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그대를 위한 기사도3
* * *
전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각 가문의 영애들이 모인 집단은 솔직하게 말해 영양가가 없는 편이었다.
특히 특기가 없어서 왕궁에서 일하지 않고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서 파티를 돌아다니기나 하는 영애들의 집단은 더욱.
기껏 찾아와서 한다는 게 시비 같지도 않은 시비를 걸고 간 다음에 엘라에게 아양을 떠는 거라니…….
만약 조금만 제정신이 박혀 있고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눈치가 있었더라면, 레이시에게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정중하게 인사했을 텐데.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모임에 나온 영애들을 보다가 레이시를 힐끗 쳐다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새로 받은쥬스를 홀짝였다.
그러자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아샤에게 기댔고, 아샤는 레이시가 자기에게 기대자 조심스럽게 몸을 낮춰 레이시가 편하게 기댈 수 있게 자세를 취했다.
“……에헤헤.”
“왜 웃어?”
“그냥요.”
“……싱겁긴.”
레이시의 그냥이라는 말은, 아마도 정말로 그냥이겠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레이시의 말은 아무래도 조금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째서일까?
아샤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모임의 안쪽에서 레이시를 놀렸던 무리가 엘라에게 다가가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자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그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러면서 레이시의 눈치를 잠시 살펴보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시선에 자기는 괜찮다며 웃었고, 아샤는 레이시의 웃음에 정말로 괜찮은 거냐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여자가 엘라에게 저렇게 하는데?”
“으음, 네, 괜찮아요.”
“흐응, 왜?”
“말로 하기 좀 힘든데…….”
아샤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을 하는 레이시.
아샤가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말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우뚱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샤를 끌어안으면서 볼을 부풀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입술을 샐쭉하게 내민 채로 엘라를 곁눈질로 살펴보다가 엘라와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마치 다른 여자들하고만 이야기해서 삐졌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아샤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그런 게 되겠냐며 헛웃음을 흘렸다.
엘라가 다른 여자들하고 사귀었던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어설픈 연기에 속아넘어갈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엘라를 쳐다봤고, 이내 엘라의 얼굴이 당혹으로 일그러지자 대체 왜 이런 어설픈 연기에 속는 거냐며 자기 이마를 부여잡았다.
“하아아아…….”
“아, 아하하하…….”
아샤가 한숨을 깊게 내쉬자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웃음에 뿔을 긁다가 안쪽으로 들어가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엘라에게 자기는 화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기도 하고, 모임에 와서 참여는 안 하고 계속 밖에서 겉도는 것도 좋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모임의 안쪽으로 들어갔고, 엘라는 레이시가 샐쭉하게 있다가 파티회장으로 들어오자 환하게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속이 안 좋은 거 같던데 괜찮아?”
“네, 괜찮아요. 고마워요.”
곧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멈춘 다음 레이시의 몸 상태를 살피는 엘라.
아샤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리다가 자기를 사라라고 소개했었던 여자를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질투심으로 가득 찬 얼굴로 레이시를 노려보는 사라.
아샤는 그런 사라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사라와 레이시의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어머, 이번에 남작이 되신 루피너스 남작님이시군요.”
“네? 아…….”
“처음 뵙게 되어 정말 반갑네요.”
아까 만났잖아.
아샤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의 말에 끼어드는 건 매너가 아니었기에 아샤는 그냥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참아내며 레이시를 바라봤다.
그러자 조금 복잡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이는 레이시.
사라는 레이시가 인사하자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면서 웃었고, 레이시는 그런 사라의 자랑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움찔 떨면서 레이시의 눈치를 살피는 엘라.
엘라는 잠시 쭈뼜거리면서 레이시가 화났는지 살펴봤고, 레이시는 엘라가 자기 눈치를 살피자 자기는 괜찮다면서 사라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이제 막 귀족이 되셔서 유즘 유행하는 가게에 대해서 잘 모르시겠군요. 나중에 요즘 수도에서 유행하는 장신구 가게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가격대는 꽤 높지만, 남작님은 사실 수 있을 거예요.”
레이시가 메이드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남작이라면 장신구를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사라.
레이시는 사라가 자기를 놀리는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알려주신다면 다음에 가보겠다고 말했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를 말렸다.
“그럴 필요 없어. 레이시.”
“네?”
“레이시의 것은 엘라의 것을 그대로 사용해도 좋아. 그렇게 허락받았었잖아.”
“으응……, 그렇기는 한데 남의 물건을 빌린다는 게 조금 신경 쓰이네요.”
“그렇다는군요. 공주님, 레이시를 위해서 장신구를 하사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랬어? 그냥 쓰지, 마법적 처리가 된 것도 아니고 그냥 보석만 달랑 달아놓은 거라 신경도 안 쓰는데.”
아샤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자기 목걸이를 풀더니 레이시의 목에 걸어주는 엘라.
사라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며 레이시를 째려봤고, 레이시는 사라의 눈빛에 움찔 떨다가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저런 감정을 지닌 사람을 대하는 건 아무래도 서툰데.
애초에 서로 합의하고 다 같이 자기를 좋아하기로 한 엘라와 미스트, 미네르바와 아샤가 전부 자기를 좋아하는 것도 어떨 땐 견디기 힘든데 저렇게 자기를 대놓고 싫어하는 건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아샤가 목걸이를 받아 자기 목에 걸어주자 일단 아샤에게 고맙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가 아샤에게만 고맙다 말하자 질투심 섞인 목소리로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뭐야, 아샤에게만 인사하는 거야?”
“아, 아하하…….”
엘라가 그러면 제가 질투받잖아요.
레이시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엘라가 진심으로 질투하면서 자기를 쳐다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엘라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엘라는 배시시 웃으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아직도 자리를 뜨지 않은 사라를 보고 여기에서 뭘 하는 거냐며 대충 손짓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레이시 말고 데이트할 생각이 없어. 그 반지는 너 줄 테니까 귀찮게 굴지 마.”
“네……?”
“지금은 레이시 말고 다른 사람 안을 생각 없다고.”
레이시의 귀를 약하게 깨물면서 웃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자기 귀를 깨물자 화들짝 놀라며 뭐 하는 거냐며 엘라를 말렸지만, 엘라는 손을 멈추지 않고 레이시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면서 잔잔하게 웃었다.
“드레스 입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싫어요. 속옷 보일 것 같단 말이에요.”
“그게 꼴리는데.”
“엘라, 나중에 혼나요?”
엘라와 잡담을 주고받으면서 한숨을 내쉬는 레이시.
레이시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눈을 돌렸고, 사라가 자기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엘라, 다른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됐어, 어차피 모험가의 지원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놨어. 이제 남은 건 나랑 이야기하고 싶은 거지 모험가를 지원하고 싶은 게 아냐.”
“그래도요. 돌아오면 원하는 거 하나 해드릴게요.”
“그래? 키스도 괜찮아?”
“……우으, 그럴게요.”
“풉, 그럼 다녀와야겠네.”
엘라의 말에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가 자리를 뜨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사라를 바라봤고, 사라는 레이시를 보며 이를 아득바득 갈다가 콧방귀를 강하게 뀌고는 자리를 떴다.
그러자 레이시는 한숨을 내쉬면서 투정 부리듯 저런 사람들은 아무래도 서툴다고 말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투정에 잘 했다며 머리를 꾹 눌러주었다.
“저런 사람들은 적당히 말대꾸 해주고 돌려보내는 게 최선이야. 괜히 사이가 좋아지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그러면 싸움만 커질 테니까.”
“역시 그런가요?”
“애초에 싸움을 걸러 온 사람이잖아. 뭐, 걱정하지는 마.”
“정말요?”
“응, 엘라가 없었어도 너한테 시비도 못 걸지 않을까 싶은데? 걔들 뒤에 있는 기사들, 너를 쳐다보는 게 아니라 자기 주인들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아마 나비가 무서운 거겠지.”
아샤는 그렇게 말하면서 요즘 기사들은 약해빠졌다며 혀를 찼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아샤가 강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레이시의 눈에는 모임 안에 있는 기사들은 모두 강해보였다.
키도 전부 180 이상이고 흉흉한 무기를 들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비와 함께 제압했었던 산적들을 봤을 때보다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레이시는 그렇게 물어봤지만,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레이시를 바라보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쟤들 존나 약해.”
“……네?”
“아무리 신입이라고 해도 전술에 대한 이해만 떨어지고 최소한의 실력은 지니고 있어야 구멍이 되지 않는데 저 녀석들 실력이면 모루 역할도 못 해.”
“으으응…….”
“……좀 더 쉽게 말해주자면, 마리아의 직속 부하들이 신입으로 들어왔을 때 전술적으로는 쓸만하지만, 개인 무력은 되게 낮아서 훈련을 많이 시켜야겠다고 이야기를 나눴었거든. 그런데 걔들이 신입일 때도 저 수준의 기사들은 혼자서도 넷은 상대했어.”
“정말요?”
아샤의 말에 아샤와 훈련하던 신입 기사들을 떠올려보는 레이시.
아샤가 눈을 돌리고 안 봐도 단 한 대도 못 맞췄었던 기사들의 모습을 떠올린 레이시는 정말 그런 거냐고 아샤를 쳐다봤고, 아샤는 레이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지 뿔을 긁으면서 시선을 피했다.
하긴 레이시가 본 것만으로 생각해보면 걔들이 강해보이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추가적으로 부연설명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아카데미의 졸업률이 낮았는데, 거기에 입학한 부모님들이 극성이라서 그런지 졸업률을 강제로 확 늘렸거든. 그러다 보니 기준에 통과도 안 되는 녀석들이 기사가 되는 거야.”
“원래는 몇 명 졸업했어요?”
“한 학년에 20명에서 30명. 졸업률이 대충 1%였어. 국가의 핵심 무력이니까 그 정도도 솔직히 말하면 좀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고.”
“어……, 지금은요?”
“5년 전부터 10%로 확 늘려서 200명에서 300명. 그러다 보니 8년 전에는 턱걸이였던 녀석이 신입 중 최상위가 되는 거지. 그런 녀석들 보면 칭찬을 해주고 싶어도 못 해주지.”
“아아…….”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대답에 눈을 깜빡이다가 자기가 꼰대 같았다며 레이시에게 사과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사과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기사는 몬스터나 외적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일단 기본적으로 강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리고 자기가 아는 사람들 중 물리적으로 제일 강한 사람은 아샤이니까, 아샤가 그렇다고 말하는 거라면 그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귀족들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쏠리자 아샤에게 벽천화 기사단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손을 잡았고, 아샤는 레이시의 요청에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레이시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는 레이시를 에스코트해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