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수호신의 복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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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을 신고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가는 레이시.
자기가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것이었기에 레이시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부끄러움을 감추자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연달아 헛기침했다.
“커흡! 큽! 크흡!”
다들 조금 과감한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자기 예상보다도 몇 배는 과격한 옷차림.
다리 부분의 라인이 골반과 엉덩이에 걸친 자기 옷도 상당히 파렴치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옷은 그런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섰다.
솔직하게 말해서 스트립쇼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
미인 선발 대회가 왜 저녁에 열리는지 알겠다고 생각한 레이시는 바들바들 떨면서 마지막 줄에 섰고 진행자는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뭐라고 하는지는 전혀 안 들렸지만.
왜 내 옆자리에 있는 사람은 가슴에다가 스티커만 하나 붙여놓고 당당하게 서 있는 걸까?
그리고 저기에 있는 저 사람들은 왜 배가 훤히 드러난 거고?
바니 복장이라며?
저런 것도 바니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쭈뼛거리면서 최대한 빨리 대회가 끝나라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런 레이시의 기도를 들었는지 진행자는 대회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대회가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수치 플레이가 시작되겠지만, 그래도 대회 진행을 안 해서 가만히 수치심을 느끼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진행자를 쳐다봤고, 진행자는 처음으로 애교를 부려달라고 말했다.
바니의 목적이 상대방을 흥분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옷이기 때문이라면서 장내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진행자.
레이시는 진행자의 말에 특등석에서 자기를 보고 있는 엘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엘라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볼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레이시는 엘라의 반응에 울먹거리면서 얼굴을 가렸다.
진짜 애교를 부려야 하는 걸까?
애교를 부린다고 해도 누구에게 어떤 애교를……?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남이 하던 애교를 똑같이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고개를 돌려서 다른 참가자들이 하는 걸 관찰했다.
그리고는 정말로 저런 게 애교라도 되는 걸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일부러 모아서 크게 만든다거나 엉덩이를 내밀고 씰룩거리거나…….
하긴 상대를 유혹하기 위한 옷을 입고 미인 대회를 여는 거니 저런 애교를 부리는 게 정상일지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런 애교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저런 애교를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저런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반쯤 우는 얼굴로 자기 차례가 오길 얌전히 기다렸고 자기 차례가 찾아오자 진행자는 큰 목소리로 레이시에게 말을 걸었다.
“오호! 전통적인 바니로군요! 레이시 양! 레이시 양은 어떤 애교를 보여주실 건가요?”
“……안 하면 안 돼요?”
“……네?”
“아니, 아니에요…….”
이미 본선에 진출해서 1차 심사도, 2차 심사도 통과했는데 갑자기 3차 심사에서 안 하겠다고 하면 대회의 분위기가 팍 죽어버리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반쯤 울먹거리는 얼굴로 앞의 도전자가 했던 자세를 어설프게 따라했다.
엉덩이를 엉거주춤하게 뒤로 뺀 채로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토끼귀처럼 까딱거리는 레이시.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은 레이시를 노려봤고, 레이시는 그런 참가자의 시선에 움찔 떨면서 속으로 사과했다.
하긴 처음 했던 사람의 애교를 따라하면 또 모를까, 바로 직전 사람의 애교를 흉내 내면 자기를 우습게 생각한다고 느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다음에는 맨 처음 사람을 흉내 내기로 생각하고 다음에는 뭘 할지 한숨을 내쉬면서 진행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이번에는 와인을 몇 병 들고 오는 진행자.
진행자는 바니는 술집의 한 여인이 개발한 옷이며, 개발자를 기리기 위해 술을 따르는 모습에 점수를 매긴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레이시는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을 흉내를 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기쁘게 웃었다.
이건 미스트가 보여줬었던 걸 그대로 따라하면 되니까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건들지 않을 수 있겠지.
그땐 와인이 아니라 주전자였지만, 병의 입구를 만져보자 레이시는 할 수 있을 거라 느끼곤 천천히 심호흡하며 천천히 병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잔에 술병의 입구를 대고 조금 따른다.
그러다가 갑자기 술병과 잔의 거리를 확 벌리면서 와인의 물줄기를 보여주고 가볍게 병목을 들어 물줄기를 끊는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겁먹지 말고 과감하게 병을 드는 것.
그런 것들을 떠올린 레이시는 완벽하게 와인을 따라내고는 잔과 병을 내려놓았고, 진행자는 부끄러워하며 애교를 부리던 것과는 정반대로 완벽하게 술을 따르자 관객들을 흥분시키기 위해서 다른 자세로 술을 따라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쭈뼛거리다가 테이블 앞으로 가는 레이시.
레이시는 왼쪽 발을 들어 올려 오른쪽 무릎 쪽으로 가져간 다음 테이블에 걸터앉았고, 그대로 병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돌리다가 목 뒤로 병을 들고 가 등을 따라서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척추선이 훤히 드러난 옷 때문에 와인의 줄기 너머로 보이는 레이시의 살결.
우아하게 술을 따르는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요염하게 느껴지는 레이시의 모습에 진행자는 순간 넋을 놓고 있다가 다른 스태프의 손짓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대회를 이끌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진행자의 요구에 따르며 부끄러운 짓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춤을 춰보라던가 몸에서 자신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말해보라거나…….
그렇게 앞으로는 할 일이 없는 것들을 끝낸 레이시는 대기실에서 풀썩 주저앉아 미스트의 품에 안겨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수고하셨어요.”
“……미스트.”
“네?”
“엉덩이에서 손 떼주세요…….”
“어머, 실수.”
“실수가 아니잖아요…….”
레이시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위로해는 듯하더니 레이시의 엉덩이로 손을 가져가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마저도 이러는 거냐며 가볍게 투덜거렸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가 잘못한 거라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자 억울하다는 듯 미스트를 바라보는 레이시.
자기는 엘라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노력한 거밖에 없는데 왜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까?
그런 의문에 레이시는 미스트를 노려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피식 웃더니 레이시의 귀에다 대고 그런 짓을 했으면서 무사하길 바라냐고 물었다.
사람들 앞에서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가슴골을 은근히 내비치듯 엉거주춤 몸을 숙이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고, 그러면서도 자기에게서 배운 기술을 당당하게 내비치고…….
앞의 것만 하더라도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할 정도인데 마지막에 그건 대체 뭐란 말인가?
미스트는 그런 걸 본 이상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당황하며 엘라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며 얼굴을 붉혔다.
“저, 저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거든요!?”
“헤에, 왜요?”
“왜냐니……, 부끄럽잖아요…….”
“왜 부끄러워요?”
“……에?”
그런 게 안 부끄러운 건가요?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그렇게 되물으며 미스트를 쳐다봤지만, 미스트는 눈빛이 변한 채로 웃고 있었고, 어딘가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미스트의 눈빛에 미스트가 지금 자기를 놀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정말로 흥분을 참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레이시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꼭 대답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러자 입을 뻥긋거리다가 미스트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는 레이시.
레이시는 한참을 쭈뼛거리다가 나중에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자기가 어떤 일을 당할지 잘 알고 있는 레이시의 모습에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러네요. 어디로 갈 거 같나요?”
“잘은 모르겠는데 마케르크 가문의 저택은 아니죠……?”
“후후……, 글쎄요? 아주 조용한 곳으로 갈 거 같긴 하네요.”
미스트의 말에 귀 끝까지 붉어지는 레이시의 피부.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어차피 우승은 레이시일 건데 결과 발표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생각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작게 퍼지는 뜨거운 숨결.
하지만 그 숨결을 들은 레이시는 상상 이상의 냉기에 움찔 떨면서 미스트를 올려다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뺨을 가볍게 잡더니 고개를 들게 하고 레이시의 입에 입술을 겹쳤다.
깊게 키스하지는 않았다.
입술을 혀로 가볍게 핥은 다음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그런 게 오히려 레이시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마치 나중에 더 괴롭힐 테니 각오하라고 말하듯, 가볍게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미스트의 입술.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게 만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레이시는 입술을 손으로 가리다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을 즐기며 미인 선발 대회의 결과는 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레이시를 일으켜세웠다.
그러자 앓는 소리를 내면서 울먹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부끄러운 짓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칭얼거렸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나중에 어떻게 괴롭힐지 정했다.
오늘은 부끄럽게 만들어서 펑펑 울게 하자.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의 손을 잡고 레이시를 에스코트 해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에스코트를 받아 단상 위로 올라갔다.
우승자는 만장일치로 레이시였다.
결정적이었던 건 와인을 따르는 모습.
미스트가 가르쳐 준 기술은 왕실에서 몇몇 메이드에게 가르쳐주는 고급 기술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치트였다.
“그럼 소감을 물어보겠습니다! 기분이 어떠신지요?”
“……부끄러워서 죽을 거 같아요.”
“아하하하! 그런 멋진 기술을 보여주신 것과 다르게 부끄러움이 많으시군요!”
“우으으…….”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리는 레이시.
진행자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정말 다양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애교를 부릴 땐 부끄러워서 쭈뼛거리는 모습이 귀여웠고, 채찍을 휘두를 땐 순간적으로 관객을 휘어잡을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쳤으며 와인을 따를 땐 기품이 흘러넘치면서도 요염한 매력이 흘러나왔다.
더 대단한 건 그런 매력 하나, 하나가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다양한 매력을 지녔다는 건 무엇 하나는 연기하고 있다는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레이시에게는 그런 연기 특유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레이시가 무대에서 보였던 모든 게 레이시의 일부인 것 같은 느낌.
그렇기에 진행자는 레이시가 겸손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웃으면서 엘라의 명령 때문에 대회에 출전했으니 상으로는 뭘 요구하고 싶냐고 물어봤다.
명령을 충실하게 따른 가신에게 상을 준다.
그걸 부추기는 것 정도야 딱히 불경죄도 아니었기에 진행자는 엘라를 보며 축제의 흥을 위해서 레이시에게 상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엘라는 진행자의 부탁에 못 들어줄 것도 없다며 씩 웃다가 레이시의 허리를 살짝 끌어안고 맥주를 자기 이름으로 하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레이시 덕에 공짜 술이 생긴 사람들.
사람들은 엘라의 말에 연신 레이시의 이름을 부르면서 환호성을 질렀고, 엘라는 사람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인사해주다가 레이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루룬이 여관 잡아뒀다고 하니까 그쪽으로 가자.”
“에……?”
사람들이 안 보는 틈에 레이시의 엉덩이를 가볍게 쥐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손짓에 움찔 떨다가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작게 웃다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다가 슬슬 됐다며 대기실을 통해 대회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응?”
“으응?”
그리고 미스트와 마주치는 엘라와 레이시.
레이시는 아까 미스트가 한 키스가 떠올라 입을 가리며 두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레이시의 행동에 대충 상황파악을 끝낸 뒤 서로 눈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
“내 차례야.”
“제 차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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