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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145화 (145/542)

〈 145화 〉 그대를 위한 기사도­2

* * *

아샤와 밤 산책을 다녀온 후.

레이시는 귀족이 되어 바빠질 것 같다면서 긴장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레이시에게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굳이 특별한 일이라고 한다면 모르는 사람이 인사하는 것과 아직 루피너스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못해서 사람들이 몇 번이나 불러야 간신히 대답하는 게 끝.

그렇기에 레이시는 점심시간에 엘라가 하는 말을 듣고 어색하게 웃었다.

“귀족이 됐다고 이것저것할 줄 알았지?”

“아, 아하하…….”

엘라의 말에 고개를 돌리면서 시선을 피해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다가 레이시의 볼을 꼬집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부끄러운지 쭈뼛거리다가 미스트가 만들어준 빠에야를 입에 넣었다.

그러자 엘라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레이시를 놀렸고, 레이시는 얼굴을 붉히면서 엘라의 시선을 피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자기는 귀족이 되든 말든 엘라의 메이드.

메이드 업무를 제외하면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길 리가 없는데 대체 무슨 상상을 했던 걸까?

연예인 병이 이런 걸까 싶었던 레이시는 발을 앞뒤로 동동 구르면서 얼굴을 가렸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을 재밌게 바라보다가 남은 점심밥을 입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오늘은 저녁에 모임에 나가야 하니까 미스트랑 준비해줘.”

“저도 참가하나요?”

“겉으로는 모험가를 지원하기 위한 귀족들의 모임이라고 했지만, 유명 모험가는 한 명도 없고 나를 가장 먼저 초대한 걸 보면 다들 너를 보고 싶은 거겠지.”

“에에에…….”

“가끔 이렇게 나를 통해서 너를 모임에 초대하는 일 말고는 특별히 따로 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그러니 힘내줘.”

“……으으으으.”

엘라의 말에 앓는 소리를 내다가 볼을 부풀리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의 머리를 꾹 눌러준 다음에 2층으로 올라갔고, 레이시는 엘라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한숨을 내쉬면서 미스트에게 하소연했다.

“처음 겪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건데 저렇게 놀리다니……, 정말 너무해요.”

“공주님은 레이시가 귀여워서 놀리는 건데요. 뭘.”

“그래두요. 저렇게 볼 때마다 싱글벙글 웃으면 아무래도 부끄럽잖아요.”

“후후, 그래도 진심으로 놀리시는 건 아니니까 봐주세요.”

“우우.”

미스트의 말에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면서 미스트에게 안기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어리광에 작게 웃다가 등을 토닥여주면서 레이시에게 준비하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입술을 샐쭉이다 피싯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엘라가 나쁜 마음으로 놀리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스트와 함께 저녁에 있을 모임에 입고 갈 옷과 장신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뭐해?”

그리고 저택에 들어오면서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아샤.

벽천화 기사단의 훈련을 도와주고 오는 길이라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아샤는 바쁘게 움직이는 레이시와 미스트를 보고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모습에 수건으로 아샤의 얼굴을 닦아주며 욕실까지 데리고 갔다.

“저녁에 모임이 있다고 준비해달래요.”

“흐응? 무슨 모임?”

“모험가를 지원하기 위한 귀족들의 모임이래요.”

“흐응. 모험가는 누가 참석한대?”

“참석 안 한 대요. 길드 마스터들은 몇 명 참가한다는데, 유명 모험가분들은 아무도 참석 안 하신대요.”

“그래?”

……그럼 정치적인 모임이겠네.

정말로 지원하고 싶었다면 최전선에서 움직이는 모험가를 하나나 둘쯤은 부르고 그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지원해준 다음, 지원의 대가로 모험담을 들려주러 각자의 가문에 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엘라를 끌어내기 위해 모험가를 사용했을 뿐 본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땀을 씻어내다가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고 자리를 뜬 레이시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아, ……씨발.”

그리고 한숨과 함께 욕을 내뱉는 아샤.

좋게 생각한다면 그 모임에 온 귀족들이 레이시가 귀족 사회에 잘 적응하게 도와주고 엘라의 호감을 사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자기가 개인 교사를 자처하거나 아니면 이런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 부르는 게 좋았다.

그렇게 한다면 레이시가 실수를 저질러도 자기는 괜찮다는 식으로 덮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공식적인 자리로 부른다는 건 아무래도 레이시에게 창피를 줄 생각일 가능성이 컸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실수는 이야기거리가 되니까.

아마 엘라의 메이드가 예절도 제대로 모르는 무례한 사람이라거나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아샤는 문득 엘라의 자랑이 떠올라 혀를 가볍게 찬 다음에 샤워를 끝나고 레이시가 준비해준 옷을 입으면서 미스트를 불렀다.

“무슨 일이신가요?”

“레이시가 간다던 그 모임, 공식 모임이지?”

“네.”

“참가 인원의 제한은 있어?”

“아뇨, 없네요.”

“그럼 나도 갈게, 준비해줘.”

아샤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씩 웃으면서 아샤를 쳐다보는 미스트.

미스트는 알겠다는 듯 키득키득 웃었고,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웃음에 눈을 흘기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미스트와 말하면서 원하는 걸 얻을 바에는 차라리 벽을 보면서 도를 닦는 게 훨씬 편하다.

그렇기에 아샤는 미스트에게 준비해달라고 말한 다음에 레이시에게 가서 레이시의 일을 조금 도와주었고, 저녁이 되어 모임에 나갈 시간이 되자 마차에 올라탔다.

엘라와 미스트가 타고 있는 마차의 고삐를 잡는 아샤와 나비의 등에 올라타서 미네르바와 꺄르륵 웃고 있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를 힐끗 올려보다가 나비의 얼굴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걱정을 느끼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비 혼자만 내버려두면 미안하잖아요.”

“……아니, 뭐, 뭘 타고 오라고 한 이야기는 없으니까, 괜찮겠지.”

사실 전혀 괜찮지 않겠지만, 일단 규칙 상으로 문제가 없으니까 괜찮겠지.

누가 뭐라고 한다면 규칙을 어기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냐고 압박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와 함께 모임이 있는 곳까지 갔고, 엘라를 기다리고 있던 귀족들은 아니나 다를까 나비의 얼굴을 보고는 기겁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귀족의 체면 때문인지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상당히 놀랐는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아샤는 그런 귀족들의 반응에 속으로 가볍게 비웃고는 마차를 주차한 다음, 나비를 하양이의 옆에서 쉬게했다.

그리고 레이시에게 손을 내밀며 에스코트를 신청하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에스코트에 쭈뼛거리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아샤의 손을 잡았고, 아샤는 레이시의 웃음에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루피너스 남작님, 발 밑 조심하세요.”

“왜, 왜 그래요,스승님. 안 어울리시게…….”

“……풉.”

“으으으.”

아샤의 웃음에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리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적당히 긴장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한 다음에 엘라의 뒤를 따라가 레이시를 에스코트하면서 모임에 들어갔고, 그 순간 그 안에 있는 귀족들은 레이시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대놓고 노려보고 있지는 않지만, 모두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레이시를 쳐다보는 사람들.

레이시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쭈뼛거리다가 근처 웨이터가 음료를 마시겠냐고 물어보자 물을 마시겠다고 말했다.

전생에 비해서 주량이 줄어들은 것도 줄어들은 거고, 이런 곳에서 술을 마셨다가 사고를 치면 수습이 안 될 거 같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물을 홀짝이면서 엘라가 이야기를 나누는 걸 구경하고 있자 한 무리의 귀족들이 레이시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수군거리는 내용은 엘라의 변화에 대한 것.

레이시가 오고나면서부터 여자들을 건들이지 않게 된 엘라.

그건 왕가와 국왕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좋은 일이었지만,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좋지 못한 일이었다.

왕가에 접근해서 자기 가문의 권위를 높이는 것도 불가능하고, 왕가의 정보를 들어서 그를 활용하는 것도 불가능해지니까.

그렇기에 귀족들은 엘라와 접근할 방법을 없애버린 레이시를 보면서 혀를 찼고, 레이시는 사람들 틈에서 느껴지는 악의에 움찔 떨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왕궁에서 생활하는 건 힘들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들이 힘들다.

특히 평민 출신인데 공주의 최측근이 된다면 더더욱.

레이시는 엘라의 말을 떠올리다가 아샤의 손을 잡고 쓰게 웃었고, 아샤는 레이시의 얼굴에 레이시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어주면서 주변을 힐끗 둘러보다가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레이시를 데리고 갔다.

“흠, 힘들어?”

“아뇨, 이 정도는 괜찮아요. 대충 예상했거든요.”

“그래? 엘라가 말해줬나보네.”

솔직하게 말해서 레이시가 힘들다고 말할 줄 알았기에 놀란 얼굴을 하다가 대견하다는 듯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샤.

아샤는 레이시에게 아직 자기는 레이시의 스승이니 힘들면 기대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코니에서 아샤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별 쓰잘데기 없는 잡담.

벽천화 기사단에 있을 때의 이야기나 멜리아 같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아샤는 과일을 먹으면서 레이시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읍! 쯧, 조금 과즙이 많았네.”

“손수건 들고 왔어요, 닦아드릴게요.”

“내가 닦을 수 있어.”

레이시의 말에 손을 내밀면서 손수건만 달라고 말하는 아샤.

하지만 레이시는 아샤의 요청에도 자기가 닦아주겠다면서 아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고, 레이시를 주시하던 귀족들은 좋은 건수를 잡았다면서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레이시가 손수건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을 때, 환하게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루피너스 남작님.”

“응? 아, 아. 저요. 네.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사라라고 합니다. 엘라 공주님과 몸을 섞었던 사이죠.”

“아……, 안녕하세요. 사라님.”

루룬과는 다른 분위기의 말.

루룬도 자기가 엘라의 전 여친이라고 말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지만, 루룬은 그 말에, 목소리에, 눈빛에 그리움이 잔뜩 껴있었다.

엘라와의 추억을 그리워하면서, 엘라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엘라를 사랑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뭔가 엘라를 통해서 자기가 이렇게 잘났다고 말하고 싶은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까 전생에서 저런 일을 겪었었지.

그때는 자기가 이렇게 착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나와 만나는 척하다가 뒤로 다른 남자와 만나는 걸 들키고, 나한테 잘못을 뒤집어 씌웠던가.

안 좋은 추억이 떠올라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사라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사라는 레이시에게 자기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엘라님이 바쁘셔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셨지만,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을 땐 하루가 멀다하고 저를 안으셨답니다.”

“그, 그렇군요. 아, 아하하하…….”

“루피너스 남작께서는 몇 번을 안기시는지? 엘라 공주님이 선택하신 연인인데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어서 그런 부분에서 만족시키지 못하시면 안 되지 않을까요?”

“아, 아하하…….”

사라의 말에 그저 어색하게 웃기만 하는 레이시.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이야기는 듣기 싫다.

하지만 대놓고 싫다는 티를 내면 엘라가 나쁜 말을 들을까 봐 레이시는 그저 웃으면서 참아냈고, 사라는 레이시가 은근히 잘 참아내자 실수인 척 반지를 흘렸다.

“아, 죄송해요. 지금 제 옷이 이래서 그런데 주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사라.

레이시는 그런 사라의 말에 알겠다면서 허리를 숙였다.

사라 일행이 자기를 놀리기 위해서 한 행동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유치하게 이런 일로 싸울 수는 없으니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사라에게 반지를 건네주었고, 사라는 레이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엘라의 곁에는 이런 반지를 가진 사람이 더 잘 어울린다며 자랑하더니 레이시를 비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하아.”

“수고했어.”

“아하하하…….”

아샤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샤에게 머리를 기대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다가 레이시의 어깨를 껴안으면서 한심하다는 눈으로 영애들의 모임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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