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맹수 조련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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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미아크에 도착한 레이시가 가장 먼저 하게 된 건 미아크의 영주와 만나는 것이었다.
미아크는 왕가가 계획적으로 만든 도시가 아니라 예전부터 사람이 모여서 살다 보니까 만들어진 도시인 듯, 귀족의 성씨도 미아크였고 도시 곳곳에 오래된 도시 특유의 흔적이 보였다.
이런 게 눈에 보이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이 세상에 적응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좀 더 엘라의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해보자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미네르바와 함께 병사에게 갔다.
레이시의 손에 들린 건 미아크의 영주가 써준 공문.
대충 날림으로 쓰긴 했지만, 미아크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어서인지 병사들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레이시에게 미아크에 나타난 대호를 봤을 때의 이야기를 전해주기 시작했다.
“키가 저 숙소보다 컸습니다.”
“몸 길이도 성인남성 2명을 눕힌 것보다 길었습니다.”
“성벽 위에 있었는데 아마 원했다면 성벽을 넘어섰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빙글빙글 돌다가 산으로 갔습니다.”
“산 중턱에 올라가기 전에는 나무보다 커서 산에 들어갔어도 눈에 보이더군요.”
대부분은 호랑이가 말도 안 되게 컸다는 걸 반복해서 말하는 사람들.
레이시는 사람들의 말에 확실히 그런 걸 보면 그것밖에 기억에 안 남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에는 직접 질문을 골라하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몸에 상처는 있었는지, 굶주렸는지 포식했었는지, 걸을 때 어떻게 걸었는지 등등…….
병사들은 레이시의 질문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 ‘말랐네, 마르지 않았네.’ 그런 것들을 말하면서 싸우는 걸 보면 병사들끼리도 의견이 나누어지는 모습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 걸까?
레이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얌전히 병사들이 이야기를 확실히 할 때까지 기다렸고, 5분 정도가 지나자 이야기가 정리됐는지 50대로 보이는 한 병사가 레이시에게 다가왔다.
“상처는 없었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있었으니까 아마 확실합니다.”
“그럼 먹이가 없어졌을까요?”
“아뇨, 그런 거라면 가죽 너머로 늑골이 보여야 하는데 그러진 않았습니다. 거기에다가 저희들을 경계하는 눈으로 보면서 빙글빙글 돌았으니……. 아마 저희를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사냥할 때 경계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런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성벽 위에는 사냥꾼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하나 같이 ‘얕보이면 쫓겨날 것이다.’였습니다.”
“으으응…….”
얕보이면 쫓겨나다니, 호랑이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역다툼이라도 벌일 생각인 걸까…….
레이시는 병사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음에도 궁금한 게 생기면 도움을 구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병사.
병사들은 레이시가 자리를 떠나자 뒤에서 공주님께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면서 레이시를 배웅했고, 레이시는 병사의 배웅에 어색하게 웃었다.
호랑이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나인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실망하지 않을까?
뭐,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다음에는 호랑이를 봤다는 사냥꾼에게 갔고 사냥꾼은 레이시의 질문에 그런 짐승은 처음 봤다면서 덜덜 떨었다.
“저희를 관찰했었던 것 같습니다. 야생동물이라는 게 사람들은 맹수로 바라보며 용맹하게 달려드는 것만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서 치밀하게 계산하죠. 그리고 그 호랑이의 눈도 그런 눈이었습니다.”
“그런가요?”
“네. 갑자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상처도 없고 먹이도 충분히 먹은 거 같은데…….”
병사들보다 좀 더 자세하게 봤는지 사냥꾼은 호랑이의 몸에 흉터는 있더라도 상처는 없었다고 말하면서 호랑이가 어떤 느낌으로 자기들을 쳐다봤는지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레이시는 그런 사냥꾼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이시는 여태껏 만나본 맹수라고 해봐야 전생에서 봤었던 들개나 멧돼지가 끝이었다.
가끔 동물원에서 호랑이 대변을 받아올 때 호랑이를 보긴 했지만……, 그건 동물원에서 본 거고 직접 눈을 마주친 맹수 중 가장 위험한 동물은 한동안 굶은 멧돼지였다.
그러니 맹수에 대한 건 성벽에서 호랑이를 봤다던 병사들보다 잘 모르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부족한 지식임에도 레이시는사냥꾼의 말대로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동물은 자기 서식지를 어지간하면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집을 버리고 밖에서 자지 않듯, 동물은 자기 서식지를 버리고 다른 곳에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
비교 대상이 집고양이라서 조금 이상하다고도 생각하지만, 고양이과 동물들은 상자를 하나 구하면 그 상자에서만 잘 정도로 영역의식이 강하니까 더욱 이상했다.
영역 다툼에서 패배한 것도 아니고 먹이가 모자라진 것도 아닌데 자기 영역을 버리다니 대체 왜……?
레이시는 부족한 자기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한 일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사냥꾼에게 호랑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리고 조사는 해봤는지 물어봤다.
“제가 미쳤다고 조사를 나가겠습니까?”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사냥꾼의 거친 말이었다.
“다행히 호랑이가 여기에서부터 여기까지만 어슬렁거리고 있어서 상인에게 다른 길로 오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만, 그 호랑이의 영역에 직접 들어가려는 미친 놈은 없습니다.”
“에……. 그런가요?”
“네. 그러니 메이드 아가씨도 들어가실 생각은 하지 마십쇼. 아가씨가 야차라서 어지간한 사람보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녀석은 그런 종류가 아니라오.”
“저는 괜찮아요.”
“……저는 말렸습니다. 아가씨.”
레이시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다가 호랑이의 원래 영역이 어디었는지 말해주는 사냥꾼.
레이시는 사냥꾼이 지도를 건네주자 괜찮은 거냐고 물어봤고 사냥꾼은 레이시의 질문에 어차피 지도는 한 장 더 가지고 있으니 돌려주러 왔으면 한다고 말하며 손짓했다.
그러자 허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에 미네르바와 함께 하양이가 있는 곳으로 가는 레이시.
레이시는 하양이의 등에 올라탄 다음 지도를 펼쳤다.
“그럼 가볼까요?”
호랑이의 영역은 20km 정도 떨어진 산.
레이시는 조금 긴장했지만, 미네르바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를 쳐다보며 미소짓자 긴장감을 풀고 천천히 움직였다.
도시를 빠져나오자 레이시를 자살 희망자로 보는 병사들.
레이시는 그런 병사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하양이에게 오랜만에 달려보자며 고삐를 가볍게 잡아당겼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명령에 투레질하면서 대지를 박차기 시작했다.
100m를 5초 안에 달리며 빠르게 산으로 달리는 하양이.
레이시는 허벅지에 힘을 주고 멍하니 바람을 즐기다가 헤실헤실 웃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웃음에 같이 웃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눈을 찌푸렸다.
“왜 그래요오?”
“으음, 주인. 호랑이가 왜 내려왔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왜 내려왔을까요? 상처도 없다고 했으니 영역 다툼에 패배한 것 같지도 않고, 늑골이 안 보였다는 걸 보면 굶은 것 같지도 않고……. 왜일까요? 미네르바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뭘까요?”
“하나는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 찾아 나서는 거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 보금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새 보금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세요?”
“짝짓기를 위해서 움직인다면, 보통은 자기 소변을 몸에 바른다거나 땅에다 뿌린다거나 한다. 하지만 이 근방에서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금자리가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생각한다.”
미네르바의 말에 문득 냄새를 맡아보는 레이시.
전생에서 할아버지의 농장에 쳐들어오는 멧돼지를 쫓아내기 위해서 호랑이의 배설물 냄새를 질릴 정도로 맡았던 레이시는 확실히 그 냄새는 안 나는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천천히 입을 열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또 증거가 있다.”
“뭔가요?”
“하양이가 보금자리로 달리고 있는데 호랑이가 쳐다보고만 있다.”
“에?”
“저기다.”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호랑이가 자기를 쳐다본다니…….
레이시는 맹수의 경우에는 등을 보이는 순간 달려들기 때문에 순간 채찍으로 손을 뻗었지만, 미네르바는 괜찮다면서 손을 펼쳐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약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원근법을 무시한 것 같은 호랑이가 자리에 앉아서 레이시와 미네르바, 하양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오면 공격하겠지만, 보금자리로 가는 거라면 말리지 않겠다는 듯 멍하니 있는 호랑이.
레이시는 그런 호랑이의 반응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보금자리로 향하는 하양이의 고삐를 잡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역의식이 강한 고양이과 동물이 왜 우리들을 지켜보기만 할까……?
그냥 자기 영역이 질려서 나온 거라면, 자기 영역을 지나치고 있는 우리들을괜히 괘씸해서라도 한 번 쫓아올 법도 한데.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빨리 산에 가봐야겠으니 하양이에게 힘내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요청에 가볍게 투레질하고는 레이시와 미네르바를 태운 채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분 정도가 흐르자 산에 도착한 레이시와 미네르바.
레이시는 하양이에서 내려와 쉬고 있으라며 하양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고, 미네르바와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꽤 가파른 산이었지만, 무리 없이 산에 올라가는 레이시.
그리고 레이시는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산에 잔뜩 핀 하얗고 붉은 꽃들.
“이거…… 백합이죠?”
이르면 봄에서, 늦으면 여름 말까지 피는 꽃들이 가을이 된 지금 왜 피는 걸까……?
늦여름에 피는 백합의 경우 조금 늦게 피었다고 생각한다면 못 필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봄에 피는 꽃까지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고 있자 레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상한 현상에 대한 생각 외에도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면, 왜 호랑이가 빠져나왔는지 알 것 같다는 것이었다.
호랑이에게도 통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과 동물에게 백합꽃은 극약이다.
시장에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양파를 먹고 죽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애완고양이가 화분을 파해치고는 백합 가루에 범벅이 돼서 죽었다는 이야기까지.
고양이에게 백합은 사약이라는 것 같으니, 온 숲이 이렇게 백합 천지가 되었다면 싫을만도 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기에도 안 맞는 백합이 왜 피었는지 알아보자며 산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미네르바는 뭔가 느꼈는지 레이시를 품에 껴안고 뒤로 뛰었고, 2초 정도가 지나자 레이시가 있던 자리에 부메랑이 꽂혔다.
“흐에……?”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땅에 꽂히는 부메랑.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무게가 꽤 되는 건지 땅 깊숙이 파묻힌 부메랑에 레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고개를 위로 들었고 이내 귀가 뾰족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엘프…….”
“주인, 적이다.”
“어, 그, 그런 거 같네요? 대화할 의지는 없으려나…….”
“가진 것을 내놔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두목! 저 여자 예쁘게 생겼는데 가지고 노는 건 어떻습니까!?”
“……산적이구나.”
처음에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인 걸 확인하고는 레이시는 목을 가다듬으며 대화하려고 했지만, 엘프들은 레이시의 옷이 비싼 걸 한눈에 확인하고는 돈을 내놓으라는 둥 노예로 팔자는 둥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엘프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대번에 눈치채고는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엘프 산적이라니……, 엘프는 자연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다시 부메랑이 날아오자 이번에는 아샤가 가르쳐준 대로 침착하게 부메랑을 채찍으로 쳐낸 다음 미네르바에게 안겼다.
“도망칠까요?”
“안 죽이나?”
“으응……, 저는 아직 법을 잘 모르니까요, 엘라에게 보고하고 처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호랑이가 영역에서 벗어난 이유도 알았으니까 그것도 말해주러 가야하고요.”
“……부우. 주인의 사랑하는 펫은 나 혼자면 되는데.”
“아하하, 부탁해요?”
레이시의 말에 입술을 샐쭉거리면서도 날개를 펼치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몸을 맡기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엘프들은 미네르바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나무 사이를 빠르게 날아다니면서 산 아래까지 도망치자 엘프들은 혀를 차면서 레이시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레이시는 산적 엘프들의 고함에 황당하다는 듯 엘프들을 쳐다보다가 산 아래에 있던 하양이의 등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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