 번 나갔다가 얼마나 시선을 잡았는지 아시잖아요. 그런 건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요.”
“그땐 음문으로 고문당했으니까 이번에는 로터로 고문당해볼래?”
“미쳤어요!?”
“아하하핫!”
“……그, 그런 건 집에서 말하라고요. 정말…….”
“으음, 집에 가면 할까?”
“우우……, 싫어요.”
“에에, 치사해.”
“뭐가 치사하다는 거예요? 허리가 아파서 무리라는 건데.”
엘라의 말에 투덜거리면서 마차에 올라타는 레이시.
엘라는 얼굴을 붉힌 채 마부석에 올라가는 레이시의 모습에 꼴사나운 착각을 하던 슈레이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연신 터트리다가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저택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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