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IF)레이시가 엘라가 태어나기 전에 환생한 세상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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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4번째 이세계 환생 생일 파티.
레이시는 문득 이 세계에 온지도 오래 되었다고 생각했다.
24년이라니…….
벌써 전생의 나이를 따라잡았잖아.
전, 현생 합치면 딱 50살이 되었고.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문득 생일상에 미네르바 외에는 아무도 없는 걸 보고는 미네르바에게 팔을 벌렸다.
그러자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껴안고 생일을 축하한다며 뺨을 비볐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꺄르륵 웃다가 미네르바를 바라봤다.
모험가가 되면서 처음 테이밍 한 펫이자, 모험가 생활을 청산하고 언제든지 떠나도 좋다고 말했음에도 끝까지 남아 자기를 도와주는 소중한 존재.
“고마워요. 제 곁에 남아줘서.”
“당연하다. 나는 주인의 미네르바다.”
“가끔은 갑갑하지 않나요? 하피는 원래 유랑하면서 살잖아요.”
“나는 내가 원해서 주인의 곁에 있는 거다.”
“아하하, 그런가요?”
“그렇다. 그러니까 그런 건 묻지 마라.”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고 가만히 있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포옹에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입술 감촉에 배시시 웃다가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다.
“오늘은 일 할 건가?”
“으응~ 평소보다 짧게 하겠다고 손님들에게 말해뒀으니까 오늘은 오후 2시까지만 일하면 될 거예요.”
“그런가? 그럼 신문을 들고 오겠다.”
“네.”
싱긋 웃으면서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손길에 배시시 웃다가 일하겠다며 집에서 나갔고, 레이시는 농사와 함께 시작한 일을 시작했다.
모험가 시절에 배웠던 해주 마법과 회복마법을 이용한 포션 가게.
주변 마을에 싼 가격으로 공급해주고 있었기에 꽤 인기가 많았기에 레이시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포션을 만들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에게 신문을 가져다주며 오늘은 어디로 배달을 가야하냐고 물어봤다.
“그러네요, 우선 이거부터 산 아랫마을에 보내주시겠어요?”
“알았다. 음, 한 시간 안으로 다녀오겠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손을 흔들어주면서 미네르바를 배웅해주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배웅에 입술에 입을 맞춘 다음 특수 제작한 바구니를 안아들고 그대로 날아갔다.
마치 스포츠카를 보듯이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었고 이내 입에 머금고 있던 것을 그대로 뿜을 뻔했다.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의 가출!?]
[자기는 왕가에 충성을 바쳤지만, 왕가는 나에게 원했던 사랑을 주지 않았다. 나는 사랑을 찾으러 가겠다.]
[엘라 공주는 이 편지를 남긴 후 전속 메이드인 미스트와 왕궁에서 빠져나갔다.]
[왕가의 사람들은 현재 엘라 공주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며, 엘라 공주를 찾는 즉시 엘라가 원하는 것을 진지하게 듣기 위해 회의 장소를 마련하고 있다.]
[국왕은 엘라 공주를 찾아 설득해 왕가로 돌려보내는 자에게는 백작위의 계급과 작은 영지를 포상금으로 결정했다.]
“아, 아하하하하…….”
섬뜩한 내용의 뉴스.
레이시는 설마하는 생각에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이내 잠시 생각해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설마하니 한 나라의 공주가 가출했을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오늘 오기로 한 캐러밴을 맞이하기 위해서 포션과 돈을 들고 도로에 나갔다.
30분 정도 지나면 캐러밴이 올 시간.
레이시는 회중시계를 한 번 살펴본 다음 나무 아래에 있는 평평한 바위에 앉아 캐러밴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레이시.
캐러밴의 리더는 멀리서 레이시의 콧노래가 들리자 오랜만에 레이시를 본다는 생각에 옷매무새를 다듬었고, 레이시는 말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나 캐러밴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벡 씨, 오늘도 수고하시네요.”
“레, 레이시 씨도 오랜만입니다! 오늘도 포션, 잘 부탁드립니다!”
“아하하, 아직 제가 어색한가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레이시가 치마를 입고서 나긋하게 웃으면서 벡에게 인사하자 벡은 심장은 크게 뛰는 걸 느끼며 말을 더듬다가 부하들이 뒤에서 자기를 놀리자 간신히 심장을 진정시키고 거래를 시작했다.
“아, 설탕이다~. 에헤헤, 고마워요.”
“그런데 설탕이 다 소비될 때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을 텐데 왜 갑자기 추가 구매를 하시는 건가요?”
“올해로 20번째 생일이라서요, 평소에는 그냥 생일 케이크만 먹고 끝냈는데 오늘은 좀 다른 간식도 만들어보게요.”
“새, 생일이었습니까!?”
“네, 오늘 생일이었어요. 여기 포션이랑 대금이에요.”
“어, 어어어어……. 그, 서, 선물……!? 이, 이거 선물입니다!”
“네?”
“아, 아아앗!? 아, 아니! 이건 포션 대금이군요! ……선물로 드릴 게 없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후후, 아니에요, 그렇게 기뻐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걸요. 참, 엘라 공주님이 가출하셨다는데 마을은 좀 어떤가요?”
“안 그래도 그 일로 난리입니다. 모험가들은 엘라 공주님을 찾아서 왕가에 하사하겠다고 몬스터는 상대 안 하고 사람 추적만 해대고, 마을 청년들도 일확천금을 노리고 움직이더군요. 걔 중에는 귀족들이 로맨스를 꿈꾸고 사병들을 끌고 움직인다고 하더군요.”
말을 더듬는 벡을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대화 주제를 틀어주는 레이시.
벡은 레이시가 대화 주제를 틀자 떨떠름한 얼굴로 마을 상황을 레이시에게 알려주었고, 레이시는 벡의 말에 어쩌면 모험가 길드의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은퇴하기 직전에는 S랭크까지 찍었으니까 어쩌면 대형 몬스터를 처리해달라고 올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벡은 엘라를 찾아볼 생각은 안 해봤는지 물어봤다.
“벡 씨는 사람을 잘 보시니까 공주님을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하하, 저는 캐러밴을 운용하는 게 좋아서요. 그리고 제가 없으면 레이시 씨에게 이런 물건을 배달해줄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까?”
“아하하, 하긴 그러네요. 그럼 고마웠어요.”
벡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숲으로 돌아가는 레이시.
벡은 치마를 입고 고운 자태로 숲으로 돌아가는 레이시를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깊게 내쉬었고, 벡의 부하들은 그런 벡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핫! 대장! 그냥 남자답게 좋아한다고 고백해보는 게 어때요?”
“그랬다가 차이면 어떻게 해.”
“그럼 차이는 거죠.”
“너네 진짜 내 부하 맞지?”
“아무렴요. 저희가 대장의 부하가 아니라면 누구 부하겠어요? 그냥 대장을 놀리기 좋아할 뿐이에요.”
벡의 부하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벡의 짝사랑을 응원하기 시작했고, 벡은 부하들의 짓궂은 응원에 괜히 화를 내다가 다음에는 장미꽃을 사서 가보겠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환호성을 내지르는 부하들.
벡은 부하들의 환호성에 키득 웃다가 다음 목적지로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 순간 그들의 앞을 두 사람이 막아섰다.
로브를 뒤집어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성 2명.
벡은 그런 여성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혹시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다음 마을까지 데려다줄 테니 마을에서 거래하자고 말했고, 여성 중 한 명은 그런 벡의 말에 코웃음을 치더니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는 짜증난다는 듯 입을 여는 여성.
“너, 방금 그 야차와 무슨 관계야.”
살의가 가득한 목소리.
벡은 그런 목소리에 레이시를 노리는 사람인가 싶어 침을 꿀꺽 삼키다가 레이시를 노리는 거라면 자기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나무 곤봉을 꺼냈고, 여성은 그런 벡의 행동이 가소롭다는 듯 웃다가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게 되는 벡.
여성은 벡을 바라보면서 자기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협박했고, 벡은 그런 여성의 협박에 침을 꿀꺽 삼키다가 그게 여성과 무슨 상관이냐며 무기를 꼬나쥐었다.
“하아……, 씨발……. 이놈이고 저놈이고 짜증나게……. 레이시 언니는 내 거야. 너 같은 놈에게 건네줄까봐?”
“……어? 레, 레이시 씨랑 아는 사이입니까?”
살의 가득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리는 여성.
벡은 여성의 중얼거림에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는 조심스럽게 무기를 내려놓고 여성을 쳐다봤고, 여성은 그런 벡의 행동에 천천히 마력을 진정시키며 대화를 시도했다.
“레이시 언니랑 미래를 약속한 사이야. 비켜.”
“미, 미래라고 하면?”
“……쯧, 동정 같이 생겨서 시끄럽게 구네. 당연히 결혼이지.”
“……예?”
너무 예상 외의 말에 당황하는 벡.
하지만 여성은 당연하다는 듯 레이시와의 약속의 증거라며 녹색의 팔찌를 보여주었다.
사람의 머리카락을 엮어서 만들었는지 머리카락 특유의 질감이 보이는 팔찌.
그리고 그 팔찌는 뭔가 익숙한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벡은 그제야 눈앞의 사람이 거짓말이라거나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여성의 정체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미래를 약속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한 벡은 멍하니 여성을 바라봤고, 여성은 망연자실한 벡의 얼굴이 퍽 재미있는지 웃음을 터트리면서 숲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숲에서는 마력을 느끼고 놀란 레이시가 다급하게 뛰쳐나왔고, 여성은 그대로 레이시에게 달려가 안겼다.
“레이시 언니!”
“엘라!?”
“왔어! 20살이 됐으니까!”
“야, 약속 기억하고 계셨네요? 아니, 그보다 엘라, 신문에 난 거 알아요!?”
“알아. 왕궁의 쓰레기들이 자기들이 몬스터 처리해야 하니까 쫄아가지고 이제와서 나 찾고 있잖아.”
“그런 게 아니라 공주가 가출하면 누구든 놀라요.”
레이시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예상 외의 이름.
벡은 그 이름에 당황한 얼굴로 레이시를 쳐다봤고, 레이시는 그제야 벡이 있다는 걸 느꼈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비밀로 해줄 수 있겠냐고 말하며 엘라를 데리고 숲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그러자 헤실헤실 웃으면서 레이시의 손을 잡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집을 보더니 꽤 괜찮은 집이라면서 레이시를 따라 들어간 다음 레이시에게 안겼고, 레이시는 엘라가 품에 안기자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부터 사귀어주는 거지? 언니가 말한 20살 됐잖아.”
“으, 으으으으……. 엘라, 공주님이 아니게 되어도 좋아요?”
“응, 상관없어. 나는 레이시 언니를 원해. 그때 처음 약속했을 때부터, 나는 레이시 언니를 원했어.”
“아, 아하하……. 그건 고맙지만…….”
“언니는 나 싫어……?”
“아뇨, 엘라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는 모험가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신문에서 자주 봤으니까 엘라를 싫어할 리가 없잖아요. 다만 저랑 비교해보면 엘라가 너무 뛰어나서 엘라가 실망하지 않을지 걱정될 뿐이에요.”
“나는 언니를 싫어하지 않아. 언니가 처녀라서 섹스를 잘 못 해도 괜찮아. 나도 언니한테 처음을 주려고 처녀거든!”
“으윽……! 부끄러운 이야기는 금지에요.”
엘라의 이마를 때리고 한숨을 내쉬며 모험가 시절의 일을 떠올려보는 레이시.
5살의 엘라가 암살자에게 죽을 뻔한 것에서 구해주고, 10살의 엘라에게 5년간 모험가의 기본기를 가르쳐주고, 마지막에 귀찮았던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것으로 모험가에서 은퇴하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엘라에게 그 머리카락을 선물하고…….
“5년이나 저만 바라본 거예요?”
“5살 때부터니까 15년.”
“……15년이나요?”
“응, 그러니까 여기에서 나가라던가 설득할 생각하지 마. 돌아갈 생각이라면 미스트를 데리고 오지 않았어.”
“아, 아하하하…….”
단호한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엘라는 오랜만에 보는 레이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자란 머리카락과 모험가 생활을 그만두면서 생긴 여성미를 천천히 음미했다.
아마 체형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치마를 입고, 스톨을 두르고 커피의 부드러운 향기를 내서…….
“쓰으으읍……, 하아……. 언니, 이제 우리 연인이 되는 거지?”
“그, 그게……, 한 계단씩 스텝을 밟아가는 거죠? 우리?”
“난, 한 계단씩 밟는 거 못 해.”
“흐꺅!?”
자기 옷을 들치는 엘라의 손길에 놀라며 엘라를 말리는 레이시.
하지만 엘라는 멈출 생각이 없다는 듯 레이시의 배를 만지다가 치마 안으로 손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커튼을 치고 방음 마법을 치러 가겠다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당황하다가, 이내 익숙한 비행음과 함께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창문을 열어젖히고 미네르바가 들어오자 더욱 당황했다.
“이 덜 자란 인간이……. 내 주인에게서 떨어져라.”
“시끄러워, 그동안 언니랑 같이 살았으면 떨어져.”
레이시를 엘라에게서 빼앗아 공주님 안기로 안아드는 미네르바.
엘라는 미네르바의 행동에 마력을 끌어올렸지만, 미네르바는 거기에 지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리며 주술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다가 두 사람을 말렸다.
“오늘 제 생일인데 좀 진정해요. 네? 케이크 해줄게요. 두 사람 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 먹어요. 네?”
“……칫.”
“……쯧.”
레이시의 말에 혀를 강하게 차더니 서로 한쪽 팔을 차지하는 엘라와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 어색하게 웃다가 속으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세계 생활 24년차, 아무래도 평온하기만 했던 내 인생에 파란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것도 백합의 파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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