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이세계 아카데미1
* * *
“저희 돌아왔어요.”
“아, 돌아왔어?”
아샤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간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가 자기를 반갑게 맞이하자 배시시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웃음에 같이 웃으면서 자기 옆자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오늘 뭐 했어?”
“어……, 술 마셨어요.”
“술만?”
“……으, 으읏, 알면서 물어보는 거죠?”
“네 입으로 듣고 싶었거든.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레이시의 투정에 작게 웃다가 볼에 입을 맞추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다가 엘라를 끌어안고 사과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사과에 자기가 허락한 관계인데 화를 낼 리가 없지 않냐며 레이시의 볼을 꼬집었다.
“뭐,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게 있는데.”
“네? 뭔데요?”
“아샤, 레이시의 훈련은 더 필요해?”
“아니, 그냥 도망치는 거라면 지금 그만둬도 상관은 없어. 근데 레이시가 다른 사람들하고 만나는 걸 좋아해서 그냥 계속 도와주게 내버려두는 거고.”
“그러면 괜찮겠네. 레이시. 앞으로 아카데미에 가줘.”
“학생이 되는 건가요?”
대학교도 졸업했는데 학생이라니…….
레이시는 잠시 망설였지만 다른 세상의 학생들은 어떨까 싶어서 배시시 웃으면서 교복을 입어야 하는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무슨 말이냐며 웃었다.
“교수로 가라는 거야.”
“잘못 들은 거 같은데요……?”
“네가 귀족들에게서 무시당하는 게 실적이 없어서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거든. 미스트는 메이드로서의 실적이 있는데 너는 아니잖아? 그래서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 너를 동물 조련 교수로 보내기로 했어. 제 1 내벽에 있는 아카데미라 귀족들이 자주 갈 거고……, 거기에 가서 실적을 내면 귀족들도 너를 무시하지 못하겠지.”
“……저, 엘라.”
“응? 왜?”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갑자기 교수라니.
학생으로 들어가도 애들이 배우는 걸 나도 배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안 서는데 대체 어떻게 교수가 되라는 걸까?
가끔 튀어나오는 엘라의 막무가내에 레이시는 자기는 교수는 아무래도 무리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당장에 하라는 건 아니니 안심하라며 레이시의 머리를쓰다듬어주었다.
“당장에 하라는 건 아냐. 할 수 있으면 해줬으면 하는 거지.”
“그래요?”
“응. 나비를 데리고 가면 당장에 조련 항목에 있어서 그 누구도 아무 말도 못 하겠지만……, 그렇게 학생을 휘어잡고 싶진 않지?”
“그, 네. 하라고 하면 하겠지만, 솔직히 저는 아샤처럼은 못 할 거 같아요.”
“……그건 미안하다니까.”
레이시의 말에 작게 투덜거리면서 사과하는 아샤.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반응에 자기가 이상하게 말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하게 손을 휘저으며 아샤에게 그런 의미가 아니라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샤는 키득 웃으면서 레이시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때렸고, 레이시는 아샤의 손짓에 아샤가 자기를 놀린 걸 깨닫고 아샤를 노려봤다.
“씨이이잉……!”
“풉, 그래서 왜 갑자기 교수야? 실적이라면 이미 질릴 정도로 세웠잖아? 당장에 남작 중에 아무나 한 명 붙잡아서 오우거를 혼자 처리해보라고 하면 절반 이상은 못 할 텐데.”
“그건 군인으로서의 실적이라고 지랄하더라. 하여튼 그 노친네들, 어떻게든 자기 권력을 강하게 하려고 온갖 추한 짓은 다 해.”
짧게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는 엘라.
엘라는 정 교수를 못 하겠으면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서 레이시에게 주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말에 고민하다가 미스트를 본 다음에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미스트하고 이야기해볼게요.”
“그럴래?”
“네. 죄송해요. 바로 대답 못 해서…….”
“괜찮아. 이런 건 원래 쉽게 대답하지 못해.”
레이시의 사과에 피식 웃으면서 입을 맞추는 엘라.
입술끼리 가볍게 맞췄다가 떨어진 엘라는 너무 많이 사과하지 말아줬으면 한다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레이시에게 뭔가 해줄 땐 네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는 거지, 네가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는 게 아냐. 그러니까 웃어주라.”
“엘라…….”
“그럼 오늘은 이만 잘까? 내일 되면 이 일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나누자.”
“네에~.”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의 볼에 입을 맞춘 다음 잘 자라는 말과 함께 먼저 올라갔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방에 들어가자 쫄래쫄래 따라가 방에 들어갔다.
그러자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엘라.
아샤는 엘라의 한숨에 눈을 깜빡이다가 노친네들이 지랄한 이유를 물어봤고, 엘라는 아샤의 질문에 눈을 피하다가 고해성사하듯 입을 열었다.
“전 여친들의 관계자들이야.”
“그럴 줄 알았다. 네가 레이시랑 특별한 관계를 맺으려고 하니까 레이시에게 줄 수는 없다면서 지랄한 거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과거가 후회스럽네.”
아샤의 말에 한숨을 내쉬는 엘라.
그동안에는 10살 때부터 여자랑 놀았던 경험을 통해 레이시와 만날 수 있었고, 레이시를 리드할 수 있었으니까 괜찮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가니 아무래도 조금은 후회스러웠다.
조금만 덜 놀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조금만 덜 놀았다면 내가 노친네들의 발언을 무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긁었고, 아샤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중증이라며 혀를 차다가 일단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자며 엘라를 쳐다봤다.
“그래서 뭐 준비했는데?”
“우선 교수 일 하나랑 다른 건 레이시의 이름으로 파티 여는 거. 그 두 개를 가장 먼저 생각했지.”
앞의 건 실적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 나오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고, 뒤에 건 레이시를 추종하는 무리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말이 나오지 않게 만든다는 것.
아샤는 그런 엘라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교수 일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레이시는 정치질은 못 할 거 같으니까.”
“역시?”
“걔가 정치질할 성격은 아니지. 조금만 놀려도 금방 티가 나는데.”
일단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제정신이 아니다.
혈육이라고 해도 손해득실을 따져서 움직이고, 이득만 된다면 원수라고 해도 손을 잡고 움직이다가 태연하게 웃는 얼굴로 뒤통수에 칼을 꽂는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레이시가 정치를 한다고 한다면 아마 엘라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겠지.
엘라가 그런 걸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까지 그러지 않은 걸 생각해보면 엘라는 레이시를 정치판에 밀어넣을 생각은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하긴 당연한 거겠지.
엘라가 좋아하는 건 지금 그대로의 밝은 레이시이지 정치에 찌들어서 매일 밤 구석에서 울고 있을 레이시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남아있는 수단은 아카데미에 교수로 가서 테이밍에 대해서 일을 하는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레이시의 테이밍 스킬은 고작해야 이제 막 초보자 수준을 벗어난 수준.
테이밍 된 존재들이 뭔가 하나 같이 나사가 빠져서 베테랑 모험가도 테이밍하지 못할 수준이지만, 스킬 자체는 아카데미의 학생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스트의 도움을 받아서 스킬을 전문화까지 시켰다지만, 학생들이 조금만 수준 높은 질문을 해도 레이시는 대답하지 못할 게 뻔했다.
거기에다가 레이시는 지금까지 테이밍에 100% 성공했으니까 테이밍에 실패한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못하겠지.
한 때 자기도 고생했었던 거기에 아샤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게 되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아샤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미스트를 바라봤다.
“미스트.”
“네, 공주님.”
“레이시에게 다른 교수 일을 시킬만한 게 없을까? 왜, 레이시 머리 좋아보이던데…….”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장부 쓰기는 되지만 교수를 하기에는 조금 그러네요.”
“왜?”
“아무리 가르쳐도 이중장부나 분식회계에 대한 걸 눈치채지 못하더라고요. 이상한 점을 짚어주면 거기서부터는 눈치채는데 그래서는 교수를 하기에는……, 그렇죠?”
“흐응……, 하긴 그건 그렇네. 교수를 하려면 그 정도는 딱 봐도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지. 예절 교수로 보내기도 좀 그렇고…….”
“우선 좀 더 고민해볼까요?”
“하아아……, 머리 아프네. 그냥 노인네들을 전부 협박할까?”
“그랬다간 레이시 양에게 알게 모르게 압박이 가겠죠?”
미스트의 웃음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농담이었다면서 손을 휘휘 젓는 엘라.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싱긋 웃더니 레이시에게 실적을 만들 회의를 이어갔고, 소파에서 잠든 엘라는 몸이 뻐근한 걸 느끼면서 간신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쓰읍.”
해답은 결국 내놓지 못 했네.
아샤는 중간에 잔다고 벽천화 기사단의 숙소로 돌아갔고, 미스트는 자기가 잠들면서 자리를 떴던가?
어떻게든 레이시에게 실적을 만들어서 레이시가 주변 귀족들에게 압박을 받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잘 풀리지 않는 일에 엘라는 짜증을 내면서 굳어진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스트레칭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커피를 건네주었다.
“여기요, 소파에서 주무셨어요?”
“아, 응. 일이 좀 있어서.”
그러자 단숨에 짜증을 몸 안으로 숨기고 웃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다가 엘라의 옆에 앉았고, 엘라는 레이시의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오늘 아침 일은 어땠는지 물어봤다.
그런 엘라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에게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말을 이리저리 돌리는 거냐며 엘라의 볼을 꼬집었고, 엘라는 레이시가 자기 눈을 빤히 바라보자 어색하게 웃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이 연기하는 건 눈치 채지도 못 하는데 왜 자기가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가려고 하면 금방 눈치채는 걸까?
그만큼 자기를 주의깊게 본다는 걸까?
뭔가 기쁘면서도 섭섭한 일에 엘라는 작게 웃다가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말 못 해주니까, 나중에 말해줄게. 아침밥은 뭐야?”
“그러니까 에그 인 헬이라던데요?”
“나, 술 안 마셨는데.”
달걀이 들어간 토마토 수프인가.
엘라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레이시를 보며 다시 한번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엘라의 입맞춤에 쭈뼛거리다가 나중에는 말해주는 거냐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가 나비랑 하양이를 데리고 산책하고 오겠다면서 저택에서 나가자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식탁에 앉았고, 미스트는 엘라의 한숨에 작게 웃었다.
“많이 힘드신 거 같네요.”
“으응……, 뭐. 기쁘기도 한데 힘드네.”
“어쩌겠어요? 이게 다 공주님의 업보인걸.”
“시끄러워, 미스트. 너도 그렇고 아샤도 그렇고 왜 그렇게 나를 놀리는 걸 좋아하는 거야?”
“후후, 글쎄요?”
엘라의 질문에 작게 웃으면서 그릇에 수프를 떠주는 미스트.
과일 몇 조각과 함께 나온 수프를 본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수프를 입에 넣었고 토마토 특유의 감칠맛이 입에서 돌자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역시 교수밖에 없지? 지금 와서 파티를 열어서 레이시가 대접하게 하는 건…….”
“공주님의 돈으로 제가 연 파티라고 하겠죠.”
“크으으……. 일단 아카데미에 가보자.”
“알겠습니다.”
미스트의 시원한 대답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긁적이는 엘라.
뭔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귀담아서 듣겠지만, 이번에 레이시를 걸고넘어진 사람들은 반쯤 은퇴해서 사내정치질만 해대는 쓰레기들.
엘라는 그런 쓰레기들의 말까지 들어줘야 하는 자기 신세에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짜증 냈고, 미스트는 엘라의 짜증에 작게 웃다가 그럼 자기는 아카데미에 기별을 넣겠다면서 자리를 떴다.
“하아아아…….”
미스트가 자리를 뜨자 한숨을 깊게 내쉬는 엘라.
그러던 엘라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지금 이 일은 자기의 귀여운 레이시를 위해서.
레이시의 얼굴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치솟아 오르던 짜증도, 분노도 억누를 수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일단 기분은 좋았기에 엘라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을 떠올렸다.
“일단 밥부터 먹을까?”
무슨 일이든 먹어야 일단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에그 인 헬을 입에 넣으면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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