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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147화 (147/542)

〈 147화 〉 그대를 위한 기사도­4

* * *

“음, 별로 재미없네.”

“네? 저는 재밌는데…….”

“정말?”

레이시의 대답에 잠시 의아하다는 눈으로 레이시를 쳐다보는 아샤.

정말 자신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걸까?

말이 좋아 기사단의 이야기지, 레이시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딱 까놓고 3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몬스터를 사냥했다.

두 번째는 누군가를 호위했다.

세 번째는 그 과정에서 어떤 바보같은 게 이상한 짓을 했다.

그런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을까?

재미있다고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건 아마도 레이시가 자기를 배려해줘서 재미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한숨을 내쉬면서 굳이 재미있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진짜로 재미있다면서 아샤를 쳐다봤다.

무언가를 죽였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조금 무섭지만, 그래도 사람을 구하면서 생긴 에피소드인데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 있겠냐며 배시시 웃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한숨을 잠시 내쉬다가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꾹 눌러주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애정표현에 프힛거리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아샤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앓는 소리를 내면서 레이시에게서 시선을 피하는 아샤.

아샤는 레이시와 있으면 뭔가 마음이 진정이 안 된다며 한숨을 내쉬다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이야기가 이어지자 눈을 빛내면서 아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눈빛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레이시는 아직 나이가 한 살도 되지 않은 야차.

그러니 정신적인 연령만 따지고 들자면 이런 이야기를 재미있어할 나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레이시의 겉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것.

레이시의 겉모습은 아직 이 세계의 상식도 잘 모르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레이시는 아카데미의 남학생들 자주 망상으로 꿈꾸는, 자신의 영웅담을 재미있게 들어주고 자기를 영웅이라고 생각해주는 공주님이나 귀족 가문의 영애 같이 생겼으니까.

그러니 아샤는 레이시가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줄 때마다 자꾸만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레이시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성격이었다.

훈련받을 때 만나는 사람들이라면 상대가 나쁜짓만 하지 않으면 사근사근 대하면서 웃어줄 정도로 친절한 성격.

그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라는 것.

그것은 어린아이일 때부터 배우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하기 힘든 기본적인 예절이니까.

문제가 있다면 레이시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있었다.

레이시가 지키는 건 아주 기초적인 예의였지만, 그 예의조차 안 지키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레이시가 나긋나긋하게 웃으면서 예의를 지켜주면 사람들이 레이시에 대해 착각하는 게 문제였다.

세상에,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기본적인 예절을 지킨다고 그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착각을 하는 시대가 왔다니.

아샤는 그런 시대가 왔다는 것에 작게 한탄했지만, 자기가 한탄하든 말든 그런 시대는 이미 와버렸기에 아샤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고, 때문에 걱정을 그칠 수가 없었다.

혹시 다른 기사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괜한 오해를 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아…….”

“왜 한숨이세요?”

“응? 아니, 뭐…….”

너 때문에 그런다.

그렇게 말해봐야 레이시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대답하겠지.

그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 아샤는 레이시의 이마를 가볍게 검지로 튕겨 때린 다음 한숨을 내쉬었고, 레이시는 이마를 문질거리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아샤와 깍지를 끼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꽤 잘 가꾸어진 정원.

컨셉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정원에 레이시는 아샤와 한참을 걷다가 다리가 아파올 때쯤 벤치에 앉아 조용히 아샤의 몸에 팔을 기댔다.

그러자 아샤는 어쩔 수 없이 자기 팔을 내어줬고, 레이시는 눈을 꿈뻑거리다가 아샤의 몸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기 시작했다.

“……하아.”

이 바보.

아샤는 자기 팔에 기대어 자는 레이시를 보고 작은 목소리로 놀려봤지만, 레이시가 너무 곤히 자자 놀리기도 뭣해서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의 볼을 콕콕 찌르며 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몸을 비틀면서 아샤에게 안기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가 몸을 비척이며 자기 품 안으로 몸을 파고들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모임이 끝날때까지 자기 몸을 내어주었다.

이렇게 자는 걸 보면 아직 여행의 피로가 덜 풀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나중에 저택에 돌아가면 레이시를 재우자고 생각한 다음 레이시의 어깨를 토닥여주다 자기 겉옷을 벗어 레이시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러자 때맞춰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아샤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거냐며 사라와 그 추종자들을 질린다는 눈으로 바라봤고, 아샤의 시선에 움찔 떨던 사라는 레이시를 비웃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루피너스 남작께서는 평민 출신이라더니 그 덕인지 어느 곳에서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모양이네요.”

“……사라 양, 루피너스 남작께서는 익숙하지 않은 모임에 나오셔서 피로를 이기지 못하신 겁니다. 배려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머, 하지만 이곳은 잠을 청하는 곳이 아닌 걸요. 다른 사람들도 사용하는 정원에서 이렇게 주무시다니, 아무리 평민이라도 이건 예의가 너무 없는 게 아닐까요?”

“…….”

사라의 말에 한숨을 내쉬다가 사라의 냄새를 맡는 아샤.

아샤는 사라의 몸에서 남성의 냄새가 나자 입술을 비틀면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자리에서 물러나줄 수 없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사라는 아샤도 자기를 못 건든다고 생각했는지 의기양양하게 아샤에게 레이시를 깨우라고 말했고, 아샤는 레이시가 소음에 몸을 비척거리자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러니 레이시가 기본적인 예의만 갖추고 나긋나긋하게 대해주는 것만으로도 레이시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착각에 빠지지.

왕궁에 들어온지는 10년도 안 된 일인데, 왜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갈수록 다들 예의를 밥말아먹는 걸까?

“아아…….”

“빨리 깨워주시죠. 남작님에게 귀족으로서 예의를 가르쳐줘야 하니 말이죠.”

“…….”

“뭐 하시는 거죠?”

“……하아아아.”

아샤가 한숨을 내쉬면서 자기를 쳐다보자 무례하게 뭐하는 짓이냐며 아샤를 쳐다보는 사라.

하지만 아샤는 사라의 말에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사라를 쳐다봤고, 사라는 점점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움찔 떨면서 자기 추종자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다 같이 아샤를 압박하기 시작하는 사라의 무리.

아샤는 역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가문의 이름만 믿는 영애들이 모인 집단은 무례하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라는 흠칫 떨면서 뒤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사라 노웨어 양. 입 좀 다물어주시겠습니까?”

“……뭐, 뭐라고요?”

“입 좀 닥치라고. 레이시가 깨잖아. 깨면 책임질 거야?”

호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서 사라의 손에 쥐어주는 아샤.

아샤는 원한다면 뒤에 있는 기사들 전원을 시켜서 덤벼도 좋다고 말하며 사라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 기사가 이런 식으로 행동해도 되는 건가요?”

“내 기사도는 레이시를 위해서 있지, 너를 위해서 있지 않거든? 결투하고 싶다면 다른 곳에서 받아줄 테니까 지금은 좀 닥치고 꺼져. 참, 그리고 너, 공원에서 쪽잠 자면 안 된다느니 뭐라느니 하는데, 너는 공원에서 떡쳐놓고 지랄하지 마라. 엘라에게 몸 팔아서 번 돈으로 남자 사서 떡 쳐대던 새끼 주제에 레이시에게 예의나 들먹이고 지랄하네. 발정 났으면 사창가라도 가서 남창이라도 사서 떡 치던가 공원에서 지랄이야, 지랄은. 씨발, 짐승도 최소한 지 보금자리에서 떡친다, 씨발년아.”

스킬까지 써가면서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아샤.

스킬을 조정해서 레이시에게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조절한 아샤는 사라가 겁먹은 얼굴로 자기 얼굴을 쳐다보자 피식 비웃으면서 뒤에 있는 기사 중 사라의 냄새가 나는 기사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공포심과 수치심에 움찔 떠는 기사.

기사는 아샤의 시선에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샤가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아샤가 자기가 공원에서 사라와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피식 웃으면서 기사를 비웃다가 벌레를 쫓아내듯이 휘휘 손짓하는 아샤.

사라는 아샤의 행동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다가 이내 씩씩 거리면서 두고보자고 말했고, 아샤는 그런 사라의 행동에 중지를 들어준 다음 벤치에 앉아 레이시가 깨지 않았는지 살펴봤다.

다행히 아직 얌전히 잠들어있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다가 옆자리에 앉아 자기 허벅지에 눕히고서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다.

……레이시만을 위한 기사도라.

그 자리에서는 사라를 압박하기 위해서 한 말이지만, 내가 말하고서도 꽤 부끄러운 말이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의 얼굴을 보자 아무래도 좋나 싶어서 벤치에 기대서 멍하니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는 걸 쳐다봤다.

그리고 모임이 끝날 때쯤,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천천히 레이시를 깨우기 시작했다.

“이제 일어나, 엘라도 나올 거야.”

“으, 으응……?저 잤어요?”

“오늘따라 피로 회복이 느리네.”

“아, 아하하……. 저, 얼마나 잤어요? 눈 조금 붙인다는 게 완전히 자버렸네요.”

“얼마 안 잤어.”

레이시가 자기 허벅지를 베고 잤다는 사실에 미안해하자 얼마 안 잤으니까 사과하지 말고 돌아가자고 말하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배시시 웃더니 이번에는 고맙다고 말한 다음 아샤의 손을 잡았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거의 다 끝나가는 모임에 다시 섞여들어갔다.

모험가들은 이 나라의 군인이 할 수 없는 특수한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중요한 사람들이니 지원하자는 노인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는 사람들.

레이시는 그 모습에 미국 드라마에서나 봤었던 선거 기부금을 마련하는 장면이 떠올라 헤실 웃다가 아샤에게 팔짱을 꼈고, 아샤는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안아주었다.

“그나저나 사라 씨가 안 보이네요.”

“응? 왜?”

“아뇨, 돌아오면 시비를 걸 줄 알았거든요. 그 사람, 은근히 자랑 했잖아요. 그래서 ‘루피너스 남작님은 이 정도의 돈도 없으시군요~.’라고 말하면서 저를 놀릴 줄 알았어요.”

“엘라에게 이제 귀찮으니까 가라는 소리라도 들었나보지. 아마 엘라라면 네가 훨씬 더 예쁘고 사랑스러우니 저리 꺼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레이시의 말에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 말하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조금은 미안한 듯 사라를 찾아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아샤의 손에 깍지를 꼈다.

“으응, 아무리 좀 나쁜 사람이라도 그렇게 나쁜 건 안 했는데…….”

“불쌍해?”

“조금요.”

“그래도 찾지는 마, 지금 그 사람 찾아가서 엘라가 나쁜 말 해서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하면 물 먹이는 일밖에 안 되니까.”

“아, 아하하하…….”

아샤의 말에 움찔 떨다가 시선을 피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샤가 자기를 쳐다보자 슬슬 엘라에게 돌아가자며 아샤의 손을 잡아끌기 시작했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못 이기는 척 레이시의 손을 잡고 엘라에게 갔다.

“공주님의 기대에 꼭 부응해보이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가도 모험가를 지원해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자네가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테니까. 그러니 건강에 유의하면서 일하도록.”

“오오……, 배려의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몸은 아직 현역! 공주님의 말씀은 이 늙은이의 도전의식을 불태우실 뿐입니다!”

“그런가? 후후, 이거 미안하게 됐군. 그럼, 기대하고 있겠네.”

일하는 도중이었는지 근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나오는 엘라.

아샤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노인이 엘라의 평소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 거 같냐며 키득키득 웃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손을 잡으면서 엘라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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