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이세계 아카데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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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해결한 엘라는 미스트가 준비되자마자 아카데미에 연락한 다음 아카데미에 찾아갔고,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은 실리파 아카데미의 교장은 경련을 일으키다시피 했다.
아무리 오라토리엄 왕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아카데미라고 해도 실리파 아카데미는 메이드와 집사를 양성하는 학교.
아무래도 도시 자체가 아카데미인 다른 아카데미들과 비교하면 위상이 낮았고, 엘라처럼 귀인이 오는 경우는 더욱 드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엘라가 방문한다니?
교장은 손끝을 벌벌 떨다가 마차가 이제 막 출발했다는 소식에 학생들까지 총동원해서 학교를 깨끗하게 만들라고 시킨 다음 교사들을 불러서 엘라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갑자기 찾아오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엘라에게 잘 보여서 일을 잘 해결한다면 자기 뒤를 바짝 쫓아오는 세르한 아카데미를 뿌리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엘라 공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준비해!”
“넵!”
그걸 알고 있는 실리파 아카데미의 사람들은 다소 강압적인 교장의 말에 군말없이 따르기 시작했고, 엘라는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분주한 느낌에 피식 웃었다.
“너무 급하게 찾아왔나?”
“이런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요? 저라면 5분 안에 준비를 끝낼 수 있잖아요?”
“분신술에 마법에 기타 잡다한 스킬까지 전부 써가면서 말이지?”
“저는 공주님의 메이드이니까요.”
“풉, 뭐, 됐어. 내리자.”
“네, 공주님.”
적당히 마차를 주차한 다음에 미스트와 함께 실리파 아카데미에 들어서는 엘라.
정문에서부터 메이드들과 집사들이 허리를 90도로 숙인 채 엘라를 맞이했고, 엘라는 그런 집사과 메이드들을 힐끗 본 다음 교장이 있는 곳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교장의 응접실에 들어간 엘라는 다소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사람이 많군.”
학교의 교수가 전부 모이기라도 한 건지 좁지 않은 방인데도 갑갑하다는 느낌을 주는 방 안.
교장은 그런 엘라의 말에 다급하게 교수의 절반을 밖으로 내보냈고, 짬밥이 낮은 교수들은 남아있는 교수들을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엘라에게 인사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어깨를 으쓱이고 소파에 앉는 엘라.
교장은 긴장을 숨기는 얼굴로 엘라에게 오늘 방문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고, 엘라는 교장의 질문에 별 거 아니라고 말하면서 왕궁의 소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어봤다.
“소문이라 하심은……, 공주님의 새로운 메이드인 루피너스 남작 말씀이십니까?”
“그래.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그, 그게…….”
엘라의 질문에 당황하는 교장.
소문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교장은 집사와 메이드를 양성하는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답게 왕궁의 안의 소문도 들을 수 있는 연줄이 있었으니까.
다만 지금 레이시 루피너스의 소문은 엘라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소문이었다.
조금 정중하게 말하자면 레이시는 엘라의 메이드를 하기에는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고, 조금 천박하게 말하자면 레이시는 엘라의 밤시중을 드는 고급 창부이지 메이드가 아니라는 이야기.
정중하게 말하든 천박하게 말하든 레이시를 아끼는 엘라에게는 무척이나 불쾌한 이야기가 되겠지.
그렇기에 교장은 엘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교장의 눈치에 휘휘 손짓하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말했다.
“이미 왕궁의 대신들에게서 온갖 잔소리는 다 들었다네. 편하게 말하게나.”
“그……,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은 야차 특유의 무력을 통해서 남작 직위를 얻었을 뿐, 메이드로서의 기술은 전혀 없고 그 외모만으로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님의 곁에 있을 뿐이라고…….”
“푸흐흐…….”
“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뭐, 레이시가 메이드로서의 공적이 없는 건 사실이니 그렇게 긴장하지 마시게.”
“그…….”
“확실히 인정하지. 레이시가 메이드로서 내게 해준 건 큰 게 없다네.”
“그렇다면 다른 메이드를…….”
“고작해야 내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주고, 알코올 중독을 완화해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내 생에 재미를 되찾아줬을 뿐일세.”
“……시켜서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에 대한 좋은 소문을 퍼트릴까요?”
엘라의 말에 식겁하면서 말실수를 할 뻔 했다고 생각하는 교장.
대체 뭐가 그게 큰 게 없다는 걸까?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미소를 되찾아주고, 삶을 재미있게 만들고, 알코올 중독을 없애주다니…….
그 정도면 집안일을 전혀 하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붙잡아야 할 수준이다.
특히 엘라의 경우에는 알코올 중독과 그 특유의 여성편력만이 문제가 되어 국왕의 걱정을 샀던 걸 생각해본다면, 레이시가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 순간 온갖 수단을 사용해서 엘라의 곁에 붙여놓을 수준이다.
그렇게 생각한 교장은 자기 순발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뭐, 대신들은 그런 내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고 레이시를 깎아내렸지만.”
“그, 그렇습니까?”
“레이시는 메이드가 아니라 군인이 되어야 한다고 헛소리를 하더군. 내가 메이드로 두겠다는데 아주 자기들 권한이 왕족보다 강한 줄 알아.”
키득키득 웃으면서 레이시는 안 된다는 말을 했던 대신들을 비웃는 엘라.
교장은 그런 엘라의 웃음에 움찔 떨면서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교장의 시선에 화를 내는 건 아니니 안심하라며 손짓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주요 대신들이 한 충고라면 한 번은 들어보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라네. 꼭 쓸모없는 것들이 더 거칠게 짖지.”
“아, 아하하하…….”
“그래서 레이시에게 실적이 필요하다네.”
“그 말씀은…….”
“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겠나? 미스트가 나온 아카데미라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다만.”
엘라의 말에 침묵하는 교장.
미스트를 교수로 받아달라고 말했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스트는 모든 항목에서 만점을 받았었던, 실리파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천재였으니까.
하지만 레이시는 솔직히 말하자면 미지수였다.
애초에 소문이 좋게 나지 않아서 레이시의 능력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기에 그런 사람을 교수로 받아들이는 건 아무래도 도박이었다.
그럼에도 단번에 거절하지 못하는 건 역시 엘라의 부탁이기 때문이었다.
엘라는 이 나라의 공주.
그것도 평범한 공주가 아니라 혼자서 전쟁을 일으키고 혼자서 전쟁을 끝낼 수 있으며,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모험가와 병사들 사이에서는 수호신에 가까운 존재.
그런 엘라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그리고 엘라가 세르한 아카데미로 간다면 어쩌면 다시는 쫓아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자기는 최악의 교장으로 남게되겠지.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교장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잠시만 고민할 시간을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교장의 질문에 흔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레이시도 지금 당장은 교수를 못 할 거 같다고 말하는 상황이니까 당장에 뭔가 답을 줄 필요는 없네. 다만 미리 자리를 마련해줄 준비는 하고 있어주게.”
“그 정도라면, 네. 알겠습니다.”
“그럼 고맙군.”
교장의 대답에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라.
엘라는 미스트와 함께 마차로 돌아가더니 레이시에게 가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마부에게 목적지를 고쳐서 말해주었다.
그러자 다시 출발하는 마차.
엘라는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레이시에게 메이드로서의 실적을 남길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레이시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사가 되는 거라고 말했다.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면 루룬 마케르크님이나 레베카 오라토리엄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있겠네요.”
“때려치우자. 응. 앞에 건 내 순전히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라서 고려는 해보겠는데 뒤에 건 절대로 안 돼. 레이시를 이쪽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후후, 그런가요? 그럼 루룬 님에게 편지를 보낼 준비를 해둘까요?”
“……응.”
미스트의 말에 한숨을 내쉬는 엘라.
기술적인 면모만 보자면 레이시가 메이드로서 부족한 건 맞다.
레이시가 정치적인 이야기나 철학적인 이야기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비서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하물며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니까.
레이시가 할 수 있는 메이드로서의 역할만 따지자면 짐승을 돌보는 조련사 역할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메이드인 팔러 메이드가 전부.
하지만 그게 뭐가 어쨌단 말인가?
메이드나 집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주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거고, 주인과 마음이 잘 맞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레이시는 따로 말할 것도 없이 좋은 메이드였다.
그런데 그 노인네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레이시를 방해하고 별 관심도 없는 여자들을 자기에게 들이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엘라는 오랜만에 위가 쿡쿡 쑤신다는 느낌을 받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미스트는 탈진 한 것 같은 엘라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하아아…….”
“후후.”
“왜 웃어?”
“레이시 양에게 왕궁에 오면 힘든 일이 많다고, 괴로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면서 공주님께서 먼저 지치셨네요?”
“……시끄러워.”
미스트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혀를 차는 엘라.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엘라를 놀렸고, 엘라는 미스트의 웃음에 눈을 흘기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이 몰려오는지 엘라는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내쉬었고,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반응에 키득키득 웃다가 그렇게 힘들면 레이시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공주님은 레이시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시는 것 같지만, 그건 동등한 관계가 아니잖아요?”
“실제로 동등하지 않으니까.”
“어머, 그렇게 말하면 레이시는 슬퍼할 거예요?”
“사실인데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제가 말하는 건 심리적인 거라고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듯이 말하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자세를 똑바로 하고 미스트를 쳐다봤고, 미스트는 엘라가 자기를 쳐다보자 엘라가 이해하기 쉽게 천천히 풀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경제력, 권력, 이런 것들은 공주님이 훨씬 위에 계시죠. 단순한 무력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인 관계가 그렇게 수직적이면 받는 쪽이 힘들어할 거라고요.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되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보고 싶어하는 법이에요.”
“전에 사귀던 사람들은 전부 좋아라 하던데?”
“그게 진심인 연애였나요? 그리고 루룬님은 무척이나 싫어하셨잖아요?”
“읏…….”
미스트의 말에 앓는 소리를 내며 시선을 피하는 엘라.
할 말을 잃은 엘라는 잠시 입술을 침으로 적시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미스트에게 계속 말해보라며 손짓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손짓에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유일하게 마주볼 수 있는 부분에서는 레이시에게 기대는 게 좋을 거예요.”
“부담을 주기 싫은데.”
“레이시가 아예 못 하는 일은 또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죠?”
미스트의 웃음에 한숨을 깊게 내쉬는 엘라.
확실히 레이시가 아예 못하는 일은 아니다.
유년생의 초급반의 경우에는 레이시가 가진 스킬과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쪽으로 넣으면 된다.
고작 초급반의 선생을 했다고 그러는 거냐고 말하면 그 때부터는 자기가 반대로 이 정도로 노력했는데 자기 노력을 무시하는 거냐며 압박하면 되니까.
“하아아아…….”
“부담을 주기 싫다는 건 알겠지만, 그러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알았어. 말해볼게.”
“잘됐네요. 슬슬 나비가 사냥을 나가고 싶어 할 테니까 레이시를 데리고 사냥하고 오세요. 여기 이 녀석을 사냥하시면 될 거 같아요.”
“흐으응…….”
미스트가 건네준 종이를 보고 잠시 비음을 흘리는 엘라.
엘라는 종이를 구기더니 알겠다면서 손짓했고, 미스트는 엘라가 마음을 다잡자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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