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신입 교사 레이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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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레이시가 계약직 교수가 되고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레이시는 자기가 맡게 된 학생들의 이름과 특징을 외우는데 시간을 쓰기 시작했고, 애들은 그런 레이시의 노력을 천천히 인정하기 시작했다.
첫 만남부터 장난질을 생각하던 애들이 레이시를 인정하게 된 계기는 크게 2개였다.
우선 장난질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있었다.
기사도 낙마시킨다는 미친 말은 레이시가 타니까 망아지처럼 순해졌고, 문틈 사이에 끼워뒀던 칠판 지우개는 문을 여는 순간 붙잡아서 태연하게 칠판을 닦았다.
덤으로 체육시간에 했던 피구에서 애들이 작정하고 레이시만을 공격했지만, 레이시는 애들의 공을 모두 붙잡아 한 명씩 탈락시켰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더 이상 레이시에게 장난을 칠 수가 없었다.
그 이상으로 가면 괴롭힘이고, 애들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레이시를 인정한 두 번째 이유는 레이시가 그들 개개인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이시가 처음 학생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를 알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레이시의 믿고 있지 않았었다.
실리파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상 귀족가의 메이드나 집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그에 맞지 않는 성질을 지닌 자기들을 무시했었으니까.
실적을 위해서 온 레이시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레이시는 그런 학생들의 예상과 다르게 그러지 않았다.
실리파 아카데미의 정식 교사가 아니었던 레이시는 딱히 실적을 신경 쓰지 않았고, 실적을 신경 쓰지 않은 덕분에 다른 교사들과 다르게 학생들을 메이드나 집사로 보지 않고 학생들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학생들 개개인의 꿈에 대해서 듣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학생들은 레이시와의 대화를 통해 레이시는 다른 교수들과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타미나 양, 실력이 느셨네요. 일주일 밖에 안 지났는데 계산 실수가 많이 줄었어요!”
“다, 당연하죠! 제가 누구인데요.”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해내는 것도 충분히 대단 한 일이랍니다. 잘하셨어요.”
레이시의 말에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타미나.
레이시는 그런 타미나의 모습에 싱긋 웃으면서 쪽지시험의 결과를 건네주었고, 타미나는 자기가 봐도 꽤 많이 발전한 시험 성적에 만족스럽게 웃다가 이내 좀 있으면 있을 아카데미 행사를 떠올리고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타미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어봤고, 타미나는 레이시의 질문에 벌레를 씹은 얼굴이 되더니 쭈뼛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아뇨, 딱히 큰 문제는 아닌데…….”
“으응?”
“그게 좀 있으면 실습 시간인데 이게 교수님들의 개인 인맥으로 이루어지거든요. 아마 또 다른 교수님들이 와서 지……, 헛소리할 거 같아서 좀 싫어져서요. 특히 노처녀 아메스가 헛소리를 심하게 하거든요.”
“아, 아하하……. 뭐라고 하시던가요?”
“집사나 메이드도 못 될 너희들은 어디 가지 말고 문제지나 풀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희들은 애초에 집사와 메이드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 없다고 욕하고요.”
“으응, 타미나는 기사가 되고 싶었죠?”
“네! 오빠들이 전부 기사인데 저도 기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가문에서 저는 메이드나 하라고 하셔서 실리파 아카데미에 왔어요…….”
타미나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학생들을 한 명씩 바라보는 레이시.
다소 거칠지만, 교본의 내용은 어떻게든 소화하려고 하는 타미나는 기사 지망생.
평민 출신이지만 요리를 잘해서 온 진은 뷔페식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고, 진과 친한 제인은 메이드보다는 대장장이가 하고 싶다고 했었던가…….
그렇게 학생들을 한 명씩 쳐다보던 레이시는 뭔가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타미나에게 실습에 대한 것들을 물어봤다.
“혹시 실습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알 수 있을까요?”
“네? 도서관에 가면 있긴 한데……, 그냥 제 교본을 드릴게요. 이 책은 어차피 안 보는 책이기도 하고. 학교 행사에 대한 것들은 다 적혀 있는 책이니까 실습에 대한 것들도 적혀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레이시의 질문에 타미나는 귀찮다는 듯 자기 가방에서 실리파 아카데미의 교본을 건네주는 타미나.
레이시는 타미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교무실에 갔고, 이제는 꽤 친해져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교장에게 교본을 보여주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으응, 그러니까 혼자서는 학생을 지도할 수 없고 보조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루피너스 교수님. 초등반의 수가 적다고는 하나 실습은 실습. 학생들의 실수를 만회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니까 교수님을 보조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 명이면 충분한가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네. 한 명이면 충분할 것 같군요. 루피너스 교수님. 신청서를 드릴까요?”
“네. 부탁할게요.”
레이시가 원한다면 실습할 장소를 물색해주겠다고 말하는 교장.
그러자 레이시는 일이 잘 안 풀린다면 부탁하겠다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고, 교장은 예의 바른 레이시의 모습에 미리 준비하겠다고 말하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감사해요.”
교장의 배웅을 받으면서 밖으로 나가는 레이시.
아메스는 레이시가 신청서를 들고나오자 선심을 쓴다는 듯 레이시에게 말을 걸었고, 레이시는 아메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피너스 남작님?”
“네?”
“실습을 준비하시는 것 같군요.”
“네, 타미나 양이 제게 실습이 있다는 걸 말해줘서 학생들을 위해 노력해볼까 해서요.”
“교사로서 훌륭한 자세입니다만, 초등반 학생들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들은 사용인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거든요.”
레이시의 학생들을 나쁘게 말하면서 그들은 입학하고 나서 한 번도 낙제점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아메스.
레이시는 아메스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다들 재능이 넘치는 학생이라며 학생들을 두둔했고, 아메스는 같잖게 진짜 교수처럼 말하는 레이시를 보고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자기가 우등생들과 함께 실습을 가는 곳을 말해주었다.
“이번에 저희는 텔레메인 공작 가문의 티타임에 실습을 간답니다. 실리파 아카데미의 명성에 어울리는 곳이죠. 루피너스 교수님은 어디를 생각 중이시죠?”
“지금 물어보러 가려고요. 우선 확정된 것도 아니라서요.”
“그런가요? 귀족의 약속은 미리 잡아두는 게 예절인데……. 급하게 교수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네요. 힘내시길.”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를 응원하는 아메스.
하지만 그 응원이 선의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웠고, 레이시는 그런 아메스의 응원에 어색하게 웃다가 아메스가 떠나자마자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게 그 유명한 노처녀 히스테리인가…….
메이드 교육에 모든 걸 바친 사람은 저렇게 무서워지는구나 싶었던 레이시는 뺨을 긁다가 실습을 할 거라면 공작 가문의 티타임 정도가 되어야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라에게 부탁하면 티타임을 못 가질 것도 없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조금 미안하고…….
“으으응…….”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원래는 벽천화 기사단의 마리아에게 부탁하려고 했었던 레이시는 마리아가 자기와 같은 남작이라는 걸 떠올리고 난처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공작가의 사람은 아는 사람이 없는데…….
애초에 인맥이 넓은 것도 아니었기에 레이시는 난처한 얼굴로 하양이의 등에 올라타 왕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평소와 다르게 길이 막히기 시작하자 레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앞쪽을 쳐다봤고, 이내 마차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사고가 났나 싶어 하양이의 등에서 내려왔다.
“으으응……, 무슨 문제 있으세요?”
“통행에 방해를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게, 말들이 움직이지 않아서……. 평소보다 꽤 많은 일을 해서 혹사한다 싶었지만 설마 이렇게 움직이지 않을 줄은……. 금방 해결하겠습니다!”
레이시가 다가가자 다급하게 사과하는 고풍스러운 옷을 입은 마부.
레이시는 마부의 사과에 말들의 상태를 살펴보았고, 말들이 한 시간 쉬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레이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마차를 살펴봤다.
오라토리엄 왕가의 문양을 달고 있는 마차.
레이시는 그 마차를 보고 마부에게 왕궁에 가는 거냐고 물어봤고, 마부는 레이시의 질문에 살짝 경계하는 얼굴로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레이시는 자기 옷에 달린 엘라의 문양을 보여주면서 왕궁으로 갈 거면 같은 방향이니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마부는 레이시의 가슴에 달린 문양을 보고는 다시 한번 레이시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를 도와주려고 하신 건데.”
“아니에요. 왕가의 일이니까 이해해요. 그럼 말들을 풀어주시겠어요?”
“네?”
레이시의 요청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레이시의 손짓에 마차 근처로 오는 하양이를 보고는 다급하게 말들의 고삐를 풀어주는 마부.
레이시는 마부에게 어디로 모시면 되냐고 물어봤고, 마부는 일단 제 2 내벽에 있는 마굿간 아무 곳에나 데려다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님의 메이드인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이에요.”
“아! 부탁드리겠습니다! 루피너스 남작님!”
“네에~.”
조금 돌아가기는 길이 되겠지만, 어차피 머리도 복잡하겠다 조금 돌아가기로 한 레이시.
레이시는 마차를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실습에 대해서 생각했고, 마차 안에 있던 인물은 그런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부석과 마차를 잇는 창문을 약하게 두들기며 레이시를 불렀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시나요?”
“아, 그러니까……, 레베카 오라토리엄 님……?”
“네, 맞아요. 이걸로 두 번째 만남이죠?”
마차 안에 있는 사람은 레베카 오라토리엄, 아이야트 라시보 오라토리엄의 부인이었다.
저번에 엘라가 무도회에 나갔을 때 한 번 만났었던 인물.
자기에게 호의를 품고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때 있었던 일이 음문이 새겨진 채 엘라에게 호감을 품을 때마다 성욕을 느끼는 고문을 받고 있었기에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던 인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우연이네요.”
“그러게요. 마차의 말들이 멈춰섰을 때에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이렇게 레이시 양을 만나니 마냥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요.”
“아하하, 그런가요? 감사해요.”
저번에 무도회에서 보여준 호의는 엘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연기한 게 아니었는 듯 밝게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인사하는 레베카.
레이시는 레베카의 호의에 배시시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었고, 레베카는 레이시가 자기 인사를 받아주자 싱긋 웃으면서 아까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 물어봤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손을 내미는 레베카.
레이시는 처음에는 레베카의 호의를 조금 부담스러워하면서 말을 피했고, 레베카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가 어떤 성격인지 대번에 파악하고 부탁하는 방식을 바꿨다.
“말이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혹사당한 이유가 여러 파티를 전전했던 것 때문이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지만, 제 피로를 핑계로는 거절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에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서 레이시 양이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아까 말을 보셨잖아요?”
“으, 으응…….”
“그런데 엘라의 메이드가 전한 부탁을 들어주는 거라고 한다면, 엘라를 핑계로 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런 레베카의 작전은 그대로 들어먹혀 조금 더 망설이게 된 레이시.
레이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잠시 레베카의 얼굴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저택에 들려서 엘라에게 한 번 물어보고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레이시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레베카.
레베카는 자기는 마차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 레이시가 편한 대로 하라고 했고, 레이시는 그런 레베카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마차를 엘라가 있을 저택으로 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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