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이세계 아카데미3
* * *
“흐응…….”
“왜 그래요?”
“응? 아, 아무것도 아냐.”
고민하던 끝에 결국에는 미스트의 조언대로 레이시에게 조금은 기대기로 한 엘라.
하지만 그렇게 각오하고 데이트하러 나왔음에도 엘라는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나비의 사냥을 가만히 바라봤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평소답지 않은 모습.
레이시는 엘라에게 고민이 있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질문에 레이시를 잠시 쳐다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레이시가 먼저 물어봤으니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만일 뿐인 일인데, 도저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엘라는 자기 입술을 만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를 가만히 쳐다보며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그러자 엘라는 문득 자기가 남에게 부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탁한다는 건 자기가 남보다 조금 모자란 상황에 있을 때에나 하는 거니까.
권력?
애초에 이 나라의 왕족인 자기에게 권력에 대해서 떠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왕위 후계자에서 스스로 내려온 데다가 권력을 많이 휘두르지 않아 휘두르는 방법이 서툴긴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어지간한 것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재력?
자기가 하는 일을 모험가가 한다고 했다면 이미 혼자서 대형 상단 수준의 재력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국가에 헌신한다는 이유로 좀 적게 받고 있어서 그 수준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중형 상단 규모의 자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무력?
아샤와 미스트까지 부하로 두고 있는 이상 자기를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오라토리엄 왕국 안에서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엘라는 남에게 뭔가 부탁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자기도 할 수 있는 일을 시간 단축을 위해서 남에게 해달라고 명령할 뿐.
“하아아…….”
“으으으응.”
“응? 아, 아하하……. 미안해.”
“오늘 정말 이상하네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숨을 내쉬는 엘라의 볼을 콕콕 찌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손짓에 키득키득 웃다가 레이시의 손가락을 약하게 깨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다가 입술을 샐쭉 내밀면서 이번에는 엘라의 볼을 꼬집었다.
쭈욱.
손가락에 힘을 적당히 빼고 꼬집자 엘라는 아프다면서 레이시의 옆구리를 간질였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에 다급하게 손을 빼고 엘라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피식 웃으면서 샐쭉 튀어나온 레이시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가 떨어지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에게 몸을 파묻으면서 한숨을 깊게 내쉬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를 안아주면서 엘라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으응……, 저번처럼 그 볼케릭……? 그 사람하고 싸우기라도 했어요?”
“응? 내가 누구하고 싸우면 이렇게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화를 내지 않을까?”
“우응……, 안 싸우는 게 좋겠네요.”
“음, 나는 최대한 안 싸우려고 하고 있어. 자칭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자들의 헛소리를 받아주고 있을 뿐이지.”
“아, 혹시 왕궁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건가요?”
“그 사람들은 무작정 NO만 외치는 NO맨들이니까. 노인들이라 NO만 하는 건가?”
“풉, 방금 말장난 한 거예요?”
“몰라.”
레이시의 웃음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레이시의 품 안에 좀 더 파고드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작게 웃다가 엘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손길에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돌려 나비의 사냥을 쳐다봤다.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것의 정체는 멧돼지 계통의 짐승.
체력이 좋아 동급의 다른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몇 배의 체력을 소모하게 하면서 부산물의 가치가 그렇게 좋지 못하기에 모험가들이 기피하는 마수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비에게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 건지 나비는 멧돼지들이 저기 머리 위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해 나무를 박차고 뛰어올라 수직으로 떨어지며 멧돼지들의 숨통을 끊었고, 이내 발톱으로 가죽을 가르고 살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처음 레이시를 만났을 때도 멧돼지를 봤었는데.”
“아, 그랬었죠.”
“그땐 헛구역질 하던데 이젠 꽤 익숙해졌네?”
“아, 아하하하……. 으응, 저도 꽤 변했으니까요?”
자기도 여러 가지를 보고 생각하는 게 많아졌고 덕분에 꽤 변했다고 말하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피식 웃더니 자기 눈에는 아직 귀엽게만 보일 뿐이라며 레이시의 볼을 약하게 잡아당기며 손장난을 쳤다.
하지만 그렇게 손장난을 하는 것도 잠시.
레이시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던 엘라는 레이시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천천히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말하기 부끄럽고 껄끄럽다고 해도 부탁할 건 부탁해야겠지.
“저기, 레이시.”
“네.”
“음,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뭔가요?”
“아카데미에 교수로 들어가주지 않을래? 초급자반으로. 그 정도면 레이시의 실력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마른 침을 삼키면서 레이시의 눈치를 살펴보는 엘라.
레이시가 교수는 무리라고 말했었던 기억 때문에 엘라는 잔뜩 긴장한 채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진지한 얼굴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엘라의 손을 잡더니 입을 열었다.
“으응, 제가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응, 초급자는 대부분 레어도가 1인 견습 스킬만 익히고 있을 뿐, 다른 무언가는 익히고 있지 않고 나이도 10살 전후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1인분의 역할은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면서 레이시를 올려다보는 엘라.
레이시는 자기 품에서 축 늘어지는 엘라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뺨을 긁다가 멋쩍게 웃으면서 뭔가 다른 걸 요구할 생각은 없냐고 물어봤다.
“으으으응……, 이거 엘라가 고민해서 제게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일이잖아요? 꼭 필요한 거죠? 그럼 노력해볼게요.”
“레이시…….”
레이시의 말에 감동한 듯 눈물을 글썽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다가 엘라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렇게 감동 받을 건 없지 않냐며 엘라를 달래주었다.
“아니, 나, 사실 꽤나 긴장했거든.”
“그렇게 보였어요.”
“아하하……, 미스트의 말을 듣기로 한 게 잘 됐네.”
“왜 그렇게 긴장했던 거예요? 제가 그런 부탁을 받았다고 엘라를 싫어할 리가 없잖아요.”
“내가 남에게 뭔가 부탁을 해본 적이 있어야지.”
“……부탁을 안 해봤어요?”
“명령이나 했지 부탁을 왜 하겠어? 내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욕심이 심한 것도 아닌데.”
“흐으으응…….”
“뭐, 그건 이제됐어. 중요한 건 해결했으니까, 나비의 사냥도 끝났겠다, 슬슬 돌아갈까?”
피식 웃더니 레이시의 품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엘라.
부끄러움을 잊고 싶었던 엘라는 얼렁뚱땅 대화를 끊은 다음 레이시의 손을 잡아당겼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손짓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엘라를 따라갔다.
멧돼지를 사냥하러 나온 곳은 수도에서 나비를 타고 두 시간 정도 가면 있는 마을로시골이라면 시골이고, 도시라면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애매한 크기의 마을이었다.
“오랜만에 둘이 나왔으니까 조금 놀자.”
나름 놀려고 하면 놀 수 있는 규모의 마을.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를 바라보면서 일도 끝났겠다 조금은 땡땡이치고 돌아가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로 놀러갈 건지 물어봤다.
그러자 엘라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일단 그냥 발길이 닿는 곳으로 가보자면서 나비에 올라타 사냥을 나오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마을의 풍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네.”
“아, 아하하하…….”
“여기에서는 편하게 못 있겠네. 텐트 받아왔어?”
“네, 받아왔어요.”
“그럼 도시락만 챙기고 소풍이나 갈까? 촌장에게 다녀올 테니까 도시락 사다줘.”
“네, 엘라.”
그렇게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자 꽂히기 시작하는 시선.
수도에 있을 때도 시선들이 꽂히긴 했지만, 마을에서 꽂히는 시선은 아무래도 수도의 시선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었고엘라는 그런 시선에 한숨을 내쉬면서 소풍이나 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그럼 레이시는 도시락을 사다줘. 나는 촌장에게 놀만한 곳을 물어보고 올게.”
“네, 정문에서 기다릴게요.”
“응, 조심해서 갔다와.”
자기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비를 타고 자리를 뜨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촌장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촌장은 여기에 막 찾아왔을 때와 다르게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 듯한 엘라의 모습에 떨떠름하게 엘라를 맞이했다.
“멧돼지들은 전부 처리했다. 이건 그 증거인 왼쪽 송곳니들.……이빨에 붙은 살점은 무시해, 우리 나비가 밥을 좀 거칠게 먹더구나.”
“아, 아닙니다. 멧돼지들을 처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흐흥, 아, 이 근처에 좋은 풍경이 있나? 기왕 나온 겸 메이드와 소풍이라도 나갔다 올 생각이다만.”
“그거라면 여기는 어떻습니까? 이 마을 정문에서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호수가 있는데 꽤 풍경이 괜찮습니다.”
“그래? 좋아. 그럼 거기에 가야겠네. 고맙네.”
“아, 아닙니다! 칭찬,감사합니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자리를 뜨는 엘라.
촌장은 그런 엘라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났지만, 엘라는 자기를 따라오려고 하는 촌장에게 자기 일이나 하라며 손을 휘저은 다음 정문에서 나비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레이시에게 갔다.
그리고는 이 근처에 호수가 있으니 거기로 가자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나비에게 호수로 가줬으면 한다고 속삭였고, 나비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발걸음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촌장의 말대로 한 30분 정도 움직이자 나오는 호수.
엘라는 전경의 왼쪽이 숲으로 가려진 아기자기한 호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무 그늘에 텐트를 치면서 여기에서 조금 쉬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도시락을 꺼내서 엘라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맛있네.”
“그러네요.”
긴장하던 일이 해결되어서인지 나른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나른한 목소리에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엘라는 레이시의 여유로운 반응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체리를 입에 넣고는 물을 마시는 레이시의 입술을 훔쳤다.
“으웁!?”
레이시의 혀 안으로 체리를 집어넣은 채 혀를 굴려서 체리를 굴리기 시작하는 엘라.
엘라의 키스에 당황하던 레이시는 입 안에서 체리가 굴러다니자 당황하다가 이내 눈을 감고 엘라의 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라는 괜히 또 머쓱해져서 레이시의 허리를 끌어안고 부드럽게 혀를 굴리다가 레이시의 입에 체리를 넣어주었다.
“푸흐으으…….”
씨앗은 빼놓은 체리였기에 그대로 입 안의 체리를 깨물고 그대로 삼키는 레이시.
레이시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엘라를 쳐다보고 있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표정에 자기가 이겼다며 키득키득 웃으며 체리줄기를 입에 넣어 리본을 묶어 레이시에게 건네줬다.
“으으으으으…….”
“푸훕. 역시 귀여울 뿐이네.”
“……시끄러워요!”
엘라의 말에 작게 투덜거리는 레이시.
화났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입술을 샐쭉거리는 레이시를 보자 엘라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다시금 레이시와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그 입술만큼이나 부드럽게 이어지는 키스에 엘라를 노려보다가 엘라가 혀를 집어넣자 엘라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혀를 섞자 문득 루룬에게서 들은 엘라의 약점을 떠올라 레이시는 그 말을 실험해보듯 키스하던 도중 엘라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면서 혀를 섞었다.
그러자 크게 흠칫 떨더니 점점 레이시를 자기 위에 올려 태우는 엘라.
레이시는 뭔가 포지션이 평소와 다르게 변하자 가슴이 크게 뛰는 걸 느끼면서 처음으로 엘라를 리드하면서 혀를 섞기 시작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리드에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얌전히 입을 벌리고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하아아아…….”
“하아, 하아…….”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눈을 맞추는 엘라와 레이시.
레이시는 자연스럽게 엘라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면서 엘라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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